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52화 (52/164)

◈ 52화 Chapter 13: 불지옥 반도의 왕자 (2)

잠시 동안 찾아온 정적.

그리고 그 정적 사이에 나를 찾아온 또 다른 것들이 있었다.

「일부 독자가 당신의 필터링 없는 호쾌한 발언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당신을 지지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6,510G」

그럼 그렇지.

아무튼,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니까.

괜히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음식 할 때 MSG를 팍팍 넣는 것이 아니다. 건강이고 뭐고, 일단 맛이 있고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내가 쌓여 가는 후원금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뒤돌아서려 할 때였다.

“왕자님?”

뒤에서 나를 부르는 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수십 개의 마이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하셨던 발언에 대해서 해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하셨던 발언, 불지옥 반도에 존재하는 기자 전체를 모욕하는 발언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어서 해명해 주시죠!”

“왕자님!”

……얼씨구.

마치 내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여전히 지옥처럼 달려드는 마족 기자들의 모습은 내가 잠시 동안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바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기레기들의 유언비어에 사업 실패를 경험했던 한 독자가 소름이 끼치는 ‘불지옥 반도’의 모습에 몸서리를 칩니다!」

그래, 이래야 마계고, 지옥답지.

물론, 그렇게 나오겠다면 나도 그 방식에 따르면 그만이다.

“박 실장.”

“예! 왕자님.”

“다 치워.”

그와 함께, 박 실장의 몸이 크게 부풀며 그의 뿔이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명백한 고위 마족의 상징.

제아무리 이곳이 불지옥 반도니 뭐니 해도, 그 근본은 명백하게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불합리한 세계의 진면목을 저들에게 보여 줄 때가 됐다.

콰카카캉-!

그리고 움직인 박 실장의 모습은, 내가 지금껏 보아 온 그 어떤 존재보다도 파괴적이었다.

그래, 성검을 가지고서 온갖 버프를 받았던 그 용사조차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끄아악!”

“흐아아악!”

박 실장의 손에서 검은빛이 번뜩일 때마다, 마족 기자들의 살이 찢겨 나가고 뼈가 부수어지며 작게나마 나 있던 뿔이 자비 없이 뽑혀져 나갔다.

“아, 아파…….”

그들의 수가 몇이든, 그들이 어떻게 반항하든지 의미 없었다.

그야말로 참극의 현장.

이 모든 것은 그저 단 한 존재에게서 일어난 일이었다.

고위 마족이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압도적인 힘.

괜히 왕자의 경호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독자가 똥오줌 못 가리고 설치던 ‘기라늄 폐기물’들의 최후에 사이다를 표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제아무리 똥오줌 못 가리고 설치더라도, 목이 날아갔는데도 설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박 실장에게 이제 그만해도 좋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안녕하십니까! 뉴스 전문 매체 SSS입니다.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저희부터 하시죠! 채널 999에서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무참히 늘어선 시체들 사이를 채우는 또 다른 마족들의 모습.

마이크와 카메라를 다시금 들고서 있는 그 모습은 마치 빈자리가 생기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찾아왔다.

“혹시 지금 폭력을 앞세워서 해명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지금 일어난 경호원의 무력 행사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시죠. 왕자님!”

“경호원의 단독적인 행동입니까? 아니면 왕자님의 지시입니까? 이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왕자님!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도 해명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납득이 안 갈 정도의 직업 정신.

그리고 이런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독자가 목숨마저도 개의치 않는 ‘기자’들의 집착에 경악합니다!」

「설정을 중시하는 한 독자가 어딘가 비정상적인 ‘불지옥 반도’의 모습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개연성]이 미약하게 진동합니다!」

……그렇게 된 건가.

본디, 불지옥 반도는 작가 놈이 만든 이 소설 내에 존재하는 ‘진짜’ 세계가 아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유인하고, 독자들이 바라본 현실이 투영되어서 만들어진 비뚤어진 세계.

그렇기에 이 세계는 얼핏 보기에는 현실 같으면서도, 나나 독자들에 의한 일방적인 시선에서 비친, 그런 극단적인 면모가 존재했다.

바로 지금 보이는 목숨이 날아가도 특종에 목을 매고 있는 ‘기라늄 폐기물’들의 모습처럼.

“왕자님! 한 말씀 해 주시죠!”

