< 초대 (1) >
초대 (1)
<결론>
- 스테판 유제프가 제약과 학생들을 협박해서 약물의 원료를 얻어냈다는 증거 확보.
- 근거리에 배치되어 있던 마법사의 증언에 따르면 스테판 유제프가 다가오는 시안 몬트라우에게 넘어진 채로 마법을 난사함. 넘어진 스테판 유제프에게 시안 몬트라우가 손을 내밀었으나 스테판 유제프가 각혈하며 혼절, 이후 시안 몬트라우의 통제로 모의 전투 종료.
- 스테판 유제프가 혼절하기 직전 거대한 마나 흐름을 감지함. 스테판 유제프가 마나 변환 통제권을 잃은 것으로 사료됨.
- 스테판 유제프의 몸에 남은 외상은 낙마 당시에 얻은 것으로 추정 되는 것 외에 없음.
- 시안 몬트라우가 스테판 유제프에게 위해를 가했을 가능성은 낮음.
- 스테판 유제프의 사인은 약물 부작용에 의한 마나 폭주 현상.
"후...."
제 1 마법대대 조사관, 나발드 지하임이 보고서를 덮었다.
덮은 보고서 위에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몇 주 내내 현장 조사를 나가고, 두꺼운 보고서를 읽느라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카몰 후작가의 정식 후계자가 죽었다.
오러를 쓰지도 못하면서 기사단 모의 전투에 참여했다가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그 순간을 유일하게 지켜본 것이 제뉴인 공작가의 장자, 시안 몬트라우였다.
푸르게 변한 눈, 죽은 후에도 시체 주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일어나는 작은 마나 변환 현상.
의심할 나위 없는 마나 약물 부작용이었다.
나발드가 천천히 상황을 정리하며 혼잣말을 했다.
조사관 생활을 하며 얻게 된 버릇이었다.
"철없는 귀족 도련님이 능력 범위 밖의 힘을 가지고 날뛰다가 죽었다······. 그리고 그걸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역시나 성인이 되지 않은 채로 모의 전투에 참여한 다른 귀족 도련님이다······."
나발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소설에나 등장하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카몰 후작가 측은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습적인 전략을 사용한 것은 자신들인데다가 모의 전투 간에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다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제 1 마법대대가 투입된 것도 죽은 것이 후작가의 후계나 되는 상황이고 게다가 그가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와 버리다니······.'
때마침 나발드가 앉아있던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예를 차리기 위해 나발드가 일어서자 이제 변성기가 오고 있는지 소년과 성인의 중간 정도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했다.
"앉아 있게. 요새 고생 많다고 들었네."
유일한 목격자, 시안 몬트라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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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내용을 며칠 사이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지 모르겠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앞에 앉아있던 나발드가 당황한 표정을 했다.
"행정 절차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확인에 확인을 거쳐야 합니다. 공자님의 적극적인 협조에는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증언을 하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마지막일걸세."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시안 공자님께서 스테판 공자님께 다가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진영에서 이탈했기에 사로잡으려고 접근했네. 표면적인 적장은 강철바위의 단장이겠지만 실질적인 전력의 핵심은 스테판이었으니까."
"전장의 소음 때문에 두 분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대화가 오갔습니까?"
"나는 항복과 패배 선언을 권유했고 스테판은 그럴 수는 없다고 저항했네. 어쩔 수 없이 기절 시켜야겠다고 다가가는 차에 그런 일이 일어났네."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렇네."
지하임의 눈이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로가 묻어있기는 했지만 날카로움은 전혀 죽지 않은 눈이었다.
"공자님께서 손을 내민 것을 본 마법사가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이것 때문에 그런 것이었나. 빈틈을 잡았다고 좋아하고 있겠지.
가소로웠다.
"일으켜 세워 기절 시키려고 했네. 뒤통수를 치거나 배에 주먹을 먹이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바닥에 등을 대고 있는 사람을 기절 시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라네. 스테판도 체면이 있는데 발로 머리를 걷어 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알겠습니다. 그 늑대에 대한 것은······."
"그 부분은 정식으로 몬트라우 가에 공문을 보내 협조 요청을 하도록 하게. 아버지의 지침일세."
전투가 끝난 이후, 전투의 승패도 승패였지만 스테판의 죽음과 투브의 존재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내가 수도에서 사라진 것이 저 생물을 얻으러 갔다는 소문, 몬트라우 가의 문장인 검은 늑대와 엮어서 저 늑대가 투브의 자손이 아니겠냐는 소문 등등.
궁금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버지는 모의 전투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오직 정식 공문으로만 관련 내용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작 가문에 궁금증 때문에 공문을 발송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족족 반려 시키는 중이었다.
어느새 코 끝으로 내려와 있던 안경을 나발드가 밀어 올렸다.
그리고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수고했네.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다 알려 준 것 같네만, 협조가 필요하면 요청하게."
다시 한 번 완고한 축객령이다.
지하임이 허리를 세워 흐르는 식은땀을 한 번 닦고 보고서를 들고 부하와 함께 나갔다.
[더럽게 복잡하구만?]
'이래서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지금은 인력과 시간이 남아도는 시기라 조금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바로 양지든 음지든 시선을 모으게 돼.'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네.]
'운이 좋았어. 팔이나 다리 하나를 부숴서 어디 시골 영지에 보내버리려고 했는데 약물을 먹고 나왔을 줄이야.'
고개를 의자 뒤로 넘긴 채로 몸에 긴장을 풀었다.
복수가 시작됐다.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짜릿한 전류가 온 몸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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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렇게인가?"
