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봉쇄 (4)
나는 수도의 성문 가까이 나아갔다.
높은 수도의 성벽 위, 몇 사람이 올라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방위병단의 책임자인 카멜 할 장군을 비롯한 군인들, 마법사로 추정되는 사람 몇.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
내 뒤쪽에서 큰 소리가 났다.
"가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딸이 저 위에 있는데 무슨 소리냐!"
고개를 돌려보니 누이론트 백작이 측근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누이론트 백작은 내 외할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이렇게 마주할 것을 알았을까.
내가 말했다.
"막지 마."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이 흠칫거리며 누이론트 백작에게 길을 터주었다.
비틀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온 누이론트 백작이 성벽 위에 서 있는 어머니를 확인했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주름지고 앙상해진 손이었다.
"딸을 저 모양으로 만들다니…… 부인에게 뭐라 말한단 말입니까……."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 나왔다.
떨어지지 않는 턱을 간신히 움직였다.
"왜 자책을 하십니까. 모든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각하……. 부디…… 제 딸을……."
누이론트 백작은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사람들이 달려 나와 누이론트 백작을 부축했다.
백작은 계속해서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다리는 맥없이 풀려 있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검을 빼 들었다.
"이런……!"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쏠렸다.
옆에서 베이카 장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요하시면 안 됩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대화 이후, 베이카 장군은 결심이라도 한 듯 매일 더욱 철저하게 전장을 신경 썼다.
그렇지 않아도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진 베이카 장군의 몸이 한층 수척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몸과 반대로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담은 것 같았다.
마치 생(生)이라는 심지를 불태우는 촛불 같기도 했다.
"카멜은 허영심이 많은 자입니다. 공작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이 상황, 각하께서 큰 반응을 보이는 것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을 겁니다. 반응하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각하께서 폐하께 반기를 들고 수도를 포위한 것과는 별도로 저기 묶여 있는 분은 제국의 공작입니다. 저런 식으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그저 겁주기 용도일 뿐이지요. 공작 각하의 몸에 상처라도 났다가는 카멜은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장군의 눈이 빛났다.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말을 꺼냈다.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겠군요."
"다시 한번 침투를 감행하려는 것이겠지요."
"방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이 마법의 여파에 여러 부대가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부대 간격을 조정했습니다. 수도에서 나오는 병력을 막기에는 조금 헐거워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다만 경계를 강화한 터라 병력 전체, 특히 마법사들의 피로가 엄청납니다. 남은 군량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대치 상황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머지않았습니다."
장군이 나를 보다가 말했다.
"올까요?"
내가 답했다.
"옵니다."
성벽 위에서는 할 장군이 아버지께 칼을 들이대며 내게 항복을 종용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증폭시킨 그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귀를 긁었다.
시선을 더 멀리로 돌렸다.
수도 너머의 어딘가였다.
"폭풍이 오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귓전을 때리는 할 장군의 고함 너머로 다시 머리가 핑 하고 울렸다.
대규모로 마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윽!"
머리를 부여잡는 나를 베이카 장군이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전이 마법입니다. 전군에 대비를!"
머리를 흔들며 투브의 등에 올라탔다.
동시에 깃발들이 올라가고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고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적습이다! 붉은 방패 기사단이다!"
수도의 성문이 열리고 수도방위병단의 휘장과 표식을 붙인 기사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 있던 아버지, 어머니와 할 장군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베이카 장군에게 말했다.
"저는 전이 마법을 다시 쓰지 못하게 붉은 방패 기사단이 들어온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지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베이카 장군이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짧게 말했다.
"무운을."
나도 짧게 답했다.
"승리를."
***
"그대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황제가 근엄하게 물었다.
수도방위병단의 총책임자 카멜 할이 머리를 조아린 채 답했다.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훌륭한 작전이옵니다."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구름이 있었다.
"네 말이 틀림없으렷다?"
"예, 일야관 너머의 싸움은 노체 공작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니 확실합니다."
그것을 들은 할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황제에게 말했다.
"카몰 후작은 분명 어제의 공격에만 신경 쓰느라 멀리 보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노려 붉은 방패 기사단을 일야관으로 이동시켜 관문 밖의 전투를 마무리하고, 아군을 끌어들여 카몰 후작을 양쪽에서 공격한다는 방안! 참으로 훌륭합니다. 전이 마법을 통해 이동한 병졸들도 붉은 갑옷을 입고 있으니 놈들은 붉은 방패 기사단이 다시 온 것으로 착각할 것입니다! 허허허허."
황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00명이 조금 넘는 기사와 전이 마법사 2명을 포함해서 5명의 마법사가 희생되었다.
