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99화 (99/180)

공세 (2)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달빛마저 지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밤이었다.

끼익거리며 노를 젓는 소리와 쾌속선이 물을 가르고 나아가는 사르륵 소리만 경쾌하게 귀를 맴돌았다.

"막 가슴이 두근두근허지 않어?"

쾌속선 가득 쌓인 기름통과 짚 사이에 큰 덩치를 잔뜩 쪼그리고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이끼위의물이 옆에서 똑같이 노를 젓고 있는 벼랑구른돌에게 물었다.

벼랑구른돌은 아무 말도 없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자신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쉬잇!"

"잉? 그려 안 그려? 나만 그런 겨?"

"조용 좀 혀! 집중하시는 거 안 보여!"

벼랑구른돌이 낮게 읊조리는 소리에 내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덕에 배 주위에 쳐져 있던 마법이 흐트러지면서 마법이 없애고 있던 수면의 파장이 조금 밖으로 새 나갔다.

-이놈들이 정말 이럴 때도!

투브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대자 도깨비 둘은 기가 팍 죽어 고개를 내렸다.

'감사.'

-뭘 이 정도로.

재빨리 배 주위의 흐트러진 마나를 내 의도대로 움직였다.

배 주위로 퍼져 나가던 수면의 파장이 내가 만들어 낸 마나의 막에 가로막혀 멀리 뻗어 나가지 못하고 상쇄되는 것이 보였다.

마나에 대한 이해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이타르의 말처럼, 그를 보내 주고 난 뒤, 마나와 마법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고난도의 마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이해되고, 내 의도에 따라 알아서 마나들이 마법으로 변환되었다.

'이것이 천재의 삶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굉장했다.

지금만 해도 마나로 막을 만들어 수면의 파장과 새어 나가는 소리를 막고, 주위로 우리 위치의 탐지를 막는 어둠을 뿌리고 있었다.

극도의 정신 집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3가지의 마법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카데미나 제국 대학에서 모셔 갈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둠을 뚫고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몇 발의 소리만 나더니 이내 핑핑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공기를 찢었다.

불화살 몇 발이 우리 배를 스쳐 지나갔으나 내가 만들어 낸 짙은 어둠을 뚫지는 못했다.

-다른 배인가 보군.

시선 분산을 위해서 같이 보낸 미끼용 배였다.

이미 화살이 날아오기 한참 전부터 배 안에 타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강으로 뛰어들어 대기하고 있던 구조선으로 향했을 테니 인명 피해는 없을 터였다.

콰아아앙!

불화살이 박힌 미끼용 배가 조금 더 가다가 거대한 화염을 하늘로 올려 보내며 폭발했다.

혹시나 미끼용 배가 적의 감시망을 뚫고 적 선단에 도달할 경우도 대비해서 충분한 양의 기름과 탈 것을 실어 놓으라고 했지만 저건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야! 인간들이 불을 좀 아는구먼유!"

"가슴 콩닥거려서 진정을 못 하겄슈. 우리는 언제 움직여유?"

내가 기겁하고 있는 사이, 벼랑구른돌과 이끼위의물이 눈을 반짝이며 아직도 연쇄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미끼용 배를 보고 말했다.

제뉴인으로 돌아가기 전, 도깨비들의 마지막 활약이 될 무대가 바로 이 화공이었다.

불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도깨비이니 강에 떠 있는 수많은 배를 태우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적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침투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원래는 붉은방패 기사단을 따라온 황실 마법사가 이 역할을 맡기로 했으나 그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불바다가 될 것이 뻔한 곳에서 아군 함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는 것은 힘들다고 보여 승선 직전에 그를 기절시키고 내가 탄 상황이었다.

"나는 장로 도깨비가 새겨 준 가호가 있으니까 웬만한 불길에도 괜찮을 거야."

실제로 아라크네가 쏘아 보낸 화염을 그대로 맞고도 멀쩡히 살아나 왔지 않은가.

또한 이 가호 덕인지 불 계열의 마법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가 가는 건 상관이 없는데, 왜 나까지 불구덩이로 가야 하냐고!

