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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55화 (55/180)

북부의 태산 (3)

변경백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작은 요새와도 같은 대장벽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인원 교대를 위해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처음에 내 말을 믿지 못했던 장교인 바일슨 필탄이 안내를 자처했다.

"이 길이 장벽 좌측에 있는 1번부터 28번 초소에 도달하는 길입니다."

바일슨이 대장벽의 왼쪽 끝과 산이 맞닿아 있는 곳 아래에서 산허리를 타고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 서넛이 어깨를 붙이고 걸으면 끝인, 넓지 않은 길이었지만, 아주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벽의 오른쪽 끝에도 역시 산을 굽이굽이 도는 도로가 눈에 띄었다.

"그쪽은 28번부터 43번까지, 우측의 초소로 향하는 길입니다."

좌측의 길에서 서른 남짓한 병사들이 차례로 장벽 안쪽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교대하는 건가?"

"예. 어제 올라간 인원들과 무사히 교대를 마쳤나 봅니다. 가장 먼 1번 초소와 43번 초소는 여기에서도 거의 하루를 더 가야 할 정도로 깊은 곳에 있습니다. 이제 계속 기존의 병사들이 복귀하기 시작할 겁니다."

병사들의 교대가 급하지만 한 번에 교대하지 않고 불시의 상황에 대비해서 하루의 시간을 두고 좌측, 우측, 대장벽 순으로 교대한다는 말도 그는 빼놓지 않았다.

"사실 교대 때마다 평균적으로 초소의 1/3에 해당하는 병력만 교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 변경백 각하의 지침입니다."

"훌륭하군."

뿌우우우! 뿌우! 뿌우!

대장벽 위에 있는 병사 하나가 뿔 나팔을 불었다.

처음 뿔 나팔 소리가 퍼지자 주위의 병사들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긴장했으나, 뿔 나팔 소리가 끝나 갈 때쯤에는 다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원래의 일로 돌아갔다.

"뭐지?"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은 야만인 놈들이 몰이질을 시작한다는 신호입니다."

"몰이질?"

"짐승이나 괴물을 장벽 쪽으로 몰아붙이는 짓입니다."

"그런 걸 왜 하지?"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바일슨이 우리를 대장벽 위로 인도했다.

***

장벽 위의 망루에서 바라본 먼 북녘의 땅은 온통 산, 산, 산이었다.

크루슈 산맥에 눈을 퍼부으면 얼추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아득한 그 광경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산의 경계선을 타고서 움직이는 그 점들은 어느 때는 100개가 넘어 보이기도 했고, 어느 때는 10개가 안 되어 보이기도 했다.

"몰이꾼들입니다. 숫자가 많은 것을 보니 큰 놈을 몰고 오려나 봅니다."

바일슨의 얼굴에는 일절 긴장감이 없었다.

오히려 기대하는 눈빛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망루 아래의 장벽에서는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날카롭게 소리치고 있었다.

"활 들어! 화살 미리 확인해! 이번에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몰라!"

"긴장 안 하냐! 내려갈 생각에 실실 웃음이 나와? 똑바로 안 하는 새끼는 연장 근무 들어가는 거야!"

"팔 떨어질 때까지 쏘는 거다! 이따 식당에서 숟가락 멀쩡하게 드는 놈은 나한테 뒈진다! 알겠어!"

반쯤은 욕설이 섞인 지휘관들의 고함이 병사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병사들이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기 시작했다.

"당기지 마! 명령 없이 활 쏘는 병신은 없을 거라 믿겠다!"

산의 경계선을 타고 점점 가까워지던 점들이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몰이꾼이 사라졌군요. 곧입니다."

내 옆에 있던 병사가 뿔 나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바일슨처럼 얼른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부! 부! 부!

-아잇! 깜짝이야!

아무 대비 없이 뿔 나팔 소리를 그대로 다 맞은 투브가 어지러운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짧은 세 번의 뿔 나팔 신호 후, 장벽 위에 있는 모든 소음이 멎었다.

다들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왔습니다. 유도꾼입니다."

바일슨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여기서 거리가 꽤 되는 곳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차림새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의 붉은 그림, 가죽으로 대충 기워 입은 옷, 벌겋게 얼어붙은 맨손과 맨발.

