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13화 (13/164)

◈ 13화 Chapter 4: 페론 마탑 (3)

“……뭐?”

얼이 빠진 마탑주의 얼굴.

아무튼 이놈의 뻔한 세계관 속 등장인물들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얼 타기 일쑤였다.

“못 들었어? 마탑 내놓으라고.”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뻔뻔함에 감탄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탑주 페일이 호통쳤다.

“지금 드래곤의 위세를 등에 업었다고 해서 우리를 능멸하는 것인가!”

“어, 맞아. 잘 아네. 잘 알면서 왜 굳이 또 물어? 그러니까 빨리 내놔.”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0.03%」

「클리셰에 개입하셨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8.31%」

좋아. 최근에 조금 부진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어쨌거나 내 목표는 이 세계의 붕괴였다. 당연히 세계의 뻔한 법칙인 [클리셰]의 붕괴는 내 목표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마탑주 페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감히…….”

명백한 노기.

제아무리 마탑주의 자리를 꿰찬 마법사라지만, 드래곤 앞에서 쌍욕도 퍼붓는 내가 그런 기세에 밀려날 리가 없었다.

“감히? 먼저 공격한 게 누군데 그래? 원래대로라면 모조리 목을 따 버려도 할 말이 없는 걸 지금 간신히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렇다면 차라리 죽여라! 우리 페론 마탑은 너희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호오.”

아무튼 윗대가리 놈들은 이래서 문제였다. 지가 죽으라면 그 아랫놈들은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니면 설마 내가 그 호기를 보고 감탄해서 그냥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라도 한 건가?

제발 후자는 아니길 바란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장판파의 장비 같은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약속된 전개가 당신의 행동을 재촉합니다.」

제발 추측이길 바랐건만, 아무래도 정말로 통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와 함께, 오랜만에 느껴지는 본능과도 같은 흐름이 느껴졌다.

-“하하하! 페론 마탑주, 페일! 내 그대를 시험하였으나, 과연 이름 높은 페론 마탑주다운 호기를 지니고 있구나. 내 그대의 호기에 감탄하여 큰 상을 내리겠노라. 루! 어서 이자에게 아공간 창고를 열어 주거라!”

-“드래곤의 언약자께서 저를 시험하신 거군요! 이 페일, 언약자님의 은혜에 감복, 또 감복하였습니다!”

……설마 정말로 저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대다수의 독자가 마탑주, 페일의 행복회로에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아무래도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말하는 안타까움이란 페일의 안타까운 지능과 이 쓰레기 같은 소설의 안타까운 전개였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이 안타까움에 대해서 보답할 의무가 있었다.

“너희 생각도 그래?”

내가 고개를 돌려서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에게 묻자, 그들의 시선이 나를 피해서 이리저리 눈치만 살폈다.

“흐음.”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오케이. 그러면 다 죽이지 뭐.”

“따르겠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광석화처럼 달려와서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부탑주의 모습.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페드로의 간사함에 혀를 찹니다!」

「일부 독자가 그 주장에 반박하며 페드로의 재빠른 기지를 응원합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0.04%」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탑주 페일이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페드로! 감히 네가 마탑을 배신하는 것이냐!”

“탑주님!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여기서 죽는 건 개죽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네가 감히!”

당장이라도 마법을 흩뿌릴 것처럼 위협적으로 지팡이를 치켜든 마탑주 페일의 지팡이가 순식간에 가루로 흩어져 내렸다.

[감히 누구 앞에서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냐.]

그리고는 울려 퍼진 루의 절대적인 목소리.

제아무리 마탑주에 이른 마법사인 페일이라 할지라도 ‘루’의 앞에서는 시베리아 호랑이 앞에 선 새끼 고양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말했다.

“대충 결정 난 것 같네.”

늘 그렇지만, 고인 물은 언제나 썩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늘 새로운 빗물이 자리를 채우는 법.

내가 눈치 빠르게 가장 먼저 이쪽에 붙은 부탑주, 페드로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네가 페론 마탑의 마탑주다.”

어차피 쭉 이 마탑에 눌러살 생각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적당한 대행자를 찾을 필요가 있기는 했다.

페드로는 바로 그 점을 눈치 빠르게 치고 나온 것이었고.

“감사합니다!”

“저 늙은이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전 마탑주, 페일은 루에게 당한 디스펠 때문에 일어난 마나 역류로 인해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페드로…… 이 배신자가……!”

“배신이라고? 당신의 노망에 우리 마탑의 명운을 거는 당신이 진정한 배신자다.”

“쿨럭!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제국이라는 말에 페드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탑주…… 아니, 페일.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제국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어. 헛바람만 잔뜩 들이켜서 몸집만 키운 채,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저 제국이 아직도 강대해 보이는가? 하하! 착각도 유분수야. 외적으로는 서쪽의 마왕을 비롯한 수많은 외적과 국경을 맞대고, 내적으로는 간웅과 간신이 날뛰고, 황자들 간의 황실 암투가 제 살을 파먹고 있는 제국은 이미 끝났어. 황제가 죽는 날, 제국 역시도 파멸할 것이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악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일은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크윽.”

절망한 페일 앞에 선 페드로가 싱긋 웃었다. 한껏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당신께 그 추악한 꼴을 지켜보게 할 생각은 없으니”

“페드로……!”

“저는 당신처럼 이런 한적한 시골 골방에나 파묻혀서 일생을 마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오늘 그 기회를 얻었고, 제 손으로 직접 새 시대를 열 겁니다.”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페드로’의 야망에 주목합니다!」

「등장인물, ‘페드로’의 [야심가] 성향이 증가합니다!」

“……새 시대라고?”

페일이 되묻자, 페드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가실 분 앞에서 말이 너무 많았군요. 이만 가십시오.”

페드로의 지팡이에서 붉은색 마나가 소용돌이쳤다.

뿜어져 나온 마나는 이내 술식에 따라서 마법의 형태를 완성 시켰고, 완전한 화염으로 화한 그것이 페일을 향해서 덮쳐 가려던 순간이었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온 무언가가 페드로의 지팡이를 그대로 꿰뚫고 지나가자, 순식간에 구심점을 잃은 마법이 이내 주변으로 산산이 흩어져 내렸다.

페드로의 입가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누구냐?!”

페드로가 외치자, 마탑의 시야 끝에서 소란스러운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봐봐! 어쩐지 내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그랬잖아.”

“하하. 알았어. 어쨌든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잖아?”

“또 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키리엘 언니 말이 맞아요. 디오 오빠는 그 태평한 성격 좀 고쳐야 한다니까.”

태평한 대화였으나, 그들의 얼굴을 본 나는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절세의 미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미모를 가지고 있는 엘프.

하이디의 또래로 보이지만, 어딘가 인간답지 않은 느낌을 주는 소녀.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에 선 한 남자.

그들이 누구인지는 굳이 더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좋지 않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아니,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결코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찾아가도 내가 먼저 찾아가야 하고, 만나도 내가 주도해야 했다.

내가 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녀석의 시선이 나를 꿰뚫었다.

“흐응.”

……망할.

그러나 불평할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녀석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갔지?’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돋은 소름과 함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어느새 내 뒤에서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를 살피고 있던 [주인공], 용사 디오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너…… [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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