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으로 향하는 별, 지상으로 떨어지는 별 (4)
"빨리! 더 빨리!"
내가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검은 늑대 기사단이 전력을 다해 내 뒤쪽으로 따라 붙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기사단의 말들은 투브의 발을 쫓을 만큼 빠르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먼저 가고 싶었으나 이곳에 와 본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함부로 멀어질 수가 없었다.
-소리가 들리네.
'무슨 소리?'
-사람들의 함성, 병기들이 서로를 향하면서 내는 파찰음, 마지막을 내뱉는 숨소리.
고개를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곳에 아버지가 계셨다.
나라드마도 분명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있었다.
나는 저 전장에 한시라도 빨리 도달해야 했다.
그리고 언덕에 올랐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이민족들의 후위였다.
마치 해변에 만들어진 모래성을 향하는 파도처럼, 이민족들은 한곳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이민족들이 향하는 곳에 몬트라우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이 있었다.
양측의 병력이 첨예하게 얽히는 가운데, 나는 침착하게 나라드마와 아버지를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그사이 내 옆에 칼이 도달했다.
칼이 타고 있는 말은 마치 나를 원망하듯 거친 숨을 푸르르 내뱉었다.
"바로 돌격 대형을 짜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멀어지는 칼을 향해 한마디를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준비하고, 가면 확실히 착용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눈을 감았다.
손을 앞으로 내밀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온통 검은 것으로 가득 차 있던 눈앞에 녹색과 푸른색이 조화된 물결이 그린 그림들이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느낌이 전신으로 전해졌다.
순식간에 땀이 솟아나 얼굴을 타고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때, 앞으로 뻗은 내 손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곳에서 아주 느릿느릿하게 바람이 불어 나오고 있었다.
땀을 식혀 줄 정도로 상쾌한 바람이 내 주위에서 전장으로 세를 넓히고 있었다.
-미친놈! 바다를 얼리던 때보다 더하잖아? 이러다가 정말 한순간에 꽥 하고 죽을 수도 있다니까?
놀란 투브가 타박했지만 이미 마법에 기운을 다 쏟은 나는 대답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투브의 몸에 묶여 있는 많은 주머니들을 하나하나 풀어 공중으로 던졌다.
이미 가면 착용을 마친 기사단원들도 품에 가지고 오거나 말에 결박해 놓았던 반오러 물질을 풀기 시작했다.
반오러 물질이 반짝이며 전장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보조나 특수 용기에 보관해서 운반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오래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단번에 결판을 봐야 했다.
몸이 가벼워진 말들이 발굽을 땅에 갈았다.
이미 기사단원들과 한 몸과도 같은 말들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빠르게 기운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아직 말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모든 기사들의 눈이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익!
내 손이 떨어지며 전장을 가리켰다.
검은 늑대 기사단의 창, 오델리아를 선두로 기사단원들이 이민족의 후미를 분쇄하기 시작했다.
***
에베군을 실어 나른 직후, 나와 검은 늑대 기사단은 아군도 모르게 다른 배에 탑승해서 이동했다.
첫 공세 이후 나라드마는 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아버지를 공격하러 갔음을 알았다.
나를 끌어내기 위해 본인이 직접 전장의 최전선에 섰던 놈이다.
아버지를 죽이거나 생포하면 내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 뻔했다.
사령관인 내가 움직인다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름도 없는 세파라트강의 한 지류에 내려 이민족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이동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제뉴인군과 에베군의 연합군이 나라드마와 맞서는 그곳, 강에서 조금 내륙으로 들어온 그곳의 지형 때문이었다.
언덕이라 하기에도, 산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지형을 가진 그곳은 밀고 들어오는 공격 측이 주의하지 않으면 어느새 방어 측에게 둘러싸여 나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천혜의 진법이라고 할 만했다.
지금은 이름 없는 곳이지만, 과거의 삶에서는 거대한 승전 기념비가 있던 곳이었다.
