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59화 (59/180)

기 싸움은 초반이 중요하다 (1)

후작령이었던 땅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14살의 백작.

귀족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모이면 이 이야기를 꺼내기 바빴다.

"원래 후작령이었던 땅에 백작으로 가는 것이니 카몰에 있던 백작급 영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후작을 거치지 않고 폐하께 직접 봉토를 선사받는 독립 영주가 되는 것인가?"

"개조(開祖)가 되어라 선언하셨으면서 폐하께서는 어째서 새로운 성을 내리지 않은 것인가? 몬트라우 가문, 아니 제뉴인 공작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조회가 폐한 후에 황제 폐하께 급히 알현을 신청하는 1황자마마의 모습을 본 사람이 많다 하네. 이것은 어찌 된 이유인가?"

많은 추측에도 불구하고 황실과 몬트라우 가문은 그 어떤 답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카몰 지방의 백작들이 수도로 상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네. 몬트라우, 아니 카몰 백."

2황자의 말이었다.

나는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황자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붉은발꽃잎 차였다.

취향 하나는 참 올곧은 남자였다.

"카몰 지방은 유제프 가문이 오랜 기간 다스려 온 곳이다, 외부의 인물을 잠시간의 인사가 아닌 영구적인 영주로 앉히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우리는 스타리옷 유제프 후작을 통해 작위를 받은 것이니 계약관계가 어긋났다, 뿐만 아니라 같은 백작끼리의 계약관계는 불가하다."

찬.

말을 마친 뒤, 잔을 받침잔에 올려놓았다.

"이런 이유를 대고 있지 않습니까?"

2황자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네. 이를 염려해서 폐하께서도 자네를 후작에 봉하는 것을 고려하셨으나 아무래도 공작 가문의 장자가 임시적인 작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분가해서 영구적인 작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단번에 후작 작위를 내리는 것은 과도한 편중이나 특혜로 비칠 염려가 있어 그리하지 않으셨네."

실제로 귀족 가문의 자식들은 영지가 없어도 성년에 근접하면 부모의 작위보다 한두 단계 낮은 작위를 수여받는다.

일종의 명예직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공작인 아버지를 둔 18살짜리에게 백작이나 후작을 붙이는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영지와 그에 속한 영민을 수여받은,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작위를 수여받았기 때문에 위의 명예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주위 영주들은 권력관계가 아주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래도 황제 좋은 게 뭐야. 한 번에 딱! 후작 작위 내렸으면 좀 좋냐고.'

아쉬운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하며 2황자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지방에 있는 귀족이라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황제 폐하의 정식 인가를 받았고 후작령이었던 땅을 대부분 하사받았으니, 실제 권한은 후작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저들 대부분은 큰 욕심 없이 자기 땅만 건드리지 않으면, 밖에서 누가 뭘 해도 관심이 없을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뻔하지 않습니까? 나이 어린 영주, 게다가 그 영주가 자신들의 수장인 스타리옷 유제프 후작을 망쳐 놨으니, 초장부터 길들이기에 나선 겁니다. 아마 주동하는 놈이 있을 겁니다."

황자가 아무 말 없어 쳐다보니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찌하여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몬트라우, 아니 카몰 백. 전장에서 자네는 백전노장의 지략과 겸인지용의 무력을 보여 주더니, 이제는 노회한 정치가 같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2황자는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비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님의 의견이십니다. 저는 그것을 따라 읊을 뿐입니다."

"그런가……. 제뉴인 공인가……."

마법에 관한 것은 어릴 때 기인(奇人)을 만나 내 수명을 담보로 해서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적당히 거짓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이 얘기를 들고서 그럼 자신을 위해 내 생명을 깎은 것이냐며 감동한 2황자를 떨쳐 내는 데 고생을 하긴 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마 이들의 집단행동이 정말로 독립적인 영주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동원해야 하는 군사 비율이나 조세 비율을 조정하기 위한 움직임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백작이 후작령이나 공작령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영지를 가지려면, 나처럼 제국령이었던 땅을 하사받거나 변경백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황제는 분명 내게 카몰 전체에 해당하는 영지를 하사했으니, 그에 속하는 다른 지방들은 내게 와서 새로 계약을 맺으면 되는 문제였다.

또한 이미 황제는 1황자와 2황자 사이에 분란의 씨앗을 던져 놓은 상태, 2황자의 핵심 지지 세력이 될 수도 있는 내 세력을 약화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납득이 되는군. 역시 귀족들의 일은 귀족이 잘 아는 것인가. 배울 점이 많아."

2황자는 금세 이해한 눈치였다.

"어찌 되었건, 자네를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게 되었네."

'이런 기쁨은 간만이다! 기쁘다! 행복하다!'

-표정 좋아 죽네! 그냥 다 보여. 관리 좀 해.

