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69화 (69/164)

◈ 69화 Chapter 17: 개연성의 마왕 (5)

「디오는 달렸다.」

「“허억! 허억!”」

「지금의 그에게는 언제나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 주었던 성검도, 늘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지탱해 온 용사의 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렸다.」

「“후욱! 후욱!”」

「그의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왜일까. 그는 스스로에 대한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을 뿐.」

「“……디오.”」

「그녀는 디오가 알던 그 여자가 아니다. 디오 역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이미 뼈저리게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은 그가 지금 발걸음을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디오!”」

「그 순간 들려온 고대 정령 물의 목소리. 그러나 디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멍청이!”」

「화난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디오의 몸이 어디선가 나타난 물방울에 빠졌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간신히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민 디오가 말하자, 물이 그제야 한숨 놓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 정신이 든 거야? 갑자기 왜 그래? 미친 사람처럼.”」

「“……나는 가야 해.”」

「“어디로?”」

「“그녀에게.”」

「“……설마 그녀라는 게 마왕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믿을게.”」

「이미 다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내뱉는 말. 그러나 그런 그녀의 기대를 디오는 산산이 깨뜨렸다.」

「“가야 해. 놔 줘.”」

「“디오!”」

「“놓으라고 했다.”」

「싸늘한 분노. 그것은 결코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그 엘프, 키리엘도 이런 것은 원하지 않을 거야.”」

「물의 말에 디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치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들먹이지 마라. 정령.”」

「“……읏.”」

「물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디오의 말에서 명백하게 느껴지는 거리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의 얼굴은 여전히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너…… 진짜!”」

「“……이거 치우기나 해.”」

「부르르 떨고 있는 물의 손짓과 함께 디오를 감싸고 있던 물방울이 사라지자, 그제야 그곳에서 빠져나온 디오가 젖은 몸을 이끌고 다시금 걸었다. 물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가지 마.”」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가지 마…… 제발.”」

「구슬픈 정령의 외침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자, 메말랐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지 말라고…… 이 머저리야.”」

「마치 그녀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 * *

마왕의 몸에서 서서히 작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지?”

자조적인 말.

그리고 그 질문은 나조차도 한 번 당할 뻔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야 운 좋게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대다수의 독자가 고작 말 몇 마디로 [최종보스]의 멘탈을 뒤흔들어 놓은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탐정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의 발언에서 [제4의 벽]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추측합니다!」

자칭이라 해도 탐정은 탐정인 건지, 아니면 내가 꼬리를 길게 흘린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의 발언에 대해서 상당히 주의해야 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군.’

내가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마왕의 몸에서 생겨난 균열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마왕 그 자체를 상징하는 힘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강한 힘이었다.

치직-.

치지직-.

둑이 터진 저수지 물처럼 흘러나온 그 힘의 잔류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폭발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의 여파가 모든 것들을 덮치는 것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아악!”

“신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물러서지 마라!”

나 역시도 그 여파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행운 매수]를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순순히 맞아 줄 리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빨리 이곳을 떠야 한다는 사실.

“아자토스, 돌아와.”

[끼잇!]

아자토스가 나에게 돌아오자, 나는 망설임 없이 아자토스의 어둠으로 내 몸을 물들였다.

이로써 탈출 준비는 완료된 셈.

내가 마지막으로 ‘마왕’의 상태를 살피자, 마왕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마왕인가? 마왕의 목적은 뭐지?”

「클리셰가 거칠게 요동칩니다!」

“아아, 그래…… 마왕은 용사에게 죽을 운명이야. 나는 마왕이고…… 하지만 죽음은 두려워. 그렇다면…….”

쩌적.

쩌저적.

균열은 점차 심해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점차 마왕의 눈동자의 빛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굳이 더 건드릴 필요는 없겠군.’

나와 마찬가지로 [하차자]인 마왕이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후의 그녀는, 결코 지금까지와 같은 존재는 아닐 것이라는 점.

그것이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는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나로서는 당장 ‘용사’에게 죽기를 희망하는 ‘마왕’이라는 존재를 막아선 셈이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클리셰가 폭발할 듯이 요동칩니다!」

쩌저적-.

이제는 한계까지 다다랐는지, 마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힘의 잔류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로 갈 시간이군.’

만약 이대로 마왕이 정신이라도 차렸다가는 곱게 가기는 그를 테니 말이다.

녀석이 어떤 존재가 되어 있든지 간에,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잘 있어라.”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 * *

황궁에 되돌아오자, 그곳에는 여전히 ‘남쪽의 마왕’의 여파로 몬스터들과 치열한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새 제국을 돕는 익숙한 군대가 보이는 점 정도 이리라.

