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10화 (110/180)

승리, 그 이후 (2)

"잠깐!"

내 제지에 에이젤에게 손을 뻗던 에베 공작이 멈추었다.

"에이젤을 그대로 데려가실 순 없소."

즉각 에베 공작이 반박했다.

"무슨 소리요! 그대가 원하는 대로 위샤인 부녀를 생포해 데려오지 않았소! 이것은 약속과 다르오! 에이젤을 데려가겠소!"

자신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오러를 운용할 수 없게 하는 특수한 구속구를 찬 채로 입에 재갈을 물려 있는 홈 위샤인 백작과 그의 딸, 스와라 위샤인이 재빠르게 눈을 굴려 나와 에베 공작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에베 공작에게 내건 동맹의 조건은 두 가지.

첫째는 얀타라나를 내게 맡기는 것, 둘째는 남부군과 왕국 간의 연결 고리로 추정되는 위샤인 백작과 그의 딸을 생포해서 내 앞에 데려온 뒤, 둘의 처분은 오로지 내게 맡길 것.

에이젤로 인해 다소간의 소란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에베 공작은 아주 충실히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상태였다.

그가 흥분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에베 공작이 에이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자 나는 마법으로 에이젤을 내 쪽으로 당겨 왔다.

"으윽……."

바닥을 뒹군 에이젤이 신음을 내뱉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카몰 후작!"

"나는 분명 에이젤의 목숨은 붙여 돌려보낸다 했소."

에베 공작의 눈이 커졌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에이젤은 아군을 배반하고 적에게 붙었소. 그런 배신자를 공작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소. 그것은 나와 생사를 같이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모욕이오."

"하지만……!"

"내 말에 틀린 부분이 있소? 나는 분명히 목숨만이라는 조건을 걸었고, 동의한 것은 그쪽 아니오? 설마 둘만 있던 자리라고 해서 아니라고 발뺌을 할 셈이시오?"

에베 공작이 대답이 없자 에이젤의 얼굴이 하얗게 죽었다.

각각 공작과 후작이고, 에베군과 카몰군을 대표하는 위치에서 한 약속이다.

절대 허투루 물릴 수 없었다.

"……팔 하나 정도면 되시겠소?"

"아버지!"

결국 아들의 팔 하나 정도만 잘라 가라는 말이 나오자 에이젤이 기겁해서 외쳤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아버지! 팔을 자르라니요! 억울합니다! 제가 잘못한 것은 그저 기사들을 동원해 리히트 공작을 호위한 것뿐입니다. 아군에게 무기를 겨눈 적도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그는 고래고래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아군을 배신하고 적에게 붙은 것과 에베 공작을 사칭한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추하다, 에이젤. 그만하거라."

에베 공작의 한탄 섞인 말에도 에이젤은 추태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를 향해 더욱 크게 외쳤다.

"저도 기사입니다. 어찌 팔을 잃고 살 수 있겠습니까, 자비를! 제발 자비를, 각하!"

"지금 네 행동은 네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의 팔을 자르라고 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부웅.

마법을 써서 에이젤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너는 진작 죽었어야 하나, 네 아비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네 아버지의 명예를 욕되게 하지 마라. 그는 이미 충분한 모욕을 겪고 있다."

오른손에 마나 소드를 만들어 냈다.

그걸 본 에베 공작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사지를 모두 자르고 몸통만 남겨 보내고 싶지만 네 아비를 보아 그리하지는 않겠다."

서걱.

너저분하게 자라 있던 에이젤의 앞머리를 잘라 냈다.

그의 이마가 드러났고, 공중에 떠 있는 그를 향해 섬세하게 마나 소드를 움직였다.

"으아악!"

이마에서 송골송골 배어 나온 피가 얼굴을 타고 흐르자 에이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숨을 틀어막기 전에 조용해라."

그 말에 놀라 숨을 꺽꺽 들이마시던 에이젤은 결국 기절했다.

마나 소드를 없애고 에베 공작을 향해 에이젤을 던졌다.

