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Chapter 20: 데우스 교단 (1)
그렇게 베른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 후.
처음 며칠 동안은 말 그대로 아무런 일도 없이 적적했다.
디오 녀석이랑 몇 번 아옹다옹한 것이 이 지루한 여행의 정수라고 봐도 좋을 만큼.
“여기가 어디야?”
“글쎄.”
“도움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안 되는 놈.”
“자기소개가 꽤나 적나라하군.”
“네 이력서에 쓰여 있던 건데.”
“…….”
「대다수의 독자가 당신과 [주인공]의 재미라고는 1g도 없는 대화에 맹렬한 노잼을 표합니다!」
「개그맨 지망생을 자처하는 한 독자가 결국 사망해 버린 당신의 개그 센스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데, 너 친구 없지?”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짐만 될 뿐이다.”
“불필요하기는. 너 그러다가 비명횡사하면 장례식장에 보험사 직원밖에 안 온다.”
“……신경 꺼라.”
“끌 테니까 보험금 명의는 내 앞으로 해 줘.”
“나보다 먼저 죽고 싶나 보군.”
「[주인공]을 지지하는 일부 독자가 가벼운 농담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아싸력에 깊은 안타까움을 표합니다!」
이 지루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우리 일행에게 다가오는 위협은 순수하게 [사망 플래그]의 표적이었던 베른을 향해 있었고, 베른이 일행에서 이탈한 지금 우리가 위협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 평화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충격적이거나 기발한 방법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기 마련이었고, 불청객은 언제나 그렇듯이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청객인 법이었다.
“조여 오는군.”
“올 때가 됐다 싶기는 했어.”
“이제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할 거지?”
“어쩌긴. 반갑게 맞이해 줘야지.”
말하기 무섭게, 자신들을 신의 사도라고 밝힌 그들은 그렇게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성직자, 그 자체였다.
누가 보낸 이들인지는 굳이 생각씩이나 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사망 플래그]가 깨져 버린 덕에 한동안 잠잠했던 [작가] 놈이 다시금 활동을 재개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북쪽 땅을 찾는 이방인들은 무척이나 오랜만이군요. 데우스 교단의 사제, 바알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름부터가 신보다는 다른 쪽과 훨씬 더 친해 보이는 이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계에서는 그놈이 그놈이었으므로 별로 상관도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른 쪽이 훨씬 더 나을 지경이었으니까.
자신을 바알 사제라고 밝힌 이가 디오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용사님이십니까?”
정직하다 못해 뻔뻔한 질문.
물론, 제아무리 호구의 재림이라고 볼 수 있는 디오라 할지라도 그런 성의 없는 수작질에 걸려들 만큼 머저리는 아니었다.
“아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용모파기가 너무나도 유사한데.”
“자주 받는 오해다. 덕분에 마왕까지 잡으러 갈 뻔한 적도 있지.”
“그것참, 곤란했겠군요.”
나름대로 노력했는지, 디오치고는 제법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물론,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잠시 교단까지만 같이 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싫다만.”
“그다지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바알이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방인께서 정말로 용사님이 아니시라면.”
그러자 디오의 시선이 은근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의 동의를 구하는 눈치.
‘벨까?’
물론, 지금 당장 저들을 여기서 물리치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발상을 바꾸면, 상황도 달라지는 법.
“그러죠.”
“……뭐?”
내가 당황한 디오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침 우리도 거기까지 가는 길이었잖아?”
“너……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당신의 행보를 지켜봐 온 한 독자가 또다시 예상을 뛰어넘은 당신의 행보에 주목합니다!」
무슨 생각이긴.
굳이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용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디오의 얼굴에 황당함이 물들어 가고 있을 때, 사제 바알이 크게 반겼다.
“그렇습니까? 마침 잘됐군요. 그렇다면 저희 교단을 찾고 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있고말고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아, 그건 교단에 가서 직접 말씀드리고 싶군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전공을 올려서 신이 난 신입에게 너희 두목님 잡으러 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두목님한테 직접 가서 신입이 데려왔다고 이른다면 모를까.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바알이 수긍하자, 내가 디오를 바라보며 동의 아닌 동의를 구했다.
사실상 대답이 이미 정해진, 그런 질문이었다.
“괜찮지?”
“……마음대로 해라.”
“대충 정리되신 것 같은데, 이만 가실까요?”
순식간에 진행된 이야기에 디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던가.”
“따라오십시오.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제 바알의 뒤를 따르는 사이, 내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자, 그러면…….’
지금 내가 한 행위는 어찌 보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놈의 입장에서 변수가 없을 때의 이야기.
때문에 슬슬 내가 뿌린 변수의 성과를 확인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어디 한 번 볼까.’
