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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72화 (72/180)

꿈틀대는 야심가들 (1)

하늘 높이 올랐던 불화살이 일정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함성은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말에 타! 당장!"

떨어지는 불화살에 눈이 붙어 있던 기사들이 내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말에 올랐다.

칼에게 다가가서 명령을 내렸다.

"포위망의 범위와 강도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온 길도 이미 막혀 있을지 모릅니다. 오델리아를 앞에 세우고 돌파하세요."

"각하께서는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뒤에서 추격해 오는 놈들을 떨치면서 따라갈게요."

말을 타고 다가온 로하나스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각하라고 하지만 적의 숫자와 병종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위험합니다! 차라리 제가 뒤에 남겠습니다."

"까불지 마라, 로하나스. 네가 죽을 곳은 이곳이 아니다. 내가 죽을 곳도 아니지."

내 눈빛을 본 칼이 로하나스를 제지했다.

그리고 옆에 끼고 있던 투구를 쓰고 내게 말했다.

"검은늑대 기사단에 정확한 목표를."

"전령 확보, 전원 생존."

"집결지는 어디입니까?"

"우리가 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세요. 4군단 병력이 도달한 곳이 있을 겁니다."

철컥.

칼이 올라가 있던 투구 가리개를 내렸다.

"부디 조심하시길."

"제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 열심히 달리셔야 할 겁니다."

투구 가리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칼의 눈 주위에 몇 겹의 주름이 생겼다.

그는 웃고 있었다.

"먼저 출발했는데 늦게 출발한 사람보다 도착이 느리면 안 되지요."

내가 칼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긍정적 사고와 낙천성.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연기를 해서라도 조급함과 불안함을 내비치면 안 된다.

그런데 칼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여유가 있었다.

"가자! 각하보다 늦게 도착하는 녀석은 반나절 동안 오러 없이 갑옷 입고 달린다! 이랴!"

칼이 기사단을 이끌고 뒤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큰 늑대의 모습이 되어 있는 투브의 옆구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열심히 뛰어야겠는데?"

-힘든 건 내가 다 하는데, 왜 멋있는 척은 네가 다 하냐?

화륵.

왼손에서 불이 솟았다.

"나도 힘들어, 인마!"

불덩어리들을 언덕 곳곳으로 던졌다.

몇몇 불은 조금 타닥거리다 사그라졌지만, 살아남은 불은 조금씩 발을 뻗어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아직 병력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휘이이이익.

왼손에서 불이 사라지고 세찬 바람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바람을 맞은 불길이 한층 더 혀를 넘실대며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어오려던 병사들이 시시각각 번지는 불길을 보고 주춤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 기세를 올려 곳곳에 불을 던지고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반복했다.

마침내 조그만 언덕 전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연속적으로 쉬지 않고 마법을 써 대서 호흡이 살짝 가빠졌다.

아버지와 캐슬린의 마나를 몸에 이식한 덕에 마법을 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마나결석을 변환 인자가 없애 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애초에 마법은 운과 재능의 영역.

발전된 미래의 마법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마법을 어떻게 전투나 전쟁에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지 '어떤 원리와 기초 작용을 통해 마나가 마법으로 변환되고 발현되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내 상황은 요리를 맛있게 먹는 법은 알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그렇게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모르는 것과 같았다.

그나마 수도에 있을 때는 캐슬린에게 결과만 슬쩍슬쩍 던져 주면서 기초를 받아먹는 요령이라도 부릴 수 있었는데, 작위를 받고 내려온 다음부터는 그 길도 막혀 버렸다.

오러와 검술은 알버트라는 걸출한 스승이 있는데 마나와 마법은 혼자 연마하고 수련해야 하니 발전이 더뎠다.

이타르의 기억에서 만났던 과거의 이타르가 그리워질 때가 종종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투브의 등에 올랐다.

"최대한 우리 쪽으로 시선을 모아야 해. 그래야 기사단이 편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위험해지면 너도 위험해진다는 거 아니야? 그런 모습이 상상이 안 되는데."

투브가 콧방귀를 픽 하고 뀌었다.

-보는 눈은 있구먼.

***

"놈은 포위됐다! 죽여라!"

장교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마구 소리 질러 댔지만, 우리 주위의 병사들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투브가 한 발짝 내딛자 그쪽에 있던 병사들이 놀라면서 뒤로 몸을 빼느라 진형이 휘청거렸다.

