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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30화 (130/180)

천상으로 향하는 별, 지상으로 떨어지는 별 (1)

지휘 막사로 돌아가니 통신 마법사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전해지는 통신을 읊고 있었다.

"7군단 71사단 2연대 적병 관측!"

"스토나 백작 측에서 기사단 출격 요청!"

"13군단 12사단 27연대, 이민족 부대와 충돌!"

"8 중계소와의 통신 불량!"

"테르다마스 북쪽 언덕에서 다수의 주술사 목격!"

"7군단 기병여단 3대대 난전 중! 지원 요청!"

들이치는 통신들을 수용하느라 마법사들 주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얼굴에서 삽시간에 비지땀이 쏟아졌다.

참모들은 마법사들의 말에 따라 테르다마스와 주변 지형이 그려진 거대한 지도에 놓인 말들을 재배치하기 바빴다.

그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각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루만 먼저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지금까지 '먼저 안다.'라는 회귀자의 이점을 제법 잘 이용해 왔던 나이기에 이번 일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재빨리 내 자리를 찾아 지휘봉을 들었다.

"검은 늑대 기사단은 기병여단 측에서 인원을 지원받아 중계소를 돌며 안전을 확보해. 통신이 끊기면 힘들어진다. 놈들도 그걸 알고 집요하게 노릴 거야."

옆에 있던 마법사가 바로 통신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워낙 대규모로 부대가 모여 있는 터라 기사단 하나에 통신 마법사 하나를 붙이기가 빠듯한 수준이었지만, 내 지시에 따라 별동대 역할을 할 검은 늑대 기사단에는 한 명이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출항한 배가 강변에서 포격을 하는 데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1시간 안쪽으로……."

"늦어! 마법사 부대를 북쪽 언덕으로 이동시켜 그곳을 확보해. 보병 부대 둘 정도를 딸려 보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하라고 전해."

나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야 했다.

나라드마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이 전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기병여단 3대대랑 연락돼?"

"중계소에 의하면 통신이 띄엄띄엄 하답니다! 격전 중인 것 같습니다!"

"좋아, 웬만큼 버티고 있나 보네. 지원 병력을 그쪽으로 보내."

"얼마나 보내면 되겠습니까?"

"좌익에 있는 부대 중, 교전 중이 아닌 부대는 그쪽으로 다 보내!"

내 말을 들은 참모들이 뜨악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하다가는 좌측 방어선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놈들은 아직 이 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멍청한 놈들아! 이건 방어전이 아니야!"

우리의 집결지가 테르다마스였을 뿐, 우리의 목적은 나라드마를 죽이고 이민족을 제국의 경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었다.

"우리도 공세! 적도 공세다! 이민족은 첫 싸움과 선봉에 큰 의미 부여를 한단 말이다! 그걸 꺾는 거다,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아! 다른 건 다 눈속임이야! 놈들은 그쪽으로 몰려온다! 당장 병력 보내!"

***

"대족장."

각기 다른 많은 부족의 샤먼들의 지지를 받아 대샤먼의 자리에 오른 투클랍의 말에 나라드마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것이오?"

투클랍의 말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에베 공작령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드마는 자신을 죽이려고 대군을 일으킨 에베 공작을 죽였고, 그 기세를 몰아 사힘 왕국 내부로 진격해 사힘 왕국마저 무너트리고 본격적으로 이민족들을 제국 내부로 끌어들였다.

평소의 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내전과 내분으로 쪼개져 있는 제국은 몰려들어 오는 이민족을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그 틈을 타서 나라드마는 사힘 왕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에베 공작령 일부와 심지어 사힘 왕국과 닿아 있던 타우 황제의 세력권에도 손을 뻗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여파로 타우 황제와 수도 황제가 휴전을 선언하고 연합 전선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시안이 있는 테르다마스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동시적으로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게다가 몰려든 많은 이민족 간에도 전력 배치와 차지한 영토에 대한 불협화음이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부족 단위로 살아온 자들이 가진 한계였다.

이런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대족장인 나라드마밖에 없었다.

그런 나라드마가 이렇게 최전선에 나와 있어도 괜찮겠냐고 묻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의 의도도 함께 물어보려는 것이 투클랍의 의도였다.

나라드마가 딱딱하게 답했다.

"북부 전선에는 브릿식을 보냈지 않았나."

"그는 자신의 부족을 이끌기에도 벅차오! 그런 어린 녀석에게 무려 스무 부족을 딸려서 올려 보내다니! 나는 대족장의 판단을 이해할 수가 없소!"

나라드마의 외눈이 차갑게 빛났다.

"브릿식은 당신보다 용맹하다. 또한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지, 그렇지 않나? 늙은이?"

"내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소! 경험 많은 자가 필요하다는……!"

투클랍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나라드마가 지겹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어깨 언저리까지 자란 그의 머리와 귀걸이가 찰랑였다.

"경험이라……. 우리가 이곳에 와서 마주한 것들 중 경험이 요긴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 새로운 땅, 새로운 물, 새로운 공기를 마주하면서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냐는 말이다."

투클랍이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나라드마가 더 강렬하게 몰아붙였다.

"브릿식이 패배할 수도 있지! 심지어 죽을 수도 있고!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경험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하우칼은 내 형제였고 브릿식은 그의 동생이니 브릿식 역시 나의 형제다. 나는 내 형제의 잠재력을 믿는다. 그리고."

나라드마가 말을 끊었다.

투클랍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과거나 경험을 운운하면서 안전한 곳에 붙어 있으려는 늙은이보다는, 미숙하고 서툴더라도 용기 있게 험지에 뛰어드는 젊은이에게 마음이 가는군."

