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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2화 (12/164)

◈ 12화 Chapter 4: 페론 마탑 (2)

「한 독자가 제4의 벽을 의식하는 당신의 발언에 의아해합니다!」

짜식, 너도 그 영화 봤구나.

하지만 지금은 저런 댓글에 일일이 반응해 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다른 페론 마탑의 웅장한 모습.

그곳에서 수많은 마법사가 우리를 향해서 절대로 맞지 않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공격!”

“절대 드래곤을 마탑에 들여보내서는 안 돼!”

“그날의 악몽을 재현시킬 셈이냐! 어서 움직여!”

“마나가 없어? 마나가 없으면 생명력이라도 빨아들여서 쓰란 말이다!”

“왜 이렇게 안 맞는 거야?! 술식 계산 제대로 한 것 맞아?”

지금 페론 마탑에서 전쟁에서나 쓰일 법한 저런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닿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 발도 맞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병사들이 못나서가 아니다. 그들도 다른 이들을 쏠 때는 백발백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이유?

「[대의명분이 있는 악당]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뭐긴, 당연히 죽으면 안 되니까 그렇지.

비록 지금의 우리가 [주인공]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에 불과한 ‘페론 마탑’에 쓸려나갈 정도도 아니었다.

바로 그게 우리가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있는 이유였다.

“드래곤이 결계와 충돌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루의 거체가 페론 마탑을 지키고 있는 거대한 결계와 충돌했다. 명색이 대(待) 드래곤 전용 결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루의 몸은 거침없이 그것을 부수고 들어갔다.

콰아아아앙!

마나가 소멸할 때 일어나는 공명 현상이 일어나며 루의 몸을 둘러싼 보호막과 페론 마탑의 결계가 거칠게 충돌했다.

[가소롭다.]

무려 천 년간 제국의 막대한 예산을 때려 박았다던 페론 마탑의 결계는 그렇게 ‘루’에 의해서 너무나도 쉽게 파괴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드래곤이 그것을!”

모르긴 몰라도, 마법사들의 반응을 보아서는 아무래도 ‘루’의 힘이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명색이 용사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인간을 학살한 악룡으로서 살아남은 드래곤이다. ‘레’처럼 쪼잔한 행패나 부리고 다니던 녀석과 그 급이 같을 리가 있겠는가.

모든 결계가 파괴되자, 마탑 꼭대기에 있는 마법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법사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그가 이곳의 마탑주이리라.

“……우리 마탑의 역사도 오늘로써 끝이구나.”

“탑주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다 함께 대항하면 됩니다. 인근 영지에도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무려 천 년 동안 준비했던 마법공학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저 드래곤을 보아라. 당장 우리를 그대로 짓밟아 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얼굴을!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한 피를 흘릴 뿐이다. 너희는 어서 이동 마법진을 준비해서 후일을 도모하라.”

“……탑주님.”

“하나 아쉽구나. 만약 삼 일 전, ‘용사’가 떠나기 전이었다면 이 흉사에 협조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이 모든 운명이 우리를 놀리고 있는 듯해서 아쉽구나.”

이내 마탑주가 우리를 바라보며 강하게 외쳤다.

“드래곤! 천 년 전의 그 학살을 벌이고도 아직도 피가 모자랐느냐! 오냐. 내가 너의 갈증을 채워 주마! 하나 그것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 페론 마탑주, 페일! 결코 곱게는 당해 주지 않을 것이다.”

루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를 먼저 공격한 것은 너희다.]

“벌써 천 년 전의 학살을 잊은 것이냐, 아니면 알고도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냐!”

[그걸 왜 내가 했다고 단정 짓지?]

“우리를 기만하는구나! 블랙 드래곤 ‘레’여!”

[나는 ‘루’다.]

“…….”

명백하게 떨리는 마탑주의 눈동자.

“거, 거짓말하지 마라! 그렇다면 이곳에는 왜 온 것이냐! 우리를 학살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다.]

정확히는, 목적지가 이곳이 맞기는 했다만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가슴까지 자라난 흰 수염이나 자글자글한 주름이나, 무엇을 보아도 최소 백 살은 족히 살아왔을 법한 마법사가 ‘루’가 단지 몇 마디 했다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이라니.

실제로 백 살 먹은 노인네를 본 적 있는가?

아프리카에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잇값 못하는 노친네가 범람하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삶의 지혜라는 것은 결코 얕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한 노친네도 아니고, 명색이 마탑주라는 양반이 저런 이등병 같은 모습이라니.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이질감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독자가 마탑주의 지적 수준을 지적합니다!」

「일부 독자가 지나친 [설정] 오류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그만. 보고 있으니까 멍청한 작가 놈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가만히 저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 세계는 내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조만간 자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내가 그것을 순순히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잠깐.”

갑작스럽게 루의 등 뒤에서 등장한 내 모습에 마탑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내 옆에서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베른과 하이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무서웠지만, 반이 괜찮을 거라고 해서 믿었어.”

어찌 저렇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운지.

나는 하이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마탑주의 앞에 섰다.

“안녕하시죠?”

마탑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인간?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과 함께 있는 거지?”

“제 이름은 반, 아인즈 반이라고 합니다. 저쪽 뒤에 있는 예쁘장한 숙녀는 하이디, 그리고 옆에 있는 거렁뱅이는 알 필요 없고요.”

“누가 거렁뱅이야.”

“그러면 농부.”

“뭐…… 그 정도라면.”

「일부 독자가 당신의 콩트에 노잼을 표합니다!」

그렇게 내가 베른과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주고받는 동안, 마탑주 페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로 인간이 맞다고? 어떻게 인간이 드래곤과 함께…….”

“저는 ‘루’와 언약을 맺은 인간입니다.”

“뭐, 뭣?!”

드래곤과 [언약]을 맺은 인간.

베른의 말에 따르면, 이는 이천 년 제국의 역사에서도 능히 한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존재였다.

“……우리에게 바라는 게 뭐지?”

“용사는 이미 떠난 모양이군요.”

“용사? 그를 찾는 건가?”

“뭐, 일단은 그랬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용사만 찾을 생각이었지만, 난데없이 폭격을 당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맞고만 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에는 ‘용사’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거칠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부로, 이 마탑은 우리가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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