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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60화 (60/180)

기 싸움은 초반이 중요하다 (2)

"성 앞을 보니 카몰 지방의 귀족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던데, 제게 이리 시간을 많이 내셔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페제 베이카 장군의 말을 듣고 밖을 흘끗 내다봤다.

성의 뒤편에 각양각색의 마차들이 줄을 지어 정렬해 있었다.

마차뿐만 아니라 말들도 마구간이 넘치게 바글거렸다.

다 내가 누이론트의 세금을 아예 없앴다는 소식이 퍼지고 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 외할아버지인 누이론트 백작은 내가 부탁한 일을 아주 잘 완료해 주었다.

사실 누이론트 백작보다는 외할머니인 백작 부인이 귀족 부인들 모임에 나가서 내가 직접 써 준 증서를 쫙 돌린 것이 효과가 컸다.

귀족 부인들도 바보가 아닐진대 올려 보내는 세금이 줄어들면, 그게 다 남편의 주머니, 곧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미쳤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부인들의 들볶음을 견디다 못한 귀족들, 특히나 내 직할령에 있는 귀족들 몇이 내게 달려왔다.

그래 봐야 남작과 자작이 대다수였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다른 백작들, 특히나 그 백작들에게 가신 서약하고 봉토를 받은 귀족들에게는 아주 큰 위협일 것이다.

"괜찮습니다. 저는 오히려 장군과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게 되어 기쁜걸요."

베이카 장군이 먼저 나를 찾아온 것도 귀족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평시에 한 가문이 소유할 수 있는 상비군은 엄격한 감시와 제한을 받기 때문에, 치안과 경비는 각 지방에 주둔한 제국군이 맡는다.

그렇다면 거대한 군대가 머무는 장소와 비용은 누가 대는가. 병사들의 봉급은 제국에서 부담하지만, 그 외 식량 조달 및 기타 경비는 모두 주둔지의 영주가 맡는다.

이것이 황실이 귀족을 견제하는 큰 수단 중 하나였다.

따라서 군사령관과 영주의 관계는 데면데면하기 마련이었다.

한데 군단의 사령관이 영주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먼저 찾아왔다? 또한 일부러 페제 베이카 장군을 귀족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는 응접실을 통과해 데리고 오도록 했다.

귀족들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내 위치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돌아가서 아직 내게 오지 않은 다른 귀족들에게 소문을 퍼트리겠지.

-페제 베이카 장군이 먼저 찾아오고, 소년 백작이 웃으면서 맞이하더라.

"허허, 그렇습니까? 저도 즐겁지만 바빠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방문하도록 할게요. 아직 그라스에 머무르고 계시죠?"

베이카 장군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그렇습니다. 사교 조사도 끝나 가는 참이니 한번 오셔서 보고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베이카 장군을 배웅하고, 웅성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응접실로는 미어터지는 방문객을 감당할 수가 없어 임시적으로 연회장을 개방해 놨기 때문에, 시종들이 바삐 움직이며 볼멘 귀족들의 요구 사항을 맞추기 바빴다.

내가 들어가자 연회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연회장 입구에 '5'라는 숫자가 크게 걸려 있었다.

내가 정해 놓은 세율로, 하루가 지날 때마다 1씩 올려서 적어 놓으라고 알버트에게 말해 놓았다.

연회장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기회주의자들, 너네는 존대할 가치도 없어!"

내 말에 회의장이 웅성거렸으나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카몰에 백작이 11명이었나? 아니지, 케이신리 가문이 영지전에서 그렇게 되고 그대로 제국령이 되어서 내게 내려왔으니 이제 10명이지. 그럼 누이론트 빼고 9명이 남았다는 건데, 여기 그 백작이나 대리인 있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럼 그 휘하 영주들은 당연히 안 왔을 것이고?"

테이블 사이를 걸어 다니며 말했다.

"시장들은 내 집무실로 올라가, 세율 5%로 맞춰 놓은 증서 있으니까 내 비서한테 받아 가도록. 귀찮은 절차는 생략하자고."

몇 명이 일어나 황급히 내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연회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귀족들이었다.

"너희는 시장이랑 다르잖아. 대대로 해 먹어야지. 그래서 기회를 하나 줄게."

꿀꺽!

누군가의 침 넘기는 소리가 연회장에 작게 퍼졌다.

한 테이블 앞으로 가서 양손을 얹고 상체를 조금 숙인 채로 말했다.

"9명의 백작 아래 있는 영주들, 너네도 1명씩은 알지? 게네가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어서 여기 안 오는 걸까? 천만에! 눈치 보느라 못 오는 거야, 찍힐까 봐."

쾅!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누군가 놀라서 떨어트린 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냈다.

