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일어난 자 (1)
각 진영에 갔던 전령들이 돌아왔다.
전령들이 가지고 온 소식은 양 백작 모두가 상대방이 부정한 수를 썼다고 토로하는 것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군."
황자의 말이었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법으로 추정되는 저것의 규모가 방대하니,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팔스타인 백작 쪽의 함정이 아닌가 합니다."
"허나 케이신리 백작도 이곳에 영지전 당일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와 있었으니 혐의를 피할 수는 없네. 서로 부인한다라……."
황자가 말끝을 흐렸다.
"병력은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내 물음에 베이카 장군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두 백작 모두 절대 물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해는 되지만 무모하군."
"이미 어제, 오늘 양일간 많이 보셨지 않습니까. 저들에게 물러설 마음은 없습니다."
통신 마법사 하나가 비척이며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나를 느낄 수 없는 베이카 장군이나 황자는 모르겠지만 멀리 11번 구릉에서 시작된 진탕된 마나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주위 마법사들의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간단한 함정 정도가 아니야. 시간을 꽤나 들여서 만든 것 같아. 목적이 있을 거야, 역한 냄새가 나.
'분명 사전 시찰 때 마법사를 동원해서 하나하나 다 봤다고 했는데?'
-저 함정을 설치한 녀석이 일반적인 마법사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겠지. 너나 나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누가 갔어도 발견 못 했을 가능성이 커.
'대체 이 영지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좋지 않은 얼굴로 천막을 빠져나갔던 마법사가 헐떡이며 뛰어들어 왔다.
"기둥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 번개같이 일어나 천막 밖으로 향했다.
하나하나 늘어 5개까지 만들어지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검은 빛기둥이 하나 더 생겨서 6개가 되어 있었다.
"저건 대체 뭐고, 몇 개까지 늘어나는 거지?"
황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있던 빛기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체가 액체로 변하듯 흐물거리면서 무너지고 있었다.
기둥을 구성하고 있던 검은 물질들이 11번 언덕을 덮기 시작했다.
***
"네가 원하는 것은 다 했다."
스타리옷 유제프, 카몰 후작이 네크로맨서에게 말했다.
네크로맨서, 데시앙은 그런 후작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목 정도 높이에서 찰랑거리는 어두운 물체를 양손으로 퍼 올렸다.
빛기둥을 구성하고 있던 그 물질은 데시앙의 손에서 물처럼 찰랑였다.
다만 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표면에 무엇도 반사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어둠만이 그 물질 속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데시앙이 몸을 일으켰다.
큰 키에 빼빼 마른 몸, 낡은 검은색 후드를 입고 발목까지 오는 어둠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사신을 연상케 했다.
후작은 그 으스스한 차림새에 한번 몸을 떨었다.
'유제프를 다시 살려 놓을 수 있다면 사신이라도 상관없다. 백번이고 대면할 수 있다.'
후작이 데시앙을 재촉했다.
"거래를 이행해! 내 아들을 살려!"
데시앙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훌륭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후작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나 이 분위기와 데시앙의 꼴이 너무 을씨년스러워서 후작은 다시 한번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가 이곳을 나올 때는 도련님과 함께일 것입니다. 약속드리지요."
그리고 그가 후작의 뒤에 있는 일행을 향해 가자고 말하고 앞서 걸었다.
마차와 함께 뒤에 연결되어 있는, 유제프의 시신이 담겨 있는 장치도 덜그럭거리면서 데시앙의 뒤를 따랐다.
이제 그만 위험하니 뒤로 빠져 있어야 한다는 다른 심복들의 권유에도 후작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 않고 서서 마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돌아오거라, 어서 이 아비 품으로 돌아오거라."
애끓는 부정(父情)이 담긴 말이었지만 그것과 다르게 주위는 온통 부정(不淨)한 검은 물질만 넘실대고 있었다.
후작의 눈에도 광기와 집착만이 남아 불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
"이건 대체 뭐야?"
팔스타인 2궁병대 소속 병사가 자신의 발목 아래에서 찰랑이는 어둠을 보고 내뱉었다.
그들은 지금 막 관리관 측에서 11번 언덕이라 이름 붙인 곳으로 진입한 참이었다.
병사가 앞서 걷는 부대장, 호만스의 옆에 붙어 물었다.
"대장, 이건 뭐라는 말 없습니까?"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무슨 전달 사항 받는 거 봤어? 나도 몰라. 케이신리 놈들이 뭔가 하려는 모양인데, 일단 계속 가 봐야지. 여기 뺏기면 불리해진다잖아."
"별 상관이나 있습니까? 뺏기면 뺏기는 거지."
"이놈 말하는 것 봐?"
"틀린 말 했습니까? 진다고 해서 뭐 케이신리 쪽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업신여김 좀 받을 뿐인데, 목숨까지 걸 필요 있냐 이겁니다."
"이겨서 우리 백작 각하께서 잘나가게 되면 목숨 바쳐 싸운 우리를 잊겠냐? 잡소리 해서 사기 꺾지 말고 얌전히 사주경계나 하면서 걸어. 케이신리 놈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을 테니까."
호만스의 엄한 호통에 병사는 찍소리 하지 못하고 원래의 대열로 돌아가서 걸었다.
발목 아래로는 보이는 것이 없어 걷는 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앞서 걷던 부대장이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대열을 정지시켰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로 부대장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호만스가 미리 지정된 몸짓으로 적이 전방에 나타났음을 알렸다.
