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Chapter 10: 조연의 전쟁 (6)
「다수의 독자가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당신의 기묘한 발언에 주목합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신비주의] 성향이 대폭 증가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손에 잡혀 있는 무기의 정체에 대해서 온갖 추측성 발언을 쏟아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까 무척이나 반갑군.”
그렇게 말한 베른의 얼굴은 마치 오랜 친우라도 만난 것처럼 어딘가 상기되어 있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자신의 추측에 대해서 강한 확신을 가집니다!」
「일부 독자가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의 추리에 감탄하며 그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재회의 기쁨을 마무리한 베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추후에 설명해야 할 거다.”
쓸데없이 예리한 건 여전하구만.
“물론이죠. 그나저나 선물은 마음에 드시는지?”
베른이 자신의 손에 들린 성검, 다이베른을 한 번 살피고는 가볍게 웃었다.
“무척이나.”
그와 함께 “으차차.” 하고 몸을 펴 보인 베른은 이내 손에 잡혀 있던 성검을 다잡고는 가볍게 그것을 가볍게 휘둘렀다.
무척이나 가벼운 손짓.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처음에는 밤하늘에 비친 달빛에 불과했던 작은 빛은, 이내 세상 전체를 밝히는 태양처럼 어둠으로 물들어 있던 뒷골목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말 그대로 눈이 부신 활약에 환호성을 보냅니다!」
그렇게 어둠이 물러가자, 어느새 어둠 속으로 은근슬쩍 몸을 피신했던 ‘연금술사 마그누스’의 기괴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베른이 마치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능글맞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연금술사.”
「대다수의 독자가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예리함에 감탄합니다!」
연금술사 마그누스 역시도 베른의 정체를 알아보았는지, 그답지 않게 경악했다.
[너는…… 설마…….]
“몇십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 얼굴을 까먹은 거야? 섭섭한걸.”
[너는 이제 더 이상 용사가 아닐 텐데…… 어떻게 아직도 성검을……!]
「다수의 독자가 그 의문에 동의합니다!」
「[개연성] 의문 제기가 무시됩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나중에 살아남으면 저기 있는 꼬맹이한테 물어보고, 지금은 나랑 놀자고.”
그와 함께 서서히 마그누스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베른의 모습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마그누스 역시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점차 다가오는 베른을 향해 악을 썼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구나. 네가 아직도 용사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마그누스의 온몸에 고슴도치 같은 검은색 가시가 솟구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른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그런데 말이야…….”
베른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옛 애인이랑 만나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힘이 넘치네?”
지이잉-!
성검 다이베른에서 솟구친 불길은 더없이 신성해 보였으나, 그 실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재앙의 불꽃이었다.
치지직-!
그리고 재앙에서는 그 무엇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했다.
[끄아악!]
제아무리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실체가 없는 육체라지만, 성검이 뿜어내는 불꽃에는 그저 태우고 잡아먹을 먹이에 불과했다.
연금술사 마그누스의 몸에서 계속해서 검은색 그림자가 가시를 이뤄서 뻗어나갔으나, 그것은 여전히 맹렬하게 솟구치는 성검의 불길에 의해서 형체를 채 이루기도 전에 바스러졌다.
「대다수의 독자가 [악]을 상대하는 등장인물, ‘전대 용사 베른’의 엄청난 활약에 환호합니다!」
[끄으으…….]
죽을 것처럼 신음을 흘리는 마그누스의 몸은 마치 북서풍 타고 날아온 미세먼지마냥 형편없이 흩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자연스럽게 선 베른이 성검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쨌거나 과거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 중 하나를 하게 되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 그러면 잘 가고.”
그렇게 베른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자, 잠깐!]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감정이라고는 일말도 느껴지지 않는 베른의 반응에 마그누스가 악을 썼다.
[바, 반! 그 소년이 했던 요구를 들어주겠다. 그러니 나를 살려다오.]
“요구라고?”
[용사를 처치하는 것을 돕겠다.]
“당당하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 않아? 나도 명색이 용사였는데 말이야.”
「대다수의 독자가 [악]과 타협하지 않는 ‘전대 용사 베른’의 모습을 응원합니다!」
「일부 독자가 [악]의 멍청함을 비웃습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다급한 상황에 아무 말이나 지껄였던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 마그누스가 무척이나 당황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그건…….]
그와 함께 베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쩔래?”
그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글쎄요.”
“네가 확실하게 대답 안 하면 어떻게 해?”
내가 마그누스를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 살려 준다고 한들, 언젠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말이죠.”
단지 그뿐이지, 절대로 아까 일에 대한 뒤끝 같은 건 아니다.
정말로.
「일부 독자가 [악]에 대해 거침없는 당신의 쪼잔함에 크게 만족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옹졸한 속을 응원합니다!」
……어째 칭찬 같기는 한데 기분이 나쁜 건 기분 탓이겠지.
내 쪼잔한…… 아니, 합리적인 말에 베른이 동의했다.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러고는 치켜든 성검.
이 무더위에 질리지도 않는지, 이내 성검에서 다시 한번 맹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자, 잠깐만!]
“잠깐은 무슨. 얌전히 목이나 내밀어.”
협상이라고는 1g도 통하지 않는 단호한 베른의 모습에 결국 마그누스가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호문쿨루스! 호문쿨루스를 주겠다!]
