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61화 (61/164)

◈ 61화 Chapter 15: 침략자 (4)

종교.

신 또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고뇌를 해결하고 그와 함께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인류사에 있어서 종교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고, 때문에 당장 이 뻔한 세계에서 종교가 등장한다고 한들 별로 이상할 게 없는 것도 어찌 보면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이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는 독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종교’의 존재에 대해서 [개연성] 의혹을 제기합니다!」

「열렬한 신자를 자처하는 일부 독자가 ‘종교’의 존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개연성] 의혹에 대해서 맹렬히 비난합니다!」

「쏟아지는 맹렬한 비난에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시무룩해합니다.」

뭐, 결국 미수로 그쳤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모습을 드러낸 그 종교는 결코 그처럼 본래의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지.

「[선]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의 악행을 벌하기 위해서 등장한 ‘신’의 존재에 크게 환호합니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일부 독자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종교적 존재에 대해서 큰 불쾌함을 표합니다!」

「열렬한 신자를 자처하는 일부 독자가 무신론자 독자의 반응에 크게 반발합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개싸움.

괜히 사람들이 얘기할 때 종교, 정치, 성별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난데없이 일어난 쓸데없는 소동에, 나는 잠시 귀를 닫고 생각에 집중했다.

‘해 보자는 거군.’

작용은 언제나 반작용을 부른다.

때문에 이에 대한 사안은 이미 내가 너무나도 충분히 겪어 보았고, 또 이미 예상했던 것이기도 했다.

생각을 마친 내가 지나가는 상인에게 데우스교에 대해서 묻자, 상인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데우스교? 아아, 그 북쪽 모퉁이에서 유행한다는 그거인가?”

“북쪽?”

“저번 전쟁에 물자를 대러 갔다가 들어본 적이 있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했던 어떤 종교가 북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유행하고 있다고.”

과연…….

데우스교의 시작이 북쪽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북쪽은 아직 나를 포함해서 그 어떤 [등장인물]들도 가지 못한 영역이라는 사실이었다.

즉, 그 어떤 [등장인물]의 시야에도 보이지 않는 장소이니만큼, [개연성]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세력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서둘러야겠군.’

거의 대륙 반대편이라고 볼 수 있는 이곳까지도 소식이 전해질 정도라면, 이런 사전 작업이 시작된 지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즉, 이 세계에 퍼져 있는 각종 [악]을 결집한다는 내 계획이 시작하기 전부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우선, 이곳을 접수한다.’

[악]을 소집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주인공]의 대적자인 [빌런]들을 소집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처럼 [주인공]이 제 자리를 잃어버린 시점에서도 그들이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상당한 의문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빌런]이라는 존재의 특성상, [주인공]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탄생하는 존재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자토스.”

내 부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내 뜻을 알아차린 아자토스가 그 몸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국경 도시 칸달의 하늘에 드리워진 검은색 먹구름.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본신을 온전히 드러낸 아자토스의 모습이었다.

“저, 저게 뭐야?”

누군가의 의문을 시작으로, 꾸물거리기 시작한 검은색 먹구름이 이내 거대한 뱀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재앙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모습.

“대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이고, 그렇지 않은 자만 살려 둬라.”

[끼릿!]

그리고 시작된 파괴의 현장.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적습이다! 어서 대열을 정비해라!”

제아무리 철저한 요새화가 이루어진 국경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인간이나 이종족을 상대할 때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서 갑자기…….”

“마법사, 마법사들은 없는가?”

“도, 도망쳐야 해. 저 괴물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으아앙! 엄마아!”

그렇게 참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이어지자, 그제야 달려온 루가 외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진정해. 저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곳 국경 도시 칸달은 평화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요새를 유지하기 위해서 거둬지는 막대한 세금과 그로 인한 빈부격차로 인해서 이미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어. 조만간 그 문제점들은 표면 위로 떠오를 테고, 그때가 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이 늦어 버리겠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죽어 갈 테고, 배부른 돼지들은 그 사람들의 시체에 침을 뱉겠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 수습이 가능한 바로 지금, 썩은 곳을 도려내려는 거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행해진 거짓말.

당연하지만, 국경 도시 칸달의 내부 사정을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루.”

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를 믿어 줘.”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행해진 당신의 뻔뻔한 거짓말에 혀를 내두릅니다!」

“사, 살려 줘…….”

루의 앞에서 죽어 가는 한 청년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루는 애써 입술을 꽉 다물며 그를 외면했다.

“……믿겠다.”

“고마워.”

