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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40화 (40/164)

◈ 40화 Chapter 10: 조연의 전쟁 (7)

“이게 전부야?”

[……정말로 이게 전부다.]

당장이라도 흩어질 것처럼 흐릿한 연기가 울상을 짓는 광경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놀라 뒤집어질 정도로 기묘했다.

물론, 기묘한 건 기묘한 거고 그것이 내가 마그누스를 봐줄 이유는 전혀 되지 못했다.

“또, 또 그런다. 뒤져서 나오면 어쩔래?”

내가 흘겨본 눈길로 베른의 허리춤에 있는 성검을 가리키자, 마그누스가 울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아까도 뒤져보지 않았나!]

마그누스의 비명에 내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아, 맞다! 그랬지.”

젊은 나이에 벌써 치매라도 왔냐고?

그럴 리가.

「대다수의 독자가 [악]에게 일말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 당신의 인성에 감탄합니다!」

「다수의 독자가 거지꼴이 된 [악]을 보며 호쾌해합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한 독자가 [악]에게 거침없는 당신의 인성에 감탄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그저 조금 괴롭혔을 뿐인데 이런 반응이라니…….

역시 이 세계는 나쁜 놈들한테 너무 각박하다니까.

“그러게 조금 착하게 살지 그랬어.”

[……그게 네놈이 할 소리인가!]

어쭈.

몸이 편하면 마음도 편해진다고 하던가.

조금 내버려 뒀다고 벌써 개기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러면 뭐? 맞을래?”

당연한 이야기지만, 늘 그렇듯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크윽……!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달라는 것도 다 주고, 약속도 지킨다고 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왜냐고?”

왜긴, 아직도 뜯어 먹을 게 남았으니까 그렇지.

「한 독자가 사냥개처럼 집요하고 치밀함을 선보인 당신에게 박수를 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1,210G」

그렇지, 그렇지.

착착 쌓여 가는 후원금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였다.

아무래도 최근 들어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쌓여 있던 후원금을 상당히 낭비한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한정된 자원인 후원금의 특성상 벌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벌고, 아낄 수 있으면 최대한 아끼는 게 상책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집요함에 즐거워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1,310G」

물론, 계속해서 마냥 이렇게 편리하게 빨아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것이 존재했고, 아쉽게도 그 시기는 곧 찾아왔다.

「평화주의를 선언한 한 독자가 지나친 착취를 일삼는 당신의 모습에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에게서 [악]의 성향을 의심합니다!」

이쯤인가.

아직 저런 여론이 대세까지는 떠오르지 않았으니 더 뽑아먹으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랬다가는 당장의 이득을 위해서 미래를 팔아먹는 행위가 될 것 같았다.

“좋아, 이만 가 봐.”

[……약속은 지키겠다.]

갑작스러운 내 변심에 놀랐는지, 베른이 짐짓 놀란 눈치로 말했다.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괜찮아요. 어차피 약속을 포함해서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오히려, 지금 내가 얻은 것들은 처음의 목적이었던 ‘검은 마탑’의 참전 따위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어 보였다.

베른이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플라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호문쿨루스’인가?”

“아무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보네요.”

베른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아니야. 다만, 내가 봤던 것들은…… 조금 더 크고 기괴하게 생겼었거든. 그에 반해서 지금 그건 오히려 깜찍하게 보일 정도니.”

그 말은 즉, 내가 키우기에 따라서 이 깜찍한 녀석도 흉악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그것참, 기대되네요.”

내가 살짝 플라스크를 잡고 흔들어 보이자, 플라스크 안에서 검은색 유기체가 마치 젤리처럼 찰랑였다.

아직은 생명인지 아닌지조차도 불분명한 존재.

마그누스의 설명에 따르면, 호문쿨루스를 일깨우고 사역하기 위해서는 피를 매개체로써 일종의 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살살 찔러요. 살살”

“엄살 부리기는.”

과연 성검은 성검인지, 살살 찌르라고 그렇게 말을 했을 텐데도 손가락이 불타는 것 같았다.

유난히 뺀질거리는 베른의 얼굴을 보니, 왠지 일부러 아프게 찌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초 성향을 지닌 한 독자가 사나이답지 않게 엄살을 부리는 당신에게 사나이다움을 강조합니다!」

……자기들은 문지방에 발가락만 찧어도 아프다고 징징거릴 놈들이 남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는.

어쨌거나 그러던 와중에도 여전히 불타는 내 손가락 끝에서는 살며시 맺힌 핏방울이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가 플라스크 안에 번졌다.

또옥-

끼르르-

그전까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플라스크 안의 유기체가, 피가 닿는 순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쩌적-

쩍-

바위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을 거라던 플라스크의 몸체는 이내 생긴 거미줄 같은 균열에 의해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깨져 나갔다.

째쟁-!

깨진 플라스크 조각이 바닥에 흩날렸으나, 당연히 호문쿨루스가 남아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야?”

갑작스럽게 사라진 호문쿨루스의 행방에 대해서 당황한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마치 새끼 익룡의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에에…….]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독자]들의 웬만한 징징거림에도 충분히 익숙했던 나조차도 두개골이 울렸다.

