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01화 (101/180)

공세 (4)

"동맹이라……. 계속해 보시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1황자는 가망이 없다."

냉정한 평가였다.

일단 현재 그가 충성을 맹세한 주군인 데다가 사사로이는 친척인 자에게 내리기에는 부적절한 평가였지만, 그의 단호한 어조가 흥미를 끌었다.

"이유는?"

"남부는 네 녀석의 진군을 막을 힘이 없다. 똘똘 뭉쳐도 모자를 판에 각 영지에 주둔하던 군단을 흡수한 영주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크팅성이 함락되었을 때, 다시 한번 결집해서 네놈의 군대를 공격했으면 네가 내 땅까지 올라오는 일은 없었겠지. 또 멍청한 하르난 녀석이 아닌 내가 리히트 공작도 겸임하고 있었다면 네 녀석은 지금쯤……. 하! 아니다, 이런 얘기는 됐다. 여하튼 나는 애당초 누가 황제가 되든 별 상관이 없었다.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오? 당신은 분열 초기부터 1황자를 지지한다고 선언했잖소."

"너 때문 아니더냐!"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내가 몸을 살짝 뒤로 뺐다.

"그 당시에야 당연히 1황자가 다시 정권을 잡을 줄 알고 안정을 위해 그를 지지했지. 갓 백작이 된 네가 4군단을 흡수할 줄, 안즈를 점령할 줄 알았겠느냐. 다 네놈 탓에 2황자 세력이 급격히 커져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 아니냐! 나는 코가 꿰였을 뿐이다."

"추후에라도 황제 폐하를 지지한다고 선언했으면 되는 것 아니오?"

에베 공작이 못마땅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이미 남부 전체가 단합해 하나같이 1황자를 지지한다고 들끓는데, 내가 뭐 하러 돌 맞을 짓을 나서서 한단 말이냐? 게다가 나는 공작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무거운 의미가 부여되지. 내가 입장을 바꿨으면 그때야말로 내 아래 영주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실로 불순한 의도지만 동시에 가장 실리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만 부른 것이오? 다른 영주들이 들을까 봐?"

공작은 내 눈을 피했다.

그리고 대답 역시 피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나는 왕국 놈들이 제국 땅을 밟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국이 소국의 힘을 빌려서야 되냐 이 말이다. 놈들도 분명 속셈이 있어 병력을 파견했을 것인데 좋다고 그걸 받아들인 하르난 놈은……. 으으!"

실제로 에베군 곳곳에서 올라온 깃발 중 나시와르와 툴리앗에 관련된 문장이 그려져 있는 깃발은 하나도 없었다.

모순되게도 에베 공작 본인은 출생이 서출(庶出)이었지만 그는 지독한 제국 우월주의자였기에 이민족, 야만인, 왕국인을 가리지 않고 그저 제국인이 아니라면 덮어 놓고 싫어했다.

"흠, 그것만으로 1황자가 끝났다고 하기에는 비약이 심한 것 같소만. 노체 공작의 병력이 그랑베르트 공작령의 2/3 이상을 점령해 가고 있고, 루지온 공작 또한 주변의 영주들을 규합하여 노체 공작에 합류했다고 들었소. 솔직히 지금 당신의 발언은 내게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소."

일곱 공작 가문 중 제국 북부와 북서부에 있는 제뉴인, 산탄다르, 그랑베르트가 현 황제를 지지하고 있었고, 남동부에서 서부에 터를 잡은 나머지 가문인 노체, 에베, 리히트, 루지온이 1황자를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황제 세력 중 적 세력과 직접적으로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곳은 노체를 상대하고 있는 그랑베르트였다.

그리고 내가 있는 카몰이 에베와 리히트가 포함된 남부를 상대하고 있었다.

카몰은 1황자 파였던 안즈와 리벤트, 디시간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다 내 세력으로 들어왔기에 큰 경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던 산탄다르가 주위의 군소 영주를 흡수하며 힘을 키웠던 것처럼 루지온 공작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세력을 키운 상태였다.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루지온은 전력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만 20만이 넘어간다고 하니 단일 세력 중에는 가장 큰 전력이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루지온 공작이 병력을 이끌고 노체 공작에게 합류한 사이 이민족 잔당과 사힘 변경백의 군대가 루지온을 침공했다. 애꾸눈 이민족이 이끄는 이민족 군대의 기세가 아주 매섭다고 하더군. 그 탓에 루지온 공작은 병력의 절반을 물러야 했지."