투브가 품속에서 징징거렸지만 떨어질 수가 없는 걸, 별수 있나.

그냥 따라와야지.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또 다른 미끼용 배도 발견된 모양이었다.

안에는 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재료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주위의 마나를 흩트리는 장치도 들어 있으니 우리를 탐지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더 빨리 가죠."

"거의 다 온 것 같은디, 노 그만 젓구 마법으로 가쥬?"

벼랑구른돌의 말처럼 적 선단이 멀지 않은 곳에 정박해 있었다.

"속도 확실히 낼 수 있어요?"

"말이라고 하셔유? 맡겨만 주셔유."

"배에 불 붙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암만유, 불하면 지들 도깨비구, 도깨비허면 불인디 설마 타고 있는 배를 태워 먹겄어유."

"좋아요. 준비되면 말씀하세요."

내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도깨비 둘이 노를 놓고 일어나 선미로 이동했다.

그리고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배의 뒤에 앉아 양손을 배 뒤로 뻗었다.

둘의 팔에서 불꽃이 피었다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준비됐어유!"

"가요!"

신호와 동시에 둘의 손바닥에서 엄청난 양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면서 속력이 붙었다.

내 마법으로도 가리기 힘든 대규모 마나 변환 반응인지라 당연히 적들도 알아챘고, 그에 따라 화살과 마법이 우리 배를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던 마법을 해제하고 재빠르게 마나 소드와 마법을 이용해 불화살과 가연성 마법만 골라 쳐 냈다.

화살 정도는 박혀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른 미끼 배들에 집중하고 있던 적선이 우리 배 쪽을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긴 뒤에서 어마어마한 화염을 뿜어 대며 가공할 만한 속도로 선단을 향해 돌진하는데 가만 두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더 빨리요!"

내가 외치자 둘의 팔이 팔꿈치 언저리까지 붉게 달아오르면서 숫제 하얗게 보이는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작은 쾌속선이 더욱 속력을 더했다.

열기에 증발한 물이 자욱이 수증기를 만들어 내어 우리를 감추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시야만 가렸을 뿐, 탐지 마법에서는 가려질 수 없었기 때문에 마법들이 더더욱 쏟아져 들어왔다.

화륵.

미처 막아 내지 못한 마법 하나가 쌓여 있던 짚단에 불을 붙였다.

적 선단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우리 배가 먼저 터져 버리면 작전이 허사가 된다.

그러나 저 짚단을 치우기 위해 움직이면 또 다른 마법과 불화살이 꽂힐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어후,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투브가 불이 크게 옮겨 붙기 전에 불이 붙은 짚단을 물고 강으로 던져 버렸다.

기름을 먹여 놓은 짚단이었기에 바로 꺼지지 않은 불이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잘했어!"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는 이미 적선이 정박해 있는 틈 사이로 들어와 있었다.

투브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들어와!"

개의 모습에서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한 투브가 내 품으로 쏙 들어와 안겼다.

그런 투브를 안고 마법으로 몇 겹의 보호막을 치며 도깨비들에게 외쳤다.

"3초 후에 터트리세요! 아셨죠! 하나, 둘, 셋 세고 터트리는 겁니다!"

"아침에 봐유!"

도깨비 둘이 손을 흔들며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투브를 안고 강으로 뛰어 들었다.

뛰어들기 직전 벼랑구른돌인지 이끼위의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단번에 '셋!'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등 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몰려들었다.

'이런 미친 종족……!'

물속에서 몸을 뒤집어 시선을 수면 쪽으로 향했다.

고오오오오! 우웅우웅!

물속이라 귓속을 울리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한순간에 주위가 밝아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을 만들어 낸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폭발을 방망이에 휘감은 도깨비 두 명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방망이를 휘둘러 불을 온 배에 옮겨 붙이고 있었다.

수면이 일렁이며 접혔다 펴졌다 하는 시야 때문에 그들은 마치 종말을 이끌고 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푸하!"

고개를 수면 밖으로 내밀자 소리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적습이다!"

