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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29화 (29/180)

< 밤의 손님 (2) >

밤의 손님 (2)

넓은 공간을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잔뜩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한 편으로는 나를 반가워하고 있지 않나할 정도로 들뜬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목소리는 반대편에서 나오고 있어.]

투브에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어둠에 묻힌 문 하나가 보였다.

'문이 닫혀있는데? 그럼 마법인가?'

[마법이거나,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우릴 관찰하고 있거나. 비밀 창고였다며.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허공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손님이 어딜 주인의 이름을 물어!"

어둠 속에서 묵직한 오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맹금의 발톱 같이 나를 움켜쥐는 듯 한 모양새였다.

"으앗!"

교묘한 나를 덮쳐오는 오러에서 간신히 몸을 빼 빠져나왔다.

여전히 상대는 기척 하나 없었기에 나도 오러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어려 보이는데 제법이야."

어둠 속에서 뚜벅 뚜벅 걷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저 편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발소리에 맞춰 투브가 내 주위를 돌며 경계했다.

'젠장, 검이 없어.'

[필요할 때만 마나 소드를 만들어서 써. 조절을 잘 해야 할 거야. 상대는 강하다.]

강하다는 것은 아까 날려 보낸 오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힘을 거의 잃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며 목표를 덮치는 오러.

상대는 고수다.

탓-

도약하는 소리가 났다.

[왼쪽!]

투브의 말이 들리기 무섭게 손에서 마나 소드를 만들어냈다.

키기기기긱

마나 소드와 상대의 검이 충돌하면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나와 상대 사이에서 마나와 오러가 뒤얽히며 불꽃이 피어올랐다.

내가 놀라서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투브가 상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투브, 안 돼!"

내 말에 거대한 늑대로 변해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던 투브가 바로 몸을 작게 만들었다.

[왜! 지금이 기회였는데!]

'잘 참았어.'

불꽃이 치솟는 찰나의 순간, 나는 분명히 봤다.

풍압에 춤추듯 흩날리는 회색 머리카락, 온통 하얗게 흰자위만 보이는 눈, 캐슬린과 비슷한 정도로 보이는 나이.

황궁에 그런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었다.

손에서 빛을 만들어 높이 올렸다.

빛이 둥실둥실 올라가면서 어둠을 밀어냈다.

내가 본 것은 틀리지 않았다.

"1 황녀마마,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제뉴인 공작가의 시안 몬트라우입니다."

황급한 내 인사에도 제 1 황녀, 엘리자벳 서비어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얼굴에는 환희인지 공포인지 분노인지 모를 표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저는 시안 몬트라우······."

말을 마치기도 전에 투브가 외쳤다.

[이상해! 저 안에 있는 건 남자야!]

남자? 무슨 소리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녀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섬뜩하고 듣기만 해도 몸을 벌벌 떨게 될 것 같은 음성이었다.

"그대는 누구길래 짐의 앞에서 그것을 보이는 것인가!"

짐朕? 황제가 아닌 사람이 쓰면 경을 치는 단어인데?

"답하라! 감히 짐 앞에서 그것을 보이다니! 이타르와 무슨 관계인가!"

"이타르를 아십니까?"

"짐의 하문에 물음으로 답하지 말라!"

황녀의 손에 들려있던 검에서 오러가 뻗어 올랐다.

오러는 검신을 모두 덮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검의 끝에 도달해서도 형체를 만들며 더 솟아올랐다.

일반적인 기사였으면 탈진해서 죽을지도 모르는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몸의 오러는 잔잔한 강이 흐르듯 안정된 상태였다.

"대답이 늦는구나."

황녀가 자세를 낮추며 나를 향해 뛸 준비를 했다.

"후손의 몸을 망가트릴 수는 없으니 바로 너를 제압해 답을 듣도록 하마."

남자, 검 위로 솟는 오러, 짐, 황녀를 후손이라 부르는 것.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모든 상황이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초대 황제십니까?"

엘리자벳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시안! 위다!]

