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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55화 (15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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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큰 혼란을 느꼈다.

이 여인은 누구이며, 왜 나를 아는 듯이 행동한다는 말인가.

나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해."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녀의 눈에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알 수 없는 곳, 눈물을 보이는 젊은 여인, 나와 여인을 음흉한 눈길로 바라보는 투브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슬슬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인은 하급 궁녀의 복색을 하고 있었다.

"다시 묻는다. 너는 누구고, 여긴 어디야. 하나 더, 나를 본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도 말해. 내 기억에 너는 없어."

"제 이름은 이비, 성은 없습니다. 궁에서 일하는 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궁의 외진 곳에 마련된 비밀 공간입니다."

"잠깐, 비밀 공간? 그것도 궁 안쪽에? 말도 안 돼! 어떻게 발각되지 않았으며,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너 같은 하급 궁녀가 어떻게 아는 거지?"

여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교단의 명을 받고 황궁과 제국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궁에 투입된 사람입니다. 이 비밀 공간 또한 교단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둔 것입니다. 독특한 금속을 사용해 마법으로 인한 감지를 막았다고 들었습니다."

"교단?"

고개를 끄덕인 여인이 말했다.

"저는 아텟신교의 교인입니다."

깜짝 놀라 내가 되물었다.

"그게 아직 남아 있었어?"

그 말에 여인은 더욱 내 쪽으로 다가오려 했다.

마나 소드에 목이 베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목을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여인은 나를 향해 몸을 낮추고 절하는 자세를 취했다.

"역시! 후작께서 교단을 파괴하신 건 오랜 세월 폐단을 쌓아 온 저희들을 벌하고, 새로운 토양 위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었군요! 아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신의 재림을 눈앞에서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믿음을 저버린 자들은 제가 모두 벌하였습니다! 기뻐하소서!"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사교도는 이타르가 원치 않게 만든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이타르와 나와의 관계성을 말한 것은 이들이 사제라고 부르는, 이타르를 추종하는 마법사와 지하 감옥에서 대면했을 때뿐이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이렇게 연관 짓는단 말인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일단 내가 너희 교단을 파괴한 다음의 얘기를 좀 해 봐."

"후작께서 저희를 벌한 이후, 교단은 붕괴했습니다. 신도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밀고해서 당시에 달아난 자들 중 많은 자들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사제들도 거의 다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한번 공고히 뭉쳤습니다. 저희의 믿음은 시련을 겪고 더 강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촛불이 비춘 눈가에 광기가 일렁였다.

지하 감옥에서 내가 죽인 이들의 사제에 뒤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한시가 급한데 이런 얘기나 듣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일어나려하자 아직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 바람에 비틀거렸고, 집중이 흐트러져 마나 소드가 흩어져 버렸다.

여인이 재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예 틀어진 발목을 맞춰 놓았습니다."

고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움직일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조금 더 앉아서 회복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자신을 이비라 칭한 여인은 다시 주절주절 떠들 준비를 했다.

내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내가 묻는 말에나 답해. 나는 너희와 전혀 관계가 없는데 왜 나를 아는 척하는 거야."

이비가 웃었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르십니까? 이미 행동으로 보여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행동?"

"마나와 오러를 같이 다루는 것. 그것이 아텟신께서 자신의 후인에 대해 예언하신 것입니다. 후작께서는 둘 모두를 다루시니 그 예언에 해당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저희 같은 것들을 위해 친히 황제에게 대항하셨으니 이것은 범인(凡人)의 포부와 행동이 아닙니다."

사제의 행동이 생각났다.

내가 마나 소드를 보여 주자마자 그는 곧바로 내게 복종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이 사교도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교단 사람들 중 내게 접촉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한번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후작께서 진정한 아텟신의 후인이냐, 그저 아텟신을 따라하는 악한이냐에 대해서……."

이후 일은 상상이 갔다.

이타르의 재림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타르의 예언과 흡사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붕괴시켰으니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해소되지 못한 불신은 생존자들을 또 갈라놓았을 거고.

참 기구한 운명의 단체였지만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고, 신경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건가?"

"예, 황궁에 몰래 침투한 저희 '담쟁이덩굴' 역시 분열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후작을 인정하지 못한 자들은 신앙마저 놓아 버렸고, 그들은 남은 자들을 밀고하려 했습니다. 그에 따라……."

여인이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들을 처단했습니다. 남은 담쟁이덩굴은 저 하나뿐입니다."

"나는 아텟신인지 뭔지랑은 관련 없어. 그리고 황제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도 내 의지일 뿐이지, 너희들을 해방하고 만민을 평등하게 하는 거랑은 거리가 멀어."

"그리 독하게 말씀하셔도 저만은 당신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투브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교단에 속해 있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맛이 갔어. 그냥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아.

'동감이야. 대체 이런 자들이 어떻게 뭉쳐서 교단을 이루었나 싶어.'

-이런 미친 족속들도 단결하게 할 정도로 이들에게 이타르의 존재가 어마어마했던 모양이야.

잠시 갸웃하던 투브는 이내 콧등에 주름을 잔뜩 만들어 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남겨두고 자기만 속 편하게 떠나 버렸군, 이타르 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다시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네 알아서 하고, 나는 나가야 해. 이곳에서 황궁 밖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나?"

"황궁 바깥으로 이어진 통로는 없지만, 황궁 외벽 근처의 하수도로 이어지는 길은 있습니다. 제가 몰래 당신을 이쪽으로 데려온 이후 모든 황궁의 문이 폐쇄되었으니 밖으로 나갈 길은 그곳뿐일 겁니다."

