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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57화 (157/180)

수도 봉쇄 (1)

늦은 밤, 카몰군의 군영은 부산했다.

수레에 매여 있던 밧줄이 풀리고, 덮여 있던 천이 걷혔다.

모습을 드러낸 무구들이 횃불에서 나온 빛을 반사시켰다.

빠르고 신속하게 무구들은 각자의 주인을 향해 나누어졌다.

몸을 움직이는 소리와 물건들이 스치는 소리만 날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병사, 장교, 기병 할 것 없이 모두 굳은 얼굴로 자신이 군인임을 되새기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밤이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지휘 막사 안, 베이카 장군이 나를 향해 물었다.

다른 참모들의 눈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쉽사리 물어보지는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깁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까? 상세한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수도를 코앞에 두고 무장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수도를 포위하라니요. 이것은 누가 봐도 역모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십니까?"

"예, 역모입니다."

내 말에 베이카 장군을 비롯한 군인들이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칼과 로하나스 같은 기사단원들, 누이론트 백작과 같은 귀족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같은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싸워 왔어도 애초에 군인이었던 자와 아닌 자들의 차이는 컸다.

베이카 장군이 나를 향해 애원하듯 말했다.

"어찌 그런 위험한 말을 쉽게 하십니까. 이 판단 한 번으로 각하께서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군에 무장을 해제하라는 명을 내리십시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미 폐하께서는 저를 없애기로 마음먹으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위험할 때는 잘 써먹다가 이제 슬슬 눈에 거슬리니 용도 폐기라도 하고 싶어지신 모양이지요."

나는 모두에게 황궁에서 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내가 있던 대기실에 황제가 온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 상황과 대화를 알려 주면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싸워온 이유가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나게 된다.

이들은 내가 군을 움직인 이유가 내 개인적인 목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그 목적에 따라 의미가 뒤바뀌곤 한다.

후작의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된 것이기보다는 제국을 위해 싸웠다는 편이 모두가 생각하기에도, 바라보기에도 좋게 보일 것이었다.

내가 말을 다 마쳤을 때, 군인들은 작게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베이카 장군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각하를 따른 것은 제국의 군인으로서 분골쇄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키스타로 진격했을 때도, 이렇게 무모하게 일야관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도 따랐습니다. 위태롭지만 각하의 뜻이 제국을 바르게 세우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명심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황제 폐하께서도 알아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군인은 기사가 아닙니다. 기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군인은 오로지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방향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향해야 합니다. 군인들이 창칼이 국가의 안쪽을 향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군인이 아닙니다. 각하께 전권을 드렸지만 이번 일만큼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베이카 장군이 일어서려 했다.

나는 그런 베이카 장군을 향해 물었다.

"키스타에서 장군께서 은자 헤레나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장군이 멈칫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군은 황제가 아니라 제국을 향해 충성해야 한다는 말이었지요. 각하께서 하시려는 일은 제국을 해하는 일입니다. 각하께서는 황제 폐하의 신하가 아니십니까! 폐하께 흠이 있다면 그것을 덮고 더 좋은 치세를 하게 하는 것이 신하입니다! 황제가 있는 곳을 공격하려 드는 것은 신하가 아닙니다!"

나는 다시 베이카 장군에게 물었다.

"헤레나스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이상하다는 표정을 잠시 짓던 베이카 장군이 선 채로 내게 말했다.

"평생 마법에만 몰두했던 친구이지요. 황궁 내의 수없이 많은 마법진을 다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제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보수한 마법들과는 다르게 성정이 맑아 개미 한 마리도 쉽사리 죽이지 못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 죽였습니다."

장군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끔뻑이며 나를 바라봤다.

"은자 헤레나스는 황제의 친위대였고, 저를 공격했습니다. 저는 그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털썩.

베이카 장군이 주저앉았다.

"헤스가……. 헤스가 죽다니……."

"군의 방향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향해야 한다. 좋은 말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지금 황궁에는 누구보다 제국을 위한 자들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히베아 변경백과 그의 동생들이지요. 장군이 제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두텁다 한들, 제국 초기부터 대를 이어 북방의 경비를 맡고 있는 이나타 가문보다 더하다고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그들이 자신의 일을 잠시 미뤄 두고 이 먼 수도에까지 와서 황제에게 눈을 뜨라 진언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떤지아십니까? 황궁 외곽에 있는 심문장에 처박혔으며, 심지어 자객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황궁 내부에서요!"

무거운 분위기가 막사 안을 잠식했다.

힘을 주어 내뱉었다.

"충신이 감금당하고, 은자라 불렸던 이가 후작을 죽이려는 세상입니다. 장군, 장군께서 아시는 것과 세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추었다.

멍해 있던 베이카 장군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듣고 있던 누이론트 백작이 거들었다.

"장군, 후작 각하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장군의 부하들이 제국 남부를 누비고, 심지어 툴리앗까지 다녀오는 동안 폐하께서 어떤 지원을 해 주셨습니까. 장군께서도 테르다마스로 합류한 이후에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로지 우리의 힘만으로 키스타를 점령했고, 다른 세력들을 물리쳤습니다. 군주의 흠결을 덮는 것이 신하라 하셨지요? 잘못된 길을 걷는 군주를 꾸짖는 것도 신하의 길입니다."

