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30화 (30/164)

◈ 30화 Chapter 9: 악어의 눈물 (1)

「“……용사라고?”」

「당황함이 섞인 그 목소리는 안타깝게도 다음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비명을 내지르려던 그 입술이 다시금 움직였을 때는 이미 섬광처럼 움직인 한 자루의 검이 그의 목이 있던 자리를 깨끗하게 훑고 지나간 후였기 때문이었다.」

「“끄륵…….”」

「죽음을 앞에 둔 바로 그 사내에게 있어서 최대의 불운은 그가 치졸하게 은화의 함유량을 이용해서 푼돈을 챙기던 사기꾼이어서도, 오래간만에 들어온 외지인이 이런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미녀인 것을 보고는 치근덕댔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시시한 삶을 살고 있던 그가 우연히 만난 상대가 용사였기 때문이었다.」

「“……디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디오의 행동에 키리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여행 동안 이런 시시한 잡배들이야 숱하게 겪어 왔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목숨까지 빼앗은 경우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시시한 잡배들이 할 만한 악행이라고 해 봤자 죽을만한 이유로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의아한 눈으로 디오를 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화감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디오! 대체 이게…….”」

「그런 그녀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디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려 둘 가치가 없는 쓰레기였어.”」

「짧은 말이었음에도 그녀는 디오가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변화는 평소에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저히 예전처럼 웃을 수 없었다.」

「“맞아! 저런 쓰레기는 일백 번 죽어 마땅해.”」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물의 반응에 그녀는 애써 불안한 마음을 지웠다. 그래, 저 말이 맞아. 저런 쓰레기는 일백 번 죽어 마땅하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물처럼 밝게 웃을 수 없었다. 죽은 인간의 생명이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 엘프인 그녀에게 있어서 디오를 제외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고대 정령인 물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인간을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인 용사 디오였다. 그런 그녀의 불안함을 눈치챘는지, 어느새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한 용사 디오가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평소와 같은 얼빵한 얼굴. 예전이었다면 저 얼굴을 보며 긴장감 좀 가지라고 잔소리라도 한바탕 퍼부어 줬을 텐데.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밀려드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제는 정말로 평소처럼 둔감한, 바로 그 모습으로 되돌아온 디오를 바라보며 키리엘은 혼자서 입술을 달싹였다. 그저 스스로 느끼는 위화감이 착각이길 바라면서.」

「“아, 그나저나 얼마나 남았지?”」

「“……제도까지 가려면 아직 여섯 개의 도시를 더 거쳐서 가야 해.”」

「“아직도 여섯 개나 남았어? 더럽게 멀군.”」

「서쪽 마왕의 영토와 제국의 수도 사이의 거리는 단순히 멀다. 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한 거리가 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키리엘이었기에 용사 디오가 도대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런데도 굳이 제국까지 가려는 이유가 뭐야?”」

「처음, 디오가 서쪽의 마왕이라는 거악을 코앞에 두고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는 그저 작은 변덕이라고만 생각했다. 제아무리 용사라도 그 역시도 일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계속된 위화감은 아인즈 반, 그 소년이 남긴 그 종이를 확인한 후부터 시작됐다. 그곳에 쓰여 있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후부터 디오의 행동이 명백하게 이상해졌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만나야 할 녀석이 있거든.”」

「“……그 소년을 말하는 거야?”」

「키리엘의 질문에 디오는 대답 대신 그저 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미소를 본 키리엘은 더는 질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일행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어느새 불쑥 나타난 한 남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여행길, 저도 끼워 주실 수 있을까요?”」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각에 대한 감상은 그저 시끄럽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코앞에서 미묘하게 어울리는 앞치마를 두른 베른의 걸걸한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언제나 그랬듯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녀석들’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독자가 갑작스러운 절단 마공에 격렬한 항의를 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원하지 않는 시점 변화에 반발합니다!」

얼씨구.

