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26화 (126/180)

기사 하나, 기사 둘 (2)

"이크!"

로하나스가 유연하게 상체를 뒤로 접으며 화살을 피했다.

화살은 숨결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지나갔고, 놀란 말 2마리가 앞다리를 높이 들고 콧김을 내뿜었다.

"피하지 마! 막아야 해! 말이 다치면 손 쓸 수가 없어."대검을 꺼내 든 오델리아가 낮고 빠르게 말했다.

그 말에 로하나스는 습관처럼 왼팔을 눈앞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더듬었다.

그러나 왼손 팔목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방패도, 오른손에 잡혀야 할 검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둘 다 풀어서 숨결의 허벅지에 고정해 놓은 것이 생각난 로하나스였다.

그러나 보조 무기로 사용 중인 단창은 등에 매어 놓은 상태였기에 재빠르게 손을 등 뒤로 돌려 단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방패를 꺼내기 위해 재빠르게 숨결 쪽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에도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지만 방어 자세를 취하고 당황한 로하나스를 보았기에 오델리아가 대검을 세워 화살을 막아 주고 있었다.

"진정해! 진정!"

앞다리를 펄쩍펄쩍 들어 대는 숨결에게서 방패를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로하나스는 그 일을 침착하고도 재빠르게 해냈다.

방패를 팔목에 단단히 고정한 로하나스가 날아오는 화살을 하나 쳐 낸 뒤 오델리아에게 물었다.

"몇 명 같습니까?"

"날아오는 화살로 봐서는 최소 셋, 많으면 다섯."

"기척이 굉장히 희미한데, 마법은 아닌 것 같군요."오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탐지 마법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사들은 일반인에 비해 기감이 예민한 편이다.

그런데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에서는 오러의 기척도, 마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인이 쏘는 화살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파괴력 있는 화살이었다.

말을 노리고 쏘아져 들어오는 화살을 다 막아 낼 수는 없기에 이미 몇 발의 화살은 말 2마리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 생채기를 만들어 냈다.

화살에 뭔가를 묻혀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로하나스의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 둘만으로 모든 화살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돌파?"

"말들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돌파한다 해도 곧 따라잡힐 겁니다."

"다 죽여 버렸으면 하는데."방어만 하고 있는 상황에 약이 잔뜩 오른 오델리아가 오러를 폭발적으로 끌어 올렸다.

검에 맺힌 오러가 아래로 뚝뚝 흐를 정도의 모습에 놀랐는지 잠시 화살이 그쳤다.

"어디서 나타난 적인지 몰라도 돌파하려면 말이 필요합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뒤쪽 멀지 않은 곳에 민가가 있습니다."오델리아가 잠깐 고개를 돌렸다.

로하나스와 오델리아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쪽으로 우리를 유도하려는 함정이라면?"

"그때 다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

"고개 숙여."

급작스러운 오델리아였지만 로하나스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오델리아가 대검을 들어 던지다시피 로하나스의 뒤에 꽂았다.

태애앵!

날아오던 화살이 대검에 가로막혀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던 방향이었다.

"놈들이 범위를 좁히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인원을 더 불러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불리해질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합니다."로하나스의 말에 오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로하나스가 재빨리 숨결의 고삐를 붙잡고 머리를 뒤로 돌려 올라탔다.

바로 출발하기 위해 로하나스가 옆을 돌아봤으나 질풍의 위에 오델리아는 없었다.

땅에 박혔던 대검을 뽑아 들고 서 있는 오델리아를 향해 로하나스가 외쳤다.

"오델리아!"

"그냥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대검을 양손으로 잡고 양 다리에 단단히 힘을 준 오델리아가 허리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잔뜩 오러를 밀어 넣은 대검을 그대로 앞을 향해 가로 방향으로 휘둘렀다.

공기가 터져 나가는 굉음과 함께 대검에 맺혀 있던 오러가 분리되어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몸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힘을 잃는 오러이기에 얼마 가지 못해 공기 중으로 다 흩어지고 말았지만, 대검을 휘둘러서 발생한 바람과 그로 인해 바닥에서 튀어 오른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돌멩이들이 꽈드득 소리를 내며 근처의 나무들로 파고들었다.

사람의 신음이 들려왔으나 안심할 새도 없이 화살이 더욱 거센 기세로 들이치기 시작했다.

"오델리아! 가야 합니다!"로하나스가 외쳤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검을 정리한 오델리아가 질풍의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이랴!"

오델리아가 크게 외치자 질풍과 숨결이 재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죽이지 않고 부상만 입혀도 좋다고 했는데, 5명이서 2명을 못 묶어 놓았단 말이냐? 심지어 하나가 죽었어!"

"반격이 그리 거셀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반격이 거셀 줄을 몰라? 그딴 얼빠진 소리나 하라고 너를 키워서 보낸 줄 알아! 뱀이라는 이름이 아깝다!"뱀이라 불린, 잔뜩 갈굼을 받고 있는 남자가 뭐라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바닥으로 떨궜다.

그의 눈에 자신에게 역정을 내고 있는 남자의 발이 들어왔다.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 한쪽에 7개씩, 양쪽에 14개의 발가락.

이민족들의 첩보, 암살 집단인 '둥지'를 이끄는 수장, '올빼미'의 발이었다.

시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겪은 후, 나라드마는 시안의 동향에 모든 정신을 기울였다.