처음 듣는 정보였다.

다른 전장의 소식들도 전해지고는 있었지만 주로 노체와 그랑베르트 간의 전투에 관한 것일 뿐, 1황자 세력의 내부 소식까지 알 방도는 없었다.

다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라드마와 사힘 변경백이 다른 쪽에서 전선을 형성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막을 때는 성가셨지만 그 파괴적인 힘이 적을 향해 있다고 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걸 무슨 수로 믿지?"

에베 공작이 머리를 한 번 까딱했다.

"믿건 안 믿건 그건 네 자유다. 다만 내가 지금 우리 측의 중요 기밀을 흘렸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군."

약은 인간.

분명 먼저 동맹을 청해 온 불리한 입장인데도 오히려 자신이 손해 본 것 같다는 표정을 하면서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뻔한 수에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하며 물었다.

"어차피 그곳도 내가 향하기만 하면 패배를 맛보게 될 지역이니 상관없소. 본론으로 넘어가지. 원하는 걸 말하시오."

"하르난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나와 동맹을 맺을 것. 그리고 리히트를 침공할 것. 1황자가 무너지면 황제에게 진언해 나를 남부의 대공으로 만들어 줄 것."

사누스 서비어, 에베 공작은 아주 당돌한 꿈을 꾸고 있었다.

"배신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하던데."

"배신이 아니지. 나는 하르난 그놈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말은 그럴듯하군."

"황제에게나 네 녀석에게나 나쁠 건 없을 텐데? 3 대 4의 세력 구도에서 내가 옮겨 감으로 해서 4 대 3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니까. 무게 추를 움직여 판도를 뒤엎게 해 주는데 오히려 남부의 대공 정도면 싸게 먹힌 거란 생각이 안 드나?"

"세 번째 조건의 확답이 어렵다는 것 정도는 그쪽도 알고 있겠지? 나는 폐하의 대리인일 뿐, 결정권자가 아니다."

"미숙하군."

에베 공작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지막 조건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

"무슨……."

"전쟁의 영웅은 평시의 위협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레이바의 목소리가 귀에서 울려 퍼졌다.

나를 찌를 때 귓가에 속삭였던 말이었다.

-공작 각하, 당신은 너무 커져 버리셨습니다. 내려오셔야지요.

내 죽음에 황제가 개입되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레이바가 직접 손을 쓸 정도라면 황제 역시 용의 선상에 올려놓아야 마땅했다.

그것이 현재 황제가 내게 무한이라고 해도 좋을 신뢰를 보여 주고 있음에도 내가 쉽사리 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였다.

초대 황제도 말하지 않았던가.

-목표를 향해 오르기만 하다가 이제 본인이 남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을 향하는 모든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위기에서 구출한 자라도 예외는 없다.

지금은 전시지만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황제에게 위협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았다.

에베 공작은 그 지점을 정확히 잡아내고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쪽을 대공으로 만들어 위협을 분산시키고 서로 안위를 도모하자는 것이로군."

"몬트라우 성을 달고 있는 남자들은 대개 정치적인 머리가 좀 느리던데 다행히 네 녀석은 좀 나은가 보구나."

에베 공작이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만들어 냈다.

미래 일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동맹이 성사된다면 만족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가 말한 대로 세력의 균형추를 이쪽으로 옮겨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부를 훨씬 일찍 평정할 수 있었으니까.

"추후의 일은 미뤄 두겠소. 현재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민족과 대치하고 있는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를 그대에게 합류시키도록 하지. 꽤나 쓸 만한 전력이 될 게야."

"그대라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네 녀석 아니었나?"

"소중한 동맹에게 네 녀석이라는 표현은 좀 아니지. 물론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면 계속 그렇게 불러 줄 수도 있네만."

"나는 현재의 노고를 아끼고 당신은 미래의 자리를 보전하게 되는 건가?"

"굳이 따지자면 그 정도가 되겠지."

"동맹의 증표로 두 가지를 요구하고 싶소."

"내 전력의 지휘권을 가져가는데 무슨 증표!"

