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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75화 (75/180)

발시안 공방전 (1)

발시안에서 남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해안가, 나는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보고 있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해풍이 내 얼굴을 스쳤다.

-물! 짠 냄새! 이게 바다! 호몰루나의 영역!

바다를 처음 본다는 투브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축축한 모래에 늑대의 발자국이 새겨졌다가 파도에 지워졌다.

"바다도 안 보고 살았다니, 놀랍네."

-나는 내가 있는 땅에 만족하면서 살았으니까.

"왜?"

-왜는 왜야? 만족했다는데.

"더 넓은 땅을 가지고 싶지 않았어? 계속 가다 보면 바다에 닿았을 건데."

투브가 펄쩍 뛰던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파도가 녀석의 발을 적셨지만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내가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땅에 집착하는 건 인간 말고는 없던데? 너희가 이상한 거야.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땅에 집착하는 인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안해져서 화제를 바꿨다.

"호몰루나는 뭔데?"

-나도 본 적은 없어. 이타르가 얘기해 준 거야. 바다에 사는 영수래.

"또 영수야? 너희는 참 여기저기 없는 곳이 없구나?"

-이타르가 만나 본 영수만 다섯은 넘을걸. 그 외에도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디선가 자연히 생기고 자연히 죽지 않을까?

그 호몰루나라는 영수와 이타르가 만났다는 다른 영수에 대해 물으려는데 해안선을 따라서 이쪽으로 접근하는 2개의 점이 보였다.

점이 점점 커지더니 말에 탄 2명의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나는 아직 소년티를 채 벗어내지 못한 아이였고, 다른 하나는 해군 제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미리 해변에 마련해 두었던 테이블로 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말에서 내린 두 남자가 적당한 곳에 말고삐를 묶어 두고 내게 다가왔다.

주위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둘이 올 줄은 몰라서 의자를 하나밖에 준비하지 않았는데. 결례를 범했군."

해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뒤로 뺀 의자에 소년이 앉았다.

"저는 요드하버 셀라입니다. 제 아버지 되시는 분이 안즈 백작이십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이전 삶에서 제국 동부는 남부에서 번져 온 분리 운동의 여파에 휩쓸려 쑥대밭이 되었으니 그 와중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게 회담을 요청한 건 안즈 백작이었는데 왜 대리자가 온 거지?"

"아버지께서는 건강이 안 좋으십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사실 백작을 어딘가에 감금해 놓고 그의 아들 중 말 잘 듣는 놈 하나를 골라잡아서 꼭두각시로 세운 건 아닌가, 이르한 제독?"

내 말에 앞에 앉은 소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년의 뒤에 서 있던 군인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런 허수아비 말고 결정권자끼리 이야기하지."

군인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같은 공작 가문인 만큼 나는 노체 가문의 사람들을 본 적이 많았다.

앞에 있는 이르한은 노체 가문의 직계 혈통인 만큼 그 집안 남자들의 생김새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또한 꼭두각시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면 옆에 있어야 할 것이니 내 앞의 남자가 3함대의 제독, 이르한 노체라는 것은 아주 타당한 결론이었다.

물론 나 말고는 누구도 이런 과정을 떠올리기 힘들 것이었다.

어깨를 한번 으쓱해 주고 말했다.

"감이지."

이르한이 딱딱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9군단이 그대를 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또한 발시안으로 다른 귀족들과 남부의 7군단, 13군단의 지원 병력이 오고 있다. 당신은 발시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패배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해 주려고 회담씩이나 하자고 했나? 당신 말대로 될 것 같으면 그냥 그렇게 해. 왜 귀찮게 떠들고 있어?"

이르한의 말이 계속되었다.

"안즈의 1/3을 당신에게 넘겨 카몰 백작령이 되게 하겠다. 병력을 물려라."

"그냥 나를 죽이고 카몰도 다 가져가는 게 좋지 않겠어?"

이죽거리며 비꼬는 내 말에 이르한의 이마에 핏줄이 솟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1황자마마께서 잠시 몸을 피해 계시지만 2황자의 지지 기반은 약하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 그대가 철수하고 4군단을 설득해서 산탄다르를 치면 제국 동부의 혼란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대가 그렇게 해 준다면 내 친히 아버님과 1황자마마께 그대의 공을 전하겠다. 황자마마께서 황제가 되시면 큰 상을 내리실 것이다."

"제법 달콤한데?"

굳어 있던 이르한의 입가에 옅게 미소가 스쳤다.