“끄윽!”

“왜 그래?!”

“머리, 머리에…….”

내가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자, 베른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성검을 들고는 내 머리를 향해 내려칠 자세를 취했다.

“……지금 뭐 해요?”

“아무래도 머리를 열어 봐야 할 것 같아서.”

……의사 면허는 있고?

아무래도 이 사태에서 베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정중하게 사양할게요. 끅!”

“하지만 지금 네 안색이…….”

안색이고 뭐고, 무면허 시술자를 믿고 머리를 열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 망할 놈의 연금술사…….

이딴 고통이 있을 거라면 당연히 미리 경고를 해 줘야 할 것 아닌가.

「정의를 추구하는 한 독자가 믿었던 [악]에게 뒤통수를 맞은 당신을 측은하게 여깁니다!」

내가 이를 빠득 갈았다.

연금술사 마그누스.

다음에 만나면 뒤통수에 이자로 앞통수까지 두둑이 첨부해서 갈겨 주마.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만.’

[악]이자 [빌런]인 마그누스가 [주인공]인 용사와의 전쟁에 참전할 예정만으로도 이미 사망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이 고통에 대한 분이 안 풀렸다.

‘너는…… 오래 살아야 할 거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의 천 배, 만 배를 겪도록 말이다.

「뇌 전문의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머리를 열어 봐야 한다는 ‘전대 용사 베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시끄러워. 이 망할 돌팔이야.

어쨌거나 마그누스의 말에 따르면, 호문쿨루스는 인간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현상은 분명히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끼에에!]

그 와중에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열심인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좀 해!’

[끼엑!]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기가 으레 그렇듯, 부모가 조용히 해 달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

‘이 망할 애새끼가……!’

[끼에엑!]

그런 말이 있다.

말 안 듣는 애는 매가 약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 머리 안에서 자리 잡고 있는 놈을 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신종 자살 방법도 아니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벼려진 단도보다 세 치 혀가 더 가슴에 잘 박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아가리 좀 닥쳐. 이 씨발 놈아!’

뚝-.

그와 함께 찾아온 머릿속의 평안.

고요가 가져다주는 평온함이 이토록 행복할 줄은 몰랐다.

[……끼잉.]

「다수의 독자가 당신의 놀라운 육아 방식에 감탄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어딘가 익숙한 광경에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부모를 자처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육아 방식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부모에게서 핍박받는 ‘호문쿨루스’를 동정합니다!」

……누가 보면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 줄 알겠네, 그려.

저런 맹렬한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이었음에도 , ‘호문쿨루스’가 끔찍할 정도로 울어대던 소음에 비하면 지금의 평화는 그야말로 꿀맛 같았다.

그때였다.

으적으적-

‘응?’

마치 무엇인가를 씹는 것 같은 소리.

울음소리와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내 무엇인가 길고 검은 물체가 내 귀에서 살며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륵-

뱀?

아니,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벌써 저렇게 컸다고?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내 기억 속에서는 플라스크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던 ‘호문쿨루스’의 모습은 어느새 큰 뱀 정도의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설마…….’

저게 뭘 먹고 자랐을지는 오직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호문쿨루스’가 당신의 분노를 집어삼키고 성장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어이가 없네.

이 상황이 말하는 바는 딱 한 가지였다.

내가 어느새 자란 ‘호문쿨루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밥 달라고 징징댔다 이거지?”

[기릿!]

“…….”

「반려견을 기르는 일부 독자가 애완용 ‘호문쿨루스’의 영특함을 기특해합니다!」

「애완용 뱀을 기르는 한 독자가 ‘호문쿨루스’의 귀염성에 심쿵사를 선언합니다!」

「비유와 상징을 사랑하는 한 독자가 새로운 마스코트의 등장에 주목합니다!」

……퍽이나.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베른이 가볍게 말했다.

“이름이나 지어 주지 그래?”

“이름이요?”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는 자식의 이름을 지어 줄 의무가 있어. 그렇지 못한 놈들은 부모 자격이 없는 거고.”

어째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날카롭다 못해 찔릴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이름이라…….”

당장 게임 캐릭터 하나 만들 때도 삼 일 밤낮을 고민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름을 정하라니…… 너무 과도한 요구가 아닌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고충에 격렬히 공감합니다!」

거기다가 부담을 끼얹는 베른의 시선까지.

“대충 지을 생각하지 마. 이름에는 힘이 있어서, 짓는 순간 그 이름에 얽힌 운명에 엮이게 된다.”

「설정충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전대 용사 베른’과 ‘성검 다이베른’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거참, 당사자가 말하니까 신빙성 하나는 끝내주는 민간신앙일세.

어쨌거나 베른의 그런 요구사항과는 별개로, 나는 게임 캐릭터를 만들 때 상당히 심사숙고해서 만드는 타입이었다.

그 순간, 뱀과 유사한 형상을 하고 있는 호문쿨루스와 내 눈이 마주쳤다.

좋아, 정했다.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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