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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59화 (159/180)

수도 봉쇄 (3)

마나를 두른 투브의 발톱이 팔크를 찢기 직전이었다.

팔크의 뒤에서 누군가 달려 나왔다.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붉은 방패 기사단인 것 같았다.

달려 나오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붉은 섬광이 달려드는 것 같았다.

섬광이 팔크와 투브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철판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끼어든 기사가 투브의 발톱에 맞아 걸레짝이 된 방패를 내려놓는 소리였다.

"단장님!"

팔크가 외쳤다.

나는 제법 흥미로운 눈길로 투브 앞에 선 기사를 바라보았다.

갑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강건한 체구, 깊게 눌러쓴 투구와 바이저 사이로 보이는 냉엄한 눈빛.

세르벤 비텔스바흐.

비텔스바흐 가문을 이끄는 몰트 비텔스바흐 궁정백의 동생이자 붉은 방패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자신의 몸만 한 대방패를 들고 번개처럼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철벽'이라는 속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기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과연 붉은 방패 기사단의 단장 자리에 어울리는지는 많은 이가 의문을 표했다.

누구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올라 있는 위치에 그의 이름보다는 성씨가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수군대고는 했다.

그리고 방금 투브가 날린 일격을 막은 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실력을 감추고 있었군."

세르벤은 아무 말 없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자신의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려 나를 겨냥했다.

투브의 발톱과 이빨에 걸린 자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신체의 한 부분을 잃거나 심하면 죽기까지 했다.

이 녀석의 발톱에게 인간의 피부와 갑옷의 철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자, 세르벤은 오러를 두른 방패로 투브의 발톱을 막아 내고도 숨을 조금 몰아쉬고 있을 뿐,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궁정백도 알고 있나? 자기 동생이 황제의 친위대라는……."

내가 말을 끝내기 전, 세르벤이 크게 외쳤다.

"공격하라! 카몰 후작만 죽이면 봉쇄가 풀린다!"

그에 화답하듯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 몇이 투브와 내게 달려들었다.

"죽여라!"

"버티자! 조금 있으면 두 번째 전이 마법이 발동된다!"

기사 몇의 목숨을 황천으로 보냈다.

합공을 통해 내 움직임을 제약하려고 했지만 나의 능력은 이미 기사들이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아득히 올라 있었다.

그 기사가 붉은 방패 기사단의 기사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전장은 원래부터가 나를 위한 곳이었다.

서걱!

세르벤의 가슴팍을 그대로 베어 냈다.

붉은 갑옷의 틈으로 붉은 액체가 마구 밀려 나왔다.

팔크가 휘청이는 세르벤을 부축했다.

상처 입은 짐승이 포효하듯 세르벤이 외쳤다.

"전이 마법을! 전이 마법을 발동하라! 어디든 좋으니 안전한 곳으로 일시후퇴 한다!"

나는 투브의 등에서 뛰어내려 세르벤에게로 걸어갔다.

팔크가 무기를 부여잡고 세르벤과 나 사이를 막아서려 했지만 내 손짓 한 번에 바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세르벤을 향해 말했다.

"아마 전이 마법사를 가지고 있다는 이점을 살려 치고 빠지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나 봐? 이쯤이면 당신도 눈치채야 하지 않나? 아니, 눈치는 챘는데 믿기가 힘든 건가?"

이제는 입에서도 핏물을 쏟아 내는 세르벤이 보였다.

그는 끝까지 무기를 놓지 않고 있었다.

"변환…… 푸헉, 인자……?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세르벤이 비척비척 일어섰다.

넝마처럼 변한 그의 갑옷과 그 위에 칠갑이 되어 있는 피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입가의 묻은 피를 닦아 낸 그가 쥐어짜내듯 말했다.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

다시 한번 그가 섬광처럼 움직였다.

아주 붉었다.

그것이 그의 갑옷 때문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가 흘린 피 때문인지는 불분명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서걱!

검을 들고 있던 세르벤의 팔이 잘려 떨어졌다.

이내 작은 구슬들이 몇 개 날아와 세르벤의 몸에 박혔다.

"으으……."

세르벤이 잠시 신음하는 사이, 구슬이 터져 나갔다.

살점과 뼈가 이리저리 튀었다.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십니까?"

중갑 속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오델리아였다.

오델리아가 대검을 정리하며 말에서 내리려 했다.

말에서 대검을 휘둘러 오러 구슬을 던져 보내 세르벤을 폭사시켜 버린 모양이었다.

"내리지 마. 전장에서 예의 차릴 시간이 어디 있어."

오델리아가 멈칫하다 다시 말에 앉았다.

"무사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내가 안 괜찮은 것 봤어? 다른 기사들은?"

"다들 맡은 구역에서 적습에 맞서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이쪽에 계시다는 것이 퍼졌으니 정리가 되는 대로 올 것 같습니다."

뒤쪽을 보니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 몇 명이 말을 타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세르벤을 죽였지만 다른 아군들은 결사항전 중인 붉은 방패 기사단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다.

시선을 내렸다.

세르벤의 사체를 챙기는 팔크와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세르벤의 방패가 보였다.

본래의 형태는 거의 없어진 채로 투브의 발톱 자국이 길게 나 있는 방패였다.

"오델리아."

"예."

"상대는 붉은 방패 기사단이야. 각오는?"

"발톱으로 저들의 방패를 찢고, 송곳니로 숨통을 끊겠습니다. 늑대는 방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팔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세르벤의 사체를 노리는 아군들을 방어하고 있었다.