이마에 선명하게 내 문장이 그려진 에이젤을 에베 공작이 받았다.

"앞으로 내 문장을 이마에 새기고 살아가야 할 테니 배신의 죗값으로는 충분하겠지."

"고맙소."

공작이 에이젤의 이마를 조심스레 닦아 내며 말했다.

머리를 기르면 이마 정도는 충분히 가릴 수 있을 것이니 내 처분은 가혹하고 영구적이지만 어느 정도는 많이 사정을 봐준 셈이었다.

공작도 그것을 알고 고맙다고 하는 것이었다.

"공작께서 내 부탁을 훌륭히 완수해 주었으니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이유는 없소."

공작이 고개를 한번 주억이고 얀타라나와 에이젤을 챙겨 나가려 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그대의 공을 폐하께 상세히 말씀드리겠소."

"그렇다는 말은……."

에베 공작의 눈이 한쪽에서 여전히 쭈그러져 있는 위샤인 부녀에게 가서 닿았다.

비록 에베 공작이 내게 자신을 대공으로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남부의 대공이 된다면 나를 향한 황제의 관심으로부터 충실한 방파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견자가 호부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나라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소?"

"약았군."

"싫으시오?"

뭔가 더 말을 하려던 에베 공작은 위샤인 부녀를 의식해서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위샤인 부녀에게 다가갔다.

스와라의 턱 아래에 손을 넣어 치켜올리자 위샤인 백작이 발버둥을 쳤다.

"이 정도 보여 줬으면 내 성질이 어떤지는 알겠지? 자, 나시와르랑 툴리앗에게 뭘 제시하고 끌어들였는지 말해."

스와라의 재갈을 풀어 주자 바로 그녀의 타액이 날아왔다.

"퉤!"

진득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그런다고 해서 고분고분 말할 것 같으냐? 학살자! 악마!"

짜악!

스와라의 고개가 돌아갔다.

위샤인 백작의 버둥거림이 심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바로 종알종알 내뱉을 줄 알았는데, 이맘때의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네."

입안이 터졌는지 핏물을 뱉은 스와라가 나를 향해 앙칼지게 말했다.

"포로를 엄중히 대우하시오! 다른 입장에 있다고는 하나 나는 엄연한 제국의 귀족이오!"

이번 삶에서 내게 직접 적대했던 스테판과 달리 스와라는 지금 처음 보는 것이라 바로 손을 대기가 영 꺼려졌는데 아주 대놓고 내 적개심을 불타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심장에 검을 꽂아 주고 싶었으나 철저하게 이용한 다음 복수를 해도 전혀 늦지 않았다.

내 손을 물려고 드는 스와라의 입을 피해 다시 재갈을 물린 후, 이번에는 위샤인 백작의 재갈을 풀었다.

"프허억……."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질문은 그대로요. 답변 여하에 따라 그대와 그대의 딸의 처우를 결정하겠소."

위샤인 백작의 눈에 생기가 올랐다.

부를 필요가 없었음에도 내가 백작과 스와라를 데려와서 나와 에베 공작 간의 대화를 지켜보게 한 이유였다.

에이젤이 리히트 공작 편에 붙었다는 사실은 위샤인 백작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현재 나는 그의 눈앞에서 에이젤을 살려 보냈다.

그는 아마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심은 거짓된 희망이었다.

스와라 위샤인에 대한 처우는 내가 회귀한 순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위샤인 백작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 왕국에 다리를 놓은 것은 나지만, 실질적인 제안은 1황자께서 하셨소이다."

***

"폐하, 지금 말씀하신 것이……."

얄츠 이나타 황실 시종장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정전에 모여 있는 귀족들과 문무백관 모두 방금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지 못해 황제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명을 무어라고 생각하는 겐가!"

노기 어린 황제의 목소리에 얄츠 이나타 백작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아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한번 위엄 있는 목소리로 어명을 내렸다.