그 성격 꼬장꼬장한 아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미리보기 결제]를 사용하였습니다!」
「[100G]가 소요됩니다!」
* * *
「베른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반긴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어둑하고 칙칙한.」
「“으…….”」
「눈을 뜬 베른은 가장 먼저 자신의 마지막 기억을 되새겼다. 절벽 아래로 자신을 떠미는 호문쿨루스의 거대한 아가리와 거대한 물살에 떠밀려서 결국 정신을 잃은 자신의 모습까지.」
「“……망할 놈.”」
「다시 만나게 되면 늘 말했던 것처럼 목과 머리를 분리시켜 주고 말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른은 자신이 살아난 것이 결코 기적 따위가 아님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입은 상처는 얼핏 보면 출혈량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생명에 지장이 가는 치명상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인즈 반. 그 소년을 만나고 나서부터 모든 일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베른은 그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았자 머리만 더 아팠기에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여기는 어디지?”」
「자신의 몸에 감겨 있는 붕대로 보아서는 누군가가 쓰러진 자신을 보살핀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별다른 구속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최소한 적은 아니라는 소리. 그렇다면 누구지? 자리를 털고 일어선 베른이 좁은 오두막을 나서자, 망토를 두른 어린 소녀가 그를 반겼다.」
「“어? 일어났네?”」
「“소녀, 네가 나를 구해 준 건가?”」
「“맞아.”」
「짧다면 짧은 질의응답이 끝나자, 베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경을 훑었다. 자신이 빠져나온 것과 같은 오두막이 대략 열댓 가구 정도. 본래였다면 기억에 남을 이유가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게 건물 양식이나 풍경이 베른에게 있어서 상당히 익숙했다.」
「“……너희, 뭐냐?”」
「“응?”」
「천진난만한 소녀의 표정에 베른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지?”」
「“일족의 마을이야.”」
「“일족?”」
「그제야 베른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일족. 미지의 영역인 북쪽 땅. 그 두 가지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검은 마탑.”」
「“응? 역시 단순한 조난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와 함께 눈앞에 있는 소녀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베른은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고는 성검을 뽑으려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망할.”」
「그와 함께 그의 눈앞에 검은색 연기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제아무리 성검이 없다고 한들, 그는 용사의 힘을 지닌 진정한 용사. 이따위 낮은 수에 당할 이가 아니었다.」
「“흡!”」
「단 한 번의 기합. 그러나 그 효과는 지대했다. 고작 기합 한 번에 순식간에 자신의 마법이 모조리 파훼 당한 소녀가 살며시 감탄했다.」
「“우와! 설마 했었는데 역시구나. 그런데 이상하네…… 용사치고는 너무 늙었어. 도대체 아저씨 정체가 뭐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소녀…… 아니, 당신 정체가 뭐지?”」
「소녀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그러면 서로 묻지 않기로 하지.”」
「“내 이름은 아모스야.”」
「어이없을 정도의 빠른 태세 전환을 보며 베른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내 이름은 베른이다.”」
「“치사하게 이름만 말해 주기야?”」
「“네가 더 말한다면 생각해 보지.”」
「아모스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얼핏 보면 귀여워 보일 수도 있는 광경이었지만, 베른은 더 이상 그녀의 외견을 믿지 않았다.」
「“……아저씨 친구 없지?”」
「“죽이고 싶을 만큼 애절한 녀석이라면 한 명 떠오르는군. 녀석만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복잡해지지도 않았을 텐데.”」
「“성격 진짜 나쁘네.”」
「그렇게 말한 아모스가 베른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냥 노안인 건가?”」
「“젊게 봐 줘서 고맙군.”」
「“말하는 건 한 이백 년 묵은 구렁이 같은데 말이야. 혹시 드래곤?”」
「“드래곤은 멸종했다.”」
「“아저씨치고는 그다지 재미없는 농담이네. 그 빌어먹을 도마뱀들이 어떻게 멸종해? 마왕이 직접 나서서 싹 쓸어버리기라도 했어?”」
「조소를 가득 머금은 미소. 그 미소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강력한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숨길 필요는 없겠군. 맞다.”」
「“응? ……뭐라고?”」
「“네가 들은 게 맞다.”」
「“아니, 아니 잠깐만…… 드래곤이 정말로 멸종했다고?”」
「“그래.”」
「아모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저씨…… 설마 진짜 용사야?”」
「“그랬었지.”」
「“그랬었다? 설마…… 잠깐, 베른이라고?”」
「그제야 아모스의 기억 속에 있던 오래된 이름 하나가 툭 떠올랐다. 용사 베른. 전전대 용사인 용사 가람의 제자이자, 마왕 바네사를 처치한 영웅.」
「“……아저씨 설마, 전대 용사?”」
「“그래.”」
「“어떻게 전대 용사가 아직도…….”」
「“이제 네 정체도 듣고 싶군.”」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그녀의 정체가 아니었다.」
「“부탁이 있어!”」
「베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싫다.”」