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Chapter 11: 주연의 전쟁 (2)
「고대 정령의 힘에 의해서 외부와는 완전히 격리된 공간. 그곳에서 정령의 힘으로 온몸을 포박당한 사이먼이 억울함이 한껏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내가 안 훔쳤다니까!”」
「“시끄럽고, 어디에 숨겼는지나 말해.”」
「감정이라고는 일말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를 한 물이 사이먼을 묶어 놓은 채로 고압적으로 말했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순순한 자백이 아닌 악에 받친 비명이었다.」
「“내가 정말로 훔쳤다면 여기에 돌아왔겠어?!”」
「“바로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돌아왔겠지.”」
「디오에게 큰 반감을 갖고 자리를 떠난 사이먼. 바로 그 사이먼과 함께 사라진 성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치 어딘가를 다녀온 것처럼 뒤늦게 땀에 젖은 모습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이먼의 모습까지. 이 모든 정황은 다름 아닌 사이먼이 성검을 훔친 범인임을 말하고 있었다.」
「“아, 진짜로 아니라니까!”」
「“그러면 어디를 갔다 왔는데?”」
「“잠깐 바람 좀 쐬고 온 거라고! 속이 너무 답답해서!”」
「“꽤 치밀하게 준비한 것 치고는 허술한 대답인데.”」
「“그야 안 훔쳤으니까!”」
「사이먼이 필사적으로 항변했으나, 물의 말처럼 모든 정황은 이미 사이먼이 성검을 훔친 범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치도록 답답한 상황. 그러나 답답한 것은 이 광경을 지켜보는 디오와 키리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의 바깥에서 이를 지켜보던 키리엘이 말했다.」
「“……정말로 사이먼이 훔친 게 맞을까?”」
「비록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지만, 사이먼이 그토록 치졸한 짓을 할 인간이라는 것쯤은 이미 함께 지내 온 그녀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이먼이 비록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지만 성검을 훔쳐서 달아났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어떻게든 납득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사이먼은 돌아왔다. 그것도 성검은커녕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빈손으로. 바로 그 사실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의심에 동조하듯이 용사 디오가 말했다.」
「“나도 사이먼이 훔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디오의 발언에 평소라면 답답하다고 소리를 질렀을 키리엘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답답해 보일 정도로 순해 빠졌던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디오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동안의 일은 기우에 불과했구나. 키리엘이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만 믿기에는 일의 경중이 너무 커. 성검은 단순히 무기가 아니야. 너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여전히 사이먼을 믿지만, 이 상황은 단순히 내 믿음만으로 어물쩍 넘길 수는 없다는 말이야.”」
「키리엘은 지금까지 기우라고 여겼던, 그리고 애써 외면해 왔던 현실을 직면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디오가 과거의 그가 아님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디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디오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비로소 지금까지 진실을 외면해 왔던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다. 그저 기우겠지, 기분 탓이겠지 하며 애써 무시하고 넘겨왔던 일들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고문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 말. 평소였다면 인간의 목숨쯤은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여기는 고대 정령이나 했을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은 이는 다름 아닌 용사 디오였다.」
「“지금…… 동료를 고문하자는 말이야?”」
「“동료라…… 보통 동료끼리는 물건을 훔치지 않지.”」
「키리엘과 디오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절. 당시의 어설픈 용사였던 디오는 순진하다 못해 토끼 한 마리의 생명을 뺏는 것조차도 주저했던, 그런 남자였다. 마치 다른 곳에서 온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그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가 가지고 있었던 순수성은 잃지 않았었다. 그래, 그때 어떤 마을에서 꺼지라고 욕을 하던 노예 소년에게 ‘여신의 눈물’을 주었을 때도 말이다.」
「잠깐, 그 노예 소년……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키리엘이 무엇인가 이질감을 느끼고는 외쳤다.」
「“디오!”」
「엘프인 그녀의 감이 말했다. 분명하다. 그때부터다. 그때부터 무엇인가 이상해졌다. 분명히 그전까지는 마치 정해진 길을 따라서 순탄하게 걷던 길이 언제부터인가 뭉개지고, 흐려졌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라도 한 것처럼.」
「“잠깐만…….”」
「그러나 그 외침은 결국 디오에게 닿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 디오가 물이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도 디오를 따라서 들어가려 했으나, 엘프가 자신의 고유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끔찍하게 반발한 물에 의해서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그녀들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인가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렇게 키리엘이 공간 바깥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안쪽을 바라보는 동안, 그 안에 들어선 디오는 온몸이 묶여 있는 채로 신음하고 있는 사이먼을 마주했다.」
「“좀 괜찮아?”」
「“정말로 걱정이 돼서 묻는 건지 궁금해지는데.”」
「사이먼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도 이러기는 싫어. 믿어 줘.”」
「“그러면 당장 이거나 풀어 주고 말하지, 그래?”」
「“미안한데,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
「단호한 디오의 말에 사이먼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말했다.」
「“……정말로 내가 성검을 훔쳤다고 생각해?”」
「디오가 본 사이먼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디오가 가볍게 말했다.」
「“아니.”」
「“그러면 이만 나를 놓아 주지 그래?”」
「“나는 너를 믿지만, 너를 믿는 나는 믿지 못하니까.”」
「“그건 또 무슨…… 그냥 풀어 주기 싫다고 말하던가.”」
「사이먼이 투정하자, 디오가 그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뭐, 굳이 말하자면 이유는 있어. 예를 들면…… 네가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 왔다는 것 정도? 이황자님.”」
「“그건…… 일부러 속인 건 아니었어.”」
「당황한 사이먼을 보며 용사 디오가 낮게 웃었다.」
「“나도 알아.”」
「사이먼은 디오의 표정을 보고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제야 그동안 느껴왔던 위화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마치 너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오르는군.”」
「“처음 보았을 때?”」
「“처음에는…… 네가 용사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어. 내가 이야기로 들어왔던 용사와 너는 무척이나 달랐으니까.”」
「“자세히 말해 봐.”」
「“간단해. 내가 생각했던 용사와 네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하나 있거든.”」
