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61화 (161/180)

검과 독수리 (1)

아군의 뒤를 점령한 노체군과의 거리는 절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나의 감각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하나를 최대한도로 수용하고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목과 몸이 분리된 신체였다.

내 귀에 옅게 들리는 소리는 묵직한 갑옷이 지면과 충돌하며 내는 소리, 그리고 손을 떠난 무기가 힘없이 땅에 나뒹구는 소리였다.

다음 순간 몰입이 확 멀어지며 감각이 돌아왔다.

손끝이 저리고 눈이 아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옆에 있던 로하나스의 목소리가 내 정신을 환기시켰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믿기지 않아 눈을 껌뻑였다.

누군가 다가와 베이카 장군에게 무언가를 알렸다.

베이카 장군이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황실 마법사? 누구? 말로리 스트레치 경? 그자가 왜?"

"모르겠습니다. 내부 분열이 아닐지……."

캐슬린과 저비스의 처형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높게 만들어진 단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입은 황실 마법사용 로브가 바람에 찰랑였다.

말로리 스트레치.

처음에는 전이 마법을 각성하지 못했지만, 황실 마법사가 된 이후 늦은 나이에 전이 마법을 각성해서 많은 이들이 말로리가 전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이 마법을 포함한 특수 마법사들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처형대 위에 올라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가 마법으로 죽인 처형인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캐슬린과 저비스가 내 편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황실 마법사인 말로리가 저 둘을 감쌀 이유는 없었다.

그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저, 저!"

말로리는 양손에 캐슬린과 저비스를 하나씩 들고, 처형대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러고는 곧장 우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내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출격! 어느 기사단이든 좋으니 출격해! 저 셋을 데리고 와!"

곧바로 주위에 있던 통신 마법사에게 명령이 전달됐고, 말들이 수백 명의 기사들을 태운 채 출격했다.

노체군도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달리는 말로리를 향해 엄청난 양의 화살과 마법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노체군 쪽에서도 추격을 위한 기사들이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잡힌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투브가 벌떡 일어나서 몸을 크게 만들었다.

-느려! 가자! 내 속도면 저놈들보다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용솟음쳤다.

'황실 마법사가 왜 저런 선택을 한 거지? 유인책인가? 왜지? 어차피 잡히면 죽을 텐데, 처형대 위에서 전이 마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뭐지? 나를 끌어내고 그 틈을 타 다시 한번 붉은 방패 기사단을 아군 중심에 투하하려는 작전인가? 대체 이 상황은…….'

-시안!

말로리의 등 위로 화살이 쏟아졌다.

"앗!"

많은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말로리와 그의 손에 잡힌 캐슬린, 저비스에게 향하던 화살들이 미묘하게 궤도가 꺾여 바닥으로 처박혔다.

"마법진도 없이 물리적인 힘의 궤도를 바꿔? 저렇게나 간단히?"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이 수군거렸다.

손으로 마법진을 그리지 않고 영창만으로 마나를 움직여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간단한 마법에 국한된 사항이었다.

현재 말로리 경은 양손에 사람 하나씩을 들고 있으니 손으로 수인을 맺거나 마법진을 그리는 행위는 불가능했다.

달려오는 속도도 일반적인 달리기 속도보다 빠른 것으로 보아 이미 신체에 마법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십여 발의 화살의 궤도를 뒤틀다니, 상당한 경지였다.

마법사들이 놀랄 만도 했다.

일단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확보해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베이카 장군!"

"예!"

"제가 돌아올 때까지 모든 권한을 잠시 장군께 이양하겠습니다. 단 반오러 물질의 사용 권한만은 로하나스에게 주겠습니다. 로하나스!"

로하나스가 바로 차렷 자세를 했다.

"예!"

"현 시간부로 전 기사단에 배부된 가면을 착용하라는 명을 내려. 그리고 경량화된 갑옷이 보급된 부대들은 즉시 경량 갑옷으로 바꿔 입는다."

"그 말씀은……."

"결전이다. 전이 마법과 함께 붉은 방패 기사단이 들어오거든, 망설일 것 없이 반오러 물질을 모조리 쏘아 올려. 기사단의 최우선 순위는 전이 마법사 및 마법사 사살. 경량 갑옷을 입은 부대들의 우선 목표는 유기적인 이동을 통한 적전선 무력화!"

"알겠습니다!"

빠르게 투브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 풍경이 사라졌다.

바람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들이쳤다.

투브의 한 걸음에 막사 몇 개가 뒤로 밀려나고, 다시 몇 걸음에 아군 진영을 벗어나 출격한 기사들의 후미에 도달했다.

최선두에 나선 기사들은 이미 적측의 기사들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뿌우우-!

기사들에게 도달할 때쯤 노체군 진영에서 거대한 뿔피리 소리가 들리고, 보병들과 기병들이 앞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온 것을 보고 전력을 동원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더 빨리!"

