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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43화 (43/180)

죽음에서 일어난 자 (2)

"양 백작 진영에서 전령입니다! 11번 언덕으로 진입한 부대들과 어떠한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사 하나가 뛰어 들어와 상황을 전했다.

베이카 장군이 황당한 표정으로 전령에게 말했다.

"그 근방에 있는 인원이 1,000 가까이 되는데, 그중 단 1명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서로 상대방이 부정한 수를 썼다며 영지전의 승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영지전에 참여한 인원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통신 마법사들도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황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휴전 선언을 해야 하는가."

"마마, 한쪽의 기만전술일 수 있습니다. 잠시 지켜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다른 병사 하나가 천막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팔스타인 백작 측에서 휴전을 요청했습니다!"

베이카 장군이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휴전? 정말인가? 관리관이 제안하는 휴전이 아니라 영지전 대상자가 요청하는 휴전은 사실상 패배와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틀림없는 휴전 요청입니다. 이미 팔스타인 백작이 직접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가 보니, 저 멀리서 개전 선언 때 벗어 두었던 옅은 붉은빛 망토를 입고 말을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저 검은 것들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 시체 썩는 냄새도 저것보단 덜 역할 거야.

'정확한 정체는 몰라?'

-모르겠어. 가까이 가기도 싫은 냄새야.

심각한 표정의 투브와 11번 언덕을 덮고 있는 검은 것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는 사이, 팔스타인 백작이 이끌고 온 몇 명의 무리가 천막 앞에 도달했다.

베이카 장군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전령을 보내고 관리관의 허가가 있고 난 뒤에 움직여야 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오, 팔스타인 백작?"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기에는 일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팔스타인 백작은 어찌나 급히 왔는지 숨을 마구 헐떡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정하고 말을 하라, 팔스타인 백. 무슨 일인가?"

황자의 말이 있고도 진정을 하지 못한 팔스타인 백작이 병사가 가져다준 물을 연거푸 몇 잔을 마시고서야 말을 뱉었다.

"저 검은 것으로 뒤덮인 언덕에서 살아 나온 기사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황자가 팔스타인 백작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물었다.

"정말인가! 그대가 데려온 인원 중에 있는가?"

"그는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였습니다. 간신히 그곳에서 벗어난 그는 다른 인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죽었습니다."

"남긴 말은 없었는가?"

팔스타인 백작이 다시 물을 들이켰다.

크허 하는 날숨과 함께 팔스타인 백작이 황자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저 안에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마법사가 있다 합니다."

"마법사? 자네가 이렇게 온 것을 보면, 케이신리 측의 마법사인가?"

"그것은 확실치 않습니다. 편을 가르지 않고 마구 죽였다고 합니다. 또 저 검은 것에서 가시가 나와 사람을 꿰뚫어 죽이는데, 사람이 죽어 검은 것 속으로 엎어지면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베이카 장군이 끼어들었다.

"그것이 전부인가?"

팔스타인 백작이 고개를 돌려 베이카 장군을 바라봤다.

"마법사의 영창에 사라졌던 시체들이 검은 것 속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팔스타인 백작!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말하는가!"

베이카 장군의 성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팔스타인 백작은 노장의 분노 섞인 일갈에도 전혀 지지 않고 베이카 장군, 황자,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사령 마법입니다. 사령 마법사가 저 안에 있습니다."

짧은 적막이 흘렀다.

황자가 아직까지도 팔스타인 백작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일어나 말했다.

"케이신리 백작에게 전령을 보내라. 현 시간부로 케이신리와 팔스타인 간의 영지전은 휴전에 돌입한다. 또한 저 검은 것 근처로의 접근을 불허하겠다."

"마마,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베이카 장군의 말을 황자가 칼같이 끊었다.

"확실해진 이후에는 늦다. 저것이 사령 마법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 영지전을 재개해도 늦지 않다."

황자가 주위 병사들을 보고 외쳤다.

"무얼 하느냐!"

전령들이 빠른 속도로 케이신리 측을 향해 달려 나갔다.

