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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70화 (170/180)

죽은 자는 말이 없다 (1)

도주한 인원들을 포획해서 지휘 막사로 데려가는 길, 전장은 한창 정리 중이었다.

도깨비들이 어찌나 힘을 써 댔는지, 수도 주위의 땅 곳곳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막사가 있었던 자리에 불덩이가 직격했는지, 숯이 되어 버린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역시나 새카맣게 변해 버린 흔적들이 있었다.

다 타 버려 구분이 어려웠지만, 많은 수의 흔적들이 수도방위병단의 갑옷 혹은 노체군, 루지온군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도깨비 놈들, 또 거하게 한 번 했나 봐.

'보나마나 둘이 경쟁이 붙었겠지. 역시 떼어 두고 오게 하는 쪽이 옳았던 게 아닐까…….'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재빠르게 마법사들이 곳곳에 불을 밝히고, 병졸들이 그곳에 모여 횃불을 만들어 다시 이곳저곳에 세웠다.

저 멀리 일야관으로 향하는 길에도 횃불이 빽빽하게 밝혀졌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잔당인 모양이었다.

"각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갑옷을 갖춰 입은 로하나스가 말을 타고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가온 로하나스가 고개를 뻗어 내 뒤를 넘겨봤다.

물 샐 틈 없이 단단히 결박되어 있는 자들을 보고 로하나스가 내게 말했다.

"일이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러게, 기다리느라 지루했는데 때 맞춰 나오더라고. 안쪽의 상황은 마무리가 됐나?"

"예, 황궁과 수도 전역을 성공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저항하는 자들은 말씀하신 대로 처형했습니다."

"처형한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되지?"

"붉은 방패 기사단 13명, 황실 마법사 2명이었습니다."

"쓸데없는 충성심에 목숨을 버렸네. 황실 마법사 중에서도 특수 마법사들의 확보는 어떻게 되었지?"

"전투에 휘말려 들었는지 실종 상태인 자들이 몇 있습니다."

"실종?"

"예, 명부와 시신을 대조 중이지만 전투의 여파가 컸던지라 시신의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날이 어두워져서 진척이 느려질 것 같습니다."

"그중 전이 마법사가 있나?"

"없습니다. 다만 전이 마법사 하나가 두려움을 느껴 전이 마법을 시전하다 감시역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멍청하긴. 전이 마법사는 대륙 어디를 가도 환영받을 건데 두려움을 못 이겨서 바보짓을 하다니. 시신 대조를 서두르고, 수도의 시민들에게 사태가 진정되었음을 알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카멜 할은 발견했나? 수도 내의 수도방위병단이 하수도로 중점을 옮기면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카멜 할 장군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하수도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수도 밖에 있는 지휘 막사로 향하는 동안, 옆에서 로하나스가 이런저런 상황을 알려 주었다.

도깨비들이 적 진영에 불을 뿌렸네, 당황하는 그자들에게 다시 한번 반오러 물질을 뿌려 아군 기사들이 돌진했네, 남은 적들은 경량 갑옷을 입은 일반병들이 처리했네, 경량 갑옷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네 하는 얘기들이었다.

"일야관 바깥에는 에베군과 제뉴인군이 버티고 있다 합니다. 남은 적들은 일야관에 고립된 셈입니다."

"다른 관문들은?"

"히베아군과 산탄다르군이 병력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각 관문으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관문에 주둔 중인 수도방위병단의 부대들이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 많은 병력을 내려보냈다가 큰 손해를 보았으니 더 이상 병력을 보내는 것은 힘들 겁니다."

"그 판단은 베이카 장군이 하신 건가? 역시는 역시야."

"각하께서 황궁 전투 이후 다른 지시 없이 수도 밖으로 빠져나오셔서 당황했지만, 다른 지휘관분들께서 잘 해 주셨습니다."

내가 뒤쪽을 흘끗 바라보고 말했다.

"이놈들 확보가 최우선이라 생각했거든. 정확한 위치를 아는 건 나밖에 없었고."

"대단하십니다. 통로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수가 있지."

어느새 아군 진영이었다.

장교와 병사 몇이 다가와 내가 데리고 오던 자들을 투옥하기 위해 데리고 갔다.

"후작께서 돌아오셨다!"

누군가의 외침에 병사들이 달려 나와 환호하기 시작했다.

"후작께서 귀환하신다! 모두 나와 맞아라!"

"이겼습니다! 저희가 이겼습니다!"

"늑대의 저 당당한 걸음을 봐! 우리의 수호신이다!"

삽시간에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로하나스가 병사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잔뜩 흥분한 병사들은 쉽사리 길을 내 주지 않았다.

"늑대의 털을 가지면 만사형통이다!"

누군가가 외친 소리에 사람들이 투브의 털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 하지 마! 뭐야! 왜 이러는 거야! 하지 마!

당황한 투브가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마나로 발판을 만들어 가볍게 밟고 이동했다.

마치 공중을 걷는 듯한 그 모습에 병사들의 함성은 절정에 달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하나스가 보였다.

지휘 막사에서 보자는 뜻으로 손을 몇 번 휘저어 주었다.

지휘관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승리의 고양감으로 가득 찬 병사들은 쉽사리 흩어지지 않았다.

로하나스가 지휘 막사에 돌아오려면 고생 깨나 할 것 같았다.

-단순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투브였지만 아래를 보는 눈빛은 굉장히 우월감에 젖어 보였다.

그때 병사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으며 가볍게 움직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이 공중에 훅 뜨더니 2개의 작은 불덩이가 되어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주위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익숙한 목소리가 불덩이에서 들렸다.

