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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62화 (62/180)

그릇된 믿음 (2)

"나는 신의 정통성 있는 후계다. 이것을 보았으니 의심을 거두리라 믿겠다. 신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으나 이미 떠나신 뒤였다, 아는 모든 것을 말하라."

사제는 마나 소드를 향해 있던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나 소드의 등을 사제의 턱 끝에 대고 위로 밀어 올렸다.

그의 더러워진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텟이시여, 이곳에 세상을 벌하고 제국을 멸할 당신의 후인이 당도했나이다. 아텟이시여, 당신은 이름처럼 돌아올 것이나 그 형체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믿었나이다. 아텟이시여, 펼쳐진 가시밭길과 자갈길을 묵묵히 걸었나이다. 남들이 우리를 사교라 규정하고 멸시하고 천시했음에도 당신만을 향하는 마음으로 굳건히 버텨 왔나이다. 당신께서 떠나신 뒤 늘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으나, 뒤에서는 공허한 마음에 눈물지었나이다. 신이시여, 아텟이시여, 당신께서 이리 돌아오심에 기뻐 눈물 흘리나이다."

사제는 주문 영창에 가까운 신앙고백을 하더니 이제는 나를 이타르의 다른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진 고문에 미쳐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 미친놈이 아닌데?

'습격당했을 때를 생각해 봐. 말단 농민들도 거대해진 너한테 이 악물고 덤벼드는데, 그놈들을 관리하는 놈이니 제정신은 아니겠지.'

-이타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라스를 통치하는 백작은 자기 땅에서 이런 사교가 횡행하는 것도 몰랐어. 영지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지. 그런 영주 아래 가신들이라고 다를까? 아마도 어떻게 하면 영민들을 비틀어 짤 수 있나만 고민했을 거야. 그런 와중에 이타르가 왔겠지. 대마법사의 이름이 잊힌 때에 그런 엄청난 마법사가 나타나서 이런저런 걸 힘들이지 않고 도와주니 의지하고 믿고 싶어졌던 것이 아닐까?'

아직도 눈물을 흘리면서 엎어져서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는 사제를 투브가 내려다보았다.

나를 말렸던 투브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입술을 들어 올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얼핏얼핏 드러냈다.

-이렇게 나약하고 유약할 줄이야, 나를 죽이겠다고 혈혈단신으로 크루슈 산맥을 뒤진 메조 몬트라우나 악착같이 복수에 집착하는 너랑 같은 종족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인데.

'개개인의 의지와 각자의 상황이라는 것이 그렇게 야속한 거야.'

이타르가 저 사제와 함께 있을 때도 저렇게 맹신과 광신의 집약체였을까?

그는 그저 이타르와 함께 식물을 가꾸는 것이 즐거운, 마력을 지닌 평범한 정원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승으로 여겼던 자가 말도 없이 떠남으로써 그의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닐까, 그 기억 때문에 아텟이라고 부르는 이타르를 저렇게 찾는 것이 아닐까.

이타르는 왜 이런 뒷맛이 찜찜한 일을 남겨 두고 사라진 것인가.

이타르의 흔적을 찾아 제국의 북방 경계를 넘고, 수도에서 꽤나 남쪽으로 떨어진 카몰까지 왔음에도 그의 자취는 묘연했다.

'젠장, 얌전히 좀 있으면 좀 덧나냐고.'

퍼억!

짜증 나는 마음에 사제를 한 대 걷어찼다.

"으윽!"

배를 얻어맞은 사제는 바닥을 구르면서도 그 낮게 읊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끊고 들어갔다.

어느새 능숙해진 거짓말이었다.

"나는 신을 찾아야 한다. 그 전에 다시 묻겠다. 다른 사제들에 대해, 그 감자가 재배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그라스 지방, 아니 카몰에 남아 있는 너희 조직의 위치를 다 말해라. 이것은 신의 뒤를 이어받아 그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환영하기 위함이다."

내 말에 사제가 더러운 감옥 바닥을 기어 와 내 발에 입 맞췄다.

"후인(後人)이시여, 말씀만 하소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신께서 다시 저희를 찾을 그날까지 앞장서서 돕겠나이다."