주위에 대고 팔크가 크게 외쳤다.

"뭉쳐! 이대로 수도까지 활로를 뚫는다! 우리는 살아서 돌아간다! 마법이 안 통하면 기어서라도 간다!"

예전 생각이 났다.

그가 마차를 끌고 내가 옆에 앉아 있던 기억, 늦은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서로 맨손 박투와 검을 수련하던 기억, 그가 전이 마법을 통해 내게 와서 일야관으로 가야 한다고 전하던 기억.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 하나하나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가 내 아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델리아를 두고 로하나스의 연적이 되었을까? 아니면 단장 자리를 두고 로하나스, 오델리아와 신경전을 벌였을까?

"후……."

깊게 숨을 쉬어 헛된 생각을 모두 끊어 냈다.

"오델리아."

"예."

"명령이다. 적을 모두 참살하라. 하나의 예외도 없다. 저들 1명의 죽음이 아군 10명을 구하는 길이다."

오델리아가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자세를 바로 했다.

투구 사이로 오델리아의 눈이 빛났다.

"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귀환하지 않겠습니다. 이랴!"

일순간의 고민도 없이 오델리아가 적진으로 말을 몰았다.

머지않아 합류하던 검은 늑대 기사단원들이 오델리아의 뒤를 따랐다.

야속했다.

인(因)과 연(緣)이 무너지는 전장이 야속했다.

그러나 야속함을 느낄 시간에 나는 더 달려 나가야 했다.

몸을 돌려 투브에 올라탔다.

'가자.'

-괜찮겠어? 저 빨간 놈들 보통이 아니던데.

'오델리아가 있으니 어렵지는 않을 거야. 다른 쪽으로 가자. 다른 침투조에도 전이 마법사들이 있을 거야. 내가 가서 마법 발동을 막아야 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팔크의 비명이 분명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전쟁은 그런 것이기에…….

***

전날 있었던 붉은 방패 기사단과 수도방위병단의 공세는 아군에게 끔찍할 정도의 피해를 입혔다.

"전이 마법사 5명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5명이 동시에 한 목표를 노리다니, 들어 본 적 없는 작전이네."

"1명의 마법사당 이동해 온 병력 수는 100에서 15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붉은 방패 기사단의 전체 인원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기에 속단하기는 이르나 끌어모을 수 있는 거의 전부를 공격에 투입한 것 같습니다."

"피해는?"

로하나스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베이카 장군의 표정도 굳었다.

"4군단 71사단이 마법에 휘말려 반파 되었으며 71사단장인 빌 파르 장군의 생사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대들이 피해를 입어 아직 피해 추산 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량 창고가 전소되었습니다. 배급을 줄여도 버틸 수 있는 최대한도는 3일 안쪽입니다."

한 번의 공격으로 1만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

새삼 황제의 저력이, 특수 마법의 파괴력이 와닿았다.

아군 중심에 떨어진 5개의 침투조 중 2개조는 전이 마법사를 포함 완벽히 사살했지만, 남은 3개조는 다시 전이 마법을 이용해 사라졌다.

공포감이 아군 막사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로하나스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후방 척후 보고에 의하면 일야관 너머의 전투가 종결되어 간답니다. 루지온군과 노체군이 승리할 것으로 보이며, 이르면 내일 정도에 일야관을 돌파할 것 같다고 합니다."

루지온 공작과 노체 공작은 현재 황제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상태였다.

참 얄궂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황제를 위하고, 그들이 황제에 반(反)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하루, 하루면 된다. 언제 다시 적의 침투가 있을지 모르니 방비를 단단히 하도록."

내 명령이 내려지자 참모들이 하나둘 일어서서 지휘 막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모두가 나간 뒤에도 남아 있던 로하나스가 내게 말했다.

"공녀님과 저비스 군이 일야관 근처에 억류되어 있다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특공대를 조직해서 보내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하나스가 절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제뉴인 공작 각하와 공작부인께서는 수도 안에 갇혀 계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동생 분이라도 구하셔야 합니다! 각하의 피붙이와 심복을 구하러 간다고 욕할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말 한마디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어제 못 느꼈어? 황제도 진심이야. 전이 마법사를 그렇게까지 혹사시켜 가면서 우리를 죽이려 들잖아. 어제처럼 다시 공격이 오면 사람 하나가 아쉬워. 설령 특공대를 조직한다 하더라도 일야관이 좀 넓어? 안가(安家)는 또 얼마나 잘 숨겨져 있겠어. 못 찾는다고 봐야 해."

"각하!"

"더 이상 말 하지 마. 이 포위에 모든 걸 집중해."

로하나스가 입을 앙 다물고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섰다.

-독하네. 울면 눈물이 아니라 독이 흐르겠어. 당장 네가 뛰쳐나갈 줄 알았는데.

'큰 피해를 입은 게 어제야. 지금 같은 때에 내가 경거망동할 수는 없어.'

투브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네 시야랑 생각이 내게 전해질 때가 있다고 했지?

나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태연한 척하고 답했다.

'응.'

-재수도 없지. 하필 딱 지금 그럴게 뭐냐.

'무슨 소리야.'

-왜 거짓말을 하냐는 거야.

투브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휙 나가 버렸다.

조금 후에 로하나스가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각하! 수도 성벽! 수도 성벽 위에!"

"왜 그래? 말을 똑바로 해."

"수도 성벽 위에 제뉴인 공작 각하와 공작부인께서 올라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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