"병력을 물리고 4군단을 동원해서 산탄다르를 치면? 치안 공백이 발생한 카몰을 네가 먹으려고?"

"카몰 백작! 어찌 그리 경솔한가!"

"경솔한 건 그쪽이지, 어이가 없네. 얌전히 발시안을 내놓을 테니 목숨만 살려 달라고 나온 줄 알았더니 개소리나 늘어놓고 있네. 꺼져, 회담은 결렬이다. 전장에서 만나면 바로 죽일 테니까 나 보면 피해 다녀라."

둘은 바로 일어서서 허겁지겁 말을 타고 자신들이 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럴 거면 여기서 죽이지?

"알면서 뻔히 묻는 건 무슨 악취미냐?"

-주위에 사람이 많기는 한데, 저 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잖아.

회담 장소를 알려 준 이후로 계속해서 우리 쪽 인원과 저쪽 인원의 소규모 전투가 이어졌었다.

서로 감시와 습격이 용이한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마나를 조금 퍼트리려고 하면 계속 방해받는 것으로 봐서 마법사들도 주위에 와 있었다.

"성에 있는 사람을 몰살시켰다거나 포로를 방패막이로 썼다거나 하는 악명은 전장을 장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비겁하게 회담 장소에서 상대를 죽였다는 악명은 도움이 되지 않거든."

투브가 고개를 갸웃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말했다.

"내가 여기서 저들을 죽였다면 오히려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결사 항전하겠지. 어쩌면 저 이르한이라는 놈은 그걸 바라고 여기 왔을지도 몰라. 자신의 죽음으로 발시안 안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1황자파 귀족들의 각성을 노린 것일 수도 있지. 그 정도까지 판을 크게 보는 놈 같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저들은 내가 발시안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고 가게 되었어. 이제 공포와 무력감이 퍼져 나갈 거야."

-흠…….

"용기와 의지를 잃은 자들이 막는 성은 모래성과도 같지."

***

회담이 결렬된 저녁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시안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발시안으로 들어가는 육로를 모두 차단한 상태이기에 시간을 길게 잡고 내부의 식량이 고갈되기를 기다리면 이기는 싸움이었으나, 언제까지고 다른 귀족들이 카몰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정말로 다른 귀족들의 지원군이나 식량 지원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는 중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두고 말려 죽이는 방안은 일단 기각되었다.

"간밤에 공격 나간 부대들 피해 상황은?"

"화살에 맞은 병사들이 몇 있으나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야간 작전을 할 때는 꼭 마법사를 대동해서 마나 흐름을 파악하도록 해. 마법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바로 죽는다고 보면 된다."

"꼭 지키라고 하달하겠습니다."

내가 택한 방식은 사흘 정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규모 부대를 성벽 근처까지 이동시켜 발시안을 방비하고 있는 적군 병사들의 피로도를 누적시키는 방법이었다.

공격보다는 방어가 심리적 부담이 더 크고, 저들은 고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몰려 있어 그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은 소규모 인원으로도 가능했기 때문에, 적절히 인원을 바꿔 가면서 시행하면 우리 측의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내 명령을 전하러 로하나스가 떠났다.

그 앞에서 거대한 투석기가 바위를 날려 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많은 바위가 성벽을 때렸으나 더 나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중 몇몇 투석기는 높은 성벽을 넘어 안쪽까지 바위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이쪽으로! 빨리!"

코와 입에 천을 대고 장갑을 낀 병사들이 분변과 썩어 가는 동물 사체 같은 것을 들고 날랐다.

그들은 바위를 성벽 너머로 날리는 투석기 옆으로 가서 던져질 바위에 역겨운 것들을 치덕치덕 발랐다.

발시안은 지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안에 모여 있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위생 상태가 좋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분변과 동물 사체들이 넘어가서 병을 일으킨다면 삽시간에 안에서 확 번져 나갈 수 있었다.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꺾이지 않으면 몸을 병들게 해 줄 셈이었다.

4군단 장교 하나가 내게 와 정보를 전했다.

"배 몇 척이 출항한 것이 관측되었습니다."

"위치는?"

"현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우리 위치보다 남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함 종류는 파악했어?"

"전함보다는 수송선이 주류라는 관측병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둔해 있는 곳에서 하루 정도 떨어진 곳에 큰 배가 접안할 수 있을 정도의 해안가가 있었다.

활로를 뚫기 위해 상륙을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장거리 투사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들이 배에서 해안을 포격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었다.

