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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8화 (8/164)

◈ 8화 Chapter 3: 블랙 드래곤, 루 (1)

내가 드래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는지, 베른이 눈을 크게 떴다.

“……드래곤? 설마 블랙 드래곤 루를 말하는 건가? 아직은 ‘그’ 용사조차도 모르는 사실일 텐데…… 반, 너는 도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지?”

“뭐, 나름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죠.”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던데.

“……좋아. 점점 더 네가 마음에 드는군.”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 님께서 당신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특정 장르를 지지하는 여성 독자가 연상연하 커플을 지지합니다!」

……그거참, 안됐네. 덕분에 나는 지금 네가 막 싫어지려고 했으니까.

「특정 장르를 지지하는 여성 독자가 부끄러워하는 당신의 [츤데레] 성향을 보며 콧김을 내뿜습니다!」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8.2%」

……너, 다음에 걸리면 죽는다. 진짜로.

제아무리 [비중]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지만, 저런 식의 [비중]은 정중히 사양이었다. 누군가의 뇌 내 망상 속에서 벗겨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내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걷는 동안 베른이 물었다.

“그런데 드래곤은 만나서 어쩔 생각이지?”

너무나도 뻔한 질문이었기에 내 입에서 나간 것 역시도 뻔한 대답이었다.

“타야죠.”

“……탄다고? 드래곤에게 페론 마탑으로의 이동 마법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래도 되지만 그렇게 뻔한 방법은 내가 싫었다.

안 그래도 네놈 때문에 지금까지 고생해서 깎아 놓은 [클리셰 붕괴율]이 반절 이상 복원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 상황에서, 내가 그런 뻔한 방법을 사용하고 싶겠는가?

만약 이런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라도 더 일어났다가는 이 세계를 부숴 버린다는 내 목표는 영영 물 건너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으니 더욱 그랬다.

“세상에 다리가 달린 짐승은 모두 다 탈 수 있어요. 말은 물론이거니와, 소나 돼지, 그리고 덩치만 좀 된다면 개조차도 탈 수 있죠. 그런데 드래곤이라고 해서 뭐 다르겠어요?”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신박한 개소리에 감탄합니다!」

“고작 이동 수단으로 쓰자고 그 위험을 감수한다고? 블랙 드래곤 루가 어떤 놈인지 알지 못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모르지.

동네 사람들이 드래곤 성격까지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으니까. 심지어 피부색도 방금 알았다.

“어떤 놈인데요?”

“……그랬군.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어. 그나마 무모한 행동을 하기 전에 알아채서 다행이군. 설명해 주지. 블랙 드래곤 루는 인간을 가장 많이 학살한 드래곤 중 하나다. 본래라면 악룡이라며 용사에게 퇴치되었어야 할 운명이지만, 어째서인지 그 어떤 용사도 루를 퇴치하지 않았지.”

“당신도 용사였잖아요?”

「다수의 독자가 당신이 가진 의구심에 동의합니다!」

“……내가 루의 존재를 알아챈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만약 내가 알았다면 그런 악룡을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지.”

설정 급조하느라 짜 맞춘 주제에 말은 잘해요.

하지만 어쨌거나 [개연성]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으니, 이 멍청한 작가 놈도 드디어 어느 정도 적응을 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녀석의 등 뒤에 타겠다니. 너무 무모해. 나는 반대야. 용사 놈의 목을 따기도 전에 죽어 버릴 거라고.”

물론, 자칭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 베른이 순순히 내 미친 짓에 쉽사리 동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모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기존의 용사들이 어째서 루를 퇴치하지 않았는지 짐작 가는 것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베른 당신이라면 ‘루’를 이길 수 있겠어요?”

“내가 현역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무리다.”

어차피 별로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쓸 만한 패가 줄어드니 내심 아쉽기는 했다. 애당초 그가 지금 그 악룡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면, 내 옆에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진작 용사와 결판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물었다.

“어째서죠?”

“용사의 진정한 힘은 일인전승의 힘이다. 내가 당장 용사 놈을 죽이려는 이유도, 녀석을 죽여서 용사의 힘을 다시 탈취하려는 목적이 더 커. 그 힘이 있어야만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무협 소설 애독자가 [일인전승]의 힘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일인전승이라…… 아무리 짬뽕이라지만 이거 나름대로 판타지 세계관 아니었냐?

아무래도 망할 작가 놈이 정신 못 차리고 이것저것 가져다 쓴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 족보대로라면, ‘용사’ 계보에 상당한 개족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설정]과 [개연성]의 허점은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나 다름없었으니, 아낄 수 있으면 되도록 아껴 놓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 일행은 ‘반의 고향마을’까지 되돌아와 있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서 갔던 거리를 되돌아오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저기로군.”

반의 고향마을.

이름조차도 모르는, 아니 없는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숙소 하나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찌릿하고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돈 있는 사람?”

“농부한테 돈이 어디 있어?”

전대 용사 타이틀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망할 자식아. 돈이 없으면 성검 같은 거라도 팔아 와!

“반납했는데.”

“…….”

그러면 그 잘난 쟁기라도 팔아 와, 망할 놈아.

“농부라니까.”

나는 베른의 뻔뻔함에 기가 질려서 슬쩍 시선을 하이디로 옮겼다.

무엇을 기대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 때문이었다.

“돈 관리는 네가 한다고 해서…….”

물론, 어쩔 줄 몰라 하며 울먹거리는 하이디는 내 갈굼에서 무조건 면제였다.

어떻게 사람이 순진해도 저렇게 순진할 수가 있나 싶었지만, 이곳이 ‘소설 속’임을 상기한 나는 조용히 납득했다.

「소수의 독자가 [대의명분을 가진 악당] 파티의 가난함에 연민을 느낍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주인공] 파티 녀석들은 지금쯤 왕궁 풀코스 요리를 즐기며 초호화 여행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옆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인들을 왕창 낀 채로 말이다.

괜히 녀석이 더 미워졌다.

그리고 얄미운 녀석은 옆에도 있었다.

“결국 노숙행이군.”

“누가 쟁기만 팔았더라면 며칠은 괜찮았을 텐데. 그렇죠?”

“산속 바람을 맞으면서 아침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절로 힘이 나는군. 서두르자고.”

우리가 노숙 장소로 택한 곳은 바로 그 ‘뒷산’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어차피 노숙한다면 시간이라도 단축하게 가는 길에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하이디와 단둘이 노숙했을 때와는 상당히 질적으로 다른 노숙이었다.

나름대로 ‘전대 용사’인 베른이 파티에 낀 덕분이었다.

베른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낙엽과 장작을 모아서 지핀 모닥불에 둘러앉은 우리는 슬슬 잘 준비했다.

“이봐, 꼬맹이…… 아니, 반.”

“왜요?”

“아까는 이야기하다가 말았었는데, ‘루’를 설득할 방법이라는 게 도대체 뭐야?”

「다수의 독자가 그 궁금증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루’를 만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영 불안해서 말이야. 조금만 말해 주면 안 될까?”

“잠이나 자시죠.”

내가 지금 베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말해 주기 싫어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말을 해 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하이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근데…… 아까부터 이야기 나누시는 데 방해될까 봐 말은 안 했는데요.”

아무래도 우리가 떠드는 통에 잠들지 못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 둘이서 아까부터 나누던 대화에 나오던 드래곤 말인데요.”

“뭐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왜?”

“이봐, 소녀. 지금은 꽤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나중에 말해 주지 않겠어?”

나와 베른의 시선이 꽂히자, 하이디가 우물쭈물하던 손가락으로 숲 저편을 가리켰다.

“그 드래곤이…… 아까부터 저기서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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