장군이 손을 자신의 얼굴로 올려 마른세수를 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초췌해 보였다.

"각하께서는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하십니까?"

아버지에게도 들은 질문이었다.

그깟 황제 자리에 아무 욕심도, 어떤 미련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아마 알아도 쉽게 믿지 못하겠지.

"나는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내 목적은."

사실이 섞인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제국을 뒤흔든 놈들을 처단하는 것. 특히 비텔스바흐 가문과 발터 가문의 멸족입니다. 나를 태워 제국의 정화를 꾀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와 약속 하나만 해 주시겠습니까."

"말하시지요."

"폐하께 손을 대셔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각하와 저희들의 명분을 주장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거짓이 될지 사실이 될지 모르는 말을 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확실하게 답을 주셔야 합니다."

카몰군의 핵심은 4군단이고, 그 4군단을 이끄는 것은 베이카 장군이었다.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장군을 다잡을 마지막 기회였고, 나는 그를 신뢰하는 4군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황제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장군과 장군의 부하들을 앞세우겠습니다."

다시 한번 입을 꾹 다문 베이카 장군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한 번 움직였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빌."

옆에 앉아 있던 4군단 71사단장, 빌 파르가 바로 답했다.

"예!"

"전군에 전달하도록, 2시간 이내에 모든 무장을 마치고 전투준비태세를 갖춘다. 기병들을 활용해 주위에 주둔 중인 수도방위병단 소속 부대들의 배치를……."

내가 품속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태양달에서 받아 온 수도 주위의 군단 배치도였다.

종이를 들춰 보던 베이카 장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추궁당하는 느낌이라 내가 머쓱하게 한마디를 했다.

"왜 그, 옛말에 도둑질을 하지 않더라도 방법 정도는 알고 있으라 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은 예측불가함의 연속이라는데, 이 정도 준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흡!"

모두의 눈이 향한 곳에 얼굴이 새빨개진 칼이 있었다.

분위기는 심각했지만 다들 웃음의 주인공이 칼이라는 것을 알고 한숨 놓는 분위기였다.

이미 칼의 낙천적인 성격은 전군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칼은 민망했는지 괜히 다른 소리를 했다.

"죄송합니다. 밤공기가 차서…… 이거 원……."

그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내가 박수를 한 번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짝!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략을 짭시다. 우리는 수도를 포위해야 합니다. 아마 수도방위병단과 다른 군단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몰려올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가 물었다.

"초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장기간의 공성전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거대 도시인 수도를 포위하는 것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오른손을 들어 쫙 펴 보였다.

"5일, 5일 만 버티면 승산이 있다."

***

"상황 보고!"

지휘 막사로 들어온 내가 투구를 벗어던지며 외쳤다.

수도를 포위한지 3일째, 전 지역에 걸쳐 산발적으로 전투가 발생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전투가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수도로 통하는 관문은 일야관 외에도 여러 관문이 있었다.

수도방위병단은 그 모든 관문의 방비를 맡는다.

황궁에서의 소동 이후로 많은 귀족들이 당일 수도를 벗어나 영지로 돌아갔고, 나와 황제의 행동으로 인해 귀족들은 다시 분열했다.

수도에 갇힌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서든, 내게 지원 병력을 보내기 위해서든 귀족들과 장군들은 병력을 모아 관문을 통과시켜야 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충돌했고, 모든 관문 앞이 혼란해진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방위병단은 나를 격퇴하기 위해 관문의 방비를 포기하고 병력을 돌릴 수 없었고, 우리는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수도를 봉쇄할 수 있었다.

대략적으로 그려진 수도 주위의 병력 분포를 본 내가 말했다.

"겹겹이 그려진 고리 같네."

수도를 중심으로 해서 아군이 한 겹, 그 주위로 수도방위병단과 관문들이 한 겹, 다시 그 밖을 안쪽으로의 진출을 소망하는 귀족들의 병력이 한 겹.

서로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는 형상이었다.

로하나스가 내게 말했다.

"사절이 와 있습니다."

"안에서? 밖에서?"

수도에서 나를 향해 사절이 계속 오고 있었지만 나는 만남을 거부한 채 모두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일야관에서 온 사절입니다."

"그럼 수도방위병단이겠네? 난 또 누가 관문을 뚫고 지원 병력이라도 데리고 온 줄 알았네. 안 만난다고 그래."

"이름을 대면 각하께서 아실 거랍니다."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만나지 않을 셈이었지만 이름 정도는 들어 보고 싶었다.

"누군데?"

"나발드 지하임, 제국마법사수사단 단장입니다. 돌려보낼까요?"

"당장 데리고 와, 빨리!"

로하나스가 급히 뛰어 나갔다.

캐슬린과 저비스의 소식은 며칠 전 일야관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나발드 지하임은 캐슬린과 저비스가 포함된 나시와르 시찰단의 책임자였다.

그가 내게 온 이유는 캐슬린과 저비스의 신변에 관련된 문제일 것이었다.

"이쪽입니다."

로하나스가 나발드를 데리고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나발드 뒤로 내가 알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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