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63화 (63/180)

선택과 집중 (1)

-남은 건 저거 하나라는 거네?

집무실의 볕 잘 드는 곳에 놓인 감자를 보고 투브가 말했다.

알버트는 내 지시에 따라 성공적으로 감자를 빼돌려 왔다.

이타르가 키우기 시작했다는 그 감자.

기사의 종말을 가져올 식물.

"일단은 그렇지. 근방을 불태우는 건 내가 다 육안으로 확인했으니까."

베이카 장군의 주도 아래 4군단은 사교의 잔당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다.

워낙 비밀스럽게 교세를 넓힌지라 그라스 지방 이상으로 뻗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이타르의 마법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 많아 광신도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자들이 많이 나왔다.

병사들이 거점으로 들이닥치고 주위에 불을 지를 때 뛰어와 몸으로 막는 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불이 붙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작물에 붙은 불을 끄는 자 등등.

나는 그때 자리를 피하고 올라온 보고만 읽었는데도 섬찟한 내용뿐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견정관, 라코 리온하트는 그것을 보고 자신들을 아텟신교라 지칭하는 이 사교 무리가 가지고 있는 저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며, 현장 정리가 되는 대로 사정청에 증원 요청을 하고 남은 사제 2명을 추적하기 위해 떠났다.

내 생각도 라코와 다르지 않았다.

현재 제국의 접경지대를 제외하면 내부는 평화의 시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그런데도 저런 사교 무리가 저렇게 강한 응집력과 결속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데, 만일 질서가 흔들리고 뒤엎어지는 시기였다면?

지금보다는 몇 배 빠른 속도로 교세가 확장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마 멍청한 놈들이 황자라는 거물의 출현에 눈이 멀어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게 천만다행이었어."

-이타르가 저들을 저 모양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일단 구심점 역할을 했던 이타르가 사라졌으니 저들도 힘을 잃은 것 아닐까?

"네 말도 그럴듯한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왜? 저번에 봤던 그 사제 때문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타르가 없어지니 자기 멋대로 곡해해서 세상을 뒤엎자고 외치는 과격한 놈들이야. 이타르가 없어졌다고 사그라들까? 오히려 더 폭주한 것일 수도 있어."

투브는 말이 없었다.

녀석도 내 옆에서 그 광신과 맹신의 현장을 직접 보았다.

다 죽어 가면서도 중요한 정보를 내놓지 않던 그 집착, 끈질김, 광증.

마나 소드를 만들어 내자 나를 이타르의 재림으로 착각하고 기뻐하던 그 번들거리는 눈빛.

정상의 범주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사교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자들이면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생산력이고 영민을 처형해서 나에 대한 분위기가 안 좋을 수밖에 없지만, 다 알면서도 그 위험성 때문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저 감자 때문에 냉큼 작위를 받긴 했는데,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옳은 선택은 없어. 조금 더 나은 선택만 있을 뿐.

그것이 다가 아니라 그라스 지방의 백작, 장 뒤누아는 몇 달간 계속되는 강도 높은 조사에 견디지 못하고 내게 작위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었다.

대신 자신의 가족들에게 화가 미치는 것은 면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에게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작위 반납을 허가했다.

그라스 지방의 싱숭생숭해진 민심을 잡으려면 영주를 통하는 것보다는 내가 바로 통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이대로 다 직할령으로 다스릴 필요는 없지. 케이신리와 그라스, 백작 자리가 둘 남네.'

곳곳에 산재한 일이 많았다.

무엇을 우선할지 좀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집무실에 알버트와 투브를 모았다.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 하나와 영수 하나.

히베아 지방을 여행하면서 알버트에게도 내가 회귀한 것을 말했으니, 정말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내가 움직일 방향을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는 일단 세 가지의 목표가 있어. 하나, 내 과거의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것. 둘, 이타르를 찾는 것. 셋, 내게 묶여 있는 투브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 두 번째 목표는 첫 번째 목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이유도 있고, 초대 황제의 기억에서 이타르를 보고, 책을 찢어 이타르의 기억을 만난 이후로 현재의 이타르는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강해졌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어. 세 번째 목표는 내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투브에 대한 순수한고마움이라고 할 수 있지."

-뭐야, 안 하던 소리를 하고 그래.

마음속으로는 자주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기에 투브도 어색한지 괜히 딴소리를 했다.

"얌전히 들어. 여하튼, 나에게는 내 복수를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최우선이야.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거치적거리기만 할 것 같은 이 작위를 받아들인 것도 있어. 저 감자만 아니라면 이렇게 귀찮은 걸 할 일은 없었을 거야."

괜스레 창문 아래 놓여 있는 감자를 한번 쳐다봤다.

저 감자가 내가 갈 길에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

계속 말을 했다.

"알버트가 이타르를 오래 섬겼고 그래서 애타게 그를 만나고 싶다 해도, 투브가 나와 묶여 있는 것이 아무리 답답하다 해도, 미안하지만 난 이 우선순위를 변경할 마음이 없어. 물론 미래의 일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있었을 때는 내 목표를 향해 가면서 둘을 도와줄 마음과 시간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지식과 확신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어.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거든."

내 앞에 놓인 차가 식어 가고 있었다.

긴 이야기에도 알버트와 투브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혼란의 시기가 올 거야. 나는 그때 내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해. 따라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는 좀 미루어 뒀으면 해."

당당한 체했지만 끝에 가서는 말이 축 처졌다.