"짐을 알다니, 갸륵하다."

머리 위에서 공간도 베어버릴 듯 날카롭게 모양이 잡힌 오러가 떨어져 내렸다.

##

"재밌구나. 인간과 짐승의 합공이라니."

검을 내 목에 들이대고 선 황녀가 말했다.

투브는 내 안위 때문에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몇 번 검을 나눠본 뒤 내가 느끼는 감상이었다.

나와 투브가 끊이지 않고 공격과 방어를 전환해가며 황녀를 공격했지만 손짓 몇 번, 발짓 몇 번으로 우위를 점했다.

마치 어떻게 하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시안 몬트라우라 했나, 이타르와 어떤 관계인지 말하라. 짐의 인내심은 길지 않다."

검에서 반사된 빛이 눈을 찔렀다.

내 목에 닿아 있던 검이 살짝 흔들리며 목에 상처를 냈다.

'지금!'

투브가 전력을 다해 황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마나를 이용해서 사라지듯 내 몸을 숨겼다.

아무리 서비어 가문의 피를 이었다고는 해도 어린 아이다.

오러의 운용 정도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맞았다.

때를 맞춰 공중에서 타오르고 있던 빛을 없애버렸다.

다시 어둠이 몰려왔다.

"가소롭구나. 벗어날 수 없다."

당당하게 말한 것과 달리 황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마법으로 나와 투브를 완벽에 가깝게 어둠과 동화시켰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마나가 심각하게 떨리는데?]

'괜찮아. 한 번이면 돼.'

어둠으로 막을 친 것이 아니라 혹시나 들킬 경우를 염려해서 물리적 실체가 있는 나와 투브의 존재를 어둠에 가깝게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고난이도 마법이라 앞으로 몇 초도 더 유지하기 힘들었다.

몸 안의 마나회로가 타버릴 듯 뜨거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주면 황녀도 오러를 다시 회복할 것 같았다.

'가!'

마법을 해제하자마자 투브가 튀어나갔다.

콰앙

투브의 앞발과 황녀의 검이 충돌했다.

투브가 연속적으로 앞발을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갔으나 황녀는 작은 몸을 이용해서 농락하듯 여유롭게 공격을 빠져나갔다.

"신기한 짐승이지만 여기까지다."

다시 한 번 황녀의 검에서 오러가 뻗어 올랐다.

아까보다는 형태와 색이 명확하지 못했다.

오러 운용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황녀의 주위를 돌고 있던 내가 뛰어들었다.

황녀의 검이 투브의 목에 닿기 직전, 전력을 다해 마나 소드를 만들어냈다.

지금껏 만들어낸 어떤 마나 소드보다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마나 소드가 손에 잡혔다.

키기기기긱

예의 그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참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때 다시 한 번 황녀의 오러가 출렁였다.

"이런!"

황녀의 외마디 비명이었다.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미 용광로라도 된 듯 몸을 달구고 있는 마나회로였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마나를 끌어들여 마나 소드로 올려 보냈다.

"하아아아아!"

챙그랑!

마나 소드가 황녀의 검을 오러 채로 베어버렸다.

황녀는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재빨리 마나 소드를 없애고 따라갔다.

황녀의 앞에 서서 손에 이글거리는 불을 만들어냈다.

"이제 제 질문에 답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

움찔거리는 황녀의 뒤로 투브의 노란 눈이 보였다.

그걸 돌아본 황녀가 자세를 바로 하고 앉더니 광소를 터트렸다.

"와하하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짐이 무엇을 말해주면 되겠느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한 순간에 달라진 태도에 투브마저 당황하고 있었다.

"본래의 짐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린 후손의 몸으로는 그대를 이길 수 없다. 그대도 짐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지 않느냐? 짐을 즐겁게 한 자에게 내리는 상이다."

내가 움찔거리자 황녀가 말했다.

"이 아이의 몸에서 더 이상 오러를 운용하면 죽게 되고 짐의 손에는 무기도 없느니라. 너는 공작가의 아이라 했으니 설마 황녀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야. 그렇지 않느냐?"