투브의 말에 얼른 치켜 올라갔던 입꼬리를 내렸다.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계속 귀를 향하는 입꼬리를 누르느라 애쓰면서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

"이거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붉은방패 기사단에서 밀려날 때쯤이 되면 송곳니 기사단으로 가서 검술 교관이나 하면서 여생을 즐기려고 했는데, 이렇게 백작이 되어 버리시니 노후 준비가 막막합니다."

카몰로 내려가는 길, 마차를 몰고 있는 팔크 발터가 능글맞게 웃었다.

영지로 향하는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내 생활을 도와줄 제뉴인가의 시종들 및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도와줄 관리들이 따라왔기 때문에 인원이 50명이 넘었다.

황제는 관리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붉은방패 기사단 10명을 호위로 내려보냈으며, 팔크는 그 책임자였다.

하지만 팔크는 책임자라는 말에 맞지 않게 부하에게 모든 일을 미루어 놓고, 예전 기분을 내 보겠다며 마부석에 앉아 내 마차를 끌고 있었다.

"경께서 붉은방패 기사단이라지만 은퇴한 자를 바로 검술 교관으로 받을 정도로 송곳니 기사단이 만만한 곳은 아닙니다!"

내 마차 옆에서 검은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따라오던 로하나스가 마차의 왼쪽에서 나타나 발끈해서 외쳤다.

아버지는 200명의 송곳니 기사단 중 20명을 뽑아 내가 쓰라며 주셨고, 로하나스는 자원해서 나를 따라온 참이었다.

"정식 기사도 아닌 녀석이 어디 어른들 대화에! 너는 아직 멀었다, 이 녀석아."

팔크가 로하나스를 보고 장난스레 말했다.

로하나스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씩씩거렸다.

아마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둘은 내려오는 내내 이렇게 티격태격했다.

항상 차분하던 로하나스가 팔크만 만나면 허둥대는 것이 신기해서 나도 크게 말리지는 않았다.

10명의 붉은방패와 20명의 송곳니가 호위하는 행렬은 내가 황제의 지지를 얻고 있음과 동시에 제뉴인 공작 가문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내 호의를 얻으려는 영주들 덕에 아주 편한 여정이었다.

영지전을 위해 달려갈 때는 마차 하나만 끌고 갔기에 1주일이면 도달했지만, 이번에는 인원도 많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이동했기에 우리가 카몰에 들어선 것은 출발한 지 3주가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유제프시(市)가 보입니다."

내가 개인 선생이 필요하다며 데려온 알버트의 말이었다.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카몰 지방의 핵심 도시이자 후작의 성이 있는 도시, 유제프시가 보였다.

"유제프시는 개뿔, 그건 그쪽이 통치할 때 얘기지. 이제 저기는 시안시다."

***

앞으로 시안시가 될 유제프시의 중심에 있는 성에서 나는 관리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먼 곳까지 내려오느라 고생 많았는데, 앞으로 더 고생해야 할 거야. 빠르면 1년, 늦어도 3년 내에는 추천장이랑 위로금 두둑이 챙겨서 수도로 올려 보내 줄 테니까 열심히 해 보자고."

내 말에 관리들의 눈이 빛났다.

중앙에서 일하다가 신임 영주의 일 처리를 돕게 된 이들이기에 어찌 보면 좌천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작위 수여, 3주 내내 나와 동행한 붉은방패와 송곳니 기사단, 재빠르게 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앞으로의 생활을 파악하는 수준 높고 숙련된 시종들까지.

'이 녀석은 될 놈이다.'라는 생각이 나를 보는 관리들의 눈에서 느껴졌다.

"대충 감 잡은 것 같은데, 여기가 니네 관직 생활 분기점이다. 수도로 복귀했을 때 좋은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대충 하지 말고 코피 터져라 열심히 해. 쓸 만한 놈들 있으면 미리미리 키워서 나중에 공백 없게 하고."

아직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는 관리들에게 엄격한 표정을 하고 한마디를 했다.

"내 아래 다른 영주들이랑 붙어먹을 생각 하는 새끼는 하나만 걸려. 어떻게 하는지 다 모아 놓고 보여 줄 테니까, 알았어? 딱 하나만 걸려라."

짝!

박수를 한번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나가서 볼일 봐."

관리들이 집무실에서 빠져나갔다.

몇몇은 지역의 다른 영주들에게 가서 그동안의 세금 비율, 특산품, 영민 관리에 대한 장부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고, 몇몇은 내 직할령의 도시들과 농토에서 나오는 세금과 작물 등을 파악하러 갈 것이다.

'제뉴인에 사람을 보내서 좀 긁어 와?'

지금 관리들은 유능할지 몰라도 충성심은 없다.

전생에서 내가 전장을 떠도는 동안 제뉴인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 있고 충성심 있는 수하들 덕이었다.

그들의 존재가 못내 아쉬웠다.

'저번에 갔을 때 보니까 하비스 자작은 이미 작위를 계승해서 빼 올 수가 없고, 가느르는 아직 안 태어났나? 애매하구먼.'