내가 반란군과의 최후의 전투를 펼쳐 제국에 안정을 가져온 것을 기념하는 승전 기념비가.
둘째는 아버지를 비롯한 제뉴인군, 오그마와 에이젤을 비롯한 에베군이 나라드마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라드마는 이미 서비어의 이름을 가진 자를 둘이나 죽였다.
영수나 그가 가진 독특한 능력을 제외해도 이미 전투 능력에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나라드마에게 승리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를 일야관에서 죽이지 못한 건 내 커다란 과오였으니 그것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나여야 했다.
***
"가자."
-아직 얼굴이 허옇게 떴구먼, 가긴 어딜 가. 조금 더 기다려.
나는 아직 처음의 그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장 일대를 뒤덮을 정도의 바람을 만들어 낸 여파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감각 전체가 이질적으로 진동했다.
그래도 차츰 떨리던 시선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가면을 쓰고 이민족을 쓸어버리고 있는 검은 늑대 기사단이 보였다.
일당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활약이었다.
"이미 노출됐어. 여기 있어 봐야 목표물만 될 뿐이야. 기사단 진형 안으로 합류해야 해, 마법사를 데려오지 않아서 지금 기사단은 적의 마법이나 사술에 취약해……. 가자, 어서!"
내가 자신의 등으로 기어오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투브가 반오러 물질을 운반하기 위해 녀석의 몸에 매어 놓았던 가죽 줄들을 고개를 돌려 끊었다.
그리고 몸을 낮춰 내가 오르기 쉽게 했다.
-말은 더럽게도 안 들어 처먹어요. 떨어져도 모른다?
"말시키지 마. 회복 늦는다."
내가 오르기 무섭게 투브는 땅을 밀어냈고, 머지않아 나는 기사단 진형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샤먼들의 주술이 기사단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마법으로 샤먼들만 골라 죽이고 싶었지만, 아직 여파가 남아 있어 그 정도로 정교한 마법을 사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오러 소드를 창 형태로 만들어 투창으로 샤먼들을 죽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몇 번 정도를 그렇게 하니 점점 호흡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선두에서 칼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델리아! 너무 나갔다! 합류해! 전원 진형을 유지한 채로 이탈한다!"
기병의 돌파력과 파괴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일단 밖으로 빠져나간 뒤에 다시 돌파를 시도할 모양이었다.
달려드는 이민족 몇의 뼈와 살을 분리한 칼이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목적이 나라드마에게 있고, 투브가 있으니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파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저는 이탈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몇 번 더 돌파를 시도했는데도 아군 진영까지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단원들을 이끌고 빠지세요."
고개를 끄덕인 칼이 기사들을 수습하는 동안 투브에게 물었다.
'위치, 알겠어?'
-찾은 것 같아. 그 자식한테는 워낙 독특한 냄새가 나니까.
투브가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이민족의 머리 위를 펄쩍펄쩍 넘나들기 시작했다.
이민족들은 무기를 하늘로 쳐들어 투브를 막으려고 했지만, 그런 놈들은 내가 다른 이민족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아군과 적군의 전투 일선에 도달했을 때, 오그마와 에이젤이 나라드마에게 달려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서비어의 핏줄인 에베 공작의 아들이기에 눈이 하얗게 변한 채로 매섭게 나라드마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나라드마는 마치 파리를 내쫓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둘을 따돌리고 아군 진형을 파괴하고 있었다.
에이젤이 그를 향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으나 나라드마는 푸르게 변한 팔을 들어 막아 냈다.
나라드마의 팔과 에이젤의 검 사이에서 엄청난 불꽃이 튀었다.
아예 팔 자체가 금속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나라드마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파괴적이었다.
그의 검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머리통이 몇 개씩 뒹굴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베어 대는 그의 곡도 때문에 나라드마의 주변으로는 에이젤과 오그마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에 반해 에이젤은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헛움직임이 많았다.
