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Chapter 3: 블랙 드래곤, 루 (3)
「다수의 독자가 지나치게 늦은 업데이트에 반감을 표합니다!」
아무래도 망할 작가 놈이 이제 하다 하다 지각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이내 분노로 가득 찬 거대한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초면부터 쌍욕이 날아갔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고울 리가 있겠는가.
[감히!]
골수까지 울리는 저 포효는 아까 들었던 드래곤 피어와도 사뭇 달랐다.
말 그대로 순수한 분노의 표출.
때문에 아까보다는 그나마 덜했지만, 당연히 뭣도 없는 무지렁이인 나에게 영향이 없을 리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얼굴 근육은 이미 굳어 버렸는지 말하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굳어 버린 혀를 억지로 굴리며 굳은 얼굴 근육으로 이죽거렸다.
“어째 수천수만 년을 살았다는 족속들이 이리도 단순한지.”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죽거리는 내 얼굴과는 다르게 그 앞을 막아선 베른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제기랄, 반!”
하기야, 당장 코앞에 집채만 한 드래곤의 앞발이 재앙처럼 닥쳐오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콰아아앙!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건지, 간신히 쟁기를 들어서 드래곤의 앞발을 막아 낸 베른이 구겨진 표정으로 외쳤다.
“뭐라도 해 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그거 알아요?”
“이 와중에 뭘!”
짜증으로 가득 찬 목소리.
그러나 그 짧은 여유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베른의 눈앞에서 재앙이 덮쳐 왔다. 제아무리 그라도 저런 무식한 공격이 몇 차례 더 온다면 ‘용사의 힘’ 없이는 버텨낼 수 없을 것이었다.
“비록 저렇게 생겼어도, 블랙 드래곤 ‘루’는 사실 멍청할 정도로 순수한 드래곤이라는 거.”
순간적으로 베른의 얼굴이 어이없음으로 물들었다.
수백 년 동안 인간들을 학살해 온 악룡이 이제 와 순수하다니?
아마 그는 지금 내 말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베른이 어이없어하는 그 짧은 틈은 곧 방심을 만들어 냈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루의 앞발을 막아 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젠장!”
쟁기를 치켜든 채로 굳은 결심을 한 베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베른을 쥐포로 만들 것처럼 달려들던 루의 앞발이 그의 코앞에서 멈췄다.
“……응?”
죽음까지도 각오했던 베른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치켜 올라갔던 앞발이 치워지고, 눈동자를 노랗게 물들인 루의 시선이 나를 향해서 내리꽂혔다.
[……그게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지. 너는 순수한 드래곤이야.”
사실, 내가 루에게 처음부터 쌍욕을 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부분강화효과’라고 들어보았는가?
간헐강화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효과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면, 원하는 반응 중 일부만 강화하는 것이 연속 강화하는 것보다 그 반응을 유지 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말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와 비슷했다.
즉, 매번 잘해 주는 것보다 어쩌다 한 번 잘해 주는 것이, 그리고 착한 놈이 잘해 주는 것보다는 나쁜 놈이 잘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보상이 크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일부 독자가 설명충의 출현을 달갑지 않아 합니다!」
「[설명충] 성향이 증가합니다!」
루의 눈동자가 눈에 보일 정도로 거칠게 떨렸다.
[순수…… 하다고? 내가?]
“그래. 물론, 어떤 인간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몰라. 블랙 드래곤 루는 인간을 학살한 악룡이다. 처치해야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너는 착하고 순수한 드래곤이야. 그렇지?”
[……그렇지 않다. 나는 분명히 너희 동족을 학살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보통 학살자들은 그렇게 자신의 학살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아. 그보다는, 왜 죽였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하지.”
[나는…….]
「다수의 독자가 파충류의 마음을 뒤흔드는 당신의 말재간에 감탄합니다!」
내가 언뜻 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러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이유에는 당연하지만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전대 용사]의 존재였다.
만약, 이 소설의 [용사]가 오직 주인공 한 녀석뿐이라면 악룡 퇴치는 되거나 말거나 하는 그저 배경 설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베른을 통해서 [전대 용사]라는 존재가 확립된 이상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인 무력을 소지한 [용사]가 있는데, 수 세대 동안이나 인간들을 학살한 악룡이 살아남아 있다고? 당연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때문에 나는 바로 그 [개연성]을 건드린 것이었다.
‘루’는 단순한 악룡이 아니라, [용사]가 해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는 드래곤이었다고 말이다.
그중에서도 예를 들자면 인간들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같은 인간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져서 그들을 학살했다던가 말이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도 이해해. 인간들이 미웠지?”
그 말이 신호가 되었던 걸까.
‘루’를 중심으로 세상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느낌……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짚은 모양이었다.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그제야 루가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족속들이었다. 동족을 억압하고,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서 목숨까지 빼앗다니. 그곳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웠다. 인간들이 너무나도 미웠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미워지게 된 이유는 결국 인간들을 위해서였잖아?”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
자,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도와줘. 네가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오글거림에 손발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한 로맨스 소설 애독자가 당신의 기묘한 발언에 흥분합니다!」
……이제는 인간으로도 부족해서 성별 불명의 파충류와도 엮이는 신세라니.
잠시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이용해야지.
[……네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은 반. 아인즈 반이야. 그리고 저쪽에 널브러진 못생긴 아저씨는 베른, 저기에 기절해 있는 귀여운 숙녀는 하이디라고 해.”
상황을 지켜보던 베른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역시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충분히 눈치챘을 것이다.
“……이거, 내가 어마어마한 녀석이랑 엮인 모양이군.”
말은 똑바로 하시지. 댁이 나랑 엮인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엮은 거야.
물론, 이건 생각뿐이었고 실제로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루가 말했다.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지?]
“나와 언약을 맺어 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세계의 드래곤들에게 있어서 언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확신하는 사실은 하나 있었다.
이 세계는, 진부함을 넘을 정도로 뻔하디뻔한 세계라는 것.
[……언약이라고?]
“그래, 내가 도움을 바라면 언제든지 나를 돕겠다는, 그런 언약.”
아무래도 쉽게 정할 사항이 아니었는지, 잠시 동안 고민을 하던 루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지만, 별로 내가 신경 쓸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알겠다.]
기분 탓일까.
검은색이어야 할 루의 비늘 색깔이 어딘가 붉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