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16화 (16/164)

◈ 16화 Chapter 5: 주인공 (3)

“……뭐?”

당황한 녀석의 얼굴을 보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이긴 했지만, 역시나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얌전히 물러난다면, 네가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출신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표합니다!」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신비주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그래.”

좋아. 충분히 관심이 있어 보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짚은 듯 했다.

“우습군.”

그래야만 했다.

“사기꾼, 협잡꾼. 너 같이 세 치 혀를 놀리는 녀석은 이미 수도 없이 겪어 왔다. 너는 필시 아까 내가 했던 말에서 단서를 얻었겠지. 그렇지 않나?”

「대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명석함에 감탄합니다!」

……이놈 봐라.

꼴에 [주인공]이라는 건지, 호구 암 덩어리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

그와 함께 디오의 손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는 성검 다이베른.

[악]을 멸하는 절대적인 빛이 성검에서 찬란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성검의 진정한 힘이 발휘되지 않은 이유는 그 상대가 ‘전대 용사’였기 때문이리라.

“사람 말은 끝까지 듣지?”

“더 들을 가치도 없다.”

「다수의 독자가 [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에 감탄합니다!」

……이 망할 놈이.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금만 더 얘기하면 안 될까?”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더 할 말은 없나 보군. 이만 죽어라.”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사이다성 발언을 좋아합니다!」

베른을 죽이려고 할 때는 그렇게나 고민하던 녀석이, 아무런 힘도 없는 연약한 소년을 죽이려고 할 때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모습이라니. 대체 무슨 놈의 [설정]이 이따위란 말인가.

「대다수의 독자가 [악]을 배제하는 [주인공]의 활약에 기뻐합니다!」

당연하지만, 내가 아무리 불평해 봤자 [독자]가 원한다면 [설정] 정도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게 이 불합리한 세계였다.

뭐, 솔직히 말해서 바로 이점을 실컷 이용해 왔던 내가 말하기는 우습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큭!”

눈앞에서 타오르듯이 치솟는 성검의 불길.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악]이든 아니든 간에 저 무식한 불길에 닿으면 그대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리라.

빌어먹을…… ‘준비’는 아직인가?

이제는 정말로 위험했다. 눈앞에 있는 저 망할 놈의 [주인공]은 정말로 나를 [악]으로서 죽이려 하고 있었다.

“도망쳐라.”

베른이 그렇게 말하며 비틀거리며 내 앞을 막아섰으나, 어차피 저 무식한 성검에 맞으면 사이좋게 죽을 뿐이었다.

“……마음만 받죠. 마음만.”

그때였다.

“반!”

기다렸던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하늘 위에서 어느새 루의 등 위에 올라탄 하이디가 보였다. 그리고 하이디가 보였다는 이야기는, 내가 말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이디…… 고생했어.”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정말로 베른이랑 사이좋게 손잡고 세상 하직할 뻔했다. 이 나이에 죽는 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다 늙은 아저씨랑 사이좋게 나란히 손잡고 죽는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디오가 낮게 말했다.

“도망치려는 건가.”

“도망?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아까도 말했을 텐데? 이건 ‘거래’라고.”

어차피 모든 ‘준비’가 끝난 이상, 이제 더 이상 내가 녀석에게 주눅들 필요는 없었다.

“또 그따위 협잡질을.”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사이코패스 같은 목소리와 함께 성검이 치켜 올라가자, 내가 다급히 외쳤다.

“하이디!”

내 외침과 동시에 하이디가 치켜든 것은 돌돌 말린 채로 밀봉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이었다.

그것을 바라본 디오가 말했다.

“……무슨 수작질이지?”

“내가 말했을 텐데? 네가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바로 그 방법이 저곳에 적혀 있다.”

「대다수의 독자가 유리병 속의 내용을 궁금해합니다!」

“그따위 사기에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기인지 아닌지는 까 보면 알겠지.”

“우습군. 대체 그따위 협박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어차피 네가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이 자리에서 잡아서 족치면 될 뿐인데.”

족친다라…… [주인공]답지 않게 단어 사용이 꽤나 저렴해지셨구만.

「일부 독자가 [주인공]이 가진 자질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주인공] 버프가 일시적으로 약화 됩니다!」

기껏 욕먹은 보람이 없지는 않았는지,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웃음으로 씰룩였다.

“당연히 있지. 지금부터 저걸 서쪽 마왕의 영토로 던져 버릴 거니까. 루!”

[알겠다.]

그와 함께, 어느새 루의 눈앞에서 나타난 마법진 사이로 하이디의 손에 잡혀 있던 유리병이 홀연히 사라졌다.

제아무리 마왕의 영토라지만, 루 정도의 드래곤이라면 작은 유리병 하나 정도 그곳으로 날려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디오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인지는 네 잘난 머리로 생각해 보시지.”

디오의 표정이 굳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너를 잡고 나서 찾으러 가면 될 뿐이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네 입을 열게 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제는 고문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던 모양.

하지만 녀석이 아직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무슨 뜻이냐.”

“말뜻 그대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거야. 만약 이대로 서쪽에 있는 [마왕]이 네 고향으로 가는 방법을 너보다 먼저 알아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았는지, 순식간에 굳어 버린 디오의 얼굴.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였다.

