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73화 (73/180)

꿈틀대는 야심가들 (2)

4군단 참모장교가 나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각하, 이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아무리 각하께서 4군단 사령관 대리라고 해도 베이카 장군께서 각하께 사령관직을 맡긴 것은 저희 같은 참모들의 의견을 참고하시라는 의미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병력을 다루라는 뜻이 아닐 겁니다."

"흠, 그래서?"

"저희가 정예라고 자부하고는 있지만 4개의 성을 한 번에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병력을 결집시켜 하나하나 격파해 나가야 합니다."

"3함대의 병력이 안즈의 내륙까지 와 있는 상태고, 9군단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북진을 시도하려는 낌새가 있어. 그런데 우리의 이 방어 겸 전초기지 영역 안쪽에 우리에게 협력하지 않는 영주가 넷이나 있네? 지금 우리는 앞뒤로 압박받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지. 그래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인 건데, 내가 왜 자네에게 이런 불만을 들어야 하지?"

"말씀하신 대로 3함대의 병력이 우리와 대치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병력이 분산된 것이 알려지면 바로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치만 하고 있겠다는 건가? 이건 시간 싸움이야. 이곳은 카몰과 인접해 있긴 하지만 엄연히 안즈야. 카몰의 백작들이 데리고 있는 기사단과 무장한 영민들이 이리로 오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지. 그런데 이미 4명의 영주 중 둘은 동원령을 내려서 성내로 영민들을 끌어들이고 무장을 완료했다고 하는데 3함대가 공격하는 것과 때를 맞춰서 성문을 열고 나오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마구잡이로 병력을 움직이면 합공을 받는 것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다를 게 없어집니다."

"아니! 그 시간 차이 때문에 결과는 아주 달라지지. 내가 빠른 속도로 안즈를 휘젓고 다녔고, 3함대의 포위망을 돌파했기 때문에 저들은 아직 피해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대응이 느려. 영지의 일부가 침공당한 상태인데도 나머지 영지들은 총동원령을 발령하지 않고 군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야. 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를 공격해 올 때면 우리는 이미 내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더 많은 병력으로 그들을 압도할 수 있겠지."

내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참모장교는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것은 너무 낙관적으로 보시고 계신 겁니다!"

이미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대립하고 있으려니 순간 짜증이 확 솟았다.

"그대는 베이카 장군 곁에 얼마나 있었지?"

"올해로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대가 20년간 봐 온 장군은 내가 신분이 높다고 해서 무려 사령관이라는 자리를 쉽게 대리하게 해 줄 정도의 사람인가?"

"그것은……. 장군께서 각하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상관의 뜻을 자의로 해석하는군. 어느 군인이 그런 행동을 하지?"

내 지적에 참모장교의 입이 '합' 하고 다물렸다.

나는 누구보다 군인의 생리를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군인은 조직 생활에 애착이 있는 만큼 외부인을 경계하고 배척하려 든다.

특히나 그것이 나이가 어린데 신분 덕에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았다고 생각되는 자라면 더욱.

"이 판단을 내린 게 내가 아니라 베이카 장군이 내렸다면, 그대가 이 결정에 이렇게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을까? 말해 봐."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것을 깨달은 참모장교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나는 베이카 장군이 친히 4군단 사령관으로 임명한 사람이야. 즉, 자네가 내게 하고 있는 것은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참모장교를 따라 들어온 다른 군인들도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나를 말리려고 앞으로 나섰다.

손을 들어 그들은 제지했다.

"그대들의 마음도 이해는 하지. 얼마나 고깝겠어. 나이 어린 놈이 사령관이라고 와서 자기 부대에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데. 그러니 항명이 아니라 부대를 위한 건강한 의견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보여 주면 될 것 아닌가. 나는 탁상공론보다는 행동으로 얻어지는 결과를 선호하는 사람이야."

말이 끝나자 멀리서 거대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느긋하게 막사 밖으로 가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니 투석기가 쏘아 보낸 큰 바위가 성벽에 직격한 참이었다.

그리고 기병들과 보병들이 무너진 성벽을 향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었다.

칼이 옆으로 다가와 내게 물었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감정을 지우고 성안에 있는 모든 이를 죽이세요. 저 성은 오늘 사라집니다. 저를 막아서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보여 주죠."

