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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14화 (14/164)

◈ 14화 Chapter 5: 주인공 (1)

「대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등장에 환호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정의 구현]을 기대합니다!」

「[주인공]을 마주하였습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비중]이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망할 자식.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지금의 녀석은 과거에 내가 ‘노예 소년 반’으로서 마주 섰던 퍼주기 좋아하는 멍청한 호구가 아니었다.

주인공.

하나의 이야기가 형성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 소설 속 세상의 중심이 녀석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녀석의 눈 밖에 났다? 이건 죽으라는 소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다급히 외쳤다.

“루!”

[알았다.]

내가 신호하자 하늘을 날던 루의 주위에서 순식간에 수십, 수백 개의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마탑의 마법사들이 경악했다.

“어, 어찌 저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제국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두 모여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구나. 전설 속의 대마법사, ‘하인즈’가 다시 나타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 경악할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용사 디오는 그저 낮게 웃을 뿐이었다.

“난데없이 공격부터 하기야?”

[건방진.]

루가 노기를 표했으나, 디오는 여전히 웃으면서 허리에 매여진 검조차도 뽑지 않았다.

제아무리 ‘용사’가 대단하다지만, 드래곤 중에서도 손꼽히는 루의 마법 공격을 저렇게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리라.]

하늘을 가득 메운 마법진에서 이내 루의 파괴적인 마법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저 공격은, 사실은 ‘용사’의 움직임을 모조리 치밀하게 예측한 계산된 공격이었다.

루의 언약자인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으음…… 이건 못 피하겠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느긋한 그 얼굴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져 내렸다.

콰카카카캉!

마치 별들이라도 쏟아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막강한 마법들.

이내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고, 그 와중에도 하늘을 가득 메운 루의 마법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제아무리 용사라도 저 공격에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흙먼지가 걷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저 낯짝을 보기 전까지는.

“으…… 먼지야.”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는 여유 넘치는 그 모습은 그 어마어마한 루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녀석이 루의 공격에서 무사했던 이유는 그가 ‘용사’여서도, 강해서도 아니었다.

「[주인공]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주인공] 버프 효과로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 대한 모든 원거리 공격이 무효화 됩니다!」

……망할 사기꾼 자식.

적당히 해 먹어야지, 저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응? 벌써 끝났어?”

저 뻔뻔한 낯짝을 보니, 굳이 막거나 피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이제 내 차롄가?”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먼치킨스러운 발언에 크게 만족합니다!」

포식자의 눈이 나를 훑었다.

죽는다.

이 절망 속에서 도망조차 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갑작스럽게 내 등 뒤에서 나타난 든든한 손아귀가 내 어깨를 짚었다.

그 든든한 손아귀의 정체는 바로 전대 용사, 베른이었다.

“베른?”

“나에게 맡겨.”

그렇게 내 앞을 막아선 베른이 용사, 디오와 마주 섰다.

“오랜만이다. 디오.”

“당신은…… 역시 그냥 농부가 아니었군요.”

“네 이야기는 한 번 들은 적이 있지.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네 스승과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사이니까.”

“역시 당신이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던 ‘전대 용사’였군요. 하지만 ‘용사’였던 당신이 어째서…….”

“그래, 나도 네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 ‘용사’들만이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 [악]을 마주할 때나 생기는 바로 그 이질감을 느끼고 있겠지.”

디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루의 폭격 속에서조차 여유 넘치던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역시 [악]에 물든 겁니까?”

“너무 거창하게 말하지는 말아 줘. 그저, 모든 나이 먹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세상의 불합리를 알아 버린 것뿐이니까.”

「일부 40대 독자층이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발언에 공감합니다!」

베른의 말에 디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는 용사의 의무를 행해야겠군요.”

“하하. 너도 언젠가 ‘용사’를 그만두는 순간 알겠지만, 그건 의무라기보다는 족쇄야. 너를 옭아매는 그런 족쇄. 겪어 본 입장에서 충고하는데, 그런 족쇄 따위는 당장이라도 벗는 게 좋을 거야.”

“상관없습니다. 제가 ‘용사’를 그만두고 나면, 더 이상 이곳에 없을 테니까.”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수다나 떨자고 이곳에 온 건 아닐 텐데?”

“……이번 한 번, 마지막 한 번만 눈감아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페론 마탑을 떠나십시오.”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쓸데없는 자비심에 고구마를 느낍니다!」

디오 나름대로는 최선의 배려였을 테지만, 베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뭐? 설마 내 목적이 고작 이런 마탑 따위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러면 아니라는 겁니까?”

“내 목적은 처음부터 너였다. 디오. 네가 가진 ‘용사의 힘’을 돌려받으러 왔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이 [정의 구현] 당하기를 원합니다!」

「일부 독자들이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대의를 응원합니다!」

“‘용사의 힘’도 없는 당신이 저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연륜을 너무 무시하지 마라, 애송이.”