***

"이것이 마지막이겠구나."

한쪽 눈이 어둠으로 물들고 반대편 눈도 흐려져 가는 데시앙이 비틀거리며 스테판의 시신으로 향했다.

'이 정수만 녀석의 몸에 넣으면 끝이다. 녀석의 몸으로 들어가 정신을 먹어 치운 후, 온 세상에 죽음이 도래하게 할 것이다.'

비록 카몰 후작의 도움을 많이 받아 방대한 지역에 어둠 물질을 깔아 놓았지만,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마법과 자신의 정신을 다른 육체로 전이하는 마법, 두 가지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데시앙은 자신의 마력뿐만 아니라 생명력도 마법의 유지에 쏟아붓고 있었다.

'하나 마법만 성공할 수 있다면 이까짓 생명은 아까워할 것이 아니지. 후작 아들놈의 몸은 어린 나이에도 특수 마법에 대한 적성이 발견될 정도로 마법에 도가 튼 몸이다. 게다가 어리기까지 하니 얼마든지 더 발전할 수 있겠지. 나의 생명 또한 새로운 삶에 대한 제물일 뿐, 미련 가질 필요는 없다.'

점점 힘이 빠져 당장이라도 엎어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데시앙은 스테판의 시신 앞에 가서 섰다.

그동안 수백의 목숨을 거둬 그 안에 담긴 정수를 스테판에게 부었기에 스테판의 시신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깨우면 눈을 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죽음이여……."

데시앙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마지막 영창을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 몸에서 나온 검은 기운이 뭉게뭉게 뭉치더니 검게 흐르는 물처럼 변했다.

얼마간의 영창 후, 데시앙이 자신의 손끝에 맺혀 있던 검은 물을 스테판의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혈색 좋던 스테판의 얼굴에 검은 핏줄이 툭툭 불거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을 떠라…… 눈을 뜨는 순간, 너는 내 것이 된다."

생명력을 빼앗겨 폭삭 늙어 버린 데시앙이 옆에서 중얼거리며 스테판이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스테판이 눈을 떴다.

새근새근 잠을 자던 귀공자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피부는 창백하고 목과 얼굴에 검은 혈관이 툭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었다.

스테판의 눈동자는 낮게 바닥을 채운 검은 물질과 같은, 빛을 모두 집어삼키는 검은색이었다.

스테판이 누워 있던 장치에서 일어나 데시앙을 향해 다가갔다.

"내, 내가 너를 살렸다."

데시앙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스테판의 얼굴을 가렸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몸을 버리고 이 젊고 재능 넘치는 육체로 옮겨 가는 일뿐이었다.

데시앙의 손과 스테판의 얼굴 사이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 변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위의 검은 물질이 둘의 몸을 타고 올라 데시앙의 손과 스테판의 얼굴 사이를 연결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데시앙의 정신 일부가 스테판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외부의 충격이라도 있으면 당장 흩어져 버릴 수도 있기에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둘 사이를 연결하던 검은 물질이 무언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출렁였다.

표정 하나 없던 스테판의 얼굴에 미소가 생겼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이게 사령 마법이군?"

몸은 살렸지만, 혼은 잠들어 있어야 했다.

'벌써 깨어난 건가!'

잠들어 있는 스테판의 혼을 먹어 치우고 몸을 차지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스테판의 혼이 너무 일찍 깨어나 버렸다.

당황한 데시앙은 영혼 전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미 자신의 정수가 어느 정도 넘어간 상황이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날 수도 있었다.

"늦었어."

둘 사이의 검은 물질이 흩어졌다.

데시앙은 마지막 기운을 짜내 검은 물질을 움직여 스테판을 조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데시앙의 정수를 어느 정도 흡수한 스테판 역시 검은 물질을 움직여서 데시앙의 공격을 막아 냈다.

이미 기운을 많이 잃은 데시앙이 마나의 떨림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사령 마법사이긴 한데, 재능은 별거 없었구나? 그래서 내 몸을 그렇게 원했나?"