"카몰 후작에게 내려 주었던 도원수직을 파하고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제수한다. 표기장군 시안 몬트라우는 임시로 가지고 있던 제국 동부의 병권을 짐에게 반환하고, 표기장군이 되었으니 감히 대국의 영토를 넘보려 했던 나시와르, 툴리앗을 정벌할 것을 명한다."

정전에는 몇 초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어느 노신(老臣)이 입을 열어 물었다.

"폐하, 아직 노체 공작의 기세가 흉흉하며, 감히 왕을 칭한 하마렐리온 드와이트에 대한 징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직 제국의 안에 적이 남아 있는데 어찌하여 밖으로 눈을 돌리시나이까. 이것은 시기상조인 줄로 아뢰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신하들도 노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양새였다.

"히베아 변경백이 군사들을 보내 준 덕에 그랑베르트 공작령을 침범했던 노체 공작과 루지온 공작의 연합군은 기세가 많은 꺾인 상태임을 경들도 알 것이오. 드와이트 그자는 이민족들과 힘을 합쳐 루지온 공작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으니 큰 걱정이 아니지. 제뉴인 공작과 히베아 변경백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역도들을 그랑베르트 공작령 바깥으로 몰아내고, 그들의 본거지를 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

"그렇다면 카몰 후작을 북부로 불러들여 전투에 참전하게 하는 것이 시의적절한 판단이라 아뢰옵니다. 그의 휘하 부대들은 일당백의 정예라 하니 제국을 평정시키는 데 쓰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나시와르와 툴리앗이 자랑하는 정예 부대들이 남부에서 대부분 괴멸되었다 들었소. 이때가 아니면 두 왕국을 속국으로 복속시킬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오."

이미 황제가 시안을 제국 바깥으로 보내기로 굳게 결심한 것을 깨달은 신하들은 서로 입을 조심했다.

어느 젊은 신하가 앞으로 나서 물었다.

"도원수직을 파하신다 함은 그의 휘하에 있던 에베군과 산탄다르군의 지휘권은 어떻게 하실 요량이시옵니까?"

"그대로다. 카몰 후작은 제국 동부 병권을 짐에게 반환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공작령의 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산탄다르군은 북으로 합류해 그랑베르트 전선에, 에베군은 그대로 하마렐리온 드와이트를 견제하게 될 것이다."

"하나 그렇게 되면 카몰 후작 휘하에는 약 2만에서 3만의 병사밖에 남지 않습니다. 1개 군단에 해당하는 병력으로 적국을 침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옵니다."

"에베를 제외한 다른 남부 지역에서의 병력 징발을 허용한다."

"그러나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적대하던 카몰 후작의 지휘를 따를까 하는 문제도 있고, 그들을 정예병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사옵니다."

황제의 눈이 젊은 신하에게 향했다.

만인지상의 엄격한 눈초리에 젊은 신하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이윽고 황제의 입이 열렸다.

"짐의 뜻이다."

그 말에 문무백관들이 엎드려 읊조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일야관에 참전했던 수도방위병단의 병사들이 돌아온 이후, 카몰 후작의 영웅적인 활약이 수도에 쫙 퍼졌고, 남부 전장에서의 승리도 연일 보고되고 있었다.

현재 수도에서 시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으며, 내전이 마무리되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제국의 7공작 체제가 시안으로 인해 8공작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황궁에 앉아 명령만 하는 황제보다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시안에게 열광했다.

황제도 그 사실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내심 시안의 승리를 바라면서도 남부의 전투에서 그의 세력이 크게 꺾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적군이 오러를 쓰는 것을 봉쇄해서 아군 손실이 거의 없이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이었다.

바그안트 서비어는 시안의 모습을 생각했다.

생각 속에서, 시안의 모습은 점점 커졌다.

황제는 고개를 저어 시안의 모습을 털어 냈다.

'흔들림 없지만 동시에 완전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남부의 평정으로 노체와 루지온을 비롯한 1황자 세력은 결국 내게 머리를 숙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따를 것인가, 전쟁 영웅 시안을 따를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황제, 바그안트 서비어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시안을 죽여야 한다. 되도록 내 손이 아닌 남의 손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