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66화 (66/164)

◈ 66화 Chapter 17: 개연성의 마왕 (2)

……가지가지 하는구만.

내가 그렇게 투정하는 사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포효와 그로 인해 걷힌 흙먼지 사이에서 ‘남쪽의 마왕’의 거체가 그 모습을 다시금 드러내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

그것도, 조금 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무진장 팔팔한 상태 그대로.

그에 반해서, 아자토스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해 보였다.

[끼힝…….]

제아무리 급조된 데다가 짝퉁이라지만, 마왕은 마왕이다. 그런 마왕을 한순간이나마 몰아붙인 아자토스의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불공정거래도 이 정도면 기업 이미지가 파탄 날 법도 했건만,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동네답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 듯 했다.

“아자토스, 돌아와.”

어차피 이대로 내버려 둬 봤자 뻔히 보이는 처참한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뿐.

고작 이런 돌발 이벤트에서 아자토스라는 거대한 패를 잃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때였다.

「다수의 독자가 ‘남쪽의 마왕’의 행보를 막아서는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원리에 대해서 [설정] 오류를 지적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목적과 상반되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서 [개연성]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것은 결코 틀린 반응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내 입장에서야 [작가]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싫다는 생각에 이런 행동 방식을 취한 거였지만,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아니었을 테니까.

「[서사]가 요동칩니다!」

「[침략자]로서의 본질에 위배 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등장인물, ‘아인즈 반’의 [비중]이 감소합니다!」

「현재 비중: 13.1%」

이어지는 악재.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남은 선택지는 몇 가지 없었다.

‘튈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가정을 지워 버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쪽의 마왕’은 그 형체조차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검은색 덩어리로 보일 정도로 조잡한 존재였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힘만은 진짜였다.

만약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제도를 넘어서 황궁까지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정도로.

그러나 그것은 ‘서쪽의 마왕’과 다른 위협을 막기 위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나로서는 결코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전처럼 대놓고 ‘남쪽의 마왕’을 막아서려고 했다가는 [침략자]로서의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귀찮아졌군.’

이쯤 되면 이 역시도 나를 엿 먹이려는 [작가]의 두 수 정도 앞을 내다본 계략이 아닌가 싶을 정도.

‘……아니지.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갔다면 이딴 식으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겠지.’

어쨌거나 놈이 의도를 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지금 당장 그 결과가 나에게 있어서 좋지 않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쩔까…….’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 필요한 것은 내가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남쪽의 마왕’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현 성검의 주인이자, 전대 용사인 베른이었다.

객관적인 전투력이야 굳이 직접 대보지 않아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떠오를 정도로 열세일 테지만, [진주인공]이라는 그의 위치와 각종 [보정]의 효과로 어떻게든 처리는 가능할 터.

하지만 문제는 역시 말도 안 되는 리스크였다.

‘……가능할 수도 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베른이라는 패는 이런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도박의 판돈으로 걸어 버릴 만큼 가치가 없는 패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도박이 누군가에 의해서 짜여진 도박이라면 더욱더.

‘역시 그 방법뿐인가.’

남이 짜놓은 도박판에 발을 들이는 것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 도박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남이 짠 도박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판을 뒤집어엎으면 될 뿐.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5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502,200G」

그와 함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공간 한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쩍-.

쩌적-.

찢어지는 공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한 존재.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대다수의 독자가 마침내 등장한 [최종보스]의 존재에 대해서 주목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시공간의 제약마저도 뛰어넘는 ‘서쪽의 마왕’의 집념에 대해서 감탄합니다!」

“뭐야, 이 잡종은?”

짜증 섞인 투정과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진 손동작.

아무런 의미도, 형식도 없는 손짓에 불과했건만 그 효과는 실로 지대했다.

[끄오오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한다고 하던가.

그 말마따나 순식간에 먼지처럼 바스러져 가는 ‘남쪽의 마왕’의 모습.

지금껏 ‘남쪽의 마왕’이 보여 주었던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 비해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최종보스]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최종보스] 버프의 효과로, [주인공]과 [진주인공] 외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선공즉사]를 행사합니다!」

「[최종보스] 버프의 효과로, [성검]을 제외한 모든 피해에 대해서 면역이 됩니다!」

물론, 그 덕에 이제는 진짜 위협을 마주했지만 말이다.

‘터무니없기는 하군.’

예상하기는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주인공] 버프에 비해 꿀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모든 부분에서 압도하는 수준.

유일한 약점이라고는 [주인공]들과 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검]의 존재뿐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둘 다 지금 내 곁에는 없었다.