누가 보면 내가 보고 싶어서 본 줄 알겠다.

뭐, 어차피 나에게 있어서 [주인공]의 근황을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개꿈도 이제 크게 나쁘지 않게 여겨졌지만 말이다.

“반?”

나도 모르게 제법 깊게 잠들어 있었는지, 앞치마를 두른 하이디와 베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 깜빡 잠들었네.”

“이 바쁜 와중에 퍼질러 잠이나 주무시고, 참 대단도 하셔라.”

꼬장꼬장한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베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처음부터 내가 제안했던 이 ‘착한 일’에 대해서 별로 달갑지 않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좋자고 하는 일이니까 너무 삐딱하게만 받아들이지 마시죠.”

“그래, 착하고 좋은 일 좋지. 정작 하자고 한 놈이 퍼질러 자고 있던 것만 빼면.”

「일부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꼬장함에 불편함을 표합니다!」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꼰대] 성향이 증가합니다.」

웬일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다 한다.

“아저씨가 어른답게 참아 줘요. 반이 많이 피곤해서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하이디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눈앞에 있는 작은 빵조각 한 개를 잡아서 베른에게 내밀자, 베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빵 조각을 받아 들고는 한입 베어 물었다.

“널 봐서 참는 거야.”

“고마워요.”

어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리도 예쁜지.

「일부 독자들이 등장인물, ‘하이디’의 인성에 감탄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하이디’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짜식들, 안 어울리게 그래도 보는 눈은 조금 있구만.

“반도 깨어났으니 이만 시작해요.”

하이디의 말과 함께 베른이 거대한 틀을 가리고 있던 큰 천을 걷어내자, 그곳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글자 하나가 나타났다.

[반의 무료 급식소]

그와 함께 수북이 쌓인 수백 개의 빵.

내 ‘착한 일’의 첫 번째 과제인 이것은 막대한 루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나저나 굳이 네 이름을 붙인 이유가 뭐야? 모름지기 선행은 남이 알 듯 모를 듯 행하는 것이 미덕인데.”

“그거야 아저씨 생각이고요.”

남모르는 선행은 무슨.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그딴 짓을 도대체 왜 한단 말인가.

굳이 내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그 이유의 연장선상이었다. 제아무리 선행을 널리 한들, 내가 한 걸 몰라준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겠는가?

“……정말인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

“가만히 지켜보기나 해요.”

팻말을 드러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빈곤한 차림의 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밥…….”

나이로 치면 열댓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의 첫 손님들은 척 봐도 영양실조의 위험성이 느껴질 정도로 빼빼 마른 상태였다.

행색을 보니, 천막을 거둬내고서 퍼지기 시작한 빵 냄새에 이끌려서 온 것이 분명했다.

내가 최대한 맑은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배고프니?”

“……네.”

“이거 받으렴.”

내가 빵 두 개를 아이들에게 내밀자, 누가 뺏어갈세라 다급하게 빵을 받아든 아이들이 그것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더 먹을래?”

“네!”

내가 아이들에게 빵을 더 건네어 주며 인자하게 말했다.

“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렴. 친구들을 불러와도 좋고.”

“……정말요?”

“그럼.”

내 말에 감동이라도 한 걸까.

빵을 받아든 아이들의 눈동자에 그렁그렁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수의 독자가 개과천선한 당신의 모습을 보며 경악합니다!」

「일부 독자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당신의 선행을 수상히 여깁니다!」

「소수의 독자가 당신의 선행을 응원합니다!」

「[선] 성향이 증가합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아이들의 물방울이 커질수록, 나도 모르게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한 독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웃는 당신의 모습에서 진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반응에,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이디.”

“응?”

몰래 빵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고 있었던 건지, 유난히 탐스럽게 보이는 입술에 묻은 빵가루가 보였으나 어쩐지 그 모습마저도 귀엽게 느껴졌다.

「미묘한 긴장감을 눈치챈 야설 빌런이 활동을 재개합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까?”