말을 마치고 괜히 다 식은 차를 들이마시면서 답을 기다렸다.

내 복수를 위해서 너희의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길게 늘려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고 비난해도 다 내 판단의 결과였다.

"도련님."

알버트가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조각상을 꺼내어 탁자에 올렸다.

과거의 이타르가 알버트에게 전해 주라고 내게 부탁한 물건이었다.

"이타르 님께서 저와 헤어지실 때 제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알버트의 눈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인 조각상을 훑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힘들고 지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두 번째 마검사를 만나면 내게 했던 것처럼 성심성의껏 주인으로 모셔라. 나는 잊어도 좋다.' 저는 도련님께서 이타르 님을 찾기 위해서 히베아를 넘어 야만인들이 사는 곳까지 가신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과 동기가 어찌 되었든, 도련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알버트가 조각상을 품속에 넣었다.

"긴 시간을 함께한 만큼 이타르 님을 한 번 정도 다시 보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마검사의 종자고, 지금 제가 섬기는 마검사는 도련님이십니다. 종자는 주인의 말고삐를 잡고 주인이 가자는 대로 이끄는 사람이지, 먼저 나서서 말에 올라앉은 주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도련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시면 저는 충실히 옆에서 도움을 드릴 뿐입니다."

투브가 알버트를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망할 영감,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알겠다고 하면 뒤에 있는 내 입장은 뭐가 되냐고.

그러고는 나를 향해 툴툴거렸다.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는 건 번거롭긴 한데, 네가 노력을 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아. 단서 하나 있을까 해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크루슈 산맥에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나는 지금으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네 옆에 있으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펑펑 터지니까. 대신 약속 하나만 해.

"무슨 약속?"

-네 목적을 이루고 나면 꼭 나를 돌려보내 주겠다는 거.

"그건 당연한 거지."

-그 정도만 해 주면 나는 딱히 불만 없어. 네가 어떤 일을 벌일지 궁금하기도 하거든.

나와 투브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알버트가 내 표정이 밝은 것을 보고 말했다.

"얘기가 잘되었나 보군요."

"꽉 막힌 친구는 아니어서."

그 말에 알버트가 허리를 숙여 투브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도련님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노인한테 인사 받으려고 한 거 아니라고 전해 줘.

혼자 자란 아이들이 사회성이 낮다는 증거가 딱 투브일 것이다.

대충 돌려 말했다.

"투브도 알겠대."

***

그 후 며칠 동안, 우리 셋은 계속 집무실에 틀어박혀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일단 분리 운동은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전생에서도 그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제국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거든."

실제로 초기 대응만 잘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일이다.

출세에 눈이 먼 자작이 영민들을 착취하고, 영민들이 파업을 선언하고, 거기서 발원한 역병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해당 지역의 치안이 무너지고 영민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힘을 얻어 다른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현재의 1황자인 당대 황제의 정책은 귀족들의 숨통을 틀어쥐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돌아선 귀족들이 민중의 세력에 합세해 제국에 반기를 들고, 이때다 싶어 주위의 왕국들이 반란 세력에 지원을 시작하고.

되짚어 보면 다 그럴 만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이렇게 된다고?' 할 정도로 믿기 힘든 매일의 연속이었다.

"일단 그 자작이 있는 곳은 제국 남부인 타칼튼이야. 일부러 황자나 황제에게도 귀띔하지 하지 않았어. 분리 운동을 막는 것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거든."

"하지만 도련님이 행하신 일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봐야겠군요."

"맞아. 하지만 설령 분리 운동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번에 혼란은 확실히 일어나게 되어 있어."

-황위 다툼?

투브가 정확히 짚어 냈다.

나와 함께 황궁을 들락거린 경험이 어디 가지는 않나 보다.

"맞아, 황위. 황제는 2황자를 황제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해. 하지만 귀족뿐만 아니라 황가도 장자상속의 전통에서 자유롭지 않아. 황제의 뜻이 있다고 해서 황위가 2황자에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알버트가 조용히 말했다.

"명분……."

"그래, 명분. 1황자의 성질이 난폭하고 이기적인 것은 주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아. 그런데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단단하지는 않지만 세력이 2황자보다 크지."

물론 1황자를 황제로 옹립한 귀족들은 후에 많은 수가 숙청당했다.

1황자도 멍청이는 아닌지라 그들을 이용했던 것이다.

나는 멀리 있어 화를 피한 것일 수도 있었다.

수도, 황궁, 귀족원. 그곳은 복마전(伏魔殿)이었다.

"황제는 몇 년 내에 죽어. 이미 노령이니 본인도 급하겠지. 그러면 최대한 1황자의 움직임을 제약하고 2황자의 행동반경을 넓혀 주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 쉽지 않겠지만 1황자를 황궁에서 내쫓고 2황자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서지."

-그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날 거다?

"어깨 위에 머리가 달린 귀족이라면 어디에 붙어야 미래가 편해질지 저울질을 하겠지. 어쩌면 분리 운동 이상일지도 몰라. 이건 애초에 두 편으로 갈라서야 할 것 같거든."

-그래서, 어떻게 대비할 건데?

"일단 순수한 내 전력을 만들어야지."

일단 영주들의 반항을 조기에 진압한 내가 첫 번째로 집중할 것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움직이는 전력.

나는 내 적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적들은 나의 것을 무력화시킬 수 없는 것.

"기사단."

알버트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도련님, 그렇다면 기사단의 이름과 가문의 문장(紋章)은 어떻게 하실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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