해군 소속 마법사들은 하나하나가 명중률은 조금 떨어져도 크고 강력한 마법을 날려 대는 생체 포탑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배를 댈 만한 곳에는 다 대기하고 있지?"

"예. 기사단들이 중심이 된 부대들이 대기 중입니다."

"마법 포격에 유의하면서 거리 유지하라고 해. 필요하면 지원 요청하라고 하고."

장교가 멀어지자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내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깨에 4군단 공병대의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각하, 공성추가 완성되었습니다."

"실전 투입은 가능한 건가?"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하나 더 만들어."

"예?"

공병대 장교의 얼굴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거대한 공성추를 만드느라 며칠 동안 공병대 주둔지는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또한 길을 정비하고 교량을 보수하는 것 같은 일도 대부분 공병대가 맡고 있었으니, 아마 그들은 제국군에 입대한 뒤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1대로는 못 뚫어. 처음 공성추는 상대 전력을 소모시키는 용도야. 두 번째가 진짜다. 알겠으면 어서 가서 만들어. 너네는 대신 전투에 잘 참여 안 시키잖아! 공병대에 있는 마법사들 빼서 다른 부대에 넣기 전에 빨리 가!"

제국의 정책은 마법사들을 철저하게 관리, 통제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마법사가 제국군을 거쳐 갔다.

그러나 마법사라고 해서 영지전에 참여한 마법사들처럼 다들 대량 학살이나 피에 미쳐 있는 것은 아니라서, 전투를 위한 조직인 군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마법사들도 꽤 있었다.

이런 마법사들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대규모 기반 시설이나 거대 공성 병기를 만드는 공병대였다.

우스갯소리로 공병대가 아니라 공마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소리도 있을 만큼 마법사들의 공병대에서의 역할은 컸으니, 그런 마법사를 뺀다고 하는 것은 곧 인력만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엄포를 들은 공병대 장교가 경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허둥지둥 뛰어갔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사이에도 쉴 새 없이 투석기가 바위를 날려 대고 있었다.

발시안의 성벽 아래에 투석기가 날린 바위가 쌓여 조그마한 언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차근차근 성을 공략할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 발시안 뒤의 바다에서 전함 서너 척이 해안가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해안가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들 다 뒤로 빠지라고 해! 장비는 최소한으로 챙겨서 사람만이라도 먼저 빠진다! 포격이다! 빨리!"

내 명령을 전하는 전령이 말을 타고 해안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전파가 빠르게 된 것인지, 해안 경계를 맡고 있던 부대들이 재빨리 본영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새 전함은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도달해 있었다.

배의 측면을 해안선과 평행하게 맞춘 전함에서 마나의 흐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땅에서 뒹굴고 있던 투브가 벌떡 일어났다.

-온다!

배에서 조그만 빛의 구체 몇 개가 솟아올랐다.

작았던 그 구체가 우리 쪽으로 다가올수록 점점 커지는 것이 보였다.

구체는 마치 번개처럼 전체가 파직거리는 기운으로 덮여 있었다.

하나가 해안가의 텅 빈 부대를 직격했다.

구체는 천막과 땅에 닿자마자 폭발과 동시에 사방에 번개를 흩뿌리며 사라졌다.

천막 하나가 새카만 재가 되어 버린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후에도 마법 포격이 몇 번 더 있었다.

위력은 가공할 만했으나 어쨌든 저 정도의 마법을 만들어 내려면 마법사 몇 명을 탈진 직전까지 몰아붙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확도와 거리도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

본격적인 전투보다는 위협이나 시선 끌기에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륙을 위해 본대를 저지하기 위한 수단인 것 같네."

수뇌부라 할 수 있는 고위 장교들과 귀족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검은늑대 기사단과 함께 후방의 상륙을 막으러 가야겠어. 그쪽에 있을 테니 일 있으면 전령 보내. 그리고 두 번째 공성추가 완성되는 날이 공격일이야.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최대한 상대의 피로를 누적시키고, 투석기로 바위를 던져. 혹시나 상대가 나와도 도발당하지 말고."

그리고 얼마 전 내게 깨졌던 71사단장, 빌 파르를 지목했다.

"전장에는 군인이 있어야지. 71사단장,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이곳을 통제한다. 귀족들도 괜한 반감 가지지 말고 최대한 따라. 헛짓거리하면 내가 직접 죽인다. 잊지 마라, 두 번째 공성추가 완성되는 날이 공격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마친 나는 출격을 위해 검은늑대 기사단 주둔지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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