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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27화 (27/164)

◈ 27화 Chapter 8: 검은 황제 (2)

삼황자 닐의 외견은 기껏해야 ‘반’과 동년배거나, 그보다 살짝 더 어려 보였다.

즉, 현실에서는 기껏해야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사이라는 말이었다.

고작 그런 나이대의 꼬맹이가 검은 마탑인지 뭐시기들 같은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 집단이랑 한편 먹고 이런 살인 놀이도 모자라서 가족까지 위협하며 황위를 탐내다니……. 사랑과 관심을 못 받고 자란 청소년이 얼마나 삐뚤어지기 쉬운지 보여주는 아주 쉬운 예시가 아닐 수가 없었다.

「일부 독자들이 부쩍 흉흉해진 세상사에 대한 한풀이를 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세상 살기가 뭐 이리도 힘든지.

내가 잠시 [독자] 놈들과 세상의 각박함에 대해서 논하는 동안, 어느새 내 앞에 다다른 삼황자 닐이 유난히 표독스러운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최근에 누님 곁에 웬 날파리가 꼬였다고 하더니, 당신이었군요.”

꼬이기는 개뿔이.

내가 리안의 얼굴을 직접 본 건 기껏해야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다.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둘째 치고, 고작 얼굴 몇 번 본 걸 가지고 날파리가 꼬였다고 하는 건 이상할 정도로 과한 반응이 아닌가.

더군다나 ‘형님’이 아니라 ‘누님’이라…… 어차피 곧 자기 손으로 쳐낼 주제에 어째 말하는 뉘앙스가 참 미묘하게 들렸다.

아무래도 확인해 볼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래? 그건 또 어디서 알았데?”

“그걸 제가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거 말고. 너 방금 네 입으로 리안을 ‘누님’이라고 했잖아?”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알아챈 삼황자 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어차피 이미 다 알고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제국 정보기관의 정보력을 얕보지 마십시오.”

“제국 정보기관?”

“이미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다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거참, 당당한 몰카범일세. 네가 무슨 몰카계의 꿈나무냐?

「한 독자가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관음증] 성향을 의심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같이 머물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전대 용사 베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국 정보기관의 힘은 내 말처럼 가볍게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노련한 베른의 이목을 피해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곧 언제든지 나를 해하고자 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칠 수 있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몰랐을 때의 이야기고, 이미 자기 입으로 다 불어 버린 이상 내가 이 이상의 감시를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가벼운 입을 비웃습니다!」

「[말 많은 악당] 클리셰가 발동 중입니다!」

오호라, 역시 그런 부류였나.

“……그러니 말하십시오. 어째서 누님의 곁을 맴돌고 있던 건지.”

더군다나 저 기묘할 정도의 강한 집착이라…… 어째 점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뭐, 됐고. 내 대답을 원한다면 내 말을 먼저 들어야 할 거야. 내가 여기까지 너를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다.”

“……찾아온 이유라고요?”

“그러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곳까지 왔겠어? 어쨌거나 보아하니, 너는 황제가 될 생각이지?”

뭐, 사실 보였다는 게 맞지만.

“우스운 질문이군요. 황위 계승권이 있는 황자에게 황제가 될 생각이 있냐고 묻다니…….”

“그래서 있다고, 없다고?”

“제가 굳이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까?”

얼씨구.

그러면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로 은근슬쩍 본인의 의중은 감추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며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대충 어떤 식으로 존재를 지워왔는지 알겠군.”

물론, 그러면서도 완전히 황위 계승에 대한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것은 훗날을 위해서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두기 위함일 터였다.

“지금 저를 판단하시는 건가요?”

“왜? 그러면 안 되냐?”

“……드래곤을 믿고 설치는 모양인데, 제 질문에 순순히 답하지 않는다면 그 오만방자함도 여기까지일 겁니다.”

오호라.

루가 나와 한 패거리인 걸 알면서도 저런 반응이라니?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이 반응……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삼황자 닐에게는 드래곤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비장의 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어째 삼황자 닐의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오며 본의 아니게 위기감이 느껴졌다.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그와 함께, 삼황자 닐이 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향해서 읊조렸다.

“일어서라.”

……그러면 그렇지. 왜 아직까지 편안하게 누워 있나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는 황실 근위기사들과 시녀들의 시체는 어느새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대체 근육이라고는 1g도 찾아볼 수 없는 저 뼈다귀에서 어떻게 운동 에너지가 발산되는지에 대한 논문이라도 작성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딴 상식이 통하는 세계였다면 애초에 여기 서 있지도 않았다.