그리고 베른이 등 뒤에 메고 있던 쟁기를 꺼내 들었다.

「[대의명분이 있는 악당]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그건 뭐죠?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농사할 때 쓰던 쟁기인데? 옆집에 있는 한스네 대장간에서 3실버나 주고 샀지.”

“…….”

그리고 용사, 디오가 허리에 매여져 있던 검을 빼 들었다.

루를 상대할 때조차 늘 여유로 넘기던 그가 검을 빼 들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말이었다.

‘용사’로서.

“성검 다이베른입니다. 당신의 이름도 이 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스승이 그러더냐?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당신의 이름이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이놈 봐라? 우리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을 왜 네가 들먹여.”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인성에 혀를 찹니다!」

「일부 독자들이 부모를 들먹이는 [주인공]의 행태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주인공] 버프가 일시적으로 약화 됩니다!」

디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고아로 자랐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베른이 씨익 웃었다.

“알고 있네?”

“……장난은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그들이 서로의 무기를 꺼내든 채로 대립하자, 이를 지켜보던 루가 말했다.

[돕겠다.]

그때였다.

“어머, 당신 상대는 저예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있는 것은 하이디와 동년배 정도로 보이는, 바다 빛으로 머리를 물들인 소녀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되긴 했건만, 감히 ‘루’의 앞을 막아서다니…… 그녀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루가 슬쩍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대 정령인가.]

“역시 드래곤! 눈썰미가 제법이시네요.”

[이름이 뭐지?]

“이름이요? 제 이름은 ‘물’입니다.”

[과연……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세월을 지낸 존재라는 건가.]

루가 감탄하자, 갑작스럽게 몸을 부들부들 떨던 ‘물’이 소리쳤다.

“누가 십만 년 동안 시집도 못 간 노처녀라는 거야!”

……아무도 그런 말 안 했던 것 같은데.

「다수의 독자가 십만 년간 독수공방한 등장인물, ‘물’을 동정합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엘프, 키리엘이 어느새 구석에서 숨어 있는 하이디에게 슬쩍 말을 걸고 있었다.

“너도 싸우니?”

“예? 아니요. 저는 못 싸워요.”

“그렇게 보이더라. 그러면 저쪽으로 가서 나랑 차나 한잔 마실까?”

“차요?”

“쥘 브레 산맥에서 직접 공수해 온 건데, 향이 아주 일품이야.”

……사탕으로 애 유인하는 납치범이냐?

당연히 하이디한테 그딴 수작이 통할 리가…….

“마실게요!”

있었다.

“…….”

그 순간이었다. 내가 하이디를 뜯어말릴 틈도 없이, 한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진 곳에서 전대 용사와 현직 용사의 무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춤을 췄다.

비록 검에 대해서 모르긴 몰라도,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제법인데!”

“순순히 포기하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조금 시선을 돌리자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의 싸움을 아득히 넘어선 괴물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형체는…… 네 본질은 ‘물’ 그 자체였군.]

“정답!”

[모조리 증발시켜 주지.]

루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지자, 거대한 물의 보호막이 ‘물’의 앞을 막아섰다.

이 광경을 굳이 비유하자면, 액션 영화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SF 판타지 재난 영화로 넘어온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내가 슬쩍 그 장소를 벗어나자,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엘프와 미소녀가 나누는 단란한 티타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맛있어…….”

“그렇지? 더 줄까?”

“네!”

내가 단란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키리엘을 향해서 말했다.

“저도 끼어도 될까요?”

굳이 내가 끼어야 한다면, 어디에 낄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잘만 하면 이 싸움을 끝낼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 너는 안 싸워?”

키리엘의 물음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힘이 있어야 싸우죠. 보시다시피 저랑 하이디는 그냥 평범한 여행자에 불과해요.”

“싸움을 벌인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하니 조금 우습지만, 기껏 온 손님을 내치는 것도 그러니 일단 앉아.”

내가 앉아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까 ‘용사’가 무슨 말을 하던데…… 용사의 의무가 끝나면 자신은 이곳에 없을 거라던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아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키리엘의 표정에 급격히 그늘이 졌다.

“……나는 모르는 말이야.”

“모른다고요? 그러면 용사의 의무가 끝나고 나면 결국 당신은 영문도 모른 채 용사와 헤어지게 되겠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었을까.

키리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나는……!”

“하나만 묻죠.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용사를 따라서 갈 겁니까?”

“그건…….”

명백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분명히 소설 속 ‘히로인’ 포지션에 있을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민한다는 이야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면, ‘용사’가 가려는 곳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이라던가.

키리엘이 말했다.

“……따라갈 거야.”

“그 먼 곳까지요?”

“그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따라갈 거야!”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아!”

뒤늦게 자신의 입을 막는 키리엘의 모습.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알았다.

이 싸움을 끝낼 방법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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