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차 이후의 소설 속-71화 (71/164)

◈ 71화 Chapter 18: 용사 (1)

“……뭐?”

“내가 너를 돕겠다니까? 잘 알아들었으면서 꼭 되묻더라.”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대가라고 하면 뭣하지만, 나와 함께한다면 네가 원하는 걸 이뤄 주지.”

“……다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마라. 너 따위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안다는 거지?”

내가 서쪽의 마왕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은 이유에는 역시 이 소설이 당장 [조기 완결]로 향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큰 것은 사실이었으나, 다른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유라던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나고 싶지?”

“너…….”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나를 도와.”

때아닌 인질극.

이 썩을 대로 썩은 [클리셰]가 그럼에도 통할 거라 확신하는 이유는 역시 상대가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하는 게 뭐지?”

그것 봐라.

「대다수의 독자가 [주인공]의 마음을 돌린 당신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악] 성향을 지닌 당신의 발언에 큰 의심을 품습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이 또 어떤 개수작을 부릴지 기대하며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50,000G」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해 주지.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 할 테니.”

제도 바깥 그다지 멀지 않은 평야에는 여전히 마왕이 있을 것이다.

아마 무엇인가에 발목이 잡혀 있는 터라 디오 녀석이 도망쳐 올 수 있었을 테지만, 그것도 머지않아서 한계를 드러낼 터.

그제야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베른이 말했다.

“……그 말은, 지금 제국을 제물로 삼아서 도망치겠다는 건가?”

“안심하시죠. 지금의 마왕이 이곳을 파괴할 이유는 없으니.”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지금의 마왕의 목표는 나나 제국이 아닐 테니까요.”

[하차자]인 마왕이 이곳까지 쫓아온 이유는 내 도발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왕’으로서 정체성이 섞여 버린 지금의 목표는 내가 아닐 터.

그렇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지야 뻔했다.

“녀석의 목적은 용사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용사는 마왕의 적이니까.”

전대 용사인 베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하지만 그렇기에 존재하는 맹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기 영토 바깥까지 쫓아온 경우는 없었겠죠.”

“……그러고 보니 그렇군. 하지만 그것은 아마 드래곤들과의 조약 때문일 거다.”

“조약?”

“자신의 영토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조약이었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군. 지금까지 마왕은 조약을 어기지 않았을 터인데.”

과연…… 그렇게 된 거군.

디오 녀석이 당장 마왕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임시방편에 불과할 터.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죠.”

내가 발걸음을 옮기며 멍하니 서 있는 베른을 향해서 턱짓하자, 베른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도?”

“뻔한 걸 왜 물어요?”

“왜?”

“당신도 용사잖아요.”

지금 시점에서 성검과 용사의 힘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베른은 오히려 [주인공]인 디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비중]마저도 [주인공]을 넘어섰으니, 동료로서는 영입 1순위인 셈.

“꼭 가야 하는 건가?”

“정 그러면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마왕에게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제국의 멸망은 덤이고.”

그제야 썩어 문드러지는 베른의 표정.

“……제길.”

아무리 양아치라고는 하나, 본질이 [용사]인 베른에게 있어서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협박은 유효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

그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서두르죠.”

“이봐.”

의외라면 의외일까.

나를 부른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디오였다.

“왜?”

“너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일단은 말해 두지. 나를 도운 드래곤 중에는, 꽤나 익숙한 드래곤도 있었다. 네 동료 말이다.”

퉁명스러운 말투였으나, 그 내용과 말속에는 걱정 아닌 걱정이 은연중에 조금이나마 섞여 있었다.

“……역시.”

디오가 말한 드래곤이 누구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블랙 드래곤 루.

바로 그녀를 말하는 것이리라.

“구하러 갈 건가?”

위기에 빠진 루를 구하러 가는 것.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니.”

「대다수의 독자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동료를 버리는 당신의 선택을 맹렬히 비난합니다!」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당신의 속내에 대해서 추측성 발언을 내놓습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란 판단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루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또한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지 않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지?”

“느낌이라고 해 두지.”

정확히는, [작가] 놈에 대한 믿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고작 하차 선언 가지고 남을 소설 속에 처박아 버릴 정도로 성격이 꼬인 녀석이 나의 동료라는 쓰기 좋은 패를 무의미하게 버릴 리 없다는 믿음.

그것이 지금 내가 망설임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이유였다.

“반!”

그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하이디의 모습.

“하이디?”

「다수의 독자가 뒤늦게 나타난 ‘하이디’의 모습을 보며 잊고 있었던 ‘하이디’의 존재에 대해서 자각합니다!」

「등장인물, ‘하이디’의 [공기] 속성이 요동칩니다!」

‘……까먹고 있었다.’

