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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이후의 소설 속-47화 (47/164)

◈ 47화 Chapter 12: 총력전 (3)

「소수의 독자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한 ‘검은 마탑’의 존재에 대해서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네 개의 그림자.

비록 어둠 속에 물들어 있다지만, 그들 중 둘은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히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연금술사 마그누스와 삼황자 닐.

‘저놈은 왜 또 저기에 있어?’

마그누스야 검은 마탑과 진행한 계약의 당사자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닐이 저기에 있는 건 어째 조금 모양새가 이상하긴 했다.

‘뭐, 황제까지 만들어 줄 정도이니 간부 정도는 되는 모양이지.’

제멋대로 납득.

어차피 그 이상 알아보기도 귀찮았고,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제깟 놈이 간부든 황제든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게 내가 주변을 보고 있을 때였다.

부우웅-

부웅- 부웅-

거대하게 울려 퍼진 나팔소리들.

그와 함께 이내 제국 병사들의 움직임과 진영이 눈에 띄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곧 자기들끼리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뻔했다.

‘리안이 반발했나 보군.’

나에 대한 믿음이 신앙 수준에 닿은 리안이 실베스터 공작의 주장에 반박하며 사실상 군권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리라.

그 결과가 바로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제국 병사들의 분열일 테고 말이다.

혼란스러워져 가는 정국을 파악하기 위해서 내가 슬쩍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미 전투 불능이 된 키리엘과 물.

그리고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제국의 세 손가락 사이에서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는 용사의 모습.

“인간이…… 아니군.”

“이게 용사라는 건가…….”

“차라리 드래곤을 잡는 게 낫겠어.”

그들이 울상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이미 인간은커녕 용사의 한계조차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으니까.

「[흑화한 주인공] 클리셰가 더욱 강하게 발동 중입니다!」

「[주인공]의 전투력이 [350%]로 증가합니다!」

「[주인공] 버프가 대폭 감소합니다!」

「[주인공] 버프가 약화 되어 더 이상 원거리 공격을 무효화시키지 않습니다.」

어느새 내전으로 번진 제국 측의 병력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의 합공조차도 통하지 않는 용사의 압도적인 무력.

과연 썩어도 준치라는 건지, 어느새 그토록 불리했던 상황이 다시금 [주인공]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만약 영문도 모른 채로 당했다면 억울하고 복장이 터져서 잠도 못 이룰 만한 상황.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황을 모를 때였고, 이미 대비책이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내가 슬쩍 검은 그림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내 말 들리지?”

[…….]

“리안은 네가 지켜라. 닐.”

그와 함께,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림자 중 하나가 몸을 움찔했다.

움찔한 그림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일부 독자가 당신의 치졸한 발언에 주목합니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들에게서 눈에 보일 정도의 검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무언의 항의라도 하려는 것처럼.

물론, 내가 저런 같잖은 항의를 일일이 들어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일어서라.]

짧게 울려 퍼진 쇳소리.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고 있는 이를 깨우는 산뜻한 말이 아니었다.

죽은 자마저도 일으켜 세우는 절대적인 명령.

바로 그것이었다.

캬오오!

크오오오!

[너희의 삶을 빼앗은 자를 원망하라.]

그와 함께, 용사에게 생명을 잃었던 망자들이 그 부름에 하나둘씩 다시금 일어서기 시작했다.

“용…… 사…….”

“디…… 오…….”

그렇게 일어선 시체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기껏해야 손가락 하나가 없는 정도라고 할까.

말하자면, [주인공]의 말도 안 되는 사기성 때문에 생겨난 모순덩어리의 현상이었다.

「비위가 약한 일부 독자가 되살아난 시체들의 모습에 혐오감을 표합니다!」

뭐, 그래도 시체는 시체인지라 썩 보기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좀비인지 살아 있는 인간인지 구분도 잘되지 않을 정도로 멀쩡한 망자들이 기어 나오자, 제국 병사들의 안색이 낯빛으로 변했다.

“저, 저게 뭐야?”

“신이시여…….”

그리고 마침내 그들에게 선고가 떨어졌다.

그것도 약간이라도 물리면 얄짤없이 종신형이 떨어지는 그런 선고가.

[가거라.]

그오오오……!

그와 함께, 순식간에 되살아난 만여 구의 망자들이 제국의 병사들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캬오오!

“마, 막아!”

“으아악! 사, 살려 줘!”

얼핏 보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는 망자들이었지만, 실베스터 공작 측의 병력만 알뜰하게 공격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최소한의 통제는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태자 측 병사들이 어안이 벙벙한 듯이 말했다.

“아, 아군인가?”

“십인장님! 이건 어떻게 해야…….”

“우, 우선 물러나라!”

검은 마탑의 공세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들어라.]

모습조차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림자들에게서 손이 한 번씩 뻗어질 때마다, 어느새 메론 평야를 가득히 메우기 시작한 검은색 안개가 병사들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대, 대피하라!”

“꺼꺽!”

“수, 숨이!”

검은 마탑의 가세로 순식간에 다시금 뒤집힌 전세.

이번에는 실베스터 공작이라는 잠재적 변수까지도 차단해 낸 셈이니, 장기로 말하자면 장군이요, 체스로 말하자면 체크메이트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직까지도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주인공], 용사 디오뿐.