수십의 병사가 나와 투브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포위는 견고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았다.

강력한 적을 잡을 때는 공성과 같아서, 몇 배의 인원이 포위를 했다고 해도 절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몰아쳐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기세에서부터 우리에게 한참이나 밀리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약한데? 그냥 뚫고 갈까?

투브가 발아래에 있던 창을 짓밟아 꺾으면서 물었다.

'저기서 소리 지르고 있는 놈한테 가자. 병사들보다는 뭔가를 더 알고 있겠지.'

검을 한번 휘두르자 우리를 향해 있던 창대가 우수수 부서졌다.

내가 만들어 낸 틈으로 투브가 펄쩍 뛰어올랐다.

"막아!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해!"

장교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크게 위축되어 있어서 별다른 제지 없이 장교 앞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을 뽑아 내게 달려들었지만, 투브의 앞발질 한 번에 볼썽사납게 바닥에 얼굴을 처박는 신세가 되었다.

"잠시만 막아 줘."

투브가 몸을 돌려 병사들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자 다가오던 병사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사이 나는 장교의 손에서 떨어진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이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다.

또한 얇고 길이가 긴 것이, 실전보다는 의전을 위해 만들어진 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본 장교는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 낼 생각도 못 한 채로 바닥을 기었다.

푸욱!

장교의 어깨에 그의 검이 박혔다.

"끄아악!"

움직이지 못하게 그의 팔을 밟은 상태에서 물었다.

"어디 소속이야?"

"황위 찬탈자의 편에 붙은 더러운 놈!"

"아직 말할 정신은 있나 보네."

장교의 어깨에 박혀 있는 검을 잡고 오러를 둘렀다.

그의 고통스러운 절규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것을 들은 병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지 투브가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디 소속이야? 두 번 물었다. 말하면 살려는 줄게."

"끄으으……으으…… 9, 9군단……."

눈이 풀린 장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어깨에 박혀 있던 검을 단숨에 뽑았다.

상처에서 붉은 피가 울컥대며 밀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푸욱!

검을 장교의 목에 대고 힘을 주었다.

"지랄하네."

장교의 목에 꽂혀 하늘을 향하게 된 검의 손잡이 끝에 작게 음각된 3함대의 표식이 반짝였다.

전령의 움직임, 수는 나름대로 많지만 어딘가 어설픈 이들의 포위진과 합동 공격, 마지막으로 이 멍청한 녀석이 허영심에 들고 나온 이 의전용 검까지.

이르한 노체 제독의 3함대가 내륙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9군단의 이름을 빌린 것인지 그냥 가져다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으…… 이놈들 몸에서 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구나.

병사들에게 위협을 하고 있던 투브가 버럭 성질을 냈다.

내가 침공을 한 직후에 병력을 움직였다고 하기에는, 항구도시 발시안과 이곳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그리고 정확한 인원 파악을 할 수는 없지만 나 혼자서만 이런 수십 명 단위의 포위진도 몇 개나 부수고 오는 중이었고, 기사단에게 붙은 인원은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적은 인원은 아니었다.

정국이 혼란해지자 이르한 제독이 유사시를 대비해서 병력을 내륙으로 올려 보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쩌면 안즈 백작은 이미 그에게 제압당했거나 아니면 협력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흠…… 나쁘지 않은데?"

투브의 등에 뛰어올랐다.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가자. 판이 커질 것 같으니까."

투브가 가볍게 병사들을 뛰어넘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피워 놓은 불이 들과 산으로 번져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글대는 불 때문에 많은 수의 병사들이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활만 날려 대고 있었다.

길을 달려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그때마다 속도를 잠깐 낮추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만 검은늑대 기사단의 시체나 무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칼이 잘 이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규 제국군이라고 해 봐야 제국 동부에 있는 자들은 평생 진검을 상대에게 겨루어 본 적도 없는 자들이다.

하지만 검은늑대 기사단은 무혈입성에 가깝기는 했으나 일시적으로나마 황실 경비대와 대치하고 불에 휩싸인 황궁을 진군한 경험이 있었다.

뇌리에 새겨진 그 짜릿한 기억이 기사들을 더욱 빠르고 강하게 성장시키는 중일 것이다.