따라서 시안이 배가 아닌 육로로 이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우 기뻐하며 올빼미를 비롯한 둥지 인원들을 검은 늑대 기사단의 예상 이동로로 미리 보내 전력을 소모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시안을 죽이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장기간 고속으로 이동해 체력이 떨어져 있을 다른 기사단원이라도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나라드마가 사힘 왕국을 무너트리고, 에베 공작까지 죽였으나 아직 제국 서부와 남부를 완전히 평정한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둥지의 인원들은 밤을 틈타 기척을 숨겨 가며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툴리앗과 제국의 남부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잠복했고, 서서히 낙오하는 검은 늑대 기사단원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낙오한 기사단원들도 지침에 따라 둘씩 짝을 지어 이동 중이었지만 장기간 달려오느라 체력이 떨어져 있었고, 제국 내부에서 이민족특수부대의 습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에 많은 수가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물론 기사단원들도 만만치는 않아서 발악에 가까운 저항을 했지만, 그래봐야 마구잡이로 뛰어들어 이민족에게 부상이나 입혔을 뿐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둥지의 구성원들은 기척을 없애기 위해 오러도, 마나도 쓰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길러 온 신체 능력만으로 임무를 해내야 했기에 하나하나가 귀중한 자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싹수가 있는 놈들을 골라 치열하게 훈련시키고 선별을 거듭해 만들어진 인원이 절대 죽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한 임무에서 죽었으니 올빼미가 길길이 날뛸 만도 했다.

"다른 쪽은 어떻게 되었다더냐?"

"20명 정도의 인원이 낙오한 것 같은데 저희에게서 도망친 인원이 2명이 있고, 다른 조에서 맡은 놈들 중 부상을 입은 채로 도주한 인원이 6명입니다."

"12명은 확실히 죽였다더냐?"

"죽은 것을 확인하고 시체까지 처리했다고 합니다."

"8명이 살아갔다라……."

"6명은 기사단의 진행 방향으로 도주했고, 저희가 맡은 둘은 진행 방향의 반대로 도주했습니다."

"6명이 본대에 닿을 거라고 보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라 장담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도주 중인 놈들이 제대로 된 길을 이용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올빼미가 몸을 돌렸다.

그는 움직이고 있는데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임무는 여기까지인가 보구나, 철수한다."

"고작 12명을 죽이려고 먼 길을 온 것이 아닙니다!"

"멍청한 소리 말아라. 검은 늑대 기사단은 기껏해야 100명이 조금 넘는다고 들었다. 10명 중 하나를 없앤 셈이니 할 만큼은 한 것이다."딱 잘라 말하는 올빼미 앞에 뱀은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올빼미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네놈의 조가 2명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12명이 아니라 14명이었겠지."그때 뱀의 옆에 있던 남자가 바락 끼어들었다.

얼굴과 몸에 상처가 여럿 있었으나 찬찬히 뜯어보면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남자였다.

"조장은 잘못이 없습니다!"

"조용!"

뱀이 급하게 고개를 돌려 사내의 입을 막으려 했으나 어느새 올빼미는 소리를 지른 사내의 앞에 와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박쥐로구나. 다시 한번 말해 보겠느냐?"올빼미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마치 진짜 올빼미처럼 돌아가는 그 표정을 박쥐는 본 적이 있었다.

둥지에 들어가서 10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훈련받던 친구를 죽이라고 할 때의 그 표정이었다.

"단장! 박쥐는 실전이 처음입니다! 누구나 실전을 처음 겪으면 쉽게 흥분 상태가 된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박쥐! 어서 사과드려!"조원을 보호하기 위해 뱀이 급하게 나섰지만 올빼미는 그 자세 그대로 손만 살짝 들어 뱀을 저지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그의 눈이 한층 더 번들거렸다.

"안 본 지가 조금 되었더니 기어오르는구나. 역시 네놈이 아니라 풍뎅이를 살렸어야 하는 모양이다."자신이 죽인 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박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느새 올빼미의 손이 박쥐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곧 박쥐의 목뼈는 으스러질 것이었다.

"복종할 줄 모르는 놈은 키운 적이 없다."박쥐는 벌벌 떨면서도 할 말은 하고 죽겠다는 생각에 덜컥 말을 내뱉었다.

"하, 한 놈은 등에 단창을 매고 있었고, 다, 다, 다른 한 놈은 대검을 들고 있었습니다! 신상 정보에 따르면 둘은 기사단의 부단장들입니다!"우뚝!

올빼미가 쥐를 채 갈 것처럼 예리하게 박쥐의 목을 조이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뱀에게 물었다.

"정말인가?"

"부단장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단창과 대검을 사용한 것은 확실합니다. 대검을 쓰는 기사가 여자이고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준 것으로 봐서는……. 거의 맞는다고 봅니다."박쥐의 목에 닿아 있던 올빼미의 손이 내려왔다.

박쥐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잔뜩 들려왔다.

뱀은 소리를 듣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올빼미의 발가락 14개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바스락거리는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올빼미가 이렇게 소리를 내는 경우는 딱 한 가지, 아주 흡족한 일이 있을 때뿐이었다.

마치 벌레가 빠르게 지나가며 만드는 것 같은 그 소리에 모두가 얼어붙고 말았다.

소리가 뚝 그치고, 올빼미의 입이 열렸다.

"부단장이라……. 그 정도면 대족장께서도 만족해하시겠지."

"기사들을 급습한 지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추적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올빼미가 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로 달이 휘영청하게 떠올라 있었다.

"밤에 우리를 추적할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다리에 힘이 풀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쥐를 내려다보며 올빼미가 말했다.

"30명 모두에게 집결하라고 전해라. 부단장들의 목을 대족장께 바친다."뱀이 고개를 까딱 숙였고, 주위 다른 조원들이 상황 전파를 위해 빠르게 사라졌다.

올빼미가 조용히 앉아 박쥐와 눈을 맞추었다.

"내가 네게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구나."표정 변화 하나 없는 올빼미의 얼굴에 박쥐는 그저 간신히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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