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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53화 (153/180)

제왕학 (5)

"헤레나스! 지금 농담하는 것인가? 변환인자라니! 아이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소리를 당당하게 하다니!"

아버지였다.

헤레나스가 아버지를 힐끔 보더니 다시 몸을 돌려 황제와 눈을 맞췄다.

"폐하, 맹세컨대 단 한 차례도 폐하께 거짓을 아뢴 적이 없나이다."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황제가 말했다.

"그러하다, 그것은 짐이 잘 알고 있다."

심문장에서 자객에게 습격당했을 때, 자객들이 물러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것이 헤레나스가 이끄는 황실 경비대와 황궁 마법사 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른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틈을 타 그는 나를 습격한 소년을 죽였다.

마지막으로 헤레나스를 바라보는 황제의 저 굳건한 눈빛.

'친위대다.'

정신 조작 마법의 위력을 본 헤레나스가 귀족들 앞에서 소년이 마법에 당해 비밀을 털어 놓을까 미리 손을 쓴 것이었다.

대외적 활동을 많이 하지 않을 뿐, 헤레나스는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이런 인물까지도 친위대로 포섭하고 있다니, 새삼 황제의 영향력이 와닿았다.

이번에는 황제가 나를 향해 말했다.

"카몰 후작, 수석 마법사의 말이 타당한가?"

맞는다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잡아뗄까?

머리가 복잡했다.

내 주변에 있는 마법사들은 알게 모르게 내가 주위에선 마법이 잘 시전되지 않는다고 느껴 왔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내 복수에 더 유용하지?

"폐하, 한 말씀만 올리겠나이다!"

여태껏 엎드려 있던 몰트 궁정백이었다.

"마법사들은 인간이 쓰기에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엄격한 교육과 단호한 질서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초대 황제 폐하 이후로 지켜져 온 규율이었나이다. 이것이 제국의 마법이 다른 국가들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발전해 온 방법이기도 하옵니다. 그러나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카몰 후작은 그 자질을 감추어 자신의 재능을 제국의 발전보다는 사적인 면에 유용했나이다. 또한 수석 마법사의 말이 맞는다면 더한 것을 감추고 있었나이다. 이리도 감추고 숨기는 것이 많은 카몰 후작입니다. 과연 그가 지금까지 행해 왔던 모든 것들이 순수하게 제국과 폐하를 위해서였는지 저는 깊은 의심이 드옵니다!"

"닥치시오!"

그레이스였다.

"무슨 사정이 있어 후작이 자신의 능력을 숨긴 것인지는 모르나, 그가 저 능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요! 오히려 저 능력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오! 그의 작은 흠결로 모든 업적을 매도하지 마시오!"

누군가가 달려 나와 내 옆에 엎어졌다.

다시 아버지였다.

"이 모든 것은 가문의 책임자이자 가장인 신이 불민하여 벌어진 일이옵니다. 밝힐 때를 놓쳤을 뿐, 일부러 감추려 했던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부디 그동안 제 아들이 헌신한 공로를 높이 사, 아량으로 넘어가 주옵소서! 이리 엎드려 간청하나이다!"

퇴역한 마법사가 타국으로 넘어가도 추적대를 보내 사살할 정도로 제국은 마법사의 관리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아마 초대 황제가 이타르에게 패배하고 마법사들을 통제하던 것이 이리 이어진 것이겠지.

이런 상황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을 숨긴 것도 모자라 특수 능력 마법사인 것도 숨겼다?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황제에게 좋은 꼬투리를 준 셈이었다.

아버지도 묘하게 나에게 적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황제를 알아채고 먼저 달려 나온 것 같았다.

공작이 황제 앞에 무릎 꿇고 읍소하는 장면이라, 아마 평생 가도 보기 힘든 장면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궁지에 빠진 아들을 위해 아비가 온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전 삶에서 병마와 씨름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기 싫어 아버지의 마나 결석을 없애고, 아버지의 마나를 내 몸에 옮겨 심었다.

