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28화 (128/180)

재회 (1)

올빼미를 노리고 찔러 들어간 로하나스의 단창이 허공을 갈랐다.

'오러도 안 쓰면서 이 정도의 움직임을?'

겉으로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로하나스는 뒷덜미가 섬찟했다.

난전 중인 전장에서 이런 자객이 자신을 노린다면 담담히 받아칠 수 있을 것인가.

로하나스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올빼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오러를 쓰지 않고 있었다.

비록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신체 구조와 그 근성이 근본부터 달랐지만, 어쨌든 기사 아닌 자들이 기사와 대적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다.

"열……하나!"

바닥에 쓰러진 박쥐의 얼굴을 짓뭉갠 오델리아가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듯 내뱉었다.

그걸 본 올빼미가 더욱 날카롭게 소리쳤다.

"더 몰아붙여라! 놈들도 한계다!"

이민족의 날카로운 말이기에 그걸 들은 오델리아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대체 이민족이 왜 여기 있는가는 둘째 치고, 이제는 감출 생각도 없나 본데?"

"우리를 살려 보낼 마음이 없다는 뜻이겠죠."

로하나스의 말에 오델리아가 대검을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화살에 맞았던 어깨 때문에 대검을 쥔 오델리아의 왼팔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로하나스는 눈치챘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오델리아 본인일 터.

오델리아의 팔을 타고 흐른 피가 손에 넘어 대검의 손잡이를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로하나스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오러를 끌어올렸다.

특유의 강건하고 단단한 오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델리아."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뱀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오델리아가 입을 달싹였다.

"말해."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야 합니다. 각하께서 구상하고 계신 싸움은 오러가 통용되지 않는 싸움입니다. 이놈들은 그 계획에 큰 위협입니다. 아마 수가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오러 없이 기사와 대등한 전력입니다. 한 놈이라도 많이 없애야 합니다."

칵 하고 핏물을 뱉은 오델리아가 농을 던졌다.

"자나 깨나 각하 생각이야?"

로하나스가 움찔하며 뭐라 말하려던 찰나, 오델리아가 대검을 고쳐 잡으면서 먼저 선수를 쳤다.

"그리고 말이야. 나는 데려갈 생각이 없어."

파짓!

오델리아의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대검 끝에 맺혀 있던 오러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허공에서 터졌다.

옆에 서 있던 자객 하나가 반응도 하지 못하고 폭발에 휘말려 사라졌다.

언젠가 알버트가 시안과 대련하며 보여 주었던 경지였다.

"일점……! 도달하신 겁니까?"

계급 매기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기사의 경지 역시 여러 가지로 구분했다.

비기너니, 익스퍼트니, 마스터니 하면서.

혹자는 마스터가 아니라 대(大)기사나 초극(超克)기사 등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누군가는 평생을 수련해도 오르지 못할 그 경지에 오른 기사들은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신체를 근원으로 하는 오러의 사용법이 극한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는 현상이자, 오러를 응축시켜 몸에서 떨어트리고 의지에 따라 폭발시키는 기술인, 일점(一點)이 그것이었다.

"도달인지 아닌지는 몰라.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됐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오델리아는 강력했다.

그저 베어 넘기다 보면 마지막에 서 있는 것은 항상 그녀였다.

감히 적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성장이 정체되어 있었다.

그녀에게는 위기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가 겪어 보지 못한 위기가 그녀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놈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민족들도 오러를 쓰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 사용법과 수련 방법이 부족별로 구전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체계적인 훈련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었고, 따라서 일점의 경지에 도달하는 자가 제국보다 현저히 적었다.

때문에 그나마 매 세대마다 몇 명씩은 일점에 도달하는 제국의 기사들과는 달리 이민족들에게 일점은 정말 전설상의 경지였다.

심지어는 그런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민족들도 심심치 않게 있을 정도였다.

전설의 강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 전설이 아군이 아니라 적군인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남는 건 나다."

오델리아의 나지막한 선언에 약이 오른 올빼미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죽여라! 사냥의 마무리를 지어라! 사냥감의 피를 마시고 돌아간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민족들을 보며 오델리아가 미소 지었다.

핏물이 얼룩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 그곳에 내리는 달빛.

소름이 오를 정도로 섬뜩하지만 동시에 심장 박동 수가 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로하나스는 그 순간 알았다.

자신은 평생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 로하나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델리아가 나지막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남는 건 나야. 언제나 그랬어."

***

"빨리!"

투브를 재촉했다.

-기다려 좀! 피 냄새가 너무 흐려! 마치 몇 주는 된 것 같아. 사라지기 직전이야.

"역시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네."

합류하지 못한 기사들은 싸움을 이어 가고 있거나 사망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길어 봐야 하루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났을 텐데, 시체는 고사하고 피 냄새도 흐리게 할 정도라면 보통 놈들이 아님이 분명했다.

주위에 탐지 마법을 아무리 흩뿌려도 잡히는 게 없어 투브의 후각에 의존해 알음알음 추적하고 있는 판이었다.

그리고 투브가 날 데려다 놓은 곳은 괴상하게 무너져 있는 폐가였다.

-가장 진한 피 냄새야.

무너진 집의 한편에 허리가 양단된 시체가 있었다.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고 아주 거칠었다.

마치 거인이 잡고 뜯은 모양새였다.

나는 그 상흔을 만든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델리아."

집 밖에는 잘려 나간 말의 꽁지와 여러 개의 말굽 자국이 있었다.

"말이 한 마리가 아니야."

-그냥 날뛴 거 아니야?

"말굽이 패인 정도가 달라. 깊게 패인 건 오델리아가 타고 다니는 말일 테고, 다른 하나는 로하나스의 말이라고 봐야겠지."