나라드마가 에이젤을 향해 곡도를 휘둘렀지만, 재빠르게 오그마가 막아 냈다.
나라드마의 일격을 막아 낸 것만으로 오그마는 땅을 굴러야 했다.
그 탓에 오그마가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다.
검은 늑대 기사단의 등장을 신호로 해서 때가 되면 착용하라고 미리 에베군 측에 실어 보낸 것이었다.
이미 제뉴인과 에베 측 기사들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순간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라드마는 아무 장비를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오그마와 에이젤을 압도해? 나라드마가 쓰는 건 오러가 아닌 건가?'
오그마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전장에 반오러 물질이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가면이 벗겨진 오그마의 눈에 빠르게 검은 눈동자가 생겼다.
당황한 오그마를 향해 나라드마가 달려들고 있었다.
몸을 날렸다.
키기기기기긱!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마나 소드를 만들어 낸 내 앞에 나라드마의 곡도가 있었다.
잠깐 놀란 표정이었던 나라드마의 얼굴에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군."
"네가 날 끌어낸 게 아니라 내가 널 이곳으로 불러낸 거다, 나라드마."
"결과야 어찌 되었든."
나라드마가 잔인하고 섬뜩한 미소를 짓더니 곡도를 내리쳤다.
콰앙! 콰앙! 콰앙!
무기가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소리가 우리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나라드마가 펄쩍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나라드마가 멀어지기 무섭게 투브의 거대한 송곳니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투브가 공격하는 것을 보고 그 짧은 순간에 나라드마는 몸을 피한 것이었다.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오그마, 뒤로 빠져."
"싸울 수 있습니다! 놈은 제가 죽입니다!"
격앙된 채로 일어나는 오그마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에이젤, 뒤로 데려가. 지금 네 형은 오러를 쓰지 못해."
머뭇거리는 에이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마지막 남은 네 형이다, 네가 지켜."
그 말에 에이젤이 오그마를 붙잡고 아군 진영 쪽으로 사라졌다.
놓으라며 발버둥치는 오그마의 고함은 전장의 소음에 가려 삽시간에 흩어졌다.
그 잠깐 사이에도 나라드마는 투브와 싸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투브가 유리했으나 이민족 전사들이 자신들의 대족장을 돕기 위해 죽음을 불사해 가며 투브에게 달라붙고 있어서 쉬워 보이는 싸움은 아니었다.
결국 인해전술에 밀린 투브가 숨을 돌리기 위해 내 곁으로 몸을 피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라드마가 서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여동생이 있다지?"
나는 입을 열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아쉬워, 네 여동생의 머리를 불태우고 싶었는데. 네가 하우칼에게 했던 것처럼."
캐슬린을 모욕하는 말에 발끈해서 그에게 달려들려는데, 나라드마의 말이 한층 더 빨랐다.
"아니지, 순서의 차이일 뿐이야. 네 아버지가 먼저냐, 여동생이 먼저냐 하는 그 정도의 차이."
나라드마가 다시 아군 진형 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몬트라우 가문의 문장이 걸려 있는 쪽이었다.
그는 내가 그의 형제에게 했던 것처럼 내 피붙이를 죽여 내게 고통을 줄 생각이었다.
이민족 몇 명이 자신들의 대족장을 따라 번개처럼 아군 진형을 파고들었다.
오러를 쓸 수 없음에도 신출귀몰한 움직임이었다.
'둥지! 그 살수 놈들이다!'
동시에 이민족들이 다시 한번 거세게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적진으로 몸을 던진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따르기라도 할 건지, 종래의 기세와는 차원이 달랐다.
개의 모습으로 변한 투브와 내가 미친 듯이 나라드마를 쫓았다.
제뉴인군과 송곳니 기사단도 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응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나라드마가 아군 진형을 파고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마침내 나라드마는 제뉴인군 지휘 막사에 도달하는데 성공했고, 뒤따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나라드마의 곡도에 배와 등을 관통당한 아버지의 옆모습이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