그런 상태의 기사들을 포위, 섬멸하려 했으니 애꿎은 병사만 죽어나고 있는 셈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제국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의 규모를 알 수가 없어서 긴장했었는데 위기라고 할 것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 같았다.

***

"당장 인원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각하께서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로하나스가 강하게 주장했다.

단 1명의 낙오자도 없이 4군단이 도착해서 전진기지를 꾸리고 있는 곳에 도착한 직후였다.

몇 번의 가벼운 충돌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포위망의 강도가 약해 기사단원들은 쉽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침착해. 각하께서 그럴 생각이 있으셨다면 내게 말씀을 하셨겠지. 우리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어. 더군다나 아직 기지 구축도 완료되지 않았고, 주위에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영주들도 있어.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돼. 또한 병력의 수는 몰라도 질은 매우 좋지 않았어. 그건 너도 체감했을 텐데."

하나하나 지적할 곳 없이 철저하게 이치에 맞는 칼의 말이었기에 로하나스의 입이 꾹 다물렸다.

곧 다시 그의 입이 열렸으나, 누가 들어도 궁색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래도 90명 가까운 인원이지 않았습니까. 각하는 단신이십니다. 아무리 질이 낮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군인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오델리아가 혼잣말하듯 가볍게 말했다.

"여전히 애송이군."

로하나스가 날카롭게 노려봤지만 오델리아는 그런 시선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주인의 역량도 파악하지 못하나? 각하가 위험해? 이런 오합지졸이라면 1,000명에게 포위당해도 여유롭게 뚫고 나오실 거다. 기다려라. 오실 것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각하는 오신다."

반박하려던 로하나스는 선두에 서서 한 번에 병사 서넛을 사지로 보내던 오델리아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을 멈추었다.

누구도 자신보다 강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오델리아였지만 왠지 시안과 알버트만은 자기 입으로 '자신보다 강하다.'라고 말했으니 신빙성이 있었다.

"오델리아의 말이 맞다, 로하나스. 각하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칼이 둘을 중재했다.

"으…… 으……."

구석에 던져 놓았던 전령이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바로 주위에 마법을 전개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하고 무지막지한 기세로 날아온 오델리아의 투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다시 기절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허세를 부리고 말이 많지."

오델리아가 뿌듯한 표정을 하고 걸어가서 떨어진 투구를 집어 들었다.

투구에 전령의 피와 이빨 몇 개가 박혀 있었다.

"오델리아! 이자는 적이지만 가치가 있습니다! 험하게 다루면 안 됩니다!"

로하나스가 놀라서 외치고 달려가 전령을 살폈다.

"그럼 적인 마법사가 마법을 쓰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나? 각하의 명은 전령 확보였다. 확보 이후의 일은 자율적으로 해야지. 그리고 각하께서도 그자를 충분히 험하게 다루지 않았던가?"

비꼬는 오델리아의 말에 로하나스가 벌떡 일어나 따져 대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트는 로하나스와 오델리아 때문에 그걸 보고 중재해야 하는 칼은 머리가 박살 날 지경이었다.

그때 4군단 병사 하나가 뛰어와 소식을 알렸다.

"백작 각하께서 무사히 돌아오셨습니다!"

셋이 나가 보니 시안은 다른 기사들에게 둘러싸여서 무사 귀환을 축하받고 있었다.

"에이, 당연한 걸 축하하고 있어! 죽은 놈 손 들어 봐라! 없네. 다들 잘했다!"

시안의 말 몇 마디에 기사들의 사기가 끓어올랐다.

칼과 로하나스, 오델리아를 발견한 시안이 다가와서 말했다.

"우리를 덮치려던 건 3함대 소속 병사들인 것 같아요."

"9군단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거의 맞다고 보면 될 거예요."

"4군단은 귀족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안즈로 왔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3함대가 내륙으로 진출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칼의 말에 시안의 눈이 빛났다.

"아마 다른 곳에서도 이 같은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귀족이 중심이 되거나, 군인이 중심이 되거나. 병력을 움직이려 들겠죠."

"그 말씀은……."

"칼, 당신은 기사단장이지만 이제 크고 넓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투 이상의 것을 보세요."

"전투 이상의 것……."

거기까지 말하고 시안은 '넌 이제 필요 없어, 이 새끼야!'라고 외치면서 기절한 전령을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칼은 시안이 말한 전투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지만 쉽사리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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