나조차도 잊고 있던 수준이었으니 가히 옆에 없어도 있는 것 같고,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하이디가 합류하자,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던 베른이 말했다.

“다 모인 건가?”

“그런 것 같군요.”

“그나저나 디오 녀석은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거야? 곧 죽을 것 같은데.”

“……나는 괜찮다.”

본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현재 디오의 상태는 오기인지 집념인지 모를 초인적인 힘으로 아직까지 두 다리를 짚고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쓰러져 있었다면 당연히 시체라고 생각할 만큼.

“아자토스.”

[끼잇!]

“고쳐.”

아자토스의 어둠이 디오를 감싸자, 그 광경을 바라보던 베른이 말했다.

“마왕에게 당한 상처다. 일반적인 회복 마법 같은 걸로는 불가능해. 최소한 고위 신관 정도 되는 이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확실히 그럴 것이다.

물론, 내가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회복 마법이었다면 말이지만.

“지켜보기나 하시죠.”

“그러니까 안 된다니…….”

「[개연성 무시]를 사용하였습니다!」

「[500G]를 소모합니다!」

「현재 적립된 후원금: 1,449,500G」

아자토스의 어둠 안에서 꿈틀거리던 디오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자, 베른은 투덜거리던 그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디오는 조금 전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한 부상은커녕 얼굴에 잡티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되네?”

“된다니까요.”

그리고서는 어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베른의 모습.

“……이럴 줄 알았다면 한 마리 더 받아내는 건데.”

지금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를 연금술사 마그누스가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

물론, 이는 [개연성 무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였고, 제아무리 아자토스라고 한들 혼자만의 힘으로 마왕의 힘에 의해 죽어 가는 용사를 저렇게 멀쩡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만약 베른이 호문쿨루스를 손에 넣었다고 한들, 이러한 효과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베른과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모든 상처가 치료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살피던 디오가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차피 나를 이용할 생각일 테니.”

누군가가 떠오를 정도로 솔직하지 못하다 못해 꼬장꼬장한 성격.

내가 고개를 살며시 돌려서 베른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숨겨둔 아들은 없으시죠? 예를 들면…… 용사였다거나, 용사라거나, 혹은 용사를 할 예정이라거나.”

“……애비도 못 알아보는 자식은 없다만.”

“꼭 누구를 집어서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참 후레자식이네요.”

「다수의 독자가 자연스럽게 [진주인공]을 멕이는 당신의 발언에 유쾌함을 표합니다!」

「대다수의 독자가 이에 지지 않고서 은근슬쩍 [주인공]을 멕이는 [진주인공]의 발언에 배꼽을 잡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디오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에 이런 대화를 하는 건가?”

“가끔은.”

“…….”

그 한마디를 끝으로 결국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디오의 모습은 어찌 보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이만 출발하시죠.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너무 끌었으니.”

디오를 치료한 것까지는 [주인공]의 객사를 막기 위한, 명백한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이 이상으로 이곳에서 시간을 더 쓰는 일은 불필요할뿐더러 위험했다.

베른이 말했다.

“어디로 갈 거지?”

“북쪽.”

“북쪽? 추상적이군. 정확한 위치는?”

“저도 몰라요.”

“……뭐?”

북쪽에 어떤 국가가 있고, 어떤 도시가 있고, 어떤 마을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있었다.

“데우스 교단이 그곳에서 퍼졌다고 하더군요.”

한 가지 실마리.

그것만으로도 북쪽으로 향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군.”

“꾸미긴요. 옆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라.”

내가 살며시 눈을 흘기자, ‘옆에 있는 사람 1’인 디오가 말했다.

“이용할 테면 해 봐라. 단, 대가는 약속대로 받아 갈 테지만.

“당연하지.”

“쉽게 대답하는 걸 보니, 쉽게 믿음이 가진 않는군.”

“믿음을 좀 가지는 것도 괜찮을 거야.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어떤 것을 보려면, 먼저 믿어야 한다.’ 지금 네가 나에게 가져야 할 태도라고 볼 수 있지.”

“‘의심은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말도 있지. 너에게 점점 관심이 생기는군.”

정말로 어느 성격 나쁜 전대 용사가 숨겨 놓은 아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반응.

꼴에 [주인공]이라고, 그래도 보통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정치물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주인공]과 당신의 기 싸움 아닌 기 싸움에 큰 흥미를 표합니다!」

「파워밸런스를 중시하는 한 독자가 검이 아닌 혓바닥으로 싸우는 당신과 [주인공]의 설전에 노잼을 표합니다!」

물론, 그래봤자 지금은 내 손에 잡힌 호구…… 아니, 물고기 중 한 마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내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가시죠.”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어떤 머저리가 있을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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