"잘 들어. 백작 아래에서 눈치 보는 놈 데리고 와. 뭐라고 꼬셔 오든 좋아. 꼬셔 온 놈이랑 꼬심 당한 놈, 가장 빨리 온 두 놈한테 케이신리 1/3씩 떼서 백작으로 봉한다. 봉신 계약, 계약관계 그딴 소리 집어치워. 백작 놈들이 지금 하는 게 계약 위반이야. 보복이나 위협은 내가 책임지고 막는다."

이들은 아직 성내에 머무는 붉은방패 기사단과 송곳니 기사단을 봤을 것이다.

오늘 온 페제 베이카 장군은 물론이고.

나는 내가 말한 것을 지킬 무력이 있었다.

"내가 그대로 수도에서 아버지 뒤를 이었으면 공작이야. 일이 있어서 여길 받아서 백작 하고 있으니까 호구로 보여! 어디 시답지도 않은 나부랭이들이!"

내 외침에 연회장이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손을 들어 입구를 가리켰다.

종이에 적힌 '5'가 펄럭이고 있었다.

"저대로 봉신 계약 새로 맺겠다 하는 놈들은 남아."

드르륵.

작게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탐욕스러워 보이는 남자였다.

"프람 남작입니다. 다른 날 다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손을 휘저어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 친구는 행동력이 좋구먼."

내 말과 동시에 곳곳에서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나더니 귀족들이 일어나서 내게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몸이 달아올랐을 것이다.

"다 나가! 기억해라! 가장 빨리 데리고 온 놈이다!"

단단해 보이는 결속체를 붕괴시키는 것은 '같이 뭉치자고 해 놓고 저놈은 뒤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 아니겠지?' 하는 조그만 의심과 '잠깐 눈 감으면 내게 큰 이득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미한 기대였다.

***

"솜씨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집무실로 돌아오니 팔크가 예의 그 빙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릴 땅이 없어서 한 등급 위의 작위를 쳐다도 못 보는 게 지금 현실인데 단번에 백작이 될 수 있다고 해 봐요, 눈이 안 돌아가나. 왜요? 관심 있어요?"

"됐습니다. 귀족들이랑 얽히는 것이 힘들어서 가문에서 떨어져 이렇게 기사 하고 있지 않습니까?"

"됐고, 저한테 줄 거 있죠?"

아마도 비밀이었겠지만 2황자가 내게 귀띔해 줬다.

내려가게 되면 이번 영지전, 그곳에서 발발한 역병 그리고 무엇보다 사교에 관한 황실의 조사 결과가 전해질 것이라고.

"너무 많이 아시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적당히 몰라야 놀려 주는 맛이 있는데."

팔크가 잘 말린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에 자신의 오러를 살짝 밀어 넣었다.

팔크의 손에 작은 장치가 툭 떨어졌다.

특정인의 오러를 기억해서 오러를 넣기 전까지는 봉인이 풀리지 않게 하는 마법 장치였다.

"더럽게 비싼 거라고 꼭 챙겨 오라고 했으니까 이건 넣어 두고."

말과는 달리 팔크는 장치를 대충 가슴팍 어디엔가 쑤셔 박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알버트에게 종이 뭉치를 건넸다.

"적당히 몰라서 놀려 주는 건 로하나스 하나로는 부족하던가요?"

종이를 받아 읽으면서 팔크에게 물었다.

"아주 놀리는 맛이 찰진 친구입니다. 붉은방패 기사단이었으면 하루 종일이고 놀려 먹을……."

종이를 내리고 팔크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빼 갈 생각 말아요."

팔크가 뜨끔했는지 민망하게 웃고는 붉은방패 기사단은 1주일쯤 후에 수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보자, 영지전 구역이었던 오마탄과 그 근처 지역에서 발병한 역병 구제는 철저한 검역과 빠른 대처로…… 이건 넘기고, 그러나 비슷한 형태의 역병이 산탄다르에서 발견? 그쪽이 산탄다르와 접경지대라 넘어간 인원이 있는 건가? 알아서 잘하겠지. 사교도는 아텟이라 불리는 신을 믿는…… 이건 나도 들어서 알고, 그라스 지방 전역에 점조직 형태? 그라스 백작이 누구더라? 장 어쩌고저쩌고였는데? 멍청해 보이더니 자기 영지에서 사교가 횡행하는 것도 몰라? 너는 요주의 인물이다. 사교의 아지트마다 무언가를 재배한 흔적! 그러나 마법적 처리의 흔적이 있어 정확한 종류 파악 어려움. 중간 관리자로 추정되는 사제를 극비리에 4군단에서 확보. 베이카 장군이 이것 때문에 한번 보자고 한 건가?"

역시 황실이 개입하니 허투루 하는 일이 없었다.

하긴 황자가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사건이니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해당 지역을 수사하고 있는 4군단과 황실에서 파견되어 나온 인원들이 죽어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촤륵.

책상으로 가서 카몰 지방 전체가 보이는 지도를 폈다.

"일단 케이신리는 공중분해 돼서 내 직할인 상황이고, 팔스타인이랑 그라스는 영주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태."