"거기도 감시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저희가 만들어 놓은 통로가 들킨 적은 없습니다. 다만 아마 황궁 전체에 경비가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강행 돌파라는 소리인데……. 할 거면 외부와 가장 가까운 곳이 좋겠지. 좋아, 그쪽으로 가자. 안내해."

내가 앉아 있던 곳에서 펄쩍 내려오자 여인이 놀라서 말렸다.

"아직 발목이……!"

그러나 이제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내가 발목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뼈도 스스로 붙는데, 발목 고통 정도야 금방이지."

여인이 다시 한번 엎드려 몸을 떨었다.

"오오…….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네가 숨만 쉬어도 기적이라고 하겠다, 야.

이죽거리는 투브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회복되기 시작한 몸에 다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무시했다.

여인에게 말했다.

"네가 날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아무도 아니야. 그냥 나일 뿐이라고."

"제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독한 말씀 또한 저에게는 자비롭게 들립니다."

"아, 됐어. 짜증 나니까 이 얘기는 그만하고, 안내나 해."

여인이 촛불을 들고 앞장서서 토굴 밖으로 나섰다.

그 뒤를 투브와 내가 따랐다.

사람 하나가 왔다갔다 할 정도의 길이 파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 굴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비석들이 많네? 천장에도 박혀 있고, 벽에도 박혀 있고?

돌판에 섬세하게 새겨진 부조들이 통로 곳곳에 있었다.

사람 하나도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곳에 있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비석을 살펴본 내가 생각을 전했다.

'이거, 만년절옥이야.'

-만년절옥?

'왜, 툴리앗 왕의 침대를 덮고 있던 그거 말이야. 마나를 차단하는 암석.'

-아! 그래서 여기가 들키지 않았던 거야?

'그래, 마나를 차단할 뿐 아니라 탐지 마법 같은 걸 썼을 때도 그냥 자연 물질처럼 통과시켜 버리거든. 그리고 애당초 황궁의 지반에 마법을 쓰는 일은 잘 없기도 하고.'

굴은 아주 길고 복잡했다.

갈랫길이 몇 번 나왔으며, 유사시 굴을 무너트릴 수 있게 만든 장치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잘도 이런 곳으로 나를 데려왔군."

불 붙은 초를 들고 앞서가던 이비가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아텟신께서 도우신 겁니다. 그 전각에까지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고, 각하께서 정신을 잃은 곳이 통로의 출입구와 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저 늑대가 몸으로 공간을 만들고 버틴 덕에 제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놀라 투브에게 생각을 전했다.

'네가?'

투브는 묵묵히 이비의 뒤를 따라 걷기만 했다.

내가 이비에게 물었다.

"네가 속한 조직은 몇 명이나 있었지?"

"담쟁이덩굴 말씀이십니까? 20명 남짓이었습니다."

황궁 내에 사교도가 20명이나 활동하고 있을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땅굴까지 파 가면서.

사교도이긴 하지만 교세가 대단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어도 되는 건가? 밖은 난리일 텐데."

"난리 통에 저 같은 하급 궁녀를 찾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나중에 추궁당해도 그저 무서워서 어디 구석에 숨어 있었다고 하면 되겠지요."

담 하나는 큰 여자였다.

한참을 가던 이비가 발을 멈추었다.

"다 왔습니다."

머리 위에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한 문이 있었다.

이비가 옆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만년절옥으로 만든 판이 문을 막고 있었다.

"이 판을 치우고 곧장 위를 향해 흙을 파고 나가면 하수도로 통할 겁니다. 흙이 옅게 차 있고, 옆으론 비석들이 막아서고 있으니 방향 찾기가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투브가 눈치 빠르게 작아졌다.

그런 투브를 품에 안고 사다리를 올랐다.

판을 치우기 직전, 고개를 돌려 이비를 내려다봤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지금 상황이 이래서 황제와 대립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꿈꾸는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아. 괜히 헛된 꿈 품고서 고통받지 말라는 의미에서 하는 소리야."

이비가 고개를 저었다.

"옵니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날은 꼭 옵니다. 제 살아생전엔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꼭 옵니다."

그리고 이비가 미소 지었다.

환한 미소였다.

나는 고개를 다시 위로 향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분명히 얘기 했어. 그렇지만…… 구해 준 건 고마워."

나는 판을 옆으로 밀어냈다.

위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투브를 안고, 다른 한 손에 오러를 운용하며 나는 흙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

푸욱!

손가락 끝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촉이 전해져 왔다.

축축한 흙의 감촉이 아닌, 서늘한 공기의 감촉이었다.

마침내 지상에 도달한 것이다.

기색을 알아챈 투브가 나가고 싶다고 품에서 몸부림쳤지만 나는 그런 투브를 잠시 눌러 진정시켰다.

'기다려 봐.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조심스럽게 주위 마나를 탐지했다.

재수 없게 주위에 마법사가 있어 감지라도 하면 큰일이기에 마나를 아주 약간만 건드릴 정도였다.

'다행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순찰 중인 듯, 일정한 거리를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수로가 있었다.

이쪽으로 접근하는 기척이 가장 적을 때를 틈타 뛰쳐나가서 수로를 통해 나가면 황궁 탈출은 성공이었다.

잠시 집중한 뒤 힘차게 흙을 밀어냈다.

흙이 위로 치솟고, 서늘한 공기가 후욱 유입되었다.

몸을 바깥으로 빼냄과 동시에 내 쪽으로 향하는 기척을 느꼈다.

엄청난 속도였다.

'젠장! 친위대인가?'

그자의 속도는 내 예상 이상이어서, 나는 수로로 향하기 전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수로 앞을 막아선 자의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짐이 모르는 통로는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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