그것들로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이런 장면이 아니었다.

이래서 모든 정을 끊으려 했건만.

"카몰 후, 짐은 그대에게 하문하였노라."

고개를 들었다.

저 높은 단상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창공에서 먹잇감을 쏘아보는 매의 눈이었다.

"신의 몸에 있는 것이 변환인자라……. 동화 속 이야기인지라 명확한 답을 드리지 못하나이다. 그러나 신 주위에서 마법이 사라지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내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렸다.

"허어……!"

"후작이 오러를 운용하지 못하게 하는 약품을 개발했다 들었네. 게다가 저 말이 사실이라면 후작 근처에서는 오러도 마나도 통용되지 않는다는 소리 아닌가."

귀족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여전히 맹수의 눈을 한 황제가 내게 말했다.

"그대는 지엄한 제국의 법률을 능멸했노라. 어디 제국의 법률뿐이더냐. 짐을 희롱하고 능멸했음과 다름이 없다. 짐이 아주 우스워 보였겠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의 눈이 희게 변하고 있었다.

"카몰 후, 그대는 발시안에서 포로들을 죽였으며 사로잡힌 귀족들의 목을 베었다. 그대 아래에서 죽어 간 제국의 귀족 수가 다른 모든 전장에서 죽은 귀족들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제국의 목숨들을 짓밟은 것으로 모자라 자신의 능력을 감추어 짐을 능멸하였구나. 그런 자가 잘도 입에 충정과 신념을 담더구나. 끔찍하도다, 그대야말로 제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황실의 종사를 망칠 악한이로다!"

강력한 압력으로 생긴 바람이 황제의 주위에서 몰아쳐 나왔다.

발시안에서 포로들을 죽인 일까지 꺼내 오다니, 그 당시에는 한마디도 없다가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이야기하는 꼴이 역겨웠다.

이미 황제는 나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숙여 바람을 피할 때, 나는 당당히 외쳤다.

"신이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신(神)의 뜻이며, 폐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신의 뜻이옵나이다! 비록 혼란의 시대에 다른 쓰임이 있을까 하여 능력을 감추었으나, 신이 제국을 위해 온몸을 던졌음은 변함이 없나이다!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군주가 신하의 쓰임에 의심을 가지니, 이것이 어찌 신하의 탓이란 말이옵니까! 황자이시던 시절, 누가 폐하의 힘이 되었는지 기억하소서!"

"듣기 싫다!"

"제국을 위해 같은 귀족을 죽이고, 이민족을 막았나이다! 그 대가 무엇이었나이까! 말도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 툴리앗으로 향하고, 시찰단의 호위가 되었나이다! 어떤 황제가 공신에게 이런 대우를 한단 말입니까!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멀리서 폐하와 제국을 위해 싸운 저보다 폐하를 배신하고, 폐하의 피붙이를 죽인 자들을 더 신뢰하시나이까!"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 버렸다.

"분명 말씀드렸나이다."

황제의 하얀 눈동자가 나를 뒤덮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저 눈동자 아래 복종했을 것이지만, 지금의 나는 두렵지 않았다.

"저를 막아선 자들의 최후를 살피시길……."

콰드드득.

돌이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황제 주위의 단상과 장식물들이 우그러들고 있었다.

"감히 짐과 거래하려 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짐에게 협박을 하다니! 시안 몬트라우! 그대는 황제를 능멸했다! 제국을 해하는 것은 네놈이다! 역도에게 내릴 것은 죽음밖에는 없구나! 놈을 죽여라! 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자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피에 잠겨 죽게 해 주어라! 어서!"

급변하는 분위기에 이은 황제의 호통에 호위무사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황제와 내가 독대할 때 오갔던 대화를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화의 흐름도, 종착점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황제의 노성을 듣고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아버지가 크게 외쳤다.

"폐하! 부디 진정하소서! 어찌 그리 잔혹한 명을 내리시나이까!"