왼발과 오른발을 서로 꼰 채로 앉는 자세를 취하고 양 팔은 서로 다른 각도로 뻗었다.
"왼팔이 조금 더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련님?"
"이런 식으로?"
"예, 오른발도 조금 더 뒤로 빼는 것 같습니다."
[푸하하하. 어정쩡한 꼴이라니. 이래서 오래 살아야 해. 기상천외한 걸 많이 볼 수 있거든!]
머리를 울리는 투브의 웃음소리에 나는 그만 균형을 잃고 연무장 바닥으로 쓰러졌다.
"젠장! 대체 뭐야!"
대외적으로 나는 스테판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비탄에 빠져 외부 인물들과 접촉을 꺼린다고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탄은 무슨, 요즘처럼 기분 좋은 적이 드문데.
매일 같이 지하 연무장에서 알버트, 투브와 같이 이타르가 남긴 책을 분석하고 있었다.
글을 해석하는 것은 도저히 안 되겠어 일단 미뤄두고 지금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림의 자세를 따라하던 중이었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도련님."
알버트가 침울한 표정을 했다.
"어쩔 수 없는 거지. 이타르가 이 책에 관해서 더 남긴 말은 없었어?"
"마검사가 보면 분명 활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걱정 말라는 말씀 밖에는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에잉······ 이래서 천재들이 안 된다는 거다. 남들도 다 자기 같은 줄 알거든.
[잠깐, 이타르가 '활용'하라고 했다고?]
'그렇다고 하는데?'
투브의 의문을 전하자 알버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합니다. 활용하라고 하셨습니다."
투브가 책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분명히 뭔가가 있군. 책을 남겨두고 이해나 해석이 아니라 활용이라니.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을 지도 몰라. 책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 속은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어. 마법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야.]
'그래?'
누군가가 연무장의 문을 두드렸다.
"시안, 안에 있느냐?"
아버지였다.
알버트가 재빠르게 책을 감추고 문을 열었다.
"시안을 상대하느라 자네가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각하. 저도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알버트가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의 시선이 나를 거쳐 투브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저 개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셈이냐? 이 아비에게도?"
"크루슈 산맥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 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그 곳에 왜 갔는지도······"
"그것은 일전에 묻지 않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공.작.각.하."
아버지가 크흠 하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렸다.
밖에서는 평정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아버지가 가족들에게는 맥을 못 추는 모습이 이상하면서도 재밌었다.
"저 개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면 그런 소리는 못할 게다. 여튼, 스테판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고 하는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혐의라는구나. 오히려 조사에 적극 협조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거듭 당부하더구나."
완전 범죄를 저질렀다.
스테판은 추후 마법사 협회의 거물로 성장해서 내 앞길을 방해하니 큰 성과였다.
"후작가 측에서 반발은 없었습니까?"
"황실 측의 사람도 많이 있던 자리인데 감히 반발을 할 수는 없을 게다. 조사 결과도 말끔하니 더더욱 할 말이 없겠지."
아버지가 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진지해지거나 고민이 있으면 자주 하시는 행동이었다.
"다만 유제프 가문은 손孫이 귀한 가문이라 마땅한 후계가 없으니 다른 혈연 관계의 귀족들에게서 양자를 입양해 올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귀족 사회가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구나. 귀족원에서도 내게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유제프 가문의 가주이자 카몰 후작인 스타리옷 유제프에게는 자식이 스테판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런 스테판이 죽었으니 대가 끊기기 싫으면 카몰 후작은 누군가를 데려와 자신의 후계로 앉혀야 했다.
공작이나 후작의 피를 가진 아이를 데려다가 괜히 남의 가문에 흡수 당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을 테니 백작 이하의 귀족을 양자로 맞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가 끊기지 않기 위해 양자나 양녀를 들이는 경우는 흔했지만 이건 무려 후작이라는 작위가 걸려 있는 문제다.
다른 공작가와 후작가는 또 가만히 있겠는가, 자신들의 입김이 닿은 하위 귀족이 카몰 후작가의 후계자가 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다.
'젠장. 지난 삶에서는 제국에 반기를 든 놈들 때문에 고생이었는데 이번 삶에서는 귀족 놈들 칼부림 하는 꼴 보겠네.'
[네가 행한 행동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거 랬지?]
'골치 아프네······.'
헌데 저런 내용은 나를 불러서 말씀하시면 될 내용이지, 직접 지하까지 내려오셔서 전해주실 성질의 것은 아니다.
본론이 있을 것이다.
"사람을 시켜 저를 위로 부르시지 그러셨습니까. 한창 바쁘신 데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가 못마땅한 얼굴을 지었다.
"누구 때문에 바쁜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굳이 말 하지는 않으마. 너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신다는구나."
"그것은 아버지께서 막아주신다고······."
아버지의 눈이 엄격해졌다.
"조건이 있지 않았느냐."
-황실의 초대 같은 정말 중요한 행사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직접 너를 귀찮게 하는 것들을 막아주면 되겠느냐?
게다가 아버지는 '너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공작이 존칭을 붙여 부를 만한 존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역시 너무 눈에 띄게 행동했나······.
품에서 편지를 꺼낸 아버지가 나를 향해 내밀었다.
허름한 봉투에 내 손이 닿자 화르륵 불길이 일며 고급스러운 재질에 금박이 입혀져 있는 편지로 변했다.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편지의 위에 보낸 사람의 문장紋章이 찍혀있었다.
설산 위에서 바람을 맞는 소나무의 모습이 생생했다.
바그안트 서비어.
제 2 황자이자 미래에 형인 황태자를 죽이고 황제에 오르는 자의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