“왕자님!”

그리고 그 사실은, 이 세계의 존립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설프고 극단적인 세계였기에 조금만 더 파고들어 가도 어렵지 않게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개연성]이 미약하게 진동합니다!」

내가 말했다.

“박 실장, 우선 이곳을 벗어나지.”

“알겠습니다.”

수십 개의 플래시가 마구 번쩍이고, 그때마다 박 실장의 거침없는 손이 카메라를 부숴 댔으나 단지 그 순간뿐.

어느새 밀려든 또 다른 기자들에 의해서 그 빈자리는 순식간에 메꿔졌다.

마치 기자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집착이 형상화라도 된 것처럼.

‘……정말 지옥 같군.’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다시 한번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 * *

“어서 타십시오.”

박 실장의 안내로 미리 준비된 스트레치드 리무진에 탑승하자, 그제야 지옥처럼 몰려들던 기자들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그와 함께 기자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한숨을 돌린 박 실장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심각한 표정으로 계시는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네 생각.”

내 무심한 대답에 순식간에 박 실장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대체 아까 다른 마족들을 도륙하던 그 고위 마족의 용맹함은 어디 갔는지, 권력에 굴복한 고위 마족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농담이야.”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막 퇴근을 마친 한 직장인 독자가 부하 직원을 능욕하는 당신의 기묘한 밀당에 마음을 졸입니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은 별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이자, 어설픈 세계 그 자체인 ‘불지옥 반도’에 대한 생각.

사실, 이 세계는 본래 너무나도 어설프게 만들어진 세계였기에, 이미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설정] 구멍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내가 이 세계를 알아갈수록, 그리고 거닐수록 독자들의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그리고 그 사실이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시간이 얼마 없군.’

만약, 그런 식의 의문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 최악에는 [개연성]에 의해서 ‘마계’와 ‘마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내 생활을 철저하게 제한시킬 필요가 있었다.

볼 필요가 없는 것은 보지 않으며, 겪지 않아도 될 일은 겪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세운 새로운 방침이었다.

‘도대체가…… 뭐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다니까.’

지금까지 했던 고생에 대해서 보상이라도 받을 겸 이번에는 불지옥 반도의 왕자라는 막강한 신분을 이용해서 좀 쉽게 가 보려고 했더니만, 어째 가는 길마다 가시밭길이다.

“박 실장.”

“예! 왕자님.”

“크게 대답할 필요 없어. 귀청 따가우니까.”

“죄, 죄송합니다!”

“어쨌거나, 혹시 하이디라는 마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있나?”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인 ‘불지옥 반도의 왕자’의 기억 속에서는 하이디의 존재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이야기는 즉, 최대한 빠르게 하이디만 찾고서 ‘불지옥 반도’를 빠져나간다는 내 계획이 시작부터 난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이디…… 말씀이십니까?”

“그래.”

「일부 독자가 그제야 [개연성] 없이 나타났던 ‘마족소녀 하이디’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적.

“그게…….”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고위 마족 박 실장’이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이거 우연인데, 내 생각도 마침 그렇거든.

그리고 마침, 무거운 침묵을 지키던 박 실장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죄,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조사해 오겠습니다!”

……그것 때문이었냐.

물론, 박 실장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을 확률도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 본 그의 행동거지로는 그럴 확률이 무척이나 낮았다.

“그러면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설사 인간계 끝에 있더라도 일주일 안에 찾아보겠습니다!”

“흐음…… 너무 길어. 삼 일 주지.”

“사, 삼 일 말입니까?”

“왜? 너무 길어? 그러면 내일 당장 찾아오던가.”

“아, 아닙니다! 반드시 삼 일 안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 일이라…….

그 정도 시간이라면 마침 해야 할 일도 있었으니 딱히 못 기다릴 시간도 아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하십시오.”

“먼저 말해 두자면, 내 질문에 거짓말하면 일 년 감봉이니까 반드시 사실만을 말해.”

“아, 알겠습니다!”

“좋아.”

내가 이런 약속까지 받으면서까지 박 실장에게 들어야 할 대답은 간단했다.

“나, 강한가?”

그 어떤 기억을 뒤져 보아도, ‘불지옥 반도의 왕자’인 내가 그 어떤 무력을 행하거나 수련 등으로 힘을 기르는 장면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핏줄이 핏줄인 만큼 마냥 약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인 ‘나’의 객관적인 무력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게…….”