누구를 뽑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제 내 비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알버트가 들어와 내게 알렸다.

"도련님, 외할아버지 되시는 리처드 로제, 누이론트 백작께서 부인을 동행하고 오셨습니다."

외할아버지? 아! 영지전에서 팔스타인 측을 도와야 했던!

"모셔 와 줘."

'팔스타인 백작은 영지전 이후 4군단과 황실의 극심한 견제로 성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던데…….'

오면서 들은 소식들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누이론트 백작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시안, 오랜만이구나. 아니, 오랜만입니다."

나는 그의 외손자이지만 권력관계상으로는 우위에 있었다.

누이론트 백작도 그것을 늦게나마 인지한 듯 뒤늦게 말끝을 올렸다.

"괜찮아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이번 생에서는 처음 보지만 전생에서는 어머니와 캐슬린이 요양 때문에 수도보다는 외가인 누이론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나도 그에 따라 종종 방문하곤 했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인 누이론트 백작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해서 반갑기도 했다.

"그래, 고맙구나. 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단다. 영지전 때 관리관으로 온 너를 멀리서 보고도 놀랐는데, 이번에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단다."

뒤따라 들어온 백발의 여인이 그런 백작을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젓더니 나를 향해 달려와 꽉 포옹했다.

"아이구, 내 손자 잘 있었어? 저 영감 말은 귀 기울여 듣지 말거라. 소심하기 그지없어서 원……. 손자가 백작이 되어서 내려오는데 도움은 못 줄망정, 다른 영주들이 뭉치는 것 하나 못 막아요!"

예카테리나 스와힐리 백작 부인.

분리 운동 당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갑옷을 걸쳐 입고 병사들을 진두지휘했던 여걸이다.

로제 가문 특유의 강한 여성상이 외부인인 백작 부인에 와서야 완성되었다고 할 정도로 당찬 여인의 표본이었다.

슬하에는 큰딸인 나의 어머니 일라이자 로제를 포함해서 네 딸을 두었는데, 이 넷도 어디 가서 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당차기로는 유명했지만 모두 이 예카테리나 백작 부인 앞에서는 얌전한 망아지였단다.

"여전히 건강하시군요, 다행이네요."

외할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온 내가 두 분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늙은 몸뚱어리가 언제까지 건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래도 쓸 만하구나. 하하하하!"

백작 부인의 호탕한 말에 집무실 안에 있던 나와 누이론트 백작, 알버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두 분을 집무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하고 물었다.

"아까 말씀하셨던 다른 영주들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백작 부인이 성을 냈다.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 내 손주가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서 백작이 되었는데, 감히 그걸 인정 못 하겠다고! 시정잡배만도 못한 놈들!"

"부인! 진정 좀 하세요, 진정 좀."

간신히 부인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누이론트 백작이 상황 설명을 했다.

-대부분 유제프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들이라 반감이 많다.

원래는 수도로 가서 상소를 올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네가 붉은방패 기사단과 송곳니 기사단의 호위를 받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적당히 달래면 차츰 너를 인정할 것이다.

우리 같은 지방 귀족은 간섭 없이 각자의 영지에서 지내는 것이 최고 아니냐.

하는 얘기였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들과 저를 중재하는 입장으로 와 계신 거군요?"

"뭐…… 꼭 그런 것은 아니다만, 아무래도 가족 관계이지 않으냐……."

그 말에 백작 부인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이놈의 영감탱이! 중재는 개나 줘요! 당장 손주 편 들어서 옆의 유제프 놈들을 박살 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중재? 주웅재애?"

이번에는 내가 그런 외할머니를 말렸다.

"그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새로운 계약관계를 설정하려면 얼굴이라도 비쳐야 할 텐데, 오늘 절 찾아온 건 두 분이 전부인 것 같군요."

옆의 알버트가 내게 말을 했다.

"카몰 내의 직할 도시들의 시장과 길드장 외에 다른 방문 예정은 없습니다."

"역시 귀족보다는 상인들이 이재에 밝군. 어디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지 잘 알아."

시선을 다시 누이론트 백작에게 돌렸다.

"오늘부터 2년간, 누이론트에서 제게 올려 보내는 세금은 없습니다. 인두세와 토지세에만 해당하는 것이며, 1년간은 모든 임시세도 폐지하겠습니다."

외조부모의 눈이 커졌다.

이상적인 세금 비율이 10% 정도라지만, 다양한 임시세들로 인해 실제 세율은 20% 근처에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2년간 그것을 모두 감면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기껏 키운 것을 피눈물을 머금고 올려 보내야 하는 것이 세금이다.

이것을 감면해 준다는데 솔깃하지 않을 영주는 없을 것이다.

"가서 주위에 소문내세요. 저를 보러 오는 것이 늦을수록 매일 세금 비율은 높아질 것이라고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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