“와아아아!”

“신의 뜻대로 악을 몰아내라!”

“신의 뜻대로!”

……이건 또 무슨 쇼야?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 없는 장면.

‘작가 놈이 미쳤나?’

그렇지 않고서야 눈앞에 있는 일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작가 놈은 내 적이었고, 내 적인 이상 나에게 있어서 확실하고도 무조건적이게 나쁜 짓을 해야만 했다.

‘이제 와 친하게 지내자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이곳에서 데우스 교단이 제국을 돕는 행위는, 나에게 해가 될 거라는 점.

그리고 그 우려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나타났다.

「대다수의 독자가 [선]을 행하는 ‘데우스 교단’에 대해서 깊은 호감을 표합니다!」

「[정의]를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정의]를 행하는 소설 속 ‘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와 함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쳐간 엑스트라들의 대화.

“데우스! 정말로 위대하고도 정의로운 신이로군!”

“맞는 말이오. 나도 이제부터 데우스 교단에 몸을 맡겨 볼까 하는데.”

“그것참 좋은 생각이군!”

……이것 봐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당장 나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 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제국이 녀석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무슨 수작을 부릴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만.’

속내가 이리도 뻔히 보이니, 왠지 한 번 정도는 속아 주고 싶은 심정.

‘뭐, 보답은 확실히 해 주지.’

물론 그 방식은 철저하게 내 방식대로겠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무사히 왔군.”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베른이었다.

그 베른의 표정이 어째 아쉬워 보이는 건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마치 죽기라도 바란 것 같은 말투네요.”

“그럴 리가 있겠어? 어쨌거나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것 같아. 데우스 교단에서 제국을 돕는다고 하더군.”

“그것참, 잘됐군요. 의리 없이 먼저 도망간 누구랑은 다르게 참 정의롭네요.”

베른의 눈썹이 능글맞게 웃었다.

“네가 먼저 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꼭 제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말만 해. 죽지는 못해도 죽여 줄 수는 있으니.”

“그것참, 믿음직스럽네요. 그 부탁은 다음에 드리죠.”

“얼마든지.”

「다수의 독자가 당신과 ‘베른’의 설전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개그맨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당신과 ‘베른’의 꽁트에 100점 만점에 47점을 선언합니다!」

“장난은 됐고, 현재 상황이 어떻죠?”

“안 좋아. 데우스 교단 덕분에 몬스터는 대부분 정리가 되어 가고 있지만, 역시 문제는 아직도 제도와 인접해 있는 마왕의 존재야. 나를 포함해서 지금 이곳에는 마왕을 막을 만한 전력이 없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다 죽는다.”

“그 점은 걱정 마시죠.”

“……걱정 말라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곧 이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겁니다.”

* * *

「산을 넘고, 강을 헤엄치고, 평야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디오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얼핏 스쳤을 뿐임에도 물씬 풍겨오는 파괴와 죽음의 냄새.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고, 또 행할만한 자는 그가 알고 있기에 오직 한 존재뿐이었다.」

「“……제기랄.”」

「왜일까. 디오는 그녀의 손이 결국 인간의 피로 물들었다는 사실이 미칠 것처럼 괴롭게 다가왔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그녀는 마왕이다. 마왕은 인간의 적이며, 인간은 마왕의 적이다. 그 둘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는 조여 오는 가슴을 붙잡았다.」

「“찾아야 해.”」

「막연한 다짐. 그러나 그 다짐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이룰 수 있었다. 파괴와 죽음의 흔적을 따라서 제도와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평야에 도착한 디오는 마침내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키리…… 마왕!”」

「자기도 모르게 부를 뻔한 그녀의 이름을 뒤로한 채로, 마침내 디오가 마왕의 앞에 섰다. 디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마왕의 모습. 디오는 그런 그녀를 붙잡고서 오열했다. 마치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가 마왕이 아닌, 과거의 그녀라도 된다는 듯이.」

「“도대체…… 도대체…… 왜!”」

「디오의 오열에도 불구하고 마왕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그 어떤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속이 텅 비어 버린 인형처럼.」

「“나는…… 나는…….”」

「디오가 마왕을 붙잡고서 오열하자, 마침내 영혼을 잃고서 침묵을 지키던 마왕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용사.”」

「마왕의 손이 천천히 용사의 뺨을 어루만졌다. 미치도록 차가운 손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사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조용히 흘러내렸다.」

「“……키리엘?”」

「디오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그 이름을 부른 순간. 마왕의 입가가 서서히 미소로 물들었다.」

「“용사…… 내가 죽여야 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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