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 (2)
천막 안에는 관리관인 나, 2황자, 페제 베이카 장군 외에 갑옷을 입은 2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황자가 일어서자 천막 안에 있던 전원이 기립했다.
자신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남자를 황자가 불렀다.
새하얀 망토를 두르고 있는 남자였다.
"그란트 유제프. 케이신리 백."
"예."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남자를 불렀다.
그는 옅은 붉은빛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휘긴 유제프, 팔스타인 백."
"예."
"둘은 영지전의 결과에 대한 관리관의 판단에 승복할 것을 황제 폐하의 이름 앞에 맹세하라."
두 남자가 규정집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들이 두르고 왔던 망토를 벗어 규정집 앞에 내려놓았다.
"영지전에 관한 영주들의 서약은 이것으로 끝이다. 둘은 돌아가 영지전을 준비하도록 하라."
철거덕거리는 갑옷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두 남자가 일어섰다.
베이카 장군이 엄격하게 한마디를 더했다.
"우리가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오직 영지전이 종료된 이후여야 합니다. 관리관에게 부정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두 백작이 나가자 황자가 엄격했던 얼굴을 풀고 내게 페제 베이카 장군을 소개해 줬다.
"몬트라우 백, 이미 만났지만 이쪽은 페제 베이카 4군단장이네. 그때는 상황이 좋지 않아 앞에 두고도 소개해 주지 못했네."
내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뉴인 공작가의 장자, 시안 몬트라우입니다. 명장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 손을 베이카 장군이 맞잡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으아! 베이카 장군과 살아서 보는 날이 오다니! 이런 영광의 순간이 있나!'
-오러는 쥐똥만 한데?
'그러니까 더 대단한 거지!'
페제 베이카 장군은 평민 출신으로, 기사 수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해서 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제국군 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작가적인 기질도 있었던 것인지 자신의 오랜 군 생활 경험과 군사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아주 쉽게 풀어내서 몇 번이고 밤을 새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베이카 장군이 인자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강철바위 기사단과의 모의 전투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지요. 우리 기사단원들이 고생했습니다."
"제 부하들도 그렇게 말들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녀석들에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몬트라우 가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소리 하지 마라! 라고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내가 잠깐 고민하고 있자 장군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30여 년 전 콘마 지방에서 일어났던 역도들을 처리할 때 프리드리히 공 곁에서 그분의 활약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후로는 뵙지 못했지만, 제로 공도 어떤 무기를 잡아도 오러를 자유롭게 발출해 내신다지요? 저는 몬트라우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실제로 보았습니다. 공자님도 그분들의 피를 이었으니 저는 소문이 절대 거짓이 아니란 것을 믿습니다."
놀랍게도 베이카 장군은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도 노인은 노인인지 '그때 프리드리히 공께서 어찌나 멋지셨는지…….' 하고 옛이야기를 꺼낼 조짐을 보이자 황자가 그를 가로막았다.
"흠, 장군, 몬트라우 백은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허허, 제가 또 옛이야기를 하고 말았군요. 노인의 버릇입니다. 죄송합니다, 마마."
"아닐세. 기회가 되면 꼭 듣고 싶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보겠네."
나를 천막 밖으로 밀어내는 황자를 보고 있던 베이카 장군이 한마디를 했다.
손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인자한 눈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백전노장의 경험과 연륜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깊고 예리한 눈이었다.
"황자마마, 시안 공자님.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외부적인 요인만 통제할 뿐 내부적인 일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사흘 뒤, 이곳은 전장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눈에 담을 각오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명장은 명장이라는 것인가.
대장군 시절의 나였어도 저렇게 요점만 딱 짚어 말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핵심을 짚는 말이었다.
전장을 눈에 담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 일이다.
***
영지전 구역으로 지정된 오마탄은 산과 구릉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꽤나 넓은 지형이었다.
최대한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게 외진 곳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당연히 마차가 다닐 길 따위는 없었고 자연스레 지형 탐색이나 양측의 진영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말을 이용해야 했다.
승마는 귀족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에 말을 타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지만, 투브가 개의 모습으로 말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공자님, 저 개는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겁니까?"
팔크가 말 위에서 내게 물었다.
역시 말에 앉아 있던 내가 옆에서 여유롭게 달리고 있는 투브를 흘낏 보고 말했다.
"다리 힘이 아주 좋은가 보죠."
"네? 제가 본 그 어떤 개도 달리는 말과 속도가 비슷하게 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달리고도 혓바닥 하나 내밀지 않는 체력은 또 어떻고요!"
-비슷하게 좋아하네. 어디 말이랑 나를 비교해?
본체의 모습인 늑대였을 때처럼 엄청나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전력으로 달리는 말의 옆에서 같이 달리는 정도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 덕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했으나 달리는 말에 강아지 모습의 투브를 안고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대한 늑대의 모습으로 다니기에는 더욱 시선을 끌 것이 뻔했다.
"슬슬 긴장감이 돌긴 하네요."
사실 3명의 관리관이 있는 것은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해당 지역의 관할 부대인 4군단이 대부분의 점검을 시행했다.