“이 괴물 자식이!”

학살 도끼 테무르의 도끼와 장미의 기사 펠릭스 멘델의 검이 현란하게 허공을 긋자, 마치 묘기를 부리듯이 그사이를 지나간 디오의 양손에서 단검이 출수 됐다.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던 예상외의 기습.

그러나 그러한 기습 역시도 어느새 날아온 두 개의 화살에 의해서 무마됐다.

매의 눈 샬리바가 쏜 화살이었다.

용사 디오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셋이나 되니까 귀찮네.”

그 말대로, 일대일이나 하다못해 이 대 일만 되었어도 순식간에 결판이 났을 이 싸움은, 삼 대 일이라는 숫자와 기묘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팀워크 덕분에 아직까지도 결판이 나지 않을 수 있었다.

장미의 기사, 펠릭스 멘델이 말했다.

“자네는 이미 충분히 했어. 놀랍도록 강했고, 그 힘을 증명했지. 그러니 이제 됐네. 이제 그만 항복하게.”

“항복?”

“주위를 둘러보게.”

용사 디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마탑과 황태자 측 병력에 의해서 전멸해 가는 실베스터 공작 측 병력의 모습과 어느새 전투 불능에 빠진 키리엘과 물의 모습까지.

“……키리엘.”

비록 작게 일어난 동요였으나, 그것을 놓칠 펠릭스가 아니었다.

“자네만 그만두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이쯤에서 빠질 의향이 있어. 아무래도 실베스터 공작님의 신상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펠릭스 역시도 제국군 측에 생긴 이변을 얼추 알아차리기는 한 듯했으나, 가고 싶다고 해서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빠진다고? 누구 마음대로?”

“……이 상황에서까지 정말로 끝을 보겠다는 건가?”

용사의 입가에 어느새 사나운 미소가 지어졌다.

“끝이라…….”

그 미소를 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세계는 체스처럼 정직한 규칙이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흑화한 주인공] 클리셰의 최종 단계가 발동합니다!」

「[주인공]의 전투력이 [500%] 상승합니다!」

「[주인공] 버프 효과가 종료됩니다.」

「[위기에 몰린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합니다!」

「[주인공]의 행운 수치가 일시적으로 증가합니다!」

「[주인공]의 체력 수치가 위험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즉사 이하의 피해를 무시합니다!」

……망할 사기 캐릭터 자식.

아무튼, 끝까지 쉽게 당해 주는 법이 없다니까.

어쨌거나 이 상황을 굳이 말로 표현해 보자면,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었다.

“끝은, 내가 끝을 내야 끝인 거야. 이 악의 종자들아.”

* * *

[위기에 몰린 주인공] 클리셰가 발동한 후.

상황은 급변했다.

“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이 속도는 대체……!”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호각을 이루고 있던 전투가, 이제는 아예 용사의 공세를 막는 것조차도 버거워졌다.

“이익!”

“도대체 어떻게 성검도 없는 용사가 아직까지 이런 힘을……!”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엄청난 활약에 환호합니다!」

「일부 독자가 어딘가 꺼림칙한 [주인공]의 모습에 거부감을 표합니다!」

결국 상황을 보다 못한 베른이 다시금 성검을 뽑아 들었다.

“합류하겠다.”

“기다려요.”

“또 말릴 셈인가?”

만약 막아섰다가는 베어 버릴 기세였다.

“아니요.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같이 가시죠.”

이제는 정말로 무언가를 아껴뒀다가는 똥이 되는 타이밍이었다.

제국의 세 손가락이 당해 버리기 전에 먼저 합류해서 수적 우위로 다시금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아자토스!”

고대 정령의 힘을 무려 반이나 흡수한 아자토스는 더 이상 과거의 호문쿨루스가 아니었다.

[끼잇.]

아자토스가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어느새 나와 베른의 몸이 용사 디오의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바로 그 순간 허공에서 무엇인가 동그란 물체가 튀어 올랐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매의 눈 샬리바의 머리였다.

“샬리바!”

펠릭스의 절규가 들려왔으나, 용사 디오의 시선은 자신이 베어 낸 시체에는 관심도 없는 듯 오직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너는…….”

“오랜만이야. 무척이나.”

“……아인즈 반.”

“선물은 잘 받았고?”

“아인즈 반……!”

그답지 않게 드러난 감정의 동요.

그리고 그 원인은 필시 내가 남기고 갔던 쪽지에 있으리라.

“에이…… 설마 그 선물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겠지? 거짓말은 아니었을 텐데?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만 한다면 충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까? 정말로 자세히 읽어 본 것 맞아?”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이 남기고 간 쪽지 안의 내용에 큰 관심을 표합니다!」

내가 오히려 뻔뻔하게 말하자, 용사 디오의 몸이 조금씩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사이다패스 같은 모습과는 명백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되찾은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내가 남기고 간 쪽지의 내용이라……. 그 내용을 굳이 말로 하자면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순도 백 퍼센트의 팩트로 이루어진 내용임이 틀림없었다.

분명히 그 내용대로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뭐, 그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서 말이지만.

용사 디오가 악을 쓰며 외쳤다.

“이…… 이 세계에 마을버스 7번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아, 없어?”

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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