“재미있는 얘기?”

“들어봐. 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에 어째서 눈물을 흘리는지 알아?”

“응? 글쎄…… 불쌍해서?”

“하하. 맞아. 그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하이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이야.”

「일부 독자들이 당신의 발언에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래, 바로 니들처럼.

* * *

“여기도 하나만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사…… 아니, 봉사는 대호황이었다.

첫 번째 손님인 어린아이들이 다녀간 후,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제도 빈민가의 주민들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선행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불우한 이웃을 도우셨습니다! [선] 성향이 증가합니다.」

「호사가들의 입에 당신의 선행이 오르내립니다! [비중]이 증가합니다.」

「현재 비중: 11.3%」

그런 호황 덕분일까.

수백 개에 달하던 빵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갔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빵을 담고 있던 거대 나무틀의 바닥이 드러났다.

“아쉽게도 오늘은 준비해 둔 빵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내일 다시 와 주세요.”

“두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내일은 오늘 준비했던 양의 배로 준비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입니까?”

내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소수의 독자가 끝이 없는 당신의 선행에 감탄합니다!」

「[선] 성향이 증가합니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듯이 좋게 말한다고 해서 늘 좋은 결과가 나오라는 법은 없었다.

“약속하셨습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은 모두 배부르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약속을 어겼다가는 두고 보십시오!”

“하하…….”

「일부 독자들이 호의를 과하게 탐하는 빈민들의 행태에 거부감을 표합니다!」

「[호구] 성향이 증가합니다!」

누가 그러던가. 호의가 계속되면 둘…… 아니, 권리인 줄 안다고.

그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반나절만의 [선] 성향과 [비중]의 증가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 추세라면 내 목적을 이루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이만 가서 쉬고, 내일 다시 오죠.”

“대체 이게 무슨 고생인지…….”

있는 불평 없는 불평 다 쏟아내는 베른이었지만, 단언컨대 가장 뿌듯해하고 있는 것도 베른이었다.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츤데레] 성향이 증가합니다!」

대강의 뒷정리가 모두 끝나자, 나는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드디어 끝났네.”

“수고 많았어. 반.”

어느새 내 옆에 찰싹 붙은 하이디의 머리카락에는 빈민가에서 날린 먼지와 땀이 뒤섞여 있었다.

“너도 수고 많았어. 하이디.”

내가 하이디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헝클자, 하이디가 꺄르륵 웃으며 말했다.

“하지 마. 더럽단 말이야.”

“싫은데, 더 할 건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베른이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마치 못 볼 거라도 봤다는 것처럼.

“……잘들 논다. 나는 이만 갈란다.”

“고생했어요.”

“……에휴.”

「솔로 부대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불편함에 동감합니다!」

「야설 빌런이 이 기묘한 간질거림에 눈동자를 빛냅니다!」

하지만 누가 그러던가. 진정한 위기는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고.

“……야.”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서 있는 것은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서 있는 어느 인영이었다.

“네?”

“무슨 일이야?”

“아니, 아직 안 가고 계신 분이 계셔서.”

나에게 그렇게 답한 하이디가 검은색 후드의 인영을 향해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죠? 저희가 오늘은 준비해 뒀던 빵이 전부 다 떨어져서요. 내일 다시 찾아와 주실 수 있으세요?”

정석적이다 못해 깔끔한 응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려온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다 봤어.”

“네?”

“다 봤다고.”

“저…… 뭘 봤다는 건지…….”

명백하게 적의로 가득 찬 목소리.

저런 적의를 받아볼 일이 없었던 하이디가 당황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이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만도 없었기에 내가 하이디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말했다. 왜인지 모르게 저 검은색 후드에게서 느껴지는 기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시죠?”

“……구야.”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순간, 검은색 후드가 천천히 젖혀지며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하이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 누구냐고.”

그 떨리는 손가락 주인의 이름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일황녀 리안.

바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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