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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28화 (28/164)

◈ 28화 Chapter 8: 검은 황제 (3)

그리고는 기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삼황자 닐.

그 시선은 황당함을 넘어서 어딘가 경멸까지 섞여 있었다.

“…….”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황당함을 표합니다!」

「야설 빌런이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어째 쓸데없는 놈의 이목까지 끌어 버린 모양이지만, 상관없겠지.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했는지,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이 그제야 조금씩 포위망을 풀더니, 이내 그 사이로 삼황자 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죽으면 누님이 따라 죽을 거라고?”

“엉.”

“개소리하지 마시죠.”

당연히 한 마디로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내가 일부러 더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면 죽여 보던가.”

「일부 독자가 당신의 담력에 불안해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거침없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

독자 놈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저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뻔한 세계에서는 절대로 자살희망자를 순순히 죽게 놔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 지지했지.

즉, 삼황자 닐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뭐해? 안 죽이고.”

더군다나 지금처럼 내가 그의 약점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이 비열한……!”

“지금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황위 경쟁은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만약 지금 이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이 황궁 안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더 두고 볼 필요도 없었다.

삼황자 닐은 ‘검은 마탑’과의 교류로 얻은 저 정체 모를 힘을 통해서 순식간에 황궁을 전복시켰을 것이고, 나아가서 이 제국을 집어삼켰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서쪽으로 떠나 있던 이황자 사이먼이 [주인공]과 함께 돌아왔을 때, [악]인 ‘검은 황제 닐’은 결국 [주인공]에게 패배하고 결과적으로 황위는 이황자 사이먼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즉, 이 녀석을 이대로 황제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행위 자체가 결국 [주인공]인 ‘용사 디오’를 끌어들이는 명분을 주는 것도 모자라서 녀석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의문점은 있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묻고 싶은 것?”

“만약 이대로 네가 황제가 되었다면, 리안은 어떻게 할 셈이었지?”

“누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십시오!”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시스터 콤플렉스] 성향을 확신합니다!」

「등장인물, ‘삼황자 닐’의 [시스터 콤플렉스] 성향이 증가합니다!」

거참, 누가 시스콘 아니라고 할까 봐 앵앵대기는.

“시끄럽고, 대답이나 해.”

“……건방 떨지 마시죠. 지금 당장 제가 당신을 죽이지 못한다고 해서, 상황을 당신이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는 마시죠.”

착각은 개뿔이.

“그 말은, 죽이지 못한다는 건 인정한 셈이네?”

“그건…….”

떨리는 눈동자, 침 넘기는 소리.

드러난 그것은 명백한 동요였다.

그다지 예리한 말도 아니었음에도 저런 반응이라니…… 아무래도 애송이는 애송이인 모양이었다.

“말해 주지 않겠다면 억지로 물을 생각은 없어. 어차피 대충 짐작은 가니까.”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이 함부로 떠들지 마시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읏.”

「다수의 독자가 순식간에 상황을 제압한 당신의 언변에 감탄합니다!」

내가 당황한 닐을 향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좋아. 그러면 내가 네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말해 보지. 너는 이 떨거지 같은 시체들을 이용해서 이대로 황궁을 장악한 후에, 황궁 안의 인사들을 네 입맛에 맞게 갈아 치울 거야. 그리고는 황제와 일황자 리안의 죽음을 알리며 공식적으로 제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겠지.”

물론, 지금까지 삼황자 닐이 보여 준 반응대로라면 정말로 일황자, 아니 일황녀 리안을 죽일 리는 없었으나, 어찌 되었건 간에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야만 ‘황자’라는 프레임으로 보호받고 있던 리안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거기까지는 알아챌 줄은 몰랐는지, 정곡을 찔린 삼황자 닐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당신……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죠?”

“적어도 너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더 해 볼까? 폭정을 일삼던 너로 인해서 이 제국은 점차 썩어 문드러져 갈 거야. 그리고 썩어가던 제국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황자 사이먼이 돌아오겠지. 이 제국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황위를 되찾기 위해서. 그것도 ‘용사’와 함께 말이야.”

물론, 이건 지금까지 나열된 정보로 추측한 내 예상에 불과했기에 ‘검은 마탑’과 관련된 부분은 아는 바가 없으니 적당히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했는지, 삼황자 닐의 경악한 표정은 여전했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명석함에 감탄합니다!」

“……용사라고요?”

“그래, 용사. 그 뒤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용사에게 [악]으로 낙인찍힌 너는 결국 죽을 거야. 그리고 이황자 사이먼이 정식적으로 황위를 계승하겠지. 그렇게 ‘검은 황제’를 몰아낸 용사의 이름은 나날이 높아질 테고, 너는 그렇게 권력욕에 눈이 멀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가족마저도 모조리 죽인 실패한 쓰레기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을 거야. 그게 너에게 앞으로 닥쳐올 미래다.”

“내가 용사 따위에게 질 것 같아요?”

애늙은이인 척은 잔뜩 해 놓고 꼭 이런 대목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치기라니. 이럴 때는 나이에 걸맞은 것 같아서 어째 귀엽게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저 말대로 상식적으로 제아무리 용사라고는 하나 제국이라는 거대 국가와 ‘검은 마탑’이라는 정체 모를 집단을 등에 업고 있는 [빌런], ‘검은 황제 닐’에 단신으로 대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주인공]. ‘용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타이틀의 소유자였다.

그런 녀석이었기에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그리고 그건 네가 믿고 있는 ‘검은 마탑’을 동원해도 마찬가지야.”

너무나도 덤덤하게 말해서일까. 무언가 반론을 하려던 삼황자 닐은 몇 번씩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완전히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

「일부 독자가 지나칠 정도의 통찰을 지닌 당신의 정체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합니다!」

어째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해 버린 느낌이지만, 어차피 메인 시나리오가 이렇게 진행되게 내버려 둘 생각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어느새 내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려 버린 삼황자 닐이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어요.”

완전히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있지. 이대로라면 네가 믿건 안 믿건, 리안은 죽는다.”

내 말이 충격적이었던 건지, 삼황자 닐을 호위하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의 몸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다시 썩은 시체로 변해 버린 것이다.

명백하게 드러난 동요.

“누님이…… 죽는다고?”

「일부 독자가 가족을 인질로 잡는 당신의 치졸한 방식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독자 놈들이 저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눈앞에 있는 당사자가 어떨지는 굳이 상상해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채찍은 이 정도면 충분했으니, 이제 당근을 던져 줄 차례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영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다고요?”

작은 희망 하나 던져 줬다고 금세 달려드는 꼴이라니.

“당연히 있지. 하지만 그 전에 네가 할 게 있어.”

“제가…… 할 일이라고요?”

내가 천천히 삼황자 닐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내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건방 그만 떨고 대가리 박아, 애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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