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6화 (6/164)

◈ 6화 Chapter 2: 여행길 (3)

“……네?”

“쟁기라니까.”

당황한 하이디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 [농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어. 꼬맹이.”

아무튼, 이놈의 세계관은 출세 좀 했다 싶으면 기본이 반말 탑재에 개념 밥 말아먹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찍소리도 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중화요리를 좋아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정체를 ‘전대 용사’로 추측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눈앞에 있는 저 [농부]는,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농부’가 아니었으니까.

건들거리는 말투와 몸짓은 그가 얼마나 이 상황에서 여유를 갖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아아, 아무튼 귀찮다니까.”

「임팩트 있는 등장과 함께하였습니다! 등장인물 ‘농부’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9.7%」

“…….”

저 정도의 [비중]이라면, 당장 주인공 옆에 달라붙어 있는 조연들과 비교해도 결코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 아닐 터.

일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마족 하이디’와 눈앞에 있는 ‘농부’의 차이는 단 한 가지였다.

주인공과 연관된 인물인가,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이디는 후자였고, 농부는 전자였다.

바로 그 점이 이러한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기껏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시켜 준 기분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원래 이렇게 불합리한 것을.

“당신은 누구시죠?”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대답은 몇 가지 없었으나, 내가 굳이 그 사실을 묻는 이유는 간단했다.

‘쐐기’를 박는 것.

“네가 찾는 놈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거봐라.

“그게 누구인데요?”

“잘 생각해 봐.”

“그냥 말해 주시죠. 아시다시피 저는 갈 길이 바쁜 터라.”

“그래? 그러면 그냥 가. 아까는 잘만 가더만.”

……이게 또 이런 식으로 되네. 망할 자식.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밖에.

“다 큰 어른이 애가 한 행동을 그렇게 쪼잔하게 마음에 담아 둘 건가요?”

정확히 악센트를 넣어서 ‘쪼잔’을 강조한 내 말에 농부의 이마에 작은 내 천(川)자가 새겨졌다.

그러나 상대는 어설픈 도발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자기를 애라고 말하는 애는 본 적이 없는걸. 그리고 옛날에는 너 정도면 애도 낳았어.”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정체에 큰 흥미를 가집니다!」

어째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자고 너무 거물을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빠져나갈 구멍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어요. 하지만 이미 알고 계셨잖아요? 아까 당신의 부탁을 수락하였다고 한들, 우리는 이 코볼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걸.”

“그랬었지.”

이것이 바로 [농부]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었다.

스스로 코볼트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어째서 제 한 몸도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소년 소녀에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했는지.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집니다!」

이제 남은 일은, [독자] 놈들의 도움을 받아서 눈앞에 있는 ‘농부’의 [설정]을 깡그리 지워 버리면 될 일이었다.

나는 이미 하이디에게서 그 현상을 목격했었고, 그것은 앞으로 몇 마디만 더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나는 지금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비록 지금은 너희가 내가 있는 [구역]까지 도망쳐 왔기 때문에 도울 수 있었지만, 내가 이 장소를 함부로 벗어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망할.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어졌어.”

소설 속에서 은거 기인이나 전대 용사 같은 먼치킨 놈들이 산속이나 어디 은둔지에 짱 박혀 있는 이유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석 중의 정석적인 클리셰는 뭐니 뭐니 해도 아직 세상에는 깨어나지 말아야 할 ‘거악’을 막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뻔한 세계에서, 십중팔구는 ‘거악’이 깨어나고 만다.

「다수의 독자가 [농부]의 말을 경청합니다!」

“용사를 찾는다고 했지?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도 그와 같아.”

……망할 자식이.

네가 그렇게 나오겠다면 나도 철저하게 네 [설정]을 짓뭉개 주마.

“지금 같이 용사를 찾으러 가자는 거예요? 그렇게 급한 일이었다면 예전에 만났을 때 따라가지 그랬어요?”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개연성]이 미약하게 흔들립니다!」

“하하.”

웃어?

그 웃음을 본 순간,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로서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그런 거대한 흐름이.

“나보고 녀석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라고?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 목적은 녀석과 사이좋게 손잡고 세상을 구하겠다는 꿈이나 꾸는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

「[개연성]이 안정화됩니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약속된 전개가 당신의 행동을 재촉합니다.」

……아, ‘그쪽’인가.

“한때나마 그런 꿈을 꾸었었지.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어리석은 꿈. 하지만 나는 틀렸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하고, 억압받아야만 하지. 지금 쌓아 올린 거짓된 평화 역시도, ‘마왕’이라고 명해진 이들의 희생 끝에 이루어진 가짜에 불과해. 나는 그런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다던 ‘거악’이 무엇인지.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사상에 동조합니다!」

……니들이 그러면 어쩌자는 거냐.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품어 왔을 뿐, 감히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너와의 만남이 지금까지 나를 묶어 왔던 내 망설임을 없앴다.”

“……나와의 만남이?”

“거침없는 너의 행동을 보니,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더군.”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아주 편한 대로 이용해 먹는군.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다.

저 방식이야말로 지금껏 내가 이 세계를 이용해 왔던 방식이었으니까.

‘되로 주고 말로 받았군.’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나는 멍청한 용사 놈을 죽이고, 이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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