칼이 검은늑대 기사단을 향해 사라지고, 막사에서 참모장교를 비롯한 참모부가 나와서 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4개 중 하나."

***

그날 저녁, 카몰 지역의 열 백작 중 다섯 백작이 본인들의 기사단뿐만 아니라 휘하의 가신 및 자작, 남작의 기사단까지 이끌고 내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내게 저항하던 안즈 지방의 나머지 영주들을 깨부쉈다는 승전보와 함께였기에 4군단 참모부 소속 군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고생들 하셨네."

백작들과 장교들을 모아 놓고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내가 백작들을 향해 말했다.

"나머지는 잘하고 있지?"

카몰에 있는 10명의 백작 중에서 5명은 기사단과 영민을 동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5명은 남아 카몰을 지키되 4군단과 다른 백작들의 병력 이동으로 인한 치안 공백을 막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나온 상황이었다.

실제로 내가 카몰을 통치하면서 신경 쓴 것 중 하나가 '카몰인'이라는 거대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카몰에 살지만 '누이론트인', '스토나인', '링스톤인'처럼 분리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서로 대립하느라 힘을 하나로 합칠 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에 시행한 일이었다.

전란을 헤쳐 나가는 데 내부의 분열은 큰 걸림돌이다.

모두가 똘똘 뭉쳐도 힘든 판에 고작 옆 지역 사람과 감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분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제국이 전란에 휩싸였던 이전 삶에서는 많은 영주들이 이것을 깨닫고 병력과 영민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힘썼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초반에 이렇게 지역 전체가 하나의 동질감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은 카몰밖에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카몰인'이라는 의식으로 뭉친 사람들.

다른 지역의 영주들에게는 없는, 내가 가진 큰 무기였다.

"그렇습니다. 카몰에 남은 다섯 백작들의 병력이 4군단과 힘을 합쳐 접경지대를 빈틈없이 경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카몰 백작이 된 첫해에 세금 폭탄을 맞은 스토나 백작이 냉큼 답했다.

그 일 이후 스토나 백작은 내 성깔이 보통이 아님을 알아챈 것인지 내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쳤다.

"좋아, 좋아. 그렇게만 해."

나는 안즈 지역의 지도를 가져다가 앞에 놨다.

그리고 깃펜을 들어 카몰과 안즈의 접경지대에 있는 땅으로부터 우리가 있는 곳까지의 땅을 다섯 곳으로 나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저항하던 안즈의 영주들이 다스리던 땅이다.

"임시적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그대들에게 주어질 땅이야."

내 말에 군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백작들은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나는 이번 일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을 백작들에게 분배하겠노라고 선언한 상태였다.

물론 공헌도를 고려하겠다는 말도 함께였기에, 그들은 이곳까지 죽어라고 말을 달려왔음에도 가공할 전투력으로 하루 만에 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땅은 그대들의 것이지만 전리품 분배의 우선권은 4군단에 주지. 정확한 수량만 작성해서 우리에게 줘."

제국 상층부의 분열에 따른 귀족들의 이탈로 제국의 세수(稅收)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그에 따라 군인들의 봉급도 같이 휘청거렸다.

전리품을 통해 잘 훈련된 병사들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 했다.

군인들의 입가에도 차츰 웃음이 피어올랐다.

내 목표는 복수를 하는 것이지 땅을 넓히고 부를 쌓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감히 욕심을 내려놓았다.

이것으로 이들은 한층 더 몸을 아끼지 않고 전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소문이 퍼져서 피를 흘리지 않고 세력을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섞여 들어 있었다.

풀어져 가는 막사에 긴장감을 불어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카몰에 남아 있는 귀족들의 공로도 크기 때문에 여기서 더 얻어지는 땅은 모든 사태가 다 마무리된 이후에 배분하는 것으로 하겠어. 즉, 그대들에게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 건 지도의 그 땅이 전부라는 말이야.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마. 그걸 뺏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카몰에 남은 자들보다 그대들이 내 눈에 더 띄지 않겠어? 공헌도에서 많은 이득을 가져가는 거야."

그리고 군인들을 향해서도 엄포를 놓았다.