그리고 사제는 모진 고문에도 내뱉지 않았던 정보들을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약하고 유약한 인간아, 그대의 갈증을 채워 줄 달콤한 꿀물이 이곳에 있노라.

마시거라, 꿀물이 네 목을 타고 넘어갈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네 숨줄을 끊을 독이라는 것을.

너의 그 눈먼 믿음이 꿀과 독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사제의 말을 다 듣고 나오기 전에, 나는 마나 소드로 그의 마력 구속구를 살짝 그었다.

'너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 편안히 갈 자격이 있다.'라는 말과 함께.

***

"어찌 되었습니까?"

사교도 조사를 위해 파견 나온 4군단 인원들과 황실 인원들이 모여 있는 그라스 성, 페제 베이카 장군이 사제를 만나고 돌아온 내게 물었다.

그의 눈 밑에는 검은 피곤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제라고 불리는 놈들이 실상은 제국에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였다니,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놈들도 있는 것이 분명한데 당최 입을 열지 않으니……. 황실에서는 어서 결과를 내놓으라고 닦달하고, 길어지는 조사에 병사들 피로는 쌓여 가니 치안 공백이 발생할까 걱정됩니다."

황자가 습격당하고, 황제가 직접 엄중히 조사하라고 명을 내린 사안이니만큼 베이카 장군도 4군단 사령부보다는 이곳에 와서 상황을 살피고 보고를 받는 날이 많다고 했다.

아주 죽을 맛이라는 것이 베이카 장군의 얼굴에서 읽혔다.

그나마 그는 지휘관이라 상황이 좀 낫지, 아래 장교들과 병사들은 정말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따로 없었다.

"황실 쪽 책임자를 불러 주세요."

키가 크고 완고한 인상의 여인이 들어왔다.

어깨에 닿아 있는 금발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견정관(牽正官), 라코 리온하트입니다."

견정관(牽正官), 바름으로 이끄는 관리. 명맥이 끊겨 가는 성기사단에서 분리되어 나온 직책이다.

제국의 질서를 뒤흔드는 사교의 색출과 소탕을 목적으로 하는 사정청(思淨廳) 소속의 관리로, 땅을 기는 뱀의 대가리가 창에 찍혀 있는 그림이 그들을 상징한다.

어린 고아들이나 귀족의 사생아를 데려다가 세뇌하다시피 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사교에 대한 증오심을 주입시켰기 때문에 이들의 사교에 대한 적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오러를 수련하게 하고 아주 엄격한 생활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실전 능력은 부족해도 이들이 운용하는 오러의 질만은 기사와 비슷한 정도였다.

제국 전체를 뒤져도 몇 명이 되지 않는 아주 희귀한 직책이지만, 이들이 자신의 영지에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것은 이미 사교의 징후가 파악되었다는 소리였고, 영주는 봉토 관리를 소홀히 한 죄를 물어 갖은 질책을 당하고 심하면 작위와 봉토를 반납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으니 영주들에게 있어서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평범한 종교 단체를 한순간에 사교로 몰아갈 수도, 그에 따라 영지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으니, 이 역시 귀족 세력의 비대를 막는 강대한 권력이었기에 심심치 않게 사정청 전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제로 이런 사교들이 종종 고개를 든다는 이유로 황실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까딱.

가볍게 묵례를 하고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견정관이 베이카 장군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에 걸려 있는 그라스 지방의 전도(全圖)로 향했다.

부욱.

그것을 떼어다가 장군과 견정관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장군 앞에 놓여 있던 깃펜을 들었다.

몇 군데에 표시를 하며 장군에게 말했다.

"놈이 자백했어요. 그라스 지방 내에 이들의 주력 거점은 네 곳, 사제라 불리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 중 살아 있는 자는 둘. 그중 하나는 황자마마 습격을 주도했던 자예요."

내 얘기에 둘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정말입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들을 따랐던 평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자를 기다렸다고 해요. 질긴 놈이에요."

"허어……."

장군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견정관, 라코 리온하트는 굳은 눈길로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런 둘을 두고 내가 말했다.

"살아남은 사제들은 이미 그라스를 빠져나가 팔스타인을 통해 산탄다르로 올라간 것 같아요. 정확한 진로는 모르지만 아마 오마탄 근처를 지나갔을 거라고 하더군요. 팔스타인에서 조금 잠잠해진 역병이 산탄다르로 옮겨 간 것이 이들 때문이 아닌가 해요."

