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42화 (142/180)

두 개의 태양은 없다 (1)

황궁의 가장 내밀한 곳.

그곳은 몇 겹이나 되는 기관 장치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백에 이르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굳이 내밀한 곳이 아니더라도 황제가 기거하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경계가 엄중해지는 것은 당연한 처사기도 했다.

그러나 투입된 많은 경비 인원 중 기감이 좋은 자들은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끼고 있었다.

뒷덜미에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가는 것만 같았다.

"곤, 그만하시게. 우리를 알아챌 수도 있지 않은가."

푸근해 보이는 남자가 연신 '후후!' 하며 바람을 불어 대고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이 부는 바람에 사람들이 몸서리치며 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남자의 말에 소년이 뒤를 돌아보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를 알아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승려 아저씨도 아시죠?"

승려라고 불리는 남자의 본명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소년의 본명도 알 수 없다.

그저 치도곤이라는 암호명만이 소년의 지칭이었다.

승려, 치도곤, 이 둘은 한 명이 붉은 방패 기사단 열을 능히 대적한다는 황제의 친위대였다.

"중요한 임무에 이리도 경망해서야……."

"우리가 움직이는데 안 중요한 임무가 있었나요?"

이미 익숙한 문답인 듯, 승려는 치도곤을 나무라는 것을 그쳤다.

"소승이 아니라 구름이 이곳에 있었어야 했소,"

또 다른 친위대인 구름의 이야기가 나오자 치도곤이 움찔했다.

말 수가 적고 늘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구름은 능글맞고 장난기 많은 치도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형 얘기는 왜 꺼내요! 얼굴이라도 생각하면 넘어가던 밥이 다시 올라오겠구먼!"

승려가 씩 웃으며 턱을 까딱여 치도곤의 뒤쪽을 가리켰다.

치도곤이 사색이 되어 현실을 부정했다.

"에이~ 아니죠?"

"직접 보면 될 거 아니겠소?"

치도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빠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황궁의 높은 담만이 있을 뿐이었다.

"뭐야! 장난을 쳐도……!"

다시 고개를 돌리던 치도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구름과 마주했던 것이다.

'헉!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황제의 친위대라 묶여 불리지만 친위대 사이에는 분명 실력의 고하가 있었다.

친위대가 총 몇 명인지는 그들도 알지 못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구름과 대지는 다른 친위대들의 실력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사태에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치도곤을 뒤로하고 구름이 승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손님이 도착했다, 가자."

구름의 말에 승려가 예의 그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탕아가 돌아온 것입니까?"

구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알려고 하지 말라."

구름의 꾸짖음에 승려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미 승려의 눈에는 황궁의 내밀한 곳으로 향하는 4명의 사람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깊게 눌러쓴 모자와 망토에도 불구하고 승려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멀리 있는 마나와 동조해 시야를 공유하는 승려만의 마법이었다.

황궁 전체를 덮지는 못해도, 적어도 황제가 기거하는 곳에서만큼은 승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승려의 시선이 그들이 소중하게 끌어안은 나무 함으로 향했다.

그 안을 들여다 본 승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것은……."

승려가 자신의 능력을 썼음을 알게 된 구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함구하라, 폐하께서 저들의 알현을 받아들이셨으나 그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할 말만을 마치고 구름은 승려의 시선이 닿았던 그 인물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아마 황제의 친위대가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었다.

구름의 뒤를 따르면서 치도곤이 승려에게 물었다.

"누군데요? 뭔데요?"

승려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구름의 걱정과는 다르게 의문의 인물들은 목적했던 건물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극비리에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성공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가장 앞에 서 있던 인물이 엄히 꾸짖었다.

"끝난 것이 아니다."

한숨을 쉬었던 남자가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이제 시작이니 마음 단단히 먹거라."

인물들은 아무도 없는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이 가는 길마다 알아서 문이 열렸고, 어둠을 물리치는 불빛이 떠다녔다.

얼마쯤 갔을까 그들은 익숙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이군요."