황녀의 눈이 반짝였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가는 방법은 짐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짐은 저 짐승에게도 흥미가 있다. 짐과 독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행운을 누리는 자는 몇 없었느니라."

'어때?'

[두 명이 같이 보여서 확실히 읽어내기는 쉽지 않은데, 거짓은 없는 것 같아. 호인好人이라면 호인이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허용해 주신다면 대화에 응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려무나. 이미 승자는 그대가 아니더냐."

쿵쿵쿵쿵

마법으로 만들어낸 쇠창살이 황녀 주위에 박혔다.

황녀의 머리 위는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곳을 뛰어넘으려고 했다가는 당장에 몸이 수십 조각으로 잘릴 수도 있었다.

흉악범을 이송할 때 쓰는 마법이었다.

누군가 이 꼴을 본다면 나는 당장에 황실 모독, 역모 등등의 조목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었다.

"매번 밖에서만 안을 바라보다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도 새롭구나,"

황녀가 호탕하게 말했다.

가녀린 어린 아이의 몸으로 저렇게 퍼질러 앉아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이질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먼저, 정말 초대 황제, 정복제征服帝 레인 서비어가 맞으십니까?"

황녀의 얼굴이 부루퉁해졌다.

"그럼 그대가 보기에 내가 누구인 것 같은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예를 갖췄다.

"못 알아 뵈어 송구합니다. 제뉴인 공작가의 장자, 시안 몬트라우입니다."

황녀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허례는 되었다. 그대가 궁금한 것을 먼저 물어보아라. 황제의 양보다."

원래는 저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 생겨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황녀마마의 몸에 계신 겁니까?"

"아마 그것은 그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아니겠지만 답은 해야겠지."

그가 내게 물었다.

"내가 제국을 세운 뒤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

"제국의 명맥이 끊기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그 두려움에 짐은 밤잠까지 설칠 정도였지. 그래서 짐은 두 가지 안배를 했네. 하나는 짐이 정리한 비전서를 이곳에 감춰두는 것과 짐이 죽기 전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영혼이 소멸 되지 않게 하는 것. 황실에 위기가 닥치게 되면 비전서를 전해주려는 목적이었지."

그 말에 투브가 이를 드러내며 그르렁 거렸다.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야! 인과를 무시하는 거라고!]

투브의 말을 듣지 못하는 초대 황제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짐의 불안에서 비롯된 한낱 욕심이었지. 그것 때문에 마법사가 몇이나 죽었는지도 모르겠군. 여튼 마법은 성공했고 짐은 가문의 적통 중 가장 짐과 흡사한 자의 몸에 머물 수 있게 되었네."

"폐하와 가장 흡사한 자라고 하심은······."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을 한 황녀가 피식 웃고 답했다.

"당대의 핏줄 중 가장 오러를 잘 다루는 자이지. 물론 짐이 머무는 후손들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네. 짐 역시 평소에는 잠든 채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몇십 년을 주기로 깨어나서 이곳에 와보는 것이 전부라네. 허물어지지 않게 보수를 하고 다시 잠에 들지. 점점 잠에서 깨는 주기가 길어지고 있으니 어느 순간에는 영원히 잠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겠군."

하필이면 초대 황제가 깨어나서 이곳을 보수하는 날에 내가 침입한 것이었다.

운도 더럽게 없었다.

그것 외에도 알게 된 것이 있었다.

1 황녀, 엘리자벳 서비어가 두 오빠보다 오러를 운용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

다만 이전의 삶에서 엘리자벳 서비어는 이미 장성한 두 황자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몇 년 후, 정략결혼의 대상이 되어 대륙 서부에 있는 그저 그런 왕국에 시집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공간도 십수 년 간 관리를 받지 못해 개축 공사 때 드러나게 된 것 같았다.

"자, 이제 짐이 하문할 차례군?"

황제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그대는 이타르와 무슨 관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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