"화공이다! 물과 모래를 가져와!"

"배에 불이 옮겨 붙는다! 일단 출항해!"

가장 가까운 배로 다가가 배의 측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오러를 운용해 손으로 배의 측면을 붙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배라 손을 몇 번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배의 갑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투브가 품속에서 빠져나와 부르르 떨며 물을 털어 냈다.

-아이고, 저 미친 도깨비 놈들.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아직도 거대한 불기둥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불기둥에서 분리된 불덩이들이 배에 옮겨 붙어 강 위에 거대한 등불을 얹어 놓은 것처럼 엄청난 열과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멀리 상류에서 접근하는 아군 배들이 보였다.

아마 지금쯤은 내가 사라진 걸 알았으니 다들 혼비백산해서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었다.

"으아! 누구야!"

상류를 보고 있던 나와 몸을 털어 대고 있던 투브를 발견한 적 선원 하나가 놀라 외쳤다.

콰아아아앙!

기름통이라도 담겨 있던 건지 내 뒤에 있던 배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잠잠해질 무렵에는 나를 보고 놀랐던 선원은 이미 가슴에 구멍이 뚫려 강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휙.

마나 소드를 털어 냈다.

피가 갑판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몸을 날려 어느새 본래의 거대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투브의 등에 올랐다.

"여기는 도깨비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뭍으로 올라가자."

투브가 불타는 배들을 발판 삼아 가볍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오델리아! 어서 가야 합니다!"

로하나스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병을 베어 내며 외쳤다.

화공이 성공하면 배를 이끌고 테르다마스로 진입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불의 규모가 너무 커서 접근하면 아군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발시안 제독의 판단으로 테르다마스 주위의 강가에 상륙해서 전력으로 테르다마스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참이었다.

적도 수군에만 전력을 집중한 것이 아닌지라 강변을 따라서도 부대들이 늘어서 있었고, 최대한 빨리 테르다마스 입성을 목적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연이어 전투가 발생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말도 없이 적지에 혼자서 가신단 말인가!'

자신의 주군, 시안에 대해 로하나스는 속으로 격한 욕을 했다.

물론 로하나스은 시안에게 평생 가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기에 얼른 욕을 한 것을 후회했다.

평민 출신인 자신이 송곳니 기사단의 예비 정식 기사가 되고, 제뉴인 공작을 스승으로 두고, 현재 오델리아와 겸임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검은늑대 기사단의 부단장이 된 것이 다 누구 덕인가.

백 번을 생각해도 답은 시안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자신을 비롯한 부하들에게도 부담을 나눠줬으면 하고 로하나스는 생각했지만 지금까지의 주군의 행보를 보았을 때는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였다.

옆에 설 수는 없어도, 뒤에서 바라보는 역할로 만족하고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자행하는 것을 보면 뒷골이 섬찟했다.

"불안한가, 애송이?"

한 번에 기사 셋의 목을 날려 버리고 돌아온 오델리아가 대수롭지 않게 로하나스에게 물었다.

"적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셨는데 그럼 걱정이 안 됩니까?"

"그분 걱정 이전에 네 걱정부터 해야 할 거다."

갑자기 오델리아가 로하나스의 어깨를 잡고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로하나스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화살이 후두둑 박혔다.

두근.

로하나스의 가슴이 뛰었다.

'이, 이건?'

잠시 굳어 있는 로하나스를 오델리아가 재촉했다.

"주군께서 기다리신다. 어서 가지."

"예? 아, 예!"

그리고 테르다마스에 입성한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꺼지지 않은 배와 항구의 불과 여전히 방망이를 휘두르며 날뛰고 있는 도깨비, 계속해서 창과 검으로 모양을 바꾸며 적병을 쓸어 내고 있는 시안 그리고 그런 시안을 등에 태우고 적들을 물고 밟아 죽이는 투브였다.

"에베 공작령의 테르다마스에 온 것을 환영……은 개뿔! 뭘 구경하고 서 있어! 할 일 안 해?"

시안이 크게 외치는 소리에 로하나스가 검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주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저래야 내 주군이시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