“황제가 되겠다는 녀석이 시체랑 노는 취미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데.”

명백한 빈정거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황자 닐은 내 말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말했다.

“말하세요. 어째서 누님 곁을 맴돌고 있었던 건지.”

“자꾸 누님, 누님. 시끄럽게 구네. 정 그러면 불게 해 보던가.”

“못할 것 같습니까?”

“자신 있으면 해 봐.”

시대가 어느 때인데 고작 시체 몇 구 가지고 협잡질이란 말인가.

그와 함께 내가 [언약]으로 맺어진 계약으로 루를 부르자, 하늘에서 마법사들과 대치하던 루가 순식간에 내 쪽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삼황자 닐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리석긴.”

파지직-.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건지도 모를 검은 섬광이 루를 꿰뚫고 지나갔다. 그것은 황궁 내에서 날아온 공격이 아니었다.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 북쪽이었다.

[이건…….]

간신히 급소는 피했으나, 수십 겹으로 이루어진 루의 방어 마법과 비늘을 꿰뚫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경고 사격.

[……썩은 무리의 군주의 마법인가.]

그리고 그 말은, 지금은 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공격이 또 어디서 날아올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 좁아터진 황자 궁에 거체인 루가 개입했다가는 딱 좋은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었으니 말이다.

어느새 데스나이트가 되어 버린 황실 근위 기사들로 나를 둘러싼 삼황자 닐이 이죽거렸다.

“고작 저 드래곤을 믿고 설친 건가요?”

세계관 깡패인 드래곤이 ‘고작’으로 폄하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으나, 내가 상대를 너무 얕본 것도 사실이었다.

상대는 머지않아서 이 거대한 제국을 혼자서 삼키고서 ‘검은 황제’라는 거창한 이명이 생기는 상대였다.

검은 마탑이니 뭐니, 단서는 충분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어진 너무나도 순탄한 전개 덕에 나도 모르게 방심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하지?’

상황은 상당히 암담했다.

호위 겸 끌고 왔던 ‘파괴왕 빌’은 데스나이트들의 공세에 어느새 쓰러진 지 오래였고, 내 전력의 9할 이상을 차지하는 블랙 드래곤 루의 발목 역시도 붙잡힌 지 오래였다.

‘역시 베른을 데리고 왔어야 했나?’

내가 [주인공] 혹은 그의 동료였다면, 이쯤에서 알아서 멋들어지게 동료가 구하러 왔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설사 베른이 있었다고 해도 이 상황이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부 독자들이 당신의 죽음을 기다립니다!」

……망할 놈들.

이렇게 된 이상, 이것저것 재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죽여라.”

“……죽이라면 못 죽일 줄 아시나요?”

「소수의 독자가 쉽사리 생을 포기한 당신에게 실망감을 표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속내를 궁금해합니다!」

“단, 그건 알아둬야 할 거야.”

“뭘 말이죠?”

“내가 죽으면, 그녀도 죽어.”

“……그녀?”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그녀가 누구죠?”

“글쎄…… 그런데 그게 누구든지 너한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 아니겠어?”

자, 여기가 승부처였다.

만약 여기서 삼황자 닐이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로 위험했다.

여차하면 지금까지 받은 모든 [후원금]을 털어야 할 만큼.

“그건 당신이 판단할 바가 아닙니다. 말하십시오. 그녀가 누군지. 설마…… 그게 누님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걸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차피 일황자 리안을 쳐내고서 황제가 될 예정인 삼황자 닐이 이 정도로 리안을 생각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으나, 그건 내 입장에서였지 반대로 생각하면 예상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시스터 콤플렉스] 성향을 의심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황제가 되어서라도 손에 넣고 싶었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 사실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무기였다.

“글쎄?”

“……저를 시험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신이 죽는다고 한들, 누님이 죽는다는 게 뭔지. 제 이목을 피해서 수작질을 부릴 틈은 없었을 텐데요.”

몰카범 주제에 잘난 듯이 떠드는 것도 여기까지다. 애송아.

“네가 아직 애송이라서 그래.”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하시죠.”

무슨 말이긴.

“그 여자는 나한테 푹 빠졌거든.”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도 내가 죽으면, 따라서 죽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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