「“계속해.”」
「사이먼이 침을 한번 삼키고는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을 죽이는 용사는 없다는 점.”」
「잠깐의 정적. 그러나 그 정적은 결코 길지 않았다. 어느새 사이먼의 어깨를 쓸어내리던 디오의 손이 그의 목에 닿았다. 그의 손은 도저히 사람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더없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야, 내가 죽인 게 정말로 사람이 맞는다면 말이겠지.”」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로 못 봤다고 생각하는군. 이 살인자 자식. 힘없는 노인네를 죽이는 것도 네 잘난 취미 생활의 범주인가 보지?”」
「사이먼의 폭언에도 불구하고 디오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각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건 그저 하나의 악에 불과했어. 내버려 두었다가는 수많은 피해를 야기했을 그런 악. 함부로 너나 나처럼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함께 넣을 만한 존재가 아니지.”」
「“……악이라고? 네 살인을 정당화하지 마라.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그렇다면 그는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지. 너 혼자서 판단할 바가 아니었어. 어떤 식으로든 너의 살인은 그저 살인에 불과해.”」
「“마음대로 생각해.”」
「“뭐?”」
「“애초에 나는 너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끌 생각이 없어. 굳이 네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와 함께 디오가 물에게 눈짓하자, 사이먼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무슨 짓이야! 이것 놔!”」
「“미안하지만, 성검을 되찾을 때까지는 그 상태로 함께 가 줘야겠어.”」
「“너 이 자식…….”」
「그 순간, 디오의 입가에 미묘한 조소가 그어졌다.」
「“황자님께서 말투가 너무 거치신걸.”」
「“너는…… 미쳤어.”」
「디오가 코웃음 쳤다.」
「“이 미친 세계에서 미치지 말라는 게 더 우스운 말이겠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돌아가고 싶다. 단지 그것으로 시작했던 이 여행은 어느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엇나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일까. 디오는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실마리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인즈 반.」
「그 소년을 잡고 나면, 비로소 모든 것이 명확해지리라. 그렇게 디오가 물이 만들어 놓은 공간 속에서 빠져나온 순간, 그를 반긴 것은 어느새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수십 개의 창끝이었다.」
「“디오!”」
「그와 반대편에서 다른 병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키리엘의 외침에 디오는 표정을 찌푸렸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다. 제국 병사의 복장. 하지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제국 병사들이 도대체 왜? 용사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자나 다름없는 존재다.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 받았지, 결코 이렇게 창을 겨누고 적대할 대상이 아니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건가?」
「디오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던 순간, 병사 중 하나가 포박되어 있는 사이먼을 발견하고는 외쳤다.」
「“이황자님이다. 이황자님이 붙잡혀 있다!”」
「“아니, 이건…….”」
「“황자님을 구해라!”」
「상황이 이렇게 꼬이다니? 디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선 제압해 놓고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응?”」
「공허한 감각. 그제야 디오는 수족과도 같던 성검이 지금 자신의 손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런…….”」
「그 순간, 갑작스럽게 디오를 향해 들어온 창질에 디오는 본능적으로 창을 낚아채서 그것을 휘둘렀다. 창끝을 타고서 그의 손에 전해진 감각은 뼈가 부서지고 살이 꿰뚫리는 감각이었다.」
「“끄악!”」
「“아델!”」
「정확히 심장에 꽂힌 창. 단순히 제압만 하려던 그의 계획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디오?”」
「그리고는 들려온 불안한 목소리. 그에 반응한 디오가 고개를 들자, 그의 시선에 키리엘과 물의 떨리는 눈동자가 비쳐졌다.」
「“나는…….”」
「공포로 가득 찬 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그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동료를 잃은 제국 병사들 역시도 자비는 찾아볼 수 없는 용사의 손속에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으으…….”」
「“괴, 괴물…….”」
「그가 사람을 죽인 것은 결코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을 만했던, 그리고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던 ‘악’이었지,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병사가 아니었다.」
「“나는…….”」
「디오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바로 조금 전에 한 생명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핏방울은커녕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깔끔한 손. 그러나 지금 그의 눈에는 피에 얼룩지다 못해 젖어 있는 손바닥이 보였다.」
「“디오!”」
「갑작스럽게 가만히 멈춰 선 디오의 모습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물이 병사들을 향해서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으아악!”」
「“수, 숨이!”」
「과연 고대 정령인지, 그 압도적인 위용에 스무 명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제압되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모조리 제압된 후, 물과 키리엘이 디오에게 달려갔다.」
「“디오!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어딘가 영혼이 나간 것 같은 눈빛. 그런 디오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
「“뭐라고?”」
「“……죽여.”」
「“그게 무슨 말이야?”」
「키리엘의 불안한 물음에 디오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버려진 창대 하나를 짚고서 일어났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키리엘이 그렇게 묻는 순간, 디오의 손에 쥐어진 창이 거침없이 쓰러진 병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끄아악!”」
「심장이 꿰뚫린 병사의 가슴에서 창대를 타고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그 무가치한 노동은 이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마침내 모든 병사들의 심장이 꿰뚫렸을 때,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선 디오가 피에 흠뻑 젖은 채로 작게 미소 지었다.」
「“……디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키리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디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피로 한껏 뒤집어썼을 터인 그의 몸은 이제는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불안함을 느꼈는지, 디오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괜찮아.”」
「“괜찮…… 다고?”」
「디오가 이제는 안심하라는 듯이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악은 내가 모두 처단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