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7화 (7/164)

◈ 7화 Chapter 2: 여행길 (4)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웠습니다! 등장인물 ‘농부’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1.7%」

……망할 놈이.

멋있는 건 자기가 모조리 독식해서 주가를 쭉쭉 올리고 있는 꼴이라니. 배알이 꼴려서라도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농부’의 목적은 알았다.

하지만 녀석의 뜻대로 굴러가게 둘 수야 있겠는가.

“그러니까…… 용사를 쳐 죽이기 위해서 저와 함께 가고 싶다고요? 하지만 굳이 왜요?”

“내 눈썰미를 무시하지 마. 네가 용사를 찾아가려는 이유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망할 자식.

‘마족 하이디’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뻔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대처했었으나, 눈앞에 있는 ‘농부’는 아니었다.

“제 목적이 뭔데요?”

“그거야 네가 알겠지. 나는 네 목적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눈앞의 ‘농부’에게는 하이디 때처럼 ‘이성’이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사용할 수 없고, 어설픈 [개연성]을 통한 공략도 모조리 수포로 되돌아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독자] 놈들의 반응이었다.

「소수의 독자가 웃어른에게 말대꾸하는 당신의 건방진 모습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제 목적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제가 왜 당신과 함께해야 하죠?”

“안 그러면 죽으니까.”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사이다성 행동을 지지합니다!」

……그딴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앞으로는 어설프게 [개연성]과 [설정]을 건드려서 함부로 등장인물들을 변화시키지 않기로.

직접 겪어 보니, 눈앞에 있는 ‘농부’는 정말이지 보통이 아니었다.

애초에 [개연성]을 뒤집고서 탄생시킨 인물이라서 그런지, 웬만한 [개연성] 지적은 가볍게 넘길뿐더러, 이 재미없는 양산형 쓰레기 소설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인물상마저도 은근히 거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라?’

잠깐만…… 인물상을 거스르고 있다고?

의심암귀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어쩌면, 이 분위기를 내가 주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가 슬쩍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마찬가지야.”

“힘없는 자는 핍박받고, 돈이 없는 자는 팔려 나가며, 결국 당연한 듯이 목숨까지도 내놔야 하는 이 뻔한 세계가 저는 너무나도 지긋지긋합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군.”

「소수의 독자가 그 사상에 동조합니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약속된 전개가 당신의 행동을 재촉합니다.」

“저는…… 이 세계를 부술 겁니다.”

정확히는, 이 ‘소설’을 말이지만.

“마찬가지다. 용사 놈을 죽이는 것은 일차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아. 내 목표 또한 너와 같다.”

「[클리셰]가 거칠게 요동칩니다!」

「등장인물, ‘농부’의 [정의]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네까짓 게 지금까지의 인물상을 거스르고 있다면, 내가 만든 [인물상]에 너를 때려 박아 넣어 주마.

“그렇다면 이제 말해 주세요. 당신은 누구죠?”

「[클리셰]가 거칠게 요동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농부’의 발언을 기다립니다!」

“내 이름은 ‘베른’. 과거에…… [용사]였던 자다.”

「등장인물, ‘농부’의 명칭이 ‘전대 용사 베른’으로 변경됩니다.」

「일부 독자가 이미 예상했던 정체에 약간의 실망감을 표합니다.」

「숨겨졌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1.9%」

「[클리셰] [악당이 된 영웅]이 완성되었습니다!」

「클리셰의 완성으로 일부 [클리셰]가 복원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0.02%」

이리저리 톡톡 튀는 녀석을 [클리셰] 안에 가두려고 하다 보니 비록 약간의 출혈이 있기는 했으나, 상관없었다.

오늘 얻은 것은,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았으니까.

“제 이름은 반. ‘아인즈 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반”

「[악당이 된 영웅]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악]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정의]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악]과 [정의].

얼핏 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였으나, 사실 이 두 개가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의]가 항상 [선]이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파티를 주목합니다!」

「[대의명분이 있는 악당] 버프가 적용됩니다.」

「일부 [개연성]을 무시합니다.」

「[대의명분이 있는 악당] 파티에 합류하셨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8.1%」

오호.

비록 [주인공] 버프에 비할 바는 아닐 테지만, [악당]으로서의 버프도 나쁘지만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원래의 예정 대로였다면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야금야금 조금씩 이 세계에 깽판을 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베른.”

“어.”

“용사 일행이 페론 마탑으로 향한 지 시간이 얼마나 됐죠?”

“서두르면 못 따라잡을 것도 없다만…….”

그렇게 말을 하던 베른의 시선이 어느새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 있었던 하이디를 향했다.

“……다 끝났어?”

아무래도 작가 놈이 하이디를 까먹었는지, 대사 몇 줄 쓰고 그대로 방치한 뒤로 쭉 저 상태였던 모양이었다.

베른이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무리겠지?”

“그러네요.”

유유자적할 용사 일행의 이동 속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강행군을 감행한다면 페론 마탑에서 따라잡을 수도 있었으나, 하이디가 있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제가 방해되면 버, 버리고 가셔도 괜찮아요.”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제법 눈치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반면에 어느새 그렁그렁해진 하이디의 눈망울은 설마 우리가 자기를 정말로 버릴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인성을 지켜봅니다!」

「일부 독자가 소녀를 울린 당신에게 맹렬한 비난을 쏟아붓습니다!」

……아직 안 울렸어. 망할 놈들아.

“버리긴 누가 버려?”

“세계를 구한다고 해 놓고, 작은 소녀조차도 구하지 못해서야 우습겠지.”

「소수의 독자가 당신의 뻔한 선택에 지루해합니다!」

……이래도 지랄. 저래도 지랄.

아무튼 [독자] 놈들은 상대하면 피곤해지기만 한다.

[독자]와의 실랑이를 끝낸 내가 슬쩍 말했다.

“그리고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페론 마탑까지 빠르게 가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그런 방법이 있었나?”

“……정말?”

정말 있고말고.

어느새 기대감으로 가득 부풀어 오른 하이디의 시선과 자기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베른의 시선.

내가 말할 방법은 만약 누가 듣는다면 미쳤다고 소리를 지를 법한 방법이었으나, 그거야 뻔한 놈들의 반응일 뿐.

“그거 알아? 이 근처 뒷산에는, 드래곤이 살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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