세 지역을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지역들이었다.

"누이론트는 이미 내 편."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실질적으로 뻗대는 백작은 7명이라는 소리군."

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옆에 있던 알버트가 얼른 가서 밖의 시종에게 상황을 들었다.

"도련님, 고레안 유제프, 스토나 백작의 영지에 그동안의 세금 장부를 확인하러 갔던 관리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들어오라고 해."

얌전하게 생긴 관리가 가슴에 장부 하나를 꼭 품고 들어왔다.

"어땠어?"

"그것이……."

관리의 말을 다 들은 내가 알버트에게 말했다.

"팔크 좀 불러와 줘. 급해."

***

고레안 유제프, 스토나 백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척 형님인 스타리옷 유제프 후작과 영특한 조카인 스테판 유제프가 원통하게 죽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금기인 사령 마법에 손을 댔으니 인과응보라는 말을 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서 스토나 백작은 항상 이렇게 외쳤다.

"그분께서 사령 마법사의 협박에 굴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또한 유제프 가문의 직계는 손(孫)이 귀해 대가 끊겼다고는 하지만 방계혈족은 꽤나 많았다.

지금은 죽거나 폐인이 되었지만 그란트 유제프, 케이신리 백작과 휘긴 유제프, 팔스타인 백작 모두 유제프의 핏줄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황제 폐하께서는 카몰 지방의 혼란을 막기 위해 카몰에서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살아온 유제프 가문 중 후작을 제외하고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자신에게 후작 작위를 내리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제뉴인 공작의 아들이 분가해서 카몰 백작이 되어 내려온단다.

스토나 백작은 폐하께서 드디어 노망이 나 버리신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분하고 괘씸해서 그는 주변의 백작들을 선동해서 시위에 나섰다.

올라가지는 않겠지만 수도로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도 퍼트렸고, 자신의 휘하 영주뿐만 아니라 직할 도시와 직할 영주 들에게도 은근한 압력을 행사했다.

'카몰은 유제프의 것이다. 몬트라우의 야욕이 제뉴인을 넘어 카몰까지 뻗치게 둘 수는 없다.' 하는 지역감정 섞인 문구도 내세워 가면서.

그러나 몬트라우 꼬맹이는 절반 이하의 파격적인 세율 조정을 내걸었다.

1년, 단 1년만이라도 저렇게 된다면 굴릴 수 있는 개인적인 돈이 얼마인가.

스토나 백작은 머리를 굴렸지만 이내 욕망에 질 수 없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그때 집사가 서재의 문을 쾅 하고 열고 들어왔다.

"각하! 붉은방패 기사단과 자신을 카몰 백작이라 말하는 소년이…… 으악!"

"뭐야!"

집사가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누군가에게 발로 차인 모양새였다.

그 뒤로 말로만 듣던 붉은 갑옷이 차례로 서재로 들어서고 있었다.

검은 머리의 소년이 옆에 자신의 머리색과 같이 검게 빛나는 털을 가진 개를 데리고 들어왔다.

"스토나 백작, 매년 0.5%의 세금을 내지 않고 비축해 놨던데? 설명 좀 들을까 해서 왔어."

당황스러웠지만, 스토나 백작은 집사가 카몰 백작 어쩌구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백작, 그것은……."

"어이."

소년이 싸늘하게 말했다.

"같은 백작이라고 해서 위아래 구분 안 할 거야? 후작한테 작위 받은 그쪽이랑 폐하께 직접 받은 나랑 같아? 이거 베이카 장군한테도 평민 출신이라고 말 놓을 놈이네?"

붉은방패 기사단이 내뿜는 위압적인 분위기와 역시 묘하게 사람 숨을 막히게 하는 소년의 기운 때문에 스토나 백작은 기가 팍 죽었다.

"그, 그것이 어찌 된 것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해 봐."

"그 0.5%는 가문 발전금으로……."

"그걸 세금에서 빼서 비축하게 되어 있나?"

"제국 법에도 그것은 가능하다고……."

"공작 가문인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것 같아? 최대치는 0.25%야."

스토나 백작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는 그저 스타리옷 유제프가 내라는 대로 냈을 뿐이다.

"너는 제국에 바쳐야 할 세금의 일부를 착복했다, 그것도 제국 법을 어겨 가면서. 이는 황실의 직속 기사단인 붉은방패 기사단원 일부가 증인이 될 것이다."

스토나 백작이 앞으로 달려 나와 소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세금에 손을 댄 영주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극형을 받는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각하, 아니 나리, 오해입니다. 저는 그냥 후작이 내라는 대로 냈을 뿐입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소년이 자애롭게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 내가 위에 아는 분들이 많아 잘 말씀드려 볼 수도 있어."

소년이 그의 손을 꽉 틀어쥐었다.

"근데 내가 왔는데 기껏해야 지방 백작들이 인사 한 번을 안 오더라? 네가 주동자라며?"

스토나 백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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