황실 시종장, 얄츠 이나타 백작이었다.

선두에 있던 인물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시종장의 말이 더 빨랐다.

"그대는 시체가 아니면 다시 이곳에 들어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몰트 궁정백?"

침묵만이 그들을 에워쌌다.

시종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농담이었는데 통하지 않았나 보군요. 얼굴을 드러내시지요. 폐하께 그 꼴로 나설 생각은 아니겠지요?"

시종장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이윽고 모자를 뒤로 젖혔다.

그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몰트 비텔스바흐 궁정백, 그의 아들인 레이바 비텔스바흐, 아크라파소 후작의 장남인 지크프리드 발터, 마지막으로 노체 공작의 차남인 이르한 노체였다.

그들의 얼굴을 훑은 시종장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궁정백이 조심스럽게 품고 있는 나무 상자로 가서 닿았다.

복잡한 감정과 엉켜드는 생각이 시종장의 심경을 복잡하게 하려 했으나 그는 자신의 심기를 억눌렀다.

"가시죠. 폐하께서 오실 겁니다."

그들은 곧 한적하고 고즈넉한 정원에 있는 건물로 안내받았다.

혹시나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하고 레이바가 생각했다.

"마음을 편히 먹거라.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아비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몰트 궁정백의 말을 듣고서야 레이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먹에 흥건한 땀이 느껴졌다.

드르륵.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넷은 마치 누가 짓누르기라도 한 듯 바닥에 부복했다.

"허업……."

등에 엄청난 무게의 쇳덩이를 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목과 허리가 끊어지고, 허벅지의 근육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궁정백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정신을 잃을 수는 없었다.

저벅저벅.

엎드려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한 번 들릴 때마다 자신들을 짓누르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정원의 연못을 향해 놓인 탁상에 가서야 멈추었다.

그러나 압력은 여전히 그들을 부술 듯 짓누르고 있었다.

"크으……."

결국 이르한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짐은 그대에게 발언을 허(許)한 적이 없다."

이를 꽉 물고 있느라 잇몸이 터져 입술 사이로 핏물이 줄줄 흐르던 궁정백이 짜내듯 말했다.

"신(臣) 몰트, 폐, 폐하께 아뢸 말이 있어 자리를 처, 청하였나이다."

"신이라? 그대는 짐이 아닌 다른 왕을 섬기지 않았던가?"

"부, 부디 광대한 아량으로 눈멀고 어, 어리석었던 신을 용서하소서……."

4명의 정신이 아득해져 갈 때쯤,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간신히 숨을 고르는 소리, 땀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톡톡 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황제의 시선이 궁정백 앞에 놓여 있는 상자에 가서 닿았다.

"가져오라."

모든 상황을 방 한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종장이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상자를 황제의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황제는 자신의 형과 마주할 수 있었다.

비록 머리뿐이었지만.

황제의 앞에 부복해 있는 4명은 돌아가는 판세가 불리해지자 타우 황제를 암살하고 그의 머리를 수도 황제에게 바쳤다.

그들은 이로써 자신들의 충정이 증명되기를 바랐다.

사실 충정은 말놀음일 뿐.

예전부터 황실의 어두운 일을 맡아 온 비텔스바흐 가문의 몰트와 레이바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황실의 비밀이 얼마인데 설마 황제가 자신들을 내치겠냐는,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여성 위주의 가문인 발터 가문의 장자인 지크프리트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이 가문의 중심, 나아가 어머니의 작위인 아크라파소 후작 작위를 이어받고 싶어 했다.

내전 초기 시안에게 박살이 난, 발시안을 거점으로 했던 3함대의 제독인 이르한 노체는 연이은 패전으로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아버지인 노체 공작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시안과 직접 마주했던 이르한은 계속해서 시안을 과소평가하며 타우 황제가 승리할 것이라 말하는 아버지가 답답하고 시야가 좁다고 생각했다.

이르한은 시안을 이길 수 없다면 시안이 있는 편에 붙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이 결정이 가문을 존속하게 할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공을 인정받아 형인 운트 노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공작 위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행복한 상상도 함께였다.