「다수의 독자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당신의 [악] 성향에 몸서리를 칩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내가 [악] 성향에 대놓고 들어서며 한 가지 편해진 사실이 있다면, 더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당신의 악행을 보다 못한 한 브루주아 독자가 당신 외의 새로운 인물에게 막대한 양의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브루주아 독자가 후원한 충격적인 금액에 대해서 두 눈을 크게 뜹니다!」

「대다수 독자의 관심을 받음에 따라, ‘브루주아 독자’의 등급이 [네임드]로 승격됩니다!」

「‘브루주아 독자’의 등급이 [네임드]로 승격됨에 따라, ‘브루주아 독자’의 명칭이 ‘회장님’으로 변경됩니다!」

……새로운 인물이라고?

‘설마…….’

나 외에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존재.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오직 한 존재뿐이었다.

‘확인해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내가 다급하게 아자토스의 파괴 행위를 멈춰 세웠다.

“아자토스! 멈춰!”

[끼이잇…….]

새로운 인물.

그리고 나 외에 후원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존재.

그런 존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안에서는 오직 한 존재뿐이었다.

‘확인한다.’

「[미리보기 결제]가 발동합니다!」

「[1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26,110G」

* * *

「용사 디오는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는 그 존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라고?”」

「“내 참…… 잘 알아들었으면서 꼭 그런다니까? 마왕이라니까, 서쪽의 마왕. 너의 적.”」

「다시 한 번 들려온 말에도 불구하고 디오는 도저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마왕의 모습은 그가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는…….”」

「“잘 들어. 네가 알던 그건 이미 죽었어. 현실을 외면하지 마.”」

「갑작스럽게 그를 냉혹한 현실에 잡아당기는 말. 그제야 용사 디오는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다 죽어 가는 걸 주워 왔지. 아! 네 정령 친구는 너무 날뛰어서 잠깐 재워 놨어. 유난히 시끄럽기도 하고.”」

「“……내 동료에게 손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어련하실까.”」

「여유롭게 빈정대는 말투. 디오는 마왕이 이토록 무게감 없는 모습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를 주워 온 목적이 뭐지?”」

「“글쎄……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조금 네 마음에 들게 말할까?”」

「“솔직하게 말해라.”」

「“그러면 말해 주지. 네가 죽지 않기를 바랐거든.”」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다른 쪽 대답도 듣고 싶어? 그쪽 대답은 ‘너를 노예로 만들어서 부려 먹기 위해서다.’인데?”」

「“…….”」

「혀에 기름이라도 칠한 것처럼 느껴지는 마왕의 말투에 디오는 쓸데없이 진지해져 있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죽지 않기를 바란 거지?”」

「“그야, 나는 네 손에 죽고 싶으니까.”」

「“……뭐?”」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가 끝날 수 있거든. 말하자면…… ‘완결’이라고 할까?”」

「디오가 딱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알아들을 수가 없군. 네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는 건가?”」

「“굳이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너는 원하는 바를 이루겠지. 예를 들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던가.”」

「“너……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일이 쉽게만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이 몸은 말이야, 명색이 마왕인지라 죽는 것도 꽤 쉽지 않은 몸이거든. 나를 죽이려면 ‘진정한 용사의 성검’이 내 심장을 찔러야 하거든.”」

「마왕의 말에 디오의 몸이 움찔했다.」

「“……진정한 용사.”」

「“그래, 진정한 용사. 성검은커녕 용사의 힘마저도 어떤 늙은이에게 몽땅 다 빼앗겨 버린 너에게는 무리인 사항이지.”」

「“그렇다면 나에게 죽고 싶다는 소원도 이룰 수 없겠군. 무척이나 유감이겠어.”」

「그 순간, 마왕의 입가에 어떤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갑작스럽게 일어난 빛과 함께 마왕의 왼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공간. 현실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마침내 용사 디오가 입을 열었을 때는 이미 마왕의 손에는 디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들려 있었다.」

「“선물이야.”」

「그렇게 말하며 마왕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성검 다이베른이었다. 거기다가 비록 진정한 용사로서의 힘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검에는 조금이나마 용사의 힘이 담겨 있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하던 용사 디오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이런 현상을 그는 이미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아. 별게 다 된다니까.”」

「마치 자신이 행한 일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말투에 디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디오는 자신이 느낀 이질감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무언가가 있다. 아인즈 반과 서쪽의 마왕. 그들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마왕이라니까.”」

「“마왕이 나를 돕는다고? 그것도 죽기 위해서?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지 마라. 당장 네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 잘난 성검으로 내 목을 꿰뚫겠다.”」

「그리고는 성검 다이베른을 자신의 목에 향한 디오의 모습에 마왕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호오…… 기껏 선물 했더니 자기 목숨 가지고 협박이라……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이야기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도록 해.”」

「도저히 마왕이 용사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 디오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뜻이겠지?”」

「“좋아. 말해 주지. 나는 말이야…….”」

「마왕의 숨결이 디오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네 마지막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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