"나리! 오랜만여유! 잘 지내셨쥬?"

"지들이 힘 좀 썼는디, 맘에 드시남유?"

도깨비 둘이었다.

"훌륭합니다. 잘 해 주셨어요. 제뉴인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몰에 있다는 소리를 알버트에게 처음 들었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요."

"에이, 지나간 일을 뭘 신경 써유. 지금이 중요헌 거지."

둘은 내가 반가웠는지 온갖 얘기를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 대던 도깨비들의 수다는 투브가 지휘 막사 앞에 내려앉고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도깨비 둘도 불덩이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힘을 또 어찌나 퍼부었는지, 이번에도 둘 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내가 투브에게서 내리자 투브는 개의 모습으로 크기를 줄이고 막사 밖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도깨비들은 그런 투브가 마냥 좋은지 투브 뒤를 졸졸 따라갔다.

분명 투브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투브를 향해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도깨비들을 보고 투브가 저리 좀 가라고 꼬리를 홰홰 흔들었지만, 도깨비들은 멈출 마음이 없어 보였다.

-가, 이놈들아!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는지 지휘 막사 안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아버지, 변경백 형제들과 카른, 베이카 장군, 알버트, 그레이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과거의 삶에서였다면 각기 다른 곳에서 각자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 사람들이었다.

내 행동으로 인해 바뀐 운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왠지 모를 장대한 광경이었다.

아버지 앞으로 다가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왠지 말이 입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꺼낸 말은 참 평범한 것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덥석 안았다.

"그래, 고생 많았다."

"아버지,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비가 고생한 아들을 안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

왠지 모르게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버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던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해서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아버지가 나를 품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일라이자에게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어머니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누이론트 백작 부인과 함께 있단다. 장소는 이래도 오래간만에 해후하는 것이니 할 말이 많을 테지."

"캐슬린은 깨어났습니까?"

아버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아직이다. 하지만 저비스가 기운을 차렸다고 하니 캐슬린도 금방 일어날게다."

굵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크흠."

변경백이었다.

"부자 상봉을 방해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공작 각하. 하지만 격전을 벌인 카몰 후작을 너무 오래 세워 두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안쪽에서 이야기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그 말에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막사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래, 전투에서 이긴 것이지 전쟁에서 이긴 것은 아니다. 어서 마무리를 하자꾸나."

처음에 우르르 몰려나온 것처럼, 이제 다시 아버지와 나를 선두로 우르르 막사 안으로 들어가는 꼴이 되었다.

이럴 거면 그냥 안에 계시지 왜 나오셨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일단 참아 냈다.

그 이후에는 꽤 늦은 시간까지 작전 회의가 진행되었다.

황제가 죽은 마당에 최대한 피를 덜 흘리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자고 이야기가 된 뒤, 부대의 지휘관들이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왁자지껄했던 지휘 막사가 잠잠해 질 때쯤, 회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베이카 장군이 내게 말했다.

"약속을 어기신 것, 알고 계십니까?"

나가려고 몸을 일으키던 그레이스와 변경백이 나와 베이카 장군의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앉았다.

내가 간결하게 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 손을 대지 않는다는 약속 그리고 폐하와 대면하게 되면 저와 제 부하들을 앞세운다는 약속이었지요?"

"예, 그것이 최소한의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라 하신 것도 기억합니다."

베이카 장군의 꼿꼿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이었다.

"알고 계시면서도 어째서 그렇게 하신 겁니까?"

"제 정의와 폐하의 정의가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각하의 행동이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군은 황제와 제국에 충성합니다! 각하의 그 행동은 스스로 쌓아 올린 신뢰를 부숴 버린 일이었습니다!"

"그럼, 제가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제가 나섰기에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나서기 전, 황제는 단신으로 황궁을 점령하던 아군의 일각을 격퇴할 뻔했습니다. 단독으로요! 제가 나서서 황제를 막지 않았더라면 아군의 피해가 얼마가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어 내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내세운 명분이 무엇입니까! 구국(救國)입니다. 제국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 자들이 황제를 죽이다니요! 우리는 명분을 잃었습니다! 역도라 손가락질받아도 할 말이 없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제국은 긴 혼란의 시기를 겪을 겁니다. 황제라는 견고한 상징이 인간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막사 안에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다.

"변경백."

"말 하시게, 후작."

"황실에 대한 이나타 가문의 충심은 변함이 없습니까?"

"물론일세."

"그렇다면 황실의 존속에도 신경을 쓰셔야겠군요."

"역시나……."

변경백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공주 마마를 황제로 옹립하시지요. 공주 마마께서 황제의 곁에서 저를 공격했다고는 하나, 황제의 협박에 이기지 못해 그리했다고 소문을 퍼트리면 좀 나을 겁니다. 유일하게 남은 변경백 가문의 지지인 데다가, 아마 아버지와 에베 공작 역시 그 결정을 지지할 겁니다. 산탄다르는……."

내가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레이스가 짧게 답했다.

"나도 지지하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베이카 장군을 향해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승자의 목소리는 선명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면 감히 명분을 들이밀며 반기를 드는 자는 없겠지요. 저희는 '암군'을 몰아내기 위해 '반정'을 계획한 것입니다. '역모'가 아니라요."

내가 일어섰다.

"장군의 헌신적인 지지와 공헌은 제가 직접 새로운 황제께 진언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만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것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베이카 장군의 뒤를 지나칠 때,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어째서 각하께선 새로운 황제의 옹립을 지지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누구보다 영향력이 크시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때 제가 수도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제 지지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감옥 쪽으로 발을 옮겼다.

복수극의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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