"이상하구나."

황제의 손이 1황자의 얼굴에 가서 닿았다.

마법 처리를 해 썩지 않았지만 황제가 바라보고 있는 형의 얼굴은 예전 같지 않았다.

윤기 오르고 생기 가득했던 뺨은 차갑고 푸르렀으며, 찬란하던 회색빛 머리카락은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푸석거렸다.

의심할 바 없는 죽음이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황제의 물음에 궁정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레이바는 자신이 먼저 입을 열어 '며칠 간 연회를 계속해 술을 계속 먹인 뒤, 엄선된 기사와 자객 들을 보내 죽였다.'라고 말할 뻔했다.

타우 황제는 그렇게 취한 와중에도 오러를 끌어올려 취기를 날려 보내고, 20명이 넘는 자객의 목숨을 저승길 동무로 삼았다.

레이바는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무신의 후예라는 서비어의 이름이 허명이 아니었음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 이후 칙서를 위조해 노체 공작을 섭정으로 삼고, 요양을 핑계로 타우와 최대한 먼 곳으로 황제가 떠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노체 공작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섭정 자리를 기쁘게 받았다.

공작도 타우 황제의 폭급한 성질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던 참이라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궁정백이 황제의 말에 답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하는 말에 레이바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흥이 올라 말을 탔다가 낙마하셔서 계속 침상에 누워 계셨어야만 했습니다. 그 틈을 타 이민족들의 사술사를 하나 불러 그들의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궁정백은 거짓말을 했다.

그는 황제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황제는 자신과 같은 서비어의 핏줄인 형을 '어떻게' 죽였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형의 죽음에는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안위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궁정백은 최대한 애매모호하고, 황제가 확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답을 했다.

"사술사라, 그자는 어디 있느냐?"

"말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죽였습니다."

"그것을 짐이 믿으라는 것이냐!"

궁정백이 더욱 납작하게 엎드렸다.

"신이 폐하를 속여서 무엇을 얻는단 말입니까. 잠시간의 과오를 씻을 길이 없는 것은 잘 알고 있사오나, 그동안의 저, 아니 모든 비텔스바흐의 충정을 보아 용서를 바라옵니다. 또한 이것으로 나뉘어 있던 제국의 다른 부분이 다시 폐하의 아래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황제가 살짝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궁정백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방법이라면 시안의 명성이 더 퍼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래 부복해 있는 4명에게로 황제의 시선이 옮겨 갔다.

황제 역시 몰트 비텔스바흐를 잘 알고 있다.

황실을 위해 순종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만 악착같이 챙기는 놈이다.

놈은 귀족이 아니라 상인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원래 짐의 영역이니 나뉘어 있다는 말은 그르다."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그대들의 용단으로 제국에 평화가 오고, 태평한 치세가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엎드려 있던 사람들은 황제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순간, 황제와 배반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배반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황제를 이용하고 싶었고, 황제는 시안을 견제하고 다시 내전 이전의 절대권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반자들을 이용하고 싶었다.

"이만 물러가라. 상황을 정리한 후, 논공행상을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나가 버렸다.

남은 자들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자신들의 판단과 도박이 맞아 떨어진 것에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그들은 닳고 닳은 귀족인지라 그 기쁨을 표정 너머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저 입술을 꾹 물거나, 주먹을 힘껏 쥐는 것에 그쳤다.

황궁을 빠져나오는 길, 궁정백이 아들을 향해 말했다.

"레이바."

"예."

"1 황자에게 붙은 이 아비의 판단이 실수라고 생각하느냐."

레이바는 잠깐 멈칫했으나 바로 말을 꺼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일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구나……."

왠지 모르게 위태해 보이는 궁정백의 어깨를 보며 레이바는 다짐했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잠시 여행을 즐기다 돌아온 것뿐이다.'

잠시 즐기다 온 것치고는 너무 많은 목숨들이 쏟아부어졌지만, 레이바에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