대놓고 자신을 모욕하는 나라드마의 말에 지팡이를 쥔 투클랍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실례했소."

그러나 나라드마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국의 마법사들에 비해 우리 샤먼들의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던데, 말을 꺼내려 거든 실력을 먼저 보여 줬으면 하는군. 특히 대샤먼이 된 그대부터."

수치심에 고개를 떨어트린 투클랍이 물러갔다.

발 빠른 이민족 하나가 뛰어와 전장의 상황을 나라드마에게 알렸다.

"찢어진 번개 부족이 돌입한 곳을 중심으로 공격을 지속하고 있습니다만, 적군도 계속 그곳으로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나라드마의 눈이 커졌다.

자신들이야 선봉에 의미를 두고, 분쇄된 적의 틈을 통해 꾸역꾸역 밀려들어 가는 방법을 자주 쓴다지만, 나라드마가 겪어 본 제국의 인물들은 그런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다.

해당 구역엔 지원을 적당히 하고 다른 부대로 우회해서 뒤를 치거나 아니면, 해당 구역 자체를 포기하거나 뒤로 물리는 방어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나라드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잔혹하고 차가운 미소였다.

"우리를 잘 아는 놈이 있나 보구나."

그 인물은 지금 자신에게 정면으로 힘 싸움을 걸어오고 있었다.

잃어버린 눈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귀찮고 짜증 나는 통증이었지만 지금 나라드마를 자극하는 통증은 그의 다짐을 채찍질하고 정신을 깨우는 자극제와 다를 게 없었다.

이 통증을 선사한 놈이 자신과 맞서고 있다는 생각에 나라드마는 환희로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투클랍이 했던 물음이 떠올랐다.

여기 있어도 되냐는 물음이었다.

'왜 여기 있냐고? 죽여야 할 놈이 여기에 있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나라드마가 전령에게 물었다.

"그곳에 검은 늑대는 있다고 하더냐?"

"그런 보고는 없었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끌어내 주겠다는 생각을 한 나라드마가 시종을 불러 말했다.

"말을 준비해라. 내가 직접 간다."

무구를 장비하는 동안 나라드마는 검은 늑대를 탄 시안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동안 상상 속에서 수도 없이 그리고 죽여 왔던 모습이었다.

하우칼의 마지막 모습처럼 시안의 머리에 칼을 박고, 세르페의 최후처럼 투브의 배를 갈라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라드마는 안장에 올랐다.

***

전장은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통신 마법사들도 자기들 간에 혼선이 있는 건지 아니면, 진작 죽어 나자빠진 것인지 정기 통신을 보내오지 않는 자들이 점점 늘어 갔다.

처음 대규모 전투가 발발한 곳의 지도 위에는 부대의 상징 깃발들이 가득해 더 이상 말을 놓을 자리도 없었다.

아마 이민족들도 계속해서 인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곳의 실상은 아비규환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것일 터였다.

"이만하면 반오러 물질을 투입하시는 것이……."

로하나스가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었다.

"안 돼, 적의 전력을 파악해야 해."

툴리앗을 돌파할 때 반오러 물질을 적극적으로 쓴 이유는 단기간에 승부를 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양측 모두 대규모 인원이 모인 만큼 며칠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또한 난전에서 가면을 완벽히 회수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오러 사용이 불가능해지면 가면을 받지 못한 아군들은 신체의 완력만으로 이민족들과 맞서야 하는데, 전사를 숭상하는 문화를 가진 이민족들에게 신체적 우위를 점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반오러 물질은 정말 중요한 전투에 신중하게 투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긴과 랑운드가 만들어 낸 새로운 갑옷의 시제품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 갑옷이 도착하고, 실용성이 확인된 뒤에 반오러 물질을 전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는데, 며칠 차이로 계획이 어긋난 셈이었다.

새로운 소식이 통신 마법을 통해 전해졌다.

"이민족 하나가 아군 진형을 붕괴 중!"

"하나?"

직감이 왔다.

통신 마법사의 말이 이어졌다.

"외눈에 곡도를 귀신같이 쓴다고 함. 팔 한쪽이 푸르게 물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 이민족 중 대족장으로 추정."

"팔이 푸르게 물들어? 소문이 정말이었나."

나라드마의 한쪽 팔이 푸르게 변했다는 것은 이미 에베군 측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확실한 나라드마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놈과 칼을 맞대고 싶어 몸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내 역할은 최선봉에서 적을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군영 깊숙한 곳에서 전체적인 흐름과 기세를 조율해 전장에 승리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명령했다.

"동요하지 말고 최대한 재집결해서 진형을 유지한 채로 공세를 이어 가라고 전해. 첫 전투에서 기세를 잡는다."

명령은 바로 전달되었고, 잘 수행하고 있는지 더 이상의 큰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고 지지부진한 힘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때 막사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모양이었다.

"가 봐."

로하나스가 달려 나갔고, 빠르게 돌아왔다.

"이민족의 우두머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졌나 봅니다."

"근데? 그거랑 시끄러운 거랑 무슨 상관이야?"

"자기 부대, 아니 자기만이라도 그쪽에 투입해 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좌익 근처에 있는 부대들은 이미 다 투입되었을 텐데? 나머지는 자리를 지키라고 했잖아. 어디 소속 누군데? 막사까지 올라올 정도면 귀족 아니야?"

"그렇습니다."

"어떤 미친 귀족 놈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목이 잘리고 싶지 않거든 돌아가라고 해!"

로하나스가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머리를 기르고 그 위에 다시 두건으로 이마와 머리를 가린 남자, 에이젤 서비어가 내 앞에 엎어지듯 무릎 꿇고 말했다.

"각하! 나라드마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저를 그쪽으로 보내 주십시오!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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