가죽옷으로 하체만 제대로 가리고 상체는 절반쯤 노출된 상태였다.

얼굴의 붉은 그림은 목을 타고 가슴까지 이어져 내려가 있었다.

"유도꾼은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유도해 오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도꾼이라 불린 남자의 뒤쪽에서 거대한 것이 형체를 드러냈다.

3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키, 그 몸을 덮고 있는 길고 하얀 털, 어깨에서부터 시작되어 땅에 닿을 것같이 늘어진 긴 팔.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었다.

투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두 발로 서서 망루의 벽에 턱을 걸치고서 말했다.

-웃기게 생긴 놈들이네.

바일슨에게 물었다.

"저건 뭐지?"

"정확한 이름은 모릅니다. 저희끼리는 그냥 흰 원숭이라고 부릅니다."

원숭이? 저게?

추운 곳에서는 뭐든지 커진다지만 저건 커져도 너무 커졌는데?

"북부의 생태계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놈들입니다. 폭풍새만큼은 못해도, 강하고 흉포한 놈들입니다."

흰 원숭이는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모두 다 드러난 듯한 때, 그들의 수는 20마리가 넘어 있었다.

몇몇 원숭이의 등과 팔에는 화살이 박혀 있고 그 상처에서 피가 흘러 그들의 털과 바닥의 눈을 붉게 물들였다.

콧김을 씩씩 뿜어 대는 것이, 멀리서 봐도 보통 성깔이 아닐 것 같았다.

유도꾼은 그런 원숭이들에게 괴악한 소리를 지르고 눈을 던지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옆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마구 흩뿌렸다.

"어?"

유도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흰 원숭이들은 게걸스럽게 집어 먹고, 코로 냄새 맡고, 심지어 집어다 몸에 비비기까지 했다.

"저들의 주술로 만든 약일 겁니다."

바일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흰 원숭이들이 눈을 까뒤집으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끼이이! 후를라! 후카!"

유도꾼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원숭이들을 향해 크게 내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대장벽 방향이었다.

대장벽 앞에는 내부처럼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어제 온 눈 때문에 공터에는 눈이 쌓여 있었지만 유도꾼은 눈에 빠지지 않고 그 위를 마구 달렸다.

달리다가 넘어지면 굴러서 일어나 네발로 달리기를 반복하자, 눈을 까뒤집고 몸에 박혀 있던 화살을 뽑던 원숭이들이 유도꾼의 뒤를 쿵쿵거리면서 따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

아까 놈들이 먹고 비볐던 약이 흥분 상태를 유도하는 것인지, 이내 원숭이들은 전력으로 대장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활! 들어!"

유도꾼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정도가 되자 장교들이 호령했다.

병사들이 활을 위로 들어 시위를 당겼다.

"얼굴에 그림 그린 새끼 맞히는 놈한테는 내 휴가 잘라서 붙여 준다! 잘 겨냥해!"

어느 장교의 말에 병사들의 눈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쏴!"

화살이 유도꾼과 원숭이들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유도꾼의 속도는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워낙 그를 노리고 들어가는 화살이 많아 어깨에 한 발이 박혔다.

"홀롤로로로로!"

그는 쓰러져 구르면서도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댔고, 원숭이들은 그에 호응하듯 더욱 기세를 더해 장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

어느새 올라왔는지 변경백이 크게 외쳤다.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지 마법사 여럿이서 한곳을 향해 마나를 집중시켰다.

대량의 마나 흐름이 느껴졌다.

파짓!

원숭이들의 앞에서 작은 섬광이 스쳤다.

"털 하나 남기지 마라! 놈들이 가져갈 것은 없다!"

변경백이 외쳤다.

콰앙! 콰앙! 콰앙!

지직거리면서 공기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원숭이들의 머리 위에 벼락이 연속적으로 내렸다.

'마법사들은 자존심이 세서 다른 마법사와 합동 공격을 잘 안 하려고 하던데, 대단하군.'

마법사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북부의 혹독한 환경인지, 변경백의 압도적인 장악력인지 궁금해졌다.

벼락 세례가 한차례 지나갔다.