동맹의 증표를 원한다는 내 말을 듣자 에베 공작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계산을 잘못한 것 같은데, 그쪽의 전력을 내게 보내는 건 리히트를 침공해서 그쪽이 편해지는 부분에 대해 감당해야 할 부분이오. 그리고 당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어찌 되었건 당신이 1황자 세력을 배신한 것이외다. 배신자의 말에 의지해 동맹을 체결한다? 당신 같으면 냅다 동맹을 하겠소?"

기가 찬다는 표정을 한 에베 공작이 쳇 하고 혀를 한 번 차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더럽게 까다롭군! 원하는 걸 말해!"

"얀타라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작의 눈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다시 한번 주위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 나를 위협하려던 것 이상의 엄청난 기세였다.

어마어마한 기운으로 오러를 발산하느라 머리털이 하늘로 치솟은 에베 공작이 온통 하얗게 변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선을 모르는구나. 하긴 죽고 싶으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느냐."

얀타라나는 에베 공작 가문에서 수장임을 상징하는 보석이었다.

처음 황가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황실에서 수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에베 공작 가문의 문장에 그려져 있을 만큼 상징하는 바가 컸다.

나는 그런 보석을 동맹의 대가로 요구한 것이다.

공작이 눈이 뒤집힐 만도 했다.

"배신의 대가가 가벼울 줄 알았소? 남부의 다른 귀족들을 복속시키고, 그대의 병력을 돌려주며 같이 돌려주겠소이다."

"미친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횟수가 나보다 그쪽이 많을 것 같은데."

순식간에 그의 눈이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내게 패배해서 남쪽으로 향한 이민족들이 가장 먼저 진입한 곳이 에베다.

이민족을 몰아내기는커녕 성 몇 개를 빼앗긴 상태에서 내 침공을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마 데리고 온 대군도 필사적으로 모아 온 것일 요량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수군도 괴멸된 상태이니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이 협상에서 자신이 우위인 줄 착각했겠지만 전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그는 내 손바닥 위였다.

그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그쪽으로 가는 병력의 지휘관으로 내 셋째 아들을 보내겠다. 그리고 얀타라나는 항상 아들놈이 지니고 있어야 해. 내 아들이나 얀타라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된다."

이 짧은 순간에도 최대한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만한 방안을 제시하는 에베 공작이었다.

머리 굴리는 속도와 수완만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동의하겠소. 그리고 하나 더."

"이런 젠장!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니냐!"

결국 폭발해 버린 에베 공작이었지만 내 말을 들은 후에는 제법 혹하는 표정이 되었다.

"호오, 결국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가?"

"충분히 납득하리라 믿겠소."

의자를 빼고 일어섰다.

"앞으로 이틀이면 물길이 뚫릴 테니 그때까지 병력을 추려 테르다마스로 보내시오. 실어 가도록 하지."

에베 공작도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몇 번 쓰다듬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 했던가.

***

며칠 뒤, 본영으로 내려가는 배에서 굳이 나와 같은 배를 타야 한다고 고집한 그레이스가 내게 말했다.

"올 때보다 인원이 늘어서 가다니……. 특히 수용 인원을 초과해서 배를 한 번 더 움직여야 할 정도가 됐다는 것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분명 에베군 전력의 일부일 텐데도 오러를 제법 능숙하게 다루는 기사만 1,000명이 넘습니다. 본대에 얼마나 많은 기사가 있는 건지 쉽사리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테르다마스로 보내진 에베군 병력은 6,000.

그중 기사만 1,000명이 넘었다.

공작 가문에 허가된 기사단 수는 200이었지만 그 수를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내가 의도한 것처럼 각 영주와 사령관 들이 기사를 잔뜩 충원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였다.

그레이스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동맹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공공연하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에베 공작과의 동맹이라면 조건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에베 공작과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돌아오자 모두 놀라 뒤집어졌다.

다들 대체 어떻게 저 초로의 귀족을 구워삶은 거냐며 궁금해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었다.

"에베 공작이 저를 믿고 동맹을 했는데 그 조건을 다른 이에게 얘기하면 큰 실례이지 않겠습니까? 죄송하지만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제게만 살짝 알려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레이스가 성이 났는지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각하."

내가 부르자 알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밝은 얼굴이 된 그레이스가 곧바로 답했다.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뭔가를 얻어 내기 위해 그런 표정을 지으신 거라면 추후에 부군 되실 분께 그리하시면 잘 통할 것입니다."

한마디 충고해 주고 몸을 돌려 배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보고 있던 투브가 나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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