여전히 하얀 눈을 한 황제가 외쳤다.

그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단상 주위에 쩍쩍 금이 갔다.

"제뉴인 공은 나서지 말라! 저놈이 여기서 죽으면 그 이상은 묻지 않겠노라! 무얼 하느냐! 어서 저놈을 죽이라 하지 않았더냐!"

황제의 호통을 들은 호위무사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투브가 거대화해 무사 몇을 패대기쳤다.

귀족들이 소리를 질러 대며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애썼다.

정사를 논의해야 할 곳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황제에게 도달할 수 있을까?'

-힘들걸, 너무 멀어. 애초에 저 자객 놈이 혼절해 있는 곳 말고는 마법 사용이 힘들다며. 내가 마법으로 발판을 만들어 밟는다고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리고 저 위에서 병사들이 쏟아지잖아.

'아쉽네. 잠시만 막고 있어 줘.'

마음 같아서는 황제를 죽이고 싶었으나 그가 있는 단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마나 소드를 만들어 옆에 있던 헤레나스를 찔러 갔다.

저기에 죽어 있는 소년도 그렇고, 일전에 만났던 호위대도 그렇고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났다.

살려 두었다가는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헤레나스가 재빠르게 영창함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 무언가 마법을 쓰려 했지만, 내가 지척에 있는 탓에 마법은 금세 흩어져 버렸다.

놀란 눈을 한 헤레나스의 심장을 마나 소드가 관통했다.

"꺄아아악!"

"카몰 후작이 수석 마법사를 죽였다!"

혼란이 한층 더 가중되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목표가 앞에 있었다.

어느새 일어서서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레이바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오지 마! 오지 마! 이 살인귀!"

제법 거리가 멀어져 있었기에 나는 접근을 포기하고 마나 소드를 길쭉하게 만들어 던졌다.

마나 소드가 내는 파공성이 경쾌했다.

다음 순간 날아간 마나 소드는 레이바의 목을 꿰뚫어야 했다.

키기기기긱!

낯익은 인물이 레이바를 밀쳐 내고 창을 들어 마나 소드를 막아서고 있었다.

사교도들이 습격했을 때 만났던 친위대였다.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마나 소드는 어느새 내 손에 돌아와 있었다.

"방해하면 죽을 뿐이야."

친위대는 내 말에 짧게 답했다.

"죽어야 할 것은 당신이지, 폐하를 위해."

그리고 나를 향해 창을 찔러 왔다.

이자의 무예는 흐르는 강처럼 유연하고 동시에 몰아치는 폭포처럼 강인했다.

마법으로 상대하려 해도,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밀면 밀려났고, 밀리면 따라왔다.

철저하게 방어적이면서도 나를 잡아 두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다.

그동안 호위무사들과 기사들이 우리 주위를 둥글게 포위했다.

친위대의 팔과 가슴에 만들어진 얕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결국 그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

-죽이려면 다 죽여야 해. 할 수 있겠어?

건물 밖에서 병사들이 속속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람의 바다에 홀로 있는 섬이었다.

여전히 황제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옆으로 돌렸다.

병사들을 막아 세우고 있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되돌리기에는 늦었습니다."

아버지가 가까이 붙어 내게 작고 빠르게 말했다.

"도망치거라, 시안! 네 억울함은 내가 안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일 뿐이니 살아남아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내 걱정은 말거라. 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부디 몸 건강히 다시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내 옆에 선 투브의 등 위로 몸을 날렸다.

아버지가 투브에게 말했다.

"내 아들을 잘 지켜 주거라."

웬일인지 투브가 아버지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강하게 밀쳤다.

아버지는 나를 최대한 말렸다는 것을 보여 주어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내 의도를 읽었는지 아버지가 뒤로 주저 않으며 외쳤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죄하거라, 시안!"

시야가 흐려졌다.

억지로 목울대를 내리며 말했다.

"가자."

-어디로?

"수도 밖으로, 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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