투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귓가를 스쳐가는 거친 바람에 녀석의 숨소리가 실려 왔다.

거칠고 강인했다.

그리고 믿음직스러웠다.

멀지 않은 곳에 황실 마법사 로브가 보였다.

몇몇 기사들이 말로리 경에게 접근해서 창을 찌르려 들었지만, 그때마다 말로리 경의 등에서 붉다 못해 검은 불줄기가 한 줄기씩 뻗어 나와 기사와 말 들을 맞혔다.

마법에 적중한 기사들은 어김없이 낙마해 땅을 뒹굴었다.

'저 마법…… 왜 익숙하지?'

묘한 기시감이 들었지만 일단은 말로리 경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캐슬린, 저비스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손을 앞으로 들었다.

"흡!"

마나가 내 주위로 뭉쳐드는 것이 느껴졌다.

일부는 마치 잘 닦인 길이라도 있는 양, 내 몸 속으로 부드럽게 넘어왔다.

가슴 언저리에 있는 도깨비의 문신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화륵!

내 손에서 떠난 불덩이가 거대한 불의 장벽이 되어 말로리 경과 적군 기사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몇 번 숨을 고르는 동안 투브는 말로리 경의 곁에 도달했다.

내가 말로리 경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안 돼!

투브가 성큼 몸을 뒤로 날렸다.

"투브! 왜!"

-찾을 땐 없더니, 역시 다른 놈에게 숨어 있었어!

"무슨 소리……!"

말로리 경이 일어섰다.

캐슬린과 저비스는 기절했는지 가는 숨만을 내쉬고 있었다.

"이렇게 재능 있는 인간 마법사는 손에 꼽아. 죽게 놔 둘 수는 없지."

매혹적이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선 굵은 미남인 말로리 경의 목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네가 탐나거든, 귀여운 공자님."

생각이 퍼뜩 스쳤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마법, 강력한 불줄기, 마법사에 대한 집착과 열망, 마지막으로 귀여운 공자님까지.

"아라크네?"

말로리 경, 아니 아라크네가 광소를 터트렸다.

"이제 알아보는 거야? 저 똥개보다 감이 안 좋구나? 깔깔깔."

손에 마나 소드를 만들어 냈다.

한 시가 급한 상황에 영수, 아니 요물과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바로 제압하고 캐슬린과 저비스를 데려갈 셈이었다.

"여전히 급하네."

아라크네가 손을 캐슬린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두고 말했다.

"그 손 떼!"

바로 달려들어 아라크네의 목을 향해 마나 소드를 휘둘렀다.

속도는 자신 있었다.

"이런!"

아라크네, 정확히는 말로리 경의 어깨에서 검은 곤충의 다리가 솟아나와 내 마나 소드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마나 소드는 일말의 저항감 없이 그대로 아라크네의 다리를 베어 버렸다.

진득한 녹색 점액이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왔다.

다음 공격으로 아라크네를 꿰뚫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말로리 경의 입에서 질긴 거미줄이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

그 바람에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라크네가 앙칼지게 외쳤다.

"미친놈! 말을 들어!"

아라크네의 잘린 다리가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어깨에서 뻗어 나온 다리의 절단면에서는 이미 나머지 부분이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짧게 답했다.

"네게 들을 말은 없어. 너를 죽이고 둘을 데려간다."

주위를 태우는 불의 장벽이 많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군 측에서도 적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병력을 내보내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이곳이 전장의 중심이 될 터, 그때가 되면 더욱 몸을 빼기 힘들어질 수 있었다.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달려드는 것보다 아라크네가 빨랐다.

"으아아아악!"

아라크네의 손이 닿아 있던 캐슬린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이 아이, 네 동생이라지?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이 아이의 마나 회로 전체를 뜯어내서 몸 자체를 마나 폭탄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들어 봐. 네게 할 이야기가 있어. 네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후우……."

호흡을 가라앉혔다.

아라크네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이제야……."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온몸 구석구석 오러를 밀어 넣으며 땅을 박찼다.

아라크네는 순식간에 내 눈앞에 있었다.

당황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놈의 손이 다시 한번 캐슬린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그대로 마나 소드를 놈의 팔꿈치 안쪽에 찔러 넣었다.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뒤틀렸다.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팔을 베어 몸통과 분리시키고, 어깨에서 솟아 있는 거미의 다리도 잘라 버렸다.

가슴을 찌르고, 다리를 베고, 마지막으로 놈의 눈에 마나 소드를 박아 넣었다.

"으아아아아아! 감히! 감히 나르으을!"

아라크네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말로리 경의 몸이 앞으로 둥글게 휘어졌다.

곤충이 변태하듯 말로리 경의 등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아라크네가 솟아났다.