그리고는 찾아온 침묵.

“다, 당연히 무척이나 강…….”

“이 년 감봉.”

“……아무래도 평소 조금 수련을 게을리하신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역시 그랬나.

사실, 몰라서 묻기는 했으나 이제 와 사실은 강했다고 하는 것도 [개연성]에 상당히 치명적인 것이 사실이었다.

뭐, 그건 그거고. 힘이 없으면 기르면 그만이었다.

“좋아. 하이디를 찾는 삼 일 동안, 나를 수련시켜라.”

“수, 수련 말입니까?”

“그래. 재능은 당연히 썩을 만큼 있을 테니, 나를 최소한 너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라. 충분하겠지?”

「파워 밸런스를 중시하는 한 독자가 대가 없이 큰 힘을 바라는 당신의 태도에 불편함을 표합니다!」

“그, 그게…….”

다시 한번 찾아온 침묵.

그러나 이번 침묵은 비교적 짧았다.

무엇인가 깨닫기라도 했는지, 잿빛이었던 박 실장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

박 실장이 기쁜 듯이 말했다.

“마침 잘됐군요.”

“잘 됐다고?”

“내일이 마침, 왕자님의 고등학교 입학식 날입니다.”

“……입학식?”

“왕자님께서 중학교 졸업식 전에 갑작스럽게 가출하신 바람에 어찌 될지 몰랐었는데, 이렇게 나타나셨으니 당연히 학교에 입학해야지요. 불지옥 반도 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문 학교이니, 수련이라면 그곳의 교사들이 충분히 시켜 줄 겁니다.”

허어…….

명색이 왕자라면서 개인 가정교사도 아니고 학교?

이거, 아무래도 냄새가 구린걸.

「클리셰가 요동칩니다!」

그것도 무진장.

“박 실장.”

“예!”

힘찬 대답.

아무래도 박 실장은 내가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어지간히도 크게 기쁜 모양이었다.

“혹시 소설 좋아하나?”

“소설 말씀이십니까?”

“그래, 소설.”

“어렸을 때라면 몇 번 읽었던 적 있습니다.”

“그래, 그런 소설 속에서 말이야. 흔히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전개들이 몇 가지 있어.”

“그런 게 있습니까?”

“들어봐. 그 소설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다 보면, 어느덧 스토리가 지지부진해지고 뻔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구간이 오거든? 그때 나타나는 전개 중 하나가 바로 무투 대회랍시고 같잖은 대회 하나를 열어서 엑스트라들이나 잔뜩 등장시켜 놓고 주인공의 전투력 측정기로 만드는 거야. 작가 놈도 편하고, 독자들도 좋아하는 아주 정석적인 전개지.”

「다수의 독자가 갑작스럽게 [제4의 벽]을 가볍게 무시하는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클리셰가 기묘하게 요동칩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뿐이면 다행일 텐데 거기서 끝이 아니야. 그것과 비슷한 한 가지 전개가 더 있어. 그게 뭐일 것 같아?”

“그, 글쎄요?”

“바로 학교로 가는 거야. 갑작스럽고, 뜬금없게 말이야. 소설이 한 2권 분량쯤 되면, 한 번 정도는 스토리가 막힐 때가 오거든? 그러면 작가 입장에서는 일단 한 번 보내고 보는 식인 거야. 왜 그러냐고? 당연히 학교만큼 편한 곳이 없거든.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거나, 말 같지도 않은 새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거나. 웃긴 건, 이런 뻔한 수작질에 독자들은 또 좋아한다는 거야. 멍청한 놈들 사이에서 유독 주인공이 돋보이거든.”

「다수의 독자가 [제4의 벽]을 능욕하듯이 천기누설을 하는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일부 독자가 갑자기 미쳐 날뛰는 당신의 발언에 [작가]의 정신건강 상태를 의심합니다!」

「소수의 독자가 당신에게 후원금을 빙자한 병원비를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24,510G」

“그런데도 나보고 학교를 가라고?”

내가 그런 빤히 보이는 개수작질에 넘어가 줄 만큼 순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자퇴 처리해.”

「클리셰가 파괴됩니다!」

「클리셰 붕괴율: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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