눈과 바닥이 온통 뒤집혀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가 좀 가라앉자, 몇몇 원숭이가 새카맣게 타 버린 채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안 죽었어?"

"오늘 마법사들의 몸 상태가 별로인가 봅니다. 평소에는 이 정도면 즉사합니다."

바일슨의 말에 투브가 나를 쳐다봤다.

-너 때문 아니냐?

'아…… 변환 인자…….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닌 걸 어떻게 해.'

그때 쓰러진 줄 알았던 유도꾼이 자신이 원숭이들을 몰고 등장했던 방향으로 필사적으로 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도 안 죽었어?"

바일슨이 혀를 찼다.

"쯧, 저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아마 화살도 일부러 맞은 걸 겁니다. 도망갈 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요."

20마리가 넘는 원숭이 중 바닥에서 꿈틀대는 녀석은 5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원숭이들은 그것을 보고 도망가기는커녕 침까지 질질 흘려 대며 장벽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지척에 도달해서 몇 녀석은 강철 문을 부술 듯이 쿵쿵 두드리고, 몇 놈은 긴 팔로 장벽을 붙들고 타고 오르려 했다.

장벽 위에서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변경백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죽여라!"

망루 아래에서 병사들의 함성과 지휘관들의 고함, 원숭이들의 끔찍한 울부짖음이 섞여 들렸다.

바일슨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저기 그 답이 있습니다."

바일슨이 벼락을 맞고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원숭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야만인들이 그것들을 향해 슬금슬금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움직일 힘이 없는 원숭이를 분리해서 가져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장벽을 기어오르려는 원숭이들을 필사적으로 막는 사이, 야만인들은 눈에 검은 그을음과 붉은 피를 길게 새기며 잘라 낸 원숭이를 끌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죽이지 못하는 생물들을 끌고 와서 우리가 죽이길 유도하는 겁니다. 원래는 벼락으로 뼈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는데……. 저놈들 식량만 만들어 준 꼴이 됐습니다."

"방어만 하고 괴물들을 죽이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바일슨이 고개를 저었다.

"외성 문은 레인저 부대가 주로 드나드는 길입니다. 괴물들이 점령하고 있어 레인저들의 통행이 막히면, 단편적으로나마 들려오던 바깥의 상황을 아예 모르게 됩니다."

"저쪽 나름의 생존 전략이군."

"우리 측의 물자와 전력을 소비하면서 자신들의 식량을 확보하니 분해 미칠 지경입니다."

장벽 위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침착해라! 손가락과 팔을 잘라라!"

두 눈에 화살이 꽂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원숭이 하나가 장벽을 타고 오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이미 흥분과 환각 상태인 데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원숭이가 장벽에 겨드랑이를 걸친 채 팔을 좌우로 마구 쓸어 대고 있었다.

병사들은 뒤로 빠지고 기사들이 오러를 두른 채 검과 방패로 원숭이를 마구 찍어 댔지만, 원숭이는 귀를 긁는 소음을 내지르며 끝없이 발버둥 쳤다.

끼이이이이!

멀지 않은 곳에서 변경백이 외쳤다.

"마지막 남은 녀석이다! 끝내라!"

"각하! 위험합니다!"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한 기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숭이가 발악을 하며 변경백 쪽으로 팔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힘에 부딪친 기사들이 나동그라졌다.

발버둥 치던 원숭이의 상체가 장벽 위로 쑥 솟았다.

밟고 올라설 만한 것을 찾은 모양이었다.

원숭이의 바로 앞에 변경백이 있었다.

'위험하다!'

강철 검을 뽑고 망루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시에 알버트에게 외쳤다.

"변경백을 보호해!"

한 번의 도약으로 여장(女牆 : 성벽 위에 담을 세워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가릴 수 있게 한 구조물) 위에 올라섰다.

오러를 다리 쪽으로 밀어 보냈다.

'멀지 않다. 한 번에 간다!'

그대로 여장을 밟아 가며 몸을 앞으로 날렸다.

주위의 광경이 마치 물에 쓸려 가는 얼룩처럼 무너져 내렸다.

바람이 날 선 칼처럼 얼굴을 쓸어 댔다.

