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Chapter 7: 11번째 빌런 (4)
“이곳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산속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내가 빌 세빌스턴과 함께 도착한 곳은 제도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었다. 내가 굳이 이름조차 모를 이 작은 산에 그를 데리고 온 이유는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인적도 없고 으슥한 곳까지 굳이 나를 데려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그럼, 있고말고.
「일부 독자가 당신의 발언을 기다립니다!」
“우선,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말해 보게.”
“삼황자와는 무슨 사이십니까?”
정치적인 입장상 분명히 민감하다 못해 큰 무례일 정도의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빌 세빌스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비록 지금 당장 내가 모시고 있는 분은 아니지만, 혹시나 황제가 된다면 내가 충성을 바칠 분이지.”
정석적인 대답.
하지만 내가 고작 저런 말을 들으려고 여기까지 그를 끌고 왔을 리는 없었다.
“단지 그것뿐입니까?”
“마치 나에게 더 듣고 싶은 말이 있기라도 한 것 같으이.”
“없지는 않죠.”
“호오.”
어설프게 돌려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았다.
“그렇다면 그게 뭔가?”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되짚어 보았을 때, 지금 당장 황제가 될 가능성 높은 이는 이황자였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이황자가 훗날에 [주인공]의 동료가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외적인 이유일 뿐, 이야기 내부적으로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이황자가 일황자를 제치고서 황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황자가 다른 황자들을 제치고 황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아무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삼황자가 어떤 모종의 부당한 방법을 이용해서 일황자를 죽이거나 몰아내고서 마침내 황제 자리에 오른 후, 훗날 여행에서 [주인공]과 함께 돌아온 이황자에게 모든 악행을 들통 난 후에 황좌를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황자는 황제가 되기 위한 충분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말이 가능성이지, 멍청한 작가 놈에게서 이것 외의 전개가 나올 리가 없기 때문에 거의 확신이나 다름없었다.
“후작님께서 삼황자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고 싶군요.”
“……삼황자님에 대한?”
때문에 내가 지금 당장 그에게서 알고자 하는 사실은 그와 삼황자 사이의 관계였다.
만약 빌 세빌스턴 후작이 삼황자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라면, 이황자가 부재중인 지금 일황자를 몰아내고서 삼황자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 음모를 꾸밀 것이다. 이 가정이 맞다면, 훗날에 삼황자와 손을 잡고 제국을 장악한 빌 세빌스턴이 ‘파괴왕 빌’이라는 이름의 [빌런]이 되어서 [주인공]에게 사냥당하는 것도 제법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아까도 말했을 텐데, 그저 만약 황제가 된다면 충성을 바칠 대상에 불과하다고.”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듣다 보니 점점 더 무례해지는군. 아니라면 어쩔 텐가?”
「일부 독자들이 무례한 당신의 언행에 대해 불쾌함을 표합니다!」
“어쩌긴요. 아님 말고지.”
“……뭐?”
「소수의 독자가 당신의 당당한 언행에 할 말을 잃습니다!」
“지금……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겐가!”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과민 반응해요?”
「일부 독자들이 당신의 발언에 불타오릅니다!」
「쓸데없는 쿨내를 선보였습니다! [냉소주의] 성향이 증가합니다.」
지금까지의 냉정함은 어디로 갔는지,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붉게 달아오른 빌 세빌스턴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건드렸다가는 대화고 뭐고 끝장날 것 같았다.
“뭐, 말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당신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군.”
“영 모르진 않죠.”
예를 들면 네가 [주인공]에게 쳐 맞을 만큼 아주 나쁜 놈이라던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후작님께서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순간, 빌 세빌스턴의 표정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게 굳었다.
“……일황자님께서도 알고 계신 사실인가?”
이것 봐라?
「일부 독자들이 등장인물, ‘빌 세빌스턴 후작’의 수상한 태도에 주목합니다!」
“안심하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공주…… 아니, 황자님이시니.”
“다행이군.”
그와 함께, 슬쩍 짚고 있던 지팡이에서 숨겨진 검을 빼 들은 빌 세빌스턴은 그대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그것을 내 목에 겨누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여전히 그가 삼황자와 한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나도 더 이상 이 지루한 질의응답 시간에 끝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아십니까? 당신은 이미 일황자에게서 신용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뭐?”
만약 신용 받고 있었다면 내가 드래곤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그 리안조차도 무언가 눈치채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루.”
짧은 부름.
그러나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알았다.]
내 부름에 짧게 들려온 대답.
그리고…… 하늘이 열렸다.
콰가아아앙!
그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친 벼락.
그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마치 신이 현세에 강림한 것 같은 폭발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어섰다.
“무, 무슨!”
마침내 일어났던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압도적인 위용을 뿜어내는 블랙 드래곤의 거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블랙 드래곤 루’의 압도적인 등장에 환호합니다!」
「[개연성]이 없는 만남입니다!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0.44%」
그 광경을 바라보던 빌 세빌스턴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외쳤다.
“……드래곤? 설마!”
이제야 눈치채셨구만.
루를 바라보던 빌 세빌스턴이 살며시 말했다.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겠군. 처음부터 나를 끌어내기 위한 연극이었나?”
“…….”
이 양반 봐라, 자의식 과잉이 너무 심하잖아.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빌 세빌스턴 후작’의 자의식 과잉을 비웃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릴 리가 없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일부 독자가 당신의 양심 없는 발언을 지적합니다!」
「[허세] 성향이 증가합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아니, 겉모습은 의미가 없겠군. 도대체 자네 정체가 뭐지?”
“그 전에, 먼저 우리 사이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해야 할 일이라고?”
내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꿇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