당장이라도 성검을 내리치려던 베른의 몸이 멈칫했다.
“……뭐?”
[너도 들어는 보았겠지! 우리 일족에 내려오는 보물 중의 보물! 바로 그 호문쿨루스를 너희에게 주겠다!]
호문쿨루스.
분명히 자주 들은 이름이긴 한데, 문제는 내가 ‘이 세계’에서 호문쿨루스가 가지는 의미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대충 짐작이야 가지만…….’
당장 루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언약으로 맺어진 고리를 통해서 물어볼 수라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호문쿨루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내 입장이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베른의 반응은 달랐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고?”
그 말은 즉, 믿을 수 있다면 거래할 생각이 영 없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약, 이름을 건 서약을 맺어 주겠다.]
“흐음…….”
「대다수의 독자가 [악]의 제안에 흔들리는 ‘전대 용사 베른’의 모습에 불쾌감을 표합니다!」
그와 함께 베른이 명백하게 동의를 구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래?”
“그 전에, 호문쿨루스가 도대체 뭐죠?”
“……너는 나를 꽤 자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어. 도저히 알면 안 될 것들은 모조리 다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런 상식을 모른다고?”
모르긴 몰라도,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의 호문쿨루스의 존재는 유명하기는 더럽게 유명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필요 이상의 상식으로 취급될 정도로.
“설명이나 해 주시죠.”
[……내가 말해 주지. 호문쿨루스는, 연금술사의 비전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다.]
왠지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
“그게 전부야?”
[……신의 영역이라는 생명의 창조를 이룬 업적을 고작 그따위로 폄하하는가!]
업적이고 뭐고 당장 나한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귀하면 뭐 어쩌라고?
관상용도 아니고.
“흥.”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베른이 나에게 살며시 말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군. 호문쿨루스는 그저 단순한 인공 생명체가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단순한 인공 생명체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어째 이상하긴 했다.
내가 도리어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면 설명을 그렇게 했어야죠.”
“내가 했나? 저놈이 했지.”
“하긴…….”
[…….]
어쨌거나, 단순한 인공 생명체가 아니라면 분명히 어떤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세히 말해 봐요.”
“호문쿨루스는…… 인공 정령이다.”
“인공 정령?”
“보통 정령들은 자연계에 본질을 두고서 존재하지. 그러니까…… 예전에 보았던 고대 정령, 물처럼 말이야. 하지만 호문쿨루스들은 그런 고대 정령이나 일반 정령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그것들은 인공적인 정령답게, 인간의 감정을 본질로 두고서 존재한다.”
어째 [설정]에서 익숙한 듯 아닌 듯한 그런 미묘함이 느껴지는걸.
굳이 말하자면, 마치 경력 있는 신입을 보는 느낌이랄까.
“계속해 봐요.”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 호문쿨루스는 숙주로 삼은 인간에게서 그 감정들을 먹고서 자라난다. 때문에 숙주가 어떤 인간인지, 어떤 감정을 품고 사는지에 따라서 그 형태가 극단적으로 달라지지. 그리고 약 600년 전, ‘분노’를 주식으로 삼은 호문쿨루스가 세상에 나타났었다.”
그렇게 된 건가.
뭐, 그 이후로는 뻔한 얘기였다.
“많은 사람이 죽었겠군요.”
“……맞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연금술사들이 창조했다는 호문쿨루스에 대한 두려움이 퍼졌지. 그에 대한 박해와 멸시는 당연했고.”
마그누스가 조소를 가득 머금었다.
[큭큭…… 호문쿨루스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순전히 인간들에게 달린 일이건만, 그걸 모르고 애꿎은 일족만 탄압하니, 결과적으로 더욱 끔찍한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오지랖이 넓은 한 독자가 눈앞에 드러난 [악]에 대해서 미약한 동정심을 품습니다!」
불쌍하긴 개뿔이.
까놓고 말하자면, 처음부터 자기들이 안 만들었으면 될 것 아닌가.
‘흐음.’
어쨌거나,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단 받아 둬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내가 깨달은 일 중 하나가, 이제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었으니까.
베른도, 루도, 그리고 하이디조차도 항상 내 곁에 있을 수만은 없다.
때문에 이제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했고, 호문쿨루스는 그런 내 목적에 아주 부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승낙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데.”
“뭐가?”
“호문쿨루스가 그렇게나 대단하다면, 정작 저 녀석은 왜 사용하지 않는 건데?”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은 마그누스였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일족은 불로불사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버렸다. 호문쿨루스는 인간의 감정을 먹고 자라는 생명체. 감정조차도 인간이 지닌 나약함의 일부이니, 더 이상 우리가 사역할 수는 없게 된 셈이지.]
“지금 네 꼴이 그 결과고?”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불로불사고 뭐고 몸이 저런 미세먼지 같은 꼴이 된다면 정중하게 사양할 용의가 있었다.
아까의 비굴함은 어디 갔는지, 어느새 자신감을 되찾은 마그누스가 말했다.
[분명히 말하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살려 보내준다면, 호문쿨루스를 너희에게 주겠다.]
“정말?”
마그누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연금술사 마그누스. 내 이름을 걸고서 맺어진 서약은 결코 어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친구가 아직도 뭘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손수 일깨워 줄 수밖에.
“아니, 네가 줄 수 있는 게 정말로 그게 전부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