집 주변에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못 해도 수십이 둘을 덮친 것이 분명했다.

투브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저쪽으로."

말이 달려가서 풀이 꺾여 있는 방향이었다.

그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우리를 뒤덮고 지나갔다.

-피 냄새! 진해.

"가자. 최대한 빠르게."

얼마간의 이동 후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대검을 휘두르는 오델리아와 그런 오델리아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로하나스, 그 주위를 사냥하듯 둘러싸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일련의 사람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를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더니 재빠르게 포위를 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따라갈까?

"가, 죽이면 좋고 잡아 오면 더 좋아."

투브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투브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뒤쫓는 사이, 로하나스와 오델리아에게 다가갔다.

로하나스가 나를 불렀다.

"각하!"

로하나스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오시면 안 됩니다!"

콰앙!

오델리아의 대검이 방금 전까지 로하나스가 있던 자리를 찍었다.

다시 치켜드는 오델리아의 대검 끝에는 오러가 맺혀 있었다.

"일점?"

오러 구슬이 떨어져 나와 로하나스에게로 향했다.

오러를 전신에 밀어 넣고 마법으로 뒤쪽에 작게 폭발을 일으켰다.

몸이 앞으로 확 치고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로하나스에게 오러 구슬이 닿기 전, 내가 먼저 로하나스의 옆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마법으로 몇 겹의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오러 구슬이 폭발했지만 애초에 너무 불안정했기에 내가 만들어 낸 보호막을 뚫어 내진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전투 중에 각성하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피아 구분을 못 합니다."

오델리아는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로 이쪽을 향해 히죽거리고 있었다.

자아를 잃어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왼팔이 뒤틀려 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광기사였어도 미치는 데 정도가 있어야지……."

"광기사라면……?"

"아냐, 혼잣말이야. 오러 운용에서 뭔가 어긋난 모양인데."

기사들은 숨 쉬듯 하는 것이 오러의 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한순간에 오러가 흩어질 수도 있고, 무리한 몸으로 오러를 계속 운용하면 신체가 뒤틀리고 자아를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저런 상태가 계속되면 앞으로 오러 운용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에 최대한 빠르게 제압해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오델리아가 대검을 휘두르는 것에 맞춰서 마나 소드를 만들어 냈다.

대검과 마나 소드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작은 불꽃이 튀었다.

대치하는 척하면서 마나 소드를 없앴다.

대검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오델리아가 순간 미미하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델리아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 턱에 주먹 한 방을 먹였다.

"큽……!"

오델리아의 턱이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재빠르게 균형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오러가 실린 주먹에 턱을 정통으로 맞고도 안 쓰러진다고? 웬만한 사람이면 이미 턱이 박살 났어!'

괴물이라는 말은 이 여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최대한 빨리 쓰러트려야 나나 오델리아나 편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오델리아는 수십 대를 더 얻어맞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어 가면서도 마지막 순간 대검을 땅에 꽂고 선 채로 기절한 오델리아를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둘렀다.

종국에는 마법으로 질식이라도 시켜야 되나 고민할 정도였다.

"예전보다 더한 거 아니야?"

좀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로하나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대체 어떻게 된……."

로하나스는 나를 그대로 지나쳐 기절한 오델리아를 부축했다.

"얼씨구? 진짜였나 보네?"

***

사건이 수습된 후 로하나스에게 듣기로는 놈들은 이민족들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정체나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인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라드마라는 남자는 절대로 쉽지 않았다.

그는 그 자체로 상수를 넘어 변수가 되어 있었다.

오델리아와 로하나스는 무사히 복귀했고, 다른 기사들은 이후에 몇 명이 추가적으로 복귀했다.

복귀한 기사들의 증언은 모두 일치했다.

이민족의 급습을 받고 도주하던 중 갑자기 이민족들이 사라졌다는 것.

오델리아와 로하나스 쪽으로 집결을 하기 위해 빠진 것이 정황상 틀림없었다.

제법 많은 기사를 잃었지만 슬퍼할 틈은 없었다.

죽음을 애도하기에는 이미 우리는 너무 무뎌져 있었다.

전란의 시대, 누구나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강행군에 동료의 죽음은 생각보다 금세 사라졌다.

실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전란의 시대가 지나가면 웅크린 그 감정이 기어 나와 각자의 마음을 갉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강인한 기사단이지 감성적인 기사단이 아니었으니까.

그 덕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죽은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때문인지 테르다마스에 도달할 때쯤에는 제법 정상적인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아니, 글쎄 오델리아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더라니까요! 로하나스는 또 오델리아 챙기러 쏙 빠지고! 이거 기사단 기강이 이래서 되겠어요?"

칼은 넉살 좋게 웃고, 왼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오델리아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로하나스는 적극적으로 항변하려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래간만에 보는 4군단의 깃발을 단 부대들이 내 뒤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었다.

4군단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익숙한 귀족 가문들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들도 호기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어느새 세력을 확장해 테르다마스까지 밀고 내려온 이민족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벌써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내 혼잣말에 칼이 답했다.

"이민족 족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치 보이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칼에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추측이긴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놈은 저기 있습니다. 그리고 놈도 알겠죠. 제가 여기 있는 걸."

"그놈이 단원들을 죽였습니다."

"무리한 일정을 잡은 제가 그들을 죽인 겁니다."

칼이 고개를 저었다.

"각하께서는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저놈이 없었다면 단원들이 죽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짙은 적의(敵意)가 느껴지는 칼의 말에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저 로하나스를 향해 한마디의 명령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명령, 나밖에 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전군에 전투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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