찬 공기가 폐부에 가득 찼다.

찰나의 순간에 한번 뱉은 숨이 흰 김이 되어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원숭이의 측면에 도달했다.

원숭이는 당장이라도 우악스러운 손바닥으로 변경백을 쓸어 내려 하고 있었다.

내가 원숭이에게 도달한 것과 거의 동시에 변경백 곁에 붙은 알버트가 검을 꺼내 원숭이의 손바닥을 베어 낼 자세를 취했다.

검에 오러를 밀어 올렸다.

검이 오러와 공명하며 웅웅 울었다.

'한 번에 벤다!'

머리 위로 치켜든 검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었다.

검은 그대로 원숭이의 팔꿈치를 잘라 낼 것이었다.

'엇?'

검이 허공을 갈랐다.

발 한쪽 아래가 허전했다.

원숭이가 난동을 부리면서 여장에 금이라도 갔는지, 내가 밟고 있던 여장이 바깥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탓에 검은 원숭이의 팔을 살짝 스쳤을 뿐이었다.

'재수도 더럽게 없네.'

비록 균형은 무너졌지만, 아직 오른발은 디딜 곳이 있었다.

그대로 힘을 주어 원숭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오러가 검을 감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검에서 더 뻗어 나와 있었다.

일렁이는 오러에 강철 검의 예기(銳氣)를 더했다.

"하아아앗!"

그대로 원숭이의 가슴에서 목 아래까지 검을 올려 그었다.

분명히 베는 감각이 있었지만, 자세가 불안정해서 힘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죽이 두껍고 근육이 단단해서 이것으로는 죽지 않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오러로 보호받고 있는데도 베는 내가 손아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 벼락 세례를 맞고도 한 번에 죽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

그러나 얕은 상처는 아닌지라 원숭이는 가슴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놈이 입 밖으로 길게 자란 송곳니를 위협적으로 내보이며 주먹을 내리치려 했다.

탓!

무언가 도약하는 소리가 나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가렸다.

-갈 거면 간다고 말이라도 해라.

거대한 모습으로 변한 투브가 나를 향하던 원숭이의 팔목을 물고 거세게 비틀었다.

뿌드득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원숭이의 손목뼈가 팔을 뚫고 삐져나왔다.

끼아아아아악!

고통을 못 이긴 원숭이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비명을 내질렀다.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한번 원숭이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적 앞에서 목을 내보이면 죽어야지."

이 녀석의 가죽과 근육의 강도는 아까의 일격으로 파악했다.

오러를 검의 한계까지 집어넣고, 팔과 가슴의 근육 역시 오러로 단단히 보호했다.

스거억!

원숭이의 목에 검이 파고들었다.

상처에서 피가 마치 분수처럼 장벽 위로 흩뿌려졌다.

목의 상처를 한 손으로 붙잡은 원숭이가 장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쿵 소리와 함께 눈과 먼지가 아래에서 흩날렸다.

옆에서 투브가 입안에 들어간 원숭이의 살점을 뱉었다.

-퉤! 더럽게 맛없네.

그때까지도 변경백을 지키고 섰던 알버트가 내게 다가왔다.

"오러를 검의 길이 이상으로 그렇게 날카롭게 만들어 내시다니, 성장하셨군요."

스승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피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웃었다.

뒤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최고다!"

"내가 뭐랬어! 공자님 혼자 야만인 거의 다 처리했다고 했지!"

변경백이 내게 다가왔다.

병사들이 질러 대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제가 공자님을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그가 나를 돌려 세워 병사들을 향하게 했다.

그리고 오러를 실은 묵직한 음성으로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누구인가!"

장벽 위에 있는 모든 이가 계급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히베아!"

"제국의 방패가 누구인가!"

"히베아!"

"히베아여! 우리는 오늘도 지켜 냈다!"

변경백의 음성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변경백이 검을 들고 있지 않은 내 왼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히베아는 제뉴인을 기억할 것이다! 이나타는 몬트라우를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 모인 그대들 모두가 내 말의 증인이다!"

말을 마친 변경백이 나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이 고양감, 이 흥분, 이 짜릿함.

낯설지 않았다.

승전(勝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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