모두 최대한 들키지 않게 몸을 낮춘 채 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 염병할 시꺼먼 건 도대체 뭐야!"
"팔스타인 놈들이 개짓거리를 해 놨나 보지."
"거기 둘, 시끄럽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케이신리 측 부대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호만스가 퍼져 있는 휘하 부대원들에게 신호했다.
모두들 조심스레 허벅지에 걸어 놓았던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씩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시위를 뒤로 당기자 뺨 옆까지 온 살깃과 시위의 긴장이 그대로 느껴졌다.
호만스가 사격 개시를 명하려는 순간, 방울이 짤랑이는 소리가 언덕 곳곳에 울려 퍼졌다.
짤랑! 짤랑! 짤랑!
그 소리를 들은 케이신리 측 병사들이 움츠러들어 주변을 살폈다.
"발사!"
그런 모습을 본 호만스가 좋은 기회를 놓치겠다 싶어서 얼른 공격 명령을 내렸다.
"팔스타인 놈들이다!"
"피해라! 몸을 숨길 곳을 찾아라!"
불시에 가한 기습임에도 케이신리 측 병사들은 능숙하게 엄폐물을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한바탕의 화살 비가 끝난 후, 바닥에는 화살을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의 시체만 엎어져 있었다.
시체들의 모습은 마치 어둠에 코를 박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투 내내 이어지던 방울 소리가 이제 자신의 뒤쪽,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것을 알아챈 호만스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큰 키에 검은 후드를 입고 있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방울에서 예의 그 짤랑이는 소리가 퍼져 나오고 있는 것을 호만스는 알아챘다.
재빠르게 호만스가 그 남자를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더 이상 접근하면 쏜다."
차림새를 보니 마법사 같긴 했지만, 마법사라도 자신의 강하고 빠른 화살을 쉽사리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호만스는 생각했다.
검은 후드를 쓰고 방울을 들고 있는 네크로맨서, 데시앙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래에 엎어져 있는 케이신리 측 병사들을 한번 바라봤다.
"부족합니다. 이것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데시앙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주륵 흘렀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생과 사를 가르는 자, 죽음을 관장하는 자가 여기 있나니."
'위험하다! 마법사야!'
영창이 시작되자마자 호만스가 활시위를 단단히 쥐고 있던 손을 놨다.
화살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 데시앙의 어깨에 박혔다.
시위의 장력이 보통이 아니었는지 화살을 어깨에 맞았음에도 데시앙은 콰당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땅에 넘어져 어둠에 잠긴 데시앙의 위치에서 화살 하나만 삐죽이 올라와 있었다.
분명 쓰러졌음에도 그의 영창 소리와 방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울 소리는 오히려 점점 커져, 이제는 머릿속에서 바깥을 향해 들리는 것 같았다.
방울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던 호만스가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저놈을 향해 화살을 쏴! 어서!"
그의 명령에 어둠 사이로 삐죽이 나온 화살을 향해 다른 화살들이 빗발쳤다.
화살이 쓰러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몸에 꽂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영창은 멈추지 않았다.
"지하에서 헤매는 한 영혼을 건져 올려 지상에 세우고자 한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야 태어남이 있기에 이는 본디 하나이다. 허나 하나라는 말이 그것이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자 한다. 그의 육신은 나의 그릇이 되고 그의 정신은 나의 양식이 될지니, 미천한 것들아, 죽음의 사도가 죽음을 정복하고 나아가는 거름이 되어라."
방울 소리와 영창 소리가 마구잡이로 사람들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화살로 뒤범벅이 된 데시앙이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천한 것들아, 너희의 죽음은 영광된 것이다."
푸슉!
호만스는 가슴에 느껴지는 격통에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았다.
바닥의 어둠에서 뻗어 나온 검은 가시가 자신의 왼쪽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푸슉! 푸슉! 푸슉!
계속해서 검은 가시가 뻗어 나오며 팔스타인과 케이신리 양 진영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죽여 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일렁이는 어둠 속으로 떨어진 피와 시체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투둑. 투둑.
데시앙의 몸에 박혀 있던 화살들이 밀려 나왔다.
"크악!"
데시앙이 한쪽 눈을 잡고 절규했다.
그의 왼쪽 눈이 바닥을 덮고 있는 검은 물질처럼 변해 버렸다.
고통스러운 눈을 붙잡고 데시앙이 스테판의 시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데시앙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가 스테판의 시신에 쏟아져 들어갔다.
스테판의 얼굴에 미약하게나마 핏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데시앙이 환희의 목소리를 냈다.
"된다! 된다! 이 녀석을 살릴 수 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얼굴로 스테판을 쳐다봤다.
"유일한 사령 마법사인 내가 죽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역행 마법사인 이 녀석의 몸을 차지한 후 죽음의 제국을 이 땅에 세울 것이다."
데시앙은 스테판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스테판의 정신을 봉인하고 자신의 정신을 스테판의 육체에 이식해 그의 몸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사령 마법과 역행 마법, 특수 마법을 두 가지나 쓰는 마법사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시앙은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 세상에 죽음으로 가득 찬 왕국을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후작 놈, 네 아들은 내가 잘 받아 가마."
데시앙이 혼잣말하며 더 많은 제물을 찾기 위해 다른 병사들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