곳곳에 출입을 통제하는 병사들이 배치되고, 주요 격전지로 예상되는 지점에는 촘촘하게 통신 마법사들이 배치되었다.
사흘간의 점검 기간 동안 양측의 진영을 살펴본 결과 이건 온갖 귀족들의 기사단이 섞여 들어 있는 잡군(雜軍)이었다.
분명 영지민으로만 이루어진 경보병부대라고 했는데 가 보면 꼭 몇 명, 혹은 몇십 명은 오러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기사단 생활을 하다 보면 기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러의 형질이 기사단의 색에 맞게 변형되어 비슷하게 변하기 마련인데 그런 오러 덩이들이 어딜 가나 있었다.
-농사 한번 안 지어 본 놈들이 징발된 농민군 부대에 떡하니 끼어 있네.
'내버려 둬. 황자도 알면서 눈감아 주잖아. 오러에 관해서는 황가 핏줄만 한 곳이 없는데 그걸 못 느끼겠어? 딱 잡아떼면 증명할 방법이 없어.'
그뿐만 아니라 양측이 합쳐 20여 명에 가까운 마법사들도 느껴졌다.
"은퇴한 마법사들은 웬만해서는 안 움직일 텐데, 숟가락 한번 얹어 보려고 어떻게 구해서 이쪽으로 보낸 가문들이 많은가 보네."
제국군 정규 편제에서 1개 마법대대가 10여 명 남짓하게 꾸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양측 다 하나 정도 되는 마법대대를 보유한 셈이었다.
그 마법사들을 모아 놓지는 못하고 아마 정체를 숨긴답시고 이리저리 퍼트려 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마법대대만큼의 화력은 나오지 않겠지만, 일단 백작들의 영지전에 마법사가 20여 명이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사건에 고위 귀족들의 입김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주위가 한눈에 보이는 고지가 관리관 지역이었다.
벽이 말려 올라간 천막에서 베이카 장군이 마지막으로 병사들의 배치를 점검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공자님."
"4군단 병사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데요?"
"그래야지요. 그라스 지방의 치안권 이양 때문에 원래 동원하기로 한 인원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인원이 빠진 만큼 더욱 긴장해야지요."
주위에 황자가 보이지 않았다.
"황자마마는 어디 계시죠?"
"조금 전까지 계셨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하고 싶으시다면서 내려가셨습니다. 저녁 식사는 우리끼리 해야 할 듯싶습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자정이 지나면 바로 영지전이 시작되니 몇 시간 남지 않은 셈이었다.
"저녁 먹고 좀 주무셔야 야간 작전을 보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
내 혼잣말에 베이카 장군이 날카롭게 물었다.
"공자님은 영지전이 시작하자마자 교전이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마도요."
"어째서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우상과 작전을 논하고 있다니.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두 백작의 영지는 이웃해 있으므로 서로 간의 병력 구성이나 작전 체계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요."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경우라면 원래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장군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의 양 진영의 편제와 체계는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베이카 장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도 이미 보고를 통해 기사와 마법사가 곳곳에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양 백작도 알고 있겠죠. 그러므로 서로 기습을 통해 유효타를 날리고 싶어 할 겁니다. 그것도 강력하게요."
"일리 있는 추측입니다."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베이카 장군이 멀리 조그마하게 보이는 양 진영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아마 서로 간의 정보를 다 알고 있더라도 일단 움직일 겁니다."
꿀꺽.
침을 한번 넘기고 베이카 장군이 말을 이었다.
"당해 보지 않은 자는 기다림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마침내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
"흐암."
2황자가 짧게 하품을 했다.
돌아다니다가 늦게 복귀해서 쪽잠만 자다 나온 모양새였다.
그에 반해 나는 저녁 먹고 바로 자다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아주 쌩쌩했다.
피잉! 피잉!
미리 배치해 놓은 마법사들이 있는 위치에서 푸른 불꽃이 하늘로 솟다가 사라졌다.
"개전입니다."
베이카 장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위에 있는 통신 마법사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져 들어오는 정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케이신리, 약 30여 명의 인원이 3번 평야로 이동 중. 정확한 편제 파악 불가. 기마대로 보임."
"팔스타인, 좌익 궁병대 6번 구릉 점령 시도 중."
"케이신리 측 괴각 기사단 출격, 9번 평야로 진격."
나와 베이카 장군이 예상한 대로 양측은 바로 군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스타인의 궁병대를 요격하기 쉬운 위치로 케이신리 측의 기사단이 움직이는군요."
베이카 장군이 한쪽 눈에 쓰고 있는 장비를 조정하며 말했다.
그가 착용한 것은 내장된 마력으로 빛을 증폭시켜 보여 주는 장비로, 만드는 데 엄청난 재료와 수고가 들어가 상용화되지는 못한 물건이었다.
나나 황자같이 오러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러를 눈으로 집중시키면 굳이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지만, 베이카 장군처럼 오러가 미약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물론 나도 전생에 하나 가지고 있긴 했다.
베이카 장군이 쓰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진보해서 더 작은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두 진영 간에 거리가 있어서 교전이 바로 일어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황자의 말이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거리도 있고, 탐색도 필요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베이카 장군이 작게 읊조렸다.