하지만 급습은 분명 산술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카몰군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수도를 첱통같이 감싸고 있던 포위가 군데군데 약해진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부대를 조정한 것도 황제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 숫자가 아닌, 병력의 질로 따지면 손해라는 것이 황제의 생각이었다.
'제국 최고라 할 수 있는 붉은 방패 기사단은 물론이고 전이 마법사가 2명이나 살아 돌아오지 못하다니…….'
최대한 카몰 후작과의 전투는 피하라고 지침을 내려놓았다.
그가 등장하면 최대한 빨리 다시 전이 마법을 사용해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부대들의 성공적인 복귀를 위해 최대한 카몰 후작의 움직임을 제약하라고도 해 놓았다.
그렇기에 아무리 커 봐야 1개 침투조의 피해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전이 마법 성공 직후 전이 마법사 하나가 죽어 버려서 총 2개조의 손실을 입었다.
파괴력이 엄청난 만큼 감당해야 할 위험 요소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황제는 이 손실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출혈이 발생하기 시작했으니 상처가 더 벌어지기 전에 상황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복귀한 전이 마법사들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수도 밖에 나가 있는 전이 마법사들에게 가서 귀환령을 전달할 것.
죽음의 고비를 하루에 두 번이나 넘긴 마법사들은 기겁을 했지만, 결국 목 옆에 닿은 칼날 때문에라도 마법을 써야 했다.
시종장이 황제에게 말했다.
"한 명의 전이 마법사를 제외하고 모든 전이 마법사가 모였나이다."
황제의 눈썹이 위로 들렸다.
"감히 누구이길래 짐의 지시를 무시하는가."
"나시와르 시찰단에 있던 말로리 스트레치이옵니다."
"말로리는 황실 마법사가 아닌가, 어째서 짐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겐가?"
"예, 현재 말로리 백작은 캐슬린 몬트라우, 저비스 포츠라니와 함께 일야관의 안가(安家)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일야관 주위에서 연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라 전이 마법과 같은 대규모 마법을 쓰기에는 적합지 않아 마법사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인편 또한 포위망을 뚫을 병력이 여의치 않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황제는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구름을 일야관으로 보냈을 때 나발드가 아니라 말로리를 불러오라고 할 것을…….'
그러나 구름이 떠날 때까지만 해도 전이 마법사의 전격적인 투입은 확정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큰 의미가 없는 생각이었다.
황제가 말이 없자 할이 예의 그 어색한 미소를 다시 지으며 말했다.
"이제 곧 일야관 쪽이 정리되고, 폐하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군대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전이 마법사 하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짧은 대답이 황제의 입에서 나왔다.
"짐의 생각 역시 그러하다."
***
"이상합니다."
전투가 마무리되고, 지휘 막사로 돌아온 내게 베이카 장군이 말했다.
"장군께서도 느끼셨군요. 이전에 급습한 인원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장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쓰는 전술과 방진은 기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개인의 오러나 무력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막사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런 병력을 침투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동원한 것은 아닐 텐데요……."
그때 병력 정비를 위해 나가 있던 로하나스가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가까이 와서 낮게 속삭였다.
"후방 척후에게서 들어온 보고입니다. 일야관의 문이 열리고 군대가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노체 공작의 병력인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젠장!"
일야관 쪽은 에베군이 올라와 다른 세력의 진입을 막아 주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는데, 도착이 늦은 모양이었다.
"규모는?"
"확실히 파악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로하나스가 더욱 내 쪽으로 몸을 붙이고 말했다.
"바로 이쪽을 향하는 것 같답니다. 그리고 결박된 저비스 님의 모습을 봤답니다."
"죽이지는 않았나 보네."
"저비스 님이 그쪽에 계시다면…… 캐슬린 님도 잡혀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둘은 혹독한 심문을 받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로하나스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제는 앞, 뒤 양면, 아니 앞, 뒤 그리고 중간에 떨어지는 침투조의 공격을 막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 가장 먼저 적을 마주한 곳은 뒤였다.
"카몰 후작에게 알린다! 당장 수도의 포위를 풀고 폐하 앞에 엎드려 사죄하라!"
마법으로 증폭된 목소리가 아군 뒤쪽에서 들려왔다.
노체군이었다.
그들은 선두에 캐슬린과 저비스를 세워 놓은 상태였다.
묶인 채 무릎 꿇은 둘 옆에는 검을 든 병사가 보였다.
"두 분은……."
베이카 장군의 말을 내가 끊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베이카 장군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멀리 있는 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로하나스 역시 굳은 표정을 하고 둘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내게 항복을 종용하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적진에서 누군가 나와서 검을 든 병사에게 다가섰다.
그가 검을 높이 드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안 돼……."
다음 순간 사람의 머리가 떨어지고 그곳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