산탄다르는 제국 제1의 곡창지대고, 그 때문에 많은 인구가 살 뿐 아니라 유동 인구도 꽤 많았다.

그 탓에, 번져 나간 역병 구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산탄다르의 곡물이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은 이제 시작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한 교세 확장이 아니에요. 제국의 전복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어디서 이런 끔찍한 것들이……."

"끝나지 않았어요."

내가 라코를 흘끗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알고 계시겠지만 황자마마께서 습격받으셨을 때 주위의 기사들이 오러를 운용하지 못했죠. 그것 또한 이들이 길러 낸 식물 때문인 것 같아요."

"위험한 발언입니다!"

라코가 벌떡 일어나 외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또 어떤 식물이 길러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일단 위험성과 희귀성 때문에 살아남은 사제와 신도가 다 들고 이동 중이라고 해요. 금세 부패하기 때문에 사건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제는 그 감자 외의 다른 식물은 없다고 내게 말했지만, 나는 일부러 부풀려 말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가 표시해 놓은 곳들을 짚었다.

"당장 소탕 작전을 시작하죠. 이 거점들 주위 반경 1km에 있는 식물은 모두 다 태웁니다. 밭이 있다면 밭을 태우고, 숲이 있다면 숲을 태웁니다. 타고 남은 재를 뒤져서라도 자라는 것이 없게 만드세요. 민가에 피해가 가면 제가 책임지고 배상하겠습니다. 장군은 병력을 움직여 주시고, 견정관은…… 제 지시를 받을 입장이 아닌 것 같으니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하세요."

내 말이 끝나자 방에 침묵이 찾아왔다.

"어떻게 몇 달간 조사한 것보다 많은 것을 이리 짧은 순간에……."

라코의 혼잣말이었다.

"일단 움직이면 제가 얻은 정보가 틀린 것인지 알 수 있겠죠?"

"믿기 힘듭니다, 제가 직접 사제를 보겠습니다."

베이카 장군이 그를 말렸다.

"몇 번이고 보지 않았는가. 공자님, 아니 백작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정말 질긴 놈이야."

"장군께서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는 상황 아니었나. 작은 것이라도 쉬이 넘길 수는 없네. 일단 가까운 곳에 병사들을 보내 보도록 하지."

라코에게 하는 장군의 말을 들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는 산탄다르 공작께 이 사실을 알려 드리기 위해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마무리를 짓자 장군도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라코만이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장군과 내가 먼저 밖으로 나서자 장교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지하 감옥에서 불이 났습니다."

베이카 장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불?"

"아무래도 감금되어 있던 사제가 다른 신도들처럼 몸에 불을 붙인 것 같습니다."

"마력 구속구는!"

장군의 노성에 젊은 장교가 쩔쩔맸다.

"오늘 아침에도 이상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자의 마력이 구속구를 부술 정도가 아니었을까……."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놈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와!"

물론 내 작품이었다.

장군의 분노 어린 음성에, 아직 안에 남아 있던 라코가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했다.

"증인도 사라져 버렸군요. 일단 저를 비롯한 사정청 소속 인원들은 백작께서 명하신 거점 제거와 작물 제거를 감독한 뒤, 바로 산탄다르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끝까지 사교를 추적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그것을 듣고 있던 베이카 장군도 일단 현재 상황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는지 병사들을 향해 출동할 채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주위가 뛰어다니는 병사들로 소란스러워졌다.

배웅을 받을 틈도 없이 마차에 올랐다.

-저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절대로 몰라야지."

내 주위에 항상 붙어 다니던 알버트가 지하 감옥을 나온 뒤부터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식물들은 모두 수거하여 위쪽으로 들고 올라갔다는 사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타르가 최초로 기르기 시작했던 감자가 남아 있다고도 했다.

신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이타르의 손이 직접 닿아서 그런지 몇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계속 열매를 맺고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아마 지금쯤은 알버트가 그 식물을 확보해 놓으라는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성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네가 전생에서 오러도 마나도 없는데 어떻게 그 복잡한 삶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 말에 투브의 머리에 손을 대고 헝클어트렸다.

투브는 그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음흉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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