순식간의 인간의 껍질을 벗어던진 아라크네가 나를 향해 날카롭게 다리들을 뻗고, 질기고 억센 거미줄을 뱉어 댔다.

"멍청한 놈이! 오냐오냐 했더니!"

땅에 닿은 거미줄은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땅을 부식시켰다.

이미 주위는 치열한 전장이 되어 있었으나, 아라크네의 기괴한 모습 때문인지 아군과 적군 모두 접근하는 자는 없었다.

마나 소드를 창 형태로 만들어 아라크네에게 던졌다.

천지를 찢을 듯이 날아간 마나 소드는 아슬아슬하게 아라크네의 몸통을 스치고 지나갔다.

재빠르게 다시 마나 소드를 만들어 냈지만, 어느새 아라크네는 내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내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아라크네는 마법을 쓰지 않고 오로지 저 부식성 거미줄만을 이용해 내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있었다.

베어 내면 묻어 있는 부식성 액체가 튀고, 마법으로 태우면 폭발하는, 아주 성가신 물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온통 거미줄로 뒤덮인 땅 한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아라크네가 외쳤다.

"잡았다! 이 미친 꼬마 녀석! 네놈을 죽이고 저 두 마법사 녀석들은 죽을 때까지 내 노예로 만들어 주마!"

잔뜩 열이 올라 있는 아라크네를 향해 말했다.

"난 꼬마가 아니야. 그리고 잡힌 건 너지."

아라크네가 예의 그 거미줄을 뱉기 전, 마법으로 놈을 꼼짝 못 하게 압박했다.

마법은 쓰지 못할지언정, 이 녀석은 몇 천 년을 살아온 마법사, 마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할 것이 분명해서 확실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깟 걸로 나를!"

아라크네는 다리와 몸을 기묘하게 꺾으며 무형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멍청하긴."

내 뒤쪽에 마나를 응집시켰다.

마나가 응집해서 만들어진 발판에 강력한 충격이 느껴졌다.

거대한 그림자가 내 위를 넘어 아라크네를 덮쳤다.

눈을 감았다 뜰 정도의 순간이 지났다.

내 앞에 있는 것은 머리를 잃고 다리를 파들파들 떨고 있는 거대한 거미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괴악한 몸뚱어리 뒤, 아라크네의 머리를 아그작거리며 씹고 있는 투브가 보였다.

-그래, 하나하나 물어보는 것보다는 이렇게 지식을 흡수하는 게 빠르지. 근데 처음부터 이렇게 합공해서 죽이면 되는 거 아니었어?

캐슬린과 저비스를 챙기며 내가 답했다.

'교활한 놈이야. 처음부터 우리가 거세게 나갔으면 틈을 봐서 빠져나갔을 거야. 아님 이 둘이 다쳤던가. 적당히 약한 척을 해서 이놈이 방심하게 만든 거지. 네게 신경도 덜 쓰게 하고.'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싸움의 끝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피유우웅!

아군 진영에서 무언가가 하늘 높이 솟았다.

공중에서 폭발한 그것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가루를 전장에 수놓기 시작했다.

반오러 물질이었다.

붉은 방패 기사단이 다시 전이 마법사와 함께 본진에 침투했다는 소리였다.

투브의 등에 캐슬린과 저비스를 올리고 투브에게 외쳤다.

"지휘 막사로 가자! 얼마 남지 않았어!"

***

같은 시각, 황궁 내부 감옥

황실 시종장, 얄츠 이나타 백작이 자신의 종형제인 페익스 이나타, 히베아 변경백과 마주하고 있었다.

둘의 사이는 차갑고 무거운 철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변경백은 가볍게 대꾸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거짓을 말해 무얼 하겠느냐."

시종장이 철창을 붙잡고 외쳤다.

"왜요! 왜 그러신 겁니까!"

"나야말로 폐하께 묻고 싶은 것이다! 왜! 폐하께서는 대체 왜 그러셨던 것이냐! 왜 나를 가두고, 카몰 후작을 죽이려 하셨던 것이냐! 너라도 말해 보거라!"

시종장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뒤에 시종장이 입을 열었다.

엄중한 목소리였다.

"폐하께서 그냥 넘어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형님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형님이라. 네게 그렇게 불려 본 것도 오랜만이구나."

작위에 오른 이후로는 항상 작위로 서로를 호칭했던 종형제였다.

페익스 이나타가 얄츠 이나타를 불렀다.

근엄하고 자애로우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얄츠."

다음 순간 변경백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시종장을 바라보는 변경백의 눈은 마치 야수의 눈과 같았다.

"나를 죽인 이후의 일을 폐하께서는 감당할 수 있으시다더냐?"

시종장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이나타 가문의 문장에 그려진 독수리가 자신을 정면으로 덮칠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끼며 시종장은 빠르게 감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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