"전리품 조사를 했는데 보고 올린 것과 다르게 올라왔다? 공적인 재물을 사적으로 이용하려 했으니까 뒷감당은 알아서 하길 바란다. 그리고 전리품 분배의 우선을 가져갔으니 기사단들과 곧 도착할 카몰 징집병의 보급 일체를 4군단이 담당해. 싫으면 권리를 뱉어."

군인들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리 끝났네. 이제 웃느라고 이빨 보이는 놈은 다 뽑아 버린다. 신분이고 계급이고 다 내려놓고, 어떻게 해야 이길지 의견 뱉어. 개똥 같은 소리라도 좋으니까 모두 얘기해. 네 생각이랑 말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판단하지 마. 판단은 내가 한다."

과거의 나는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전장에 나서면 주위에 정보와 지식을 요구했다.

전장에 흘러넘치는 지식과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역사와 합쳐 분해, 조합, 재생성하여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안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재능이라고 불렀던 '전장을 읽는 능력'의 실체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구도 나처럼 행하지는 못했기에 정말 재능일지도 몰랐다.

그동안 큰일들에 휘말려 왔지만 어느 때도 지금처럼 병력을 움직여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러와 마나에 집중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던 순수한 내 재능이 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도약하려 하고 있었다.

***

3함대 제독, 이르한 노체는 연신 9군단 사령관 츠발크 가리옷을 설득 중이었다.

"왜 이리 답답하십니까. 우리와 힘을 합쳐서 카몰과 산탄다르를 치자니까요. 그 둘만 제거되면 제국 동부의 패자는 우리입니다. 이미 안즈 백작도 제 손안에 있습니다. 장군만 움직이면 만사형통인 일입니다. 2황자는 곧 무너집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황제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1황자마마시지요."

츠발크가 눈을 찌푸리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황자마마께서는 현재 행방불명이시라고……."

그런 츠발크를 향해 이르한이 속삭이듯 말했다.

"아버지께서 1황자마마의 신병을 확보하여 안전하게 보호 중이십니다."

"노체 공작께서?"

"그렇습니다. 이대로 1황자마마가 수도를 탈환하시고 황제가 되시면 우리 가문은 다른 공작 가문들이 쳐다볼 수도 없는 위치로 날아오르는 겁니다. 저를 도와주신다면 아버지께 장군의 공을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카몰 백작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4군단 사령관이자 친한 동료 군인인 페제 베이카로부터 유사시에 움직이지 말 것을 부탁받은 츠발크는 이르한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움직이는 것이 망설여졌다.

'젠장, 이 정도면 됐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이르한은 욕지거리가 혀끝에서 맴돌았으나 해전이 중심인 자신의 3함대만으로는 카몰과 산탄다르를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이 무리임을 잘 알고 있기에 욕지거리를 꿀꺽 넘겨 삼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봐야 이제 스물 언저리가 된 어린아이입니다. 장군께서 이리 조심하시는 것이 저는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슴속에 한 줌 야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든 움직이고 있습니다. 빠르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뱀처럼 달콤하게 속삭이는 이르한의 말에 츠발크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공작 각하의 영향하에 내게 정확히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끝까지 자신의 속내는 내비치려 하지 않는 노회한 군인의 자세에 이르한이 다시 한번 속으로 욕을 삼키며 말을 하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이르한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로 낮고 빠르게 자신의 부관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방해하지 말랬지!"

부관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답했다.

"죄송합니다! 카몰 백작이 기지에서 나와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정 목적지는 항구도시 발시안입니다."

부관이 전한 소식에 이르한은 몸을 돌려 츠발크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군요. 카몰 백작이 진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 3함대 병력이 겹겹이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으니 그는 어디로 가든 죽은 목숨입니다. 어린 녀석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가 죽는 꼴이죠. 어떻습니까, 장군. 늦으면 늦을수록 장군께서 공을 가져가실 기회가 줄어듭니다."

'이건 절대로 거절 못 하겠지. 입을 벌리고 음식을 넣어 주는 수준인데.'

츠발크의 입이 떨어졌다.

밝아진 그의 표정으로 보아 동맹은 성립되었다고 이르한이 생각하는 찰나, 부관의 입이 둘보다 더 빨리 열렸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들려온 보고로는 카몰 백작이 포위망을 뚫었습니다.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우리 인원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라고……."

이르한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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