“네 고향이 이대로 [마왕]의 손에 짓밟혀도 정말로 괜찮겠어?”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용사 디오’의 출신지에 대해서 강렬한 호기심을 표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고향을 인질로 잡는 당신의 악덕함에 치를 떱니다!」

「파렴치한 [악]의 면모를 선보였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0.5%」

「현재 [비중]이 10%를 초과하여,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등급이 [엑스트라]에서 [조연]으로 상승합니다!」

성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길은 어느새 완전히 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녀석은 어떤 선택을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그거 알아?”

“……더 이상 네 세 치 혀를 통한 말은 듣지 않겠다.”

찌푸린 표정으로 애써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디오.

하지만 녀석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분들은 아니거든.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말이지.

내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이번에 와이폰 8 새로 나왔어.”

“……뭐?”

“옛날에 개봉한 여섯 번째 감각에 나오는 대머리 아저씨의 정체는 사실 유령이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베른과 하이디의 표정이 벙 쪘다.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원래대로였다면 이 말들은 나나 [독자]들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이었으니까.

「대다수의 독자가 [제4의 벽]을 의식하는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당신의 정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집니다!」

「일부 독자가 [주인공]의 고향의 정체를 추측합니다!」

「한 독자가 당신의 스포일러성 발언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독자]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디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혼란, 놀람, 당황, 반가움, 의문.

그 모든 것들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명백한 동요.

그 한마디로 가정에 불과했던 모든 것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개연성]이 거칠게 요동칩니다!」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발언에 그의 출신지에 대해서 확신합니다!」

「등장인물, ‘용사 디오’에게서 [이고깽] 성향이 추가됩니다!」

“지금 급한 건 내 정체가 아닐 텐데.”

“큭!”

명백하게 당황한 [주인공]의 모습.

비록 짧은 틈이었으나 내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루!”

내 외침과 함께 어느새 바람처럼 나타난 루가 나와 베른을 낚아챘다. 그야말로 찰나와도 같은 속도였다.

“무슨…….”

그제야 잠시 얼이 빠져 있던 디오가 뒤늦게 상황이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깨닫고는 외쳤다.

“물! 저들을 잡아!”

옳은 선택이었다. 고대 정령인 물이라면 충분히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말이지만 말이다.

디오의 외침에 내가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그녀와 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나,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고대 정령이었기에 대화에 큰 지장은 없었다.

“괜찮겠어? 이대로 디오가 고향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되찾으면 너는 앞으로 백만 년은 족히 혼자 독수공방할 텐데?”

“읏……!”

촌철살인이라고 했던가.

말 한마디에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처럼 그렁그렁 물든 ‘물’의 눈망울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부 독자가 노처녀의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당신의 발언을 맹비난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물’을 위로합니다!」

「[악]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물이 잠시 패닉 상태에 빠진 사이, 루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뒤늦게 디오가 우리를 향해서 ‘용사의 힘’을 압축시킨 창을 내던졌으나,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대의명분이 있는 악당]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디오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그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물론, 네가 작정하고 쫓아오면 힘들겠지.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을 텐데?”

“네놈……!”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비열함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비열함] 성향이 증가합니다.」

「일부 독자가 당신의 명석함에 감탄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한 독자가 당신의 행보를 흥미로워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첫 후원금을 후원받으셨습니다! [자본주의] 버프 권한이 개방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5500G」

후원금이라고?

이거…… 내 생각대로라면 아무래도 예상외의 큰 소득을 얻은 듯 했다.

내가 디오에게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보자고.”

아마 그때는 정말로 내가 먼저 찾아가야 할 테지만 말이다. 이런 식의 불의의 만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디오의 시선을 외면한 채로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정말로 사람이 개미만 하게 보일 때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주저앉아서 분해하는 디오의 옆에 어느새 키리엘이 다가가서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시련으로 강해지는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아무튼, 세상살이 거저먹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마냥 보험처리 받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페론 마탑을 완전히 벗어나자 그제야 여유를 찾은 내가 일행들을 살폈다. 그 와중에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베른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는 내가 묻고 싶을 지경인데.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반인데요.”

“아니, 이름 말고…….”

“그러면 저랑 가장 오랜 지낸 사람한테 물어보죠. 하이디, 내 정체가 뭐야?”

내 물음에 하이디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반은 반이야.”

“그렇지?”

“응.”

“들었죠?”

그제야 나와 하이디의 대화를 보고 있던 베른이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됐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만약 누가 호언장담한 것처럼 ‘용사’를 이기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겠죠.”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주인공]을 적으로 만나게 되는 건 최악이었다.

단순히 힘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더 강한 힘으로 [주인공]을 잡을 수 있었다면, 이미 디오는 골백번도 더 죽었을 것이다.

문제는 녀석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그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결국 이겨내고, 강자를 만나면 그만큼 더 강해진다.

즉, 녀석에게 가하는 어설픈 물리적 압박은 오히려 녀석을 괴물로 만드는 일을 가속화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아무래도 가장 좋은 일은 [주인공]과 엮이지 않는 것이었으나, 내 목적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건 이 빌어먹을 세계의 구조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우선, 제국으로 갈 겁니다.”

“제국으로?”

“큰사람이 되려면, 아무래도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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