"저라면 최소한의 정찰부대만으로 탐색했을 겁니다."
계속해서 통신이 들어오고 있었다.
"팔스타인, 창공 기사단 일부 출격. 3번 평야로 이동 중인 케이신리 측 인원 탐지한 듯."
팔스타인 지방은 약간의 평야와 구릉, 많은 산이 혼재하는 지방이었고, 그에 따라 자연히 보병이나 기병보다는 궁병이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다.
그에 따라 팔스타인 백작가의 기사단인 창공 기사단도 화살에 오러를 담아 쏠 수 있는 자를 우대했다.
근접 무기를 선호하는 대다수의 기사단에 비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구성이었고, 이에 따라 창공 기사단은 백작가에 허용된 기사단 인원 제한인 100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은 창공 기사단원들을 활잡이라며 경시했지만, 그들이 말 위에서 펼치는 기마궁술은 진짜배기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창공 기사단의 출격을 알렸던 통신 마법사의 입이 다시 열렸다.
"창공 기사단, 3번 평야 선점. 케이신리 측 인원과 조우 예정."
첫 교전이 발생하기 직전이었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통신 마법사도 긴장한 우리를 따라 긴장했는지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상황을 읊었다.
"양측 조우……하지 않음. 케이신리 측에서 마력 반응. 은폐장 마법으로 추정. 케이신리 측 인원, 가속. 빠른 속도로 창공 기사단을 우회."
예상치 못한 전개가 초장부터 펼쳐지고 있었다.
황자가 흐름을 잡지 못해 베이카 장군에게 물었다.
"무슨 상황인 거지?"
"케이신리 쪽 30명 중에 마법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상대를 도발하려는 의도거나 전력 탐색을 하려는 의도……."
"아닐 겁니다."
베이카 장군은 마나를 다뤄 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은폐장 마법이 굉장한 마력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주위 30명을 한 번에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아마 저 마법을 전개한 마법사는 영지전 사흘 내내 누워 있어야 할 수도 있었다.
케이신리 쪽에서 초반부터 강수를 두고 있었다.
"케이신리 쪽 참모 중에 미친놈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쪽은 전부 미쳤든가요."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상황이 전해져 들어왔다.
"케이신리 측 인원, 팔스타인 본진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추정. 출격했던 창공 기사단, 급선회. 주변 탐색 중."
"케이신리 측 기마대, 은폐장 해제. 다시 마력 반응! 은폐장 마법 재개!"
베이카 장군이 놀라 외쳤다.
"30명 중에 마법사가 둘이나 있다? 예상 목표 지점은?"
"케이신리 측 기마대, 현재 최고 속도로 팔스타인 진영 내부 진격 중. 은폐 상태로 보병부대 둘 통과."
"케이신리 측 기마대, 예상 목적지, 팔스타인 백작의 군영."
개전부터 케이신리 측에서 별동대를 편성해 팔스타인 측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대담하다면 대담하고 무모하다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었다.
속전속결도 너무한 정도였다.
아마 나머지 인원들은 다 기사일 가능성이 컸다.
기사나 마법사라면 다치기는 해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가 있을 터였다.
"팔스타인 측 중장갑 보병부대 이동 포착. 팔스타인 측 마력 반응 포착. 교전 중."
그래도 쉽게 내주지는 않겠다는 것인지, 팔스타인 쪽에서도 바로 대응을 하고 있었다.
"케이신리 측 기마대, 창공 기사단의 화살에 맞아 절반 이상 낙마. 지속해서 돌파 중."
오러를 눈에 집중해서 팔스타인 진영을 보니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팔스타인 진영을 휘젓는 한 무리의 기마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절반 이상을 잃었고, 포위 진형이 형성된 것으로 보아서 곧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팔스타인 측 기마대 포위. 전원 투항. 부상자는 있으나 사망자는 없음."
내 옆에서 나처럼 오러를 끌어 올려 팔스타인 진영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황자가 상황이 종료되자 뒤에 놓여 있던 의자에 무너지듯 앉았다.
"당장 시작하자마자 이런 과감한 전략을 쓸 줄이야. 굉장하군."
옆에서 베이카 장군이 황자의 말을 받았다.
"이 전략은 과감하다기보다는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꽤나 가치가 있는 전력이 전투 시작부터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앞으로 팔스타인 진형이 지레 움츠러들지 않겠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네만."
둘 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베이카 장군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케이신리 백작 측이 이 영지전을 가볍게 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지전이 아니라 실제 전투였으면 저 기동대는 다 죽었을 겁니다. 이 가벼움이 큰 패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겨우 30명으로 2,000명의 움직임에 제약을 걸었네. 가벼움으로 무거움을 끌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두 의견을 듣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베이카 장군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너무 장난 같은 작전이었다.
이 장난에 팔스타인 백작이 어떻게 반응할까.
과연 황자의 말처럼 움츠러들었을까?
"팔스타인 측 궁병대, 케이신리 측 괴각 기사단 요격 시도, 창공 기사단 전원 6번 구릉으로 이동 중."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히 뿔이 난 것 같았다.
영지전 첫날 밤. 시작부터 전장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