“아인즈 반.”

철천지원수를 마주한 분노인지, 아니면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이를 드디어 만났다는 환희인지 모를 표정.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혹시나 해서 묻는데, 떼인 돈 받으러 온 건 아니지?”

* * *

채무자.

말 그대로, 채무를 가진 자.

쉽게 말해서 돈 빌린 사람과도 일맥상통하는 이 단어를 내가 지금 언급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돈만 받아 갈까.”

차갑기 짝이 없는 ‘서쪽의 마왕’의 목소리.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는 채무자의 심정이 이런 걸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설프게 티를 낼 수는 없는 법.

내가 최대한 뻔뻔하게 말했다.

“차용증은 있으시고?”

“도둑놈이 그런 걸 써놓고 가던가.”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과 ‘서쪽의 마왕’ 사이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 내용에 대해서 궁금증을 표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불지옥 반도의 왕자’와 ‘서쪽의 마왕’ 사이의 숨겨진 관계에 대해서 추측성 발언을 늘어놓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아인즈 반. 너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뻔뻔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야.”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 고마워.”

“팔다리가 모조리 다 뽑혀도 그 혓바닥이 여전히 잘 돌아가는지 지켜보지.”

……거참, 협박 한 번 찰지구만.

문제는 그 협박이 협박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키리엘 언니?”

어느새 나와 마왕 사이를 가로막은 한 인영.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어느새 뿔과 날개를 숨긴 하이디였다.

“사람 잘못 봤어. 나는 그 여자가 아니야. 그 여자는 죽었다. 마족 계집.”

“그걸 어떻게…….”

「다수의 독자가 ‘하이디’의 정체를 간파한 ‘서쪽의 마왕’의 예리함에 주목합니다!」

「설정 덕후를 자처하는 한 독자가 ‘마족’과 ‘마왕’의 관계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표합니다!」

「[개연성]이 요동칩니다!」

이거…… 아무래도 내버려 두면 안 되겠군.

“하이디.”

“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중에 설명해 줄게. 지금은 돌아가서 베른을 데려와 줘.”

“……알았어.”

하이디가 떠나가자, 마왕이 이죽거렸다.

“전대 용사를 불러오려는 건가? 하지만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 직접 대봐야 아는 거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왕의 말처럼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베른이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0%에 수렴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별다른 변수가 없을 때의 이야기.

변수가 없다면, 만들면 될 뿐이다.

“너에게는 듣고 싶은 말이 꽤 있지만, 그래서야 네가 원하는 대로 될 뿐이겠지. 이만 죽어라.”

그와 함께 움직이는 마왕의 손.

그것은 ‘남쪽의 마왕’조차도 일격에 소멸시켜 버린 피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았다.

그래, 나에게 큰 ‘행운’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3,0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99,200G」

그와 함께 내 머리카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죽음의 힘.

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정적.

내가 슬쩍 고개를 돌려서 뒤를 보자, 산맥을 이루고 있던 지형이 평지로 바뀌어 있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위력.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입은 피해는 고작 머리카락 몇 올을 잃은 것뿐이었다.

마왕이 자신의 손바닥과 내 얼굴을 몇 차례 교대로 보더니, 이내 웃었다.

“……이것 봐라.”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 나 역시도 그녀를 바라보며 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 낯짝, 언제 구겨질지 기대하는 바가 커.”

“노력해 봐.”

그것을 신호탄으로, ‘서쪽의 마왕’의 힘이 절제라고는 조금도 없이 나를 향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악의 왕자] 버프가 발동 중입니다!」

「[최종보스] 버프 효과로, [악의 왕자] 버프 효과가 무효화 됩니다!」

‘……그러면 그렇지.’

별로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돈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나쁘게 볼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돈이 아주 많았으니까.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3,0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96,200G」

콰카카카캉-!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3,0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93,200G」

“요리조리 쥐새끼처럼!”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3,0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90,200G」

마치 물처럼 새어 나가기 시작한 [후원금].

예전의 나였다면 감히 감당조차 할 수 없는 소모값이었으나,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3,000G]가 소요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81,200G」

“……망할 자식.”

아까의 여유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잔뜩 구겨진 마왕의 표정.

「대다수의 독자가 마치 미래를 읽는 것처럼 ‘서쪽의 마왕’의 공격을 피해 내는 당신의 회피 능력에 감탄합니다!」

「[선]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당신과 ‘서쪽의 마왕’이 양패구상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그녀를 향해서 산뜻하게 웃으며 이 세상의 진리 중 하나를 일깨워 주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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