스테판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데시앙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노인의 모습이 되어 버린 데시앙이 공포에 질려 스테판의 반대편으로 마구 기어갔다.

"어떻게…… 어째서……."

스테판이 멈춰 섰다.

"세상에는 너보다 뛰어난 놈들이 많거든. 그것도 아주 많이. 나도 죽어 보니 알겠더라고."

"죽어!"

데시앙이 마지막으로 검은 물질을 움직여 스테판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스테판이 손을 휘두르자 목에 거의 닿았던 검은 물질이 몇 초 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스테판이 몸을 한 발 빼자, 검은 물질들이 가시가 되어 스테판이 있던 자리를 마구 헤집었다.

"역행 마법……."

데시앙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말투로 허무하게 내뱉었다.

저것이 자신의 모습이어야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자신의 사령 마법만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만! 하나만 약속해 다오!"

다급한 데시앙의 외침에, 그를 죽이려던 스테판이 잠깐 멈칫했다.

데시앙이 재빠르게 말을 했다.

"죽음을, 이 세상을 죽음으로 뒤덮겠다고 약속해 다오! 너를 살리고 힘을 준 내 마지막 바람이다!"

"마지막 바람?"

"그래, 세상에서 버림받고 배척당한 내 마지막…… 윽!"

데시앙은 고개를 내려 가슴팍을 보았다.

등을 뚫고 들어온 검은 가시가 눈에 들어왔다.

"내 알 바 아니야, 네 삶을 내게 투영하지 마."

털썩.

데시앙의 몸이 무너지며 검은 물질에 먹혀 버렸다.

그것을 보면서 스테판이 혼잣말을 했다.

"뭐, 시안 그 새끼를 죽이고 한번 정도는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발목 아래를 덮고 있던 검은 물질이 스테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여긴 어디고, 시안은 어디 있지?"

검은 눈을 한 스테판의 걸음이 밖을 향했다.

***

"마마! 신성한 영지전을 케이신리 백작이 더럽히고 있나이다!"

"억울합니다! 팔스타인 백작이 수를 써 놓고 제게 뒤집어씌우려는 수작입니다!"

불려 온 케이신리 백작은 저 검은 것이 사령 마법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팔스타인 백작에게 금지된 마법을 끌어온 역적 놈이라고 한바탕 욕을 퍼부었고, 팔스타인 백작도 성질이 얌전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지지 않고 거세게 욕지거리를 했다.

둘 다 영지전 도중이라 가뜩이나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쌍방 간의 육두문자가 오간 결과, 이제는 아주 서로 주먹이라도 휘두를 기세였다.

보다 못한 베이카 장군이 엄하게 둘을 꾸짖었다.

"자중하시오. 2황자마마 앞이오."

"장군! 이놈을 잡아다가 모진 고문을 해야 합니다! 사령 마법이라니요! 팔스타인 백작가의 인물을 샅샅이 조사해야 합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영지전에서 패배할 것 같으니 케이신리 백작이 더러운 수를 쓰고 제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얕은 모략입니다!"

두 백작 모두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급히 뛰어 들어와 베이카 장군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고 나갔다.

베이카 장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마, 검은 것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라져? 갑자기?"

"그렇습니다. 다만……."

베이카 장군이 눈을 질끈 감고 황자에게 말했다.

"11번 언덕에 있던 병력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며, 그중 일부로 추정되는 병사들이 시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령 마법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라크네가 튀어나오질 않나, 사령 마법이 나오질 않나. 대체 네 과거에는 무슨 일이 이렇게 많았던 거야?

투브가 놀랍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몰라. 나 어릴 때는 이런 거 없었어.'

병사가 하나 더 뛰어 들어왔다.

병사의 눈이 천막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베이카 장군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라."

2황자가 병사에게 말했다.

병사와 눈을 마주친 베이카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또한……."

곧이어 병사의 입에서 믿기 힘든 소리가 나왔다.

"시체들을 움직이는 사령 마법사의 모습이 카몰 후